내전과 남획 탓에 인간 '사촌'들이 위험하다
IUCN 최신 평가 ‘적색 목록’, 조사대상 29%가 멸종위기
내전 지역 그라우어고릴라 20년 새 77% 줄어…판다는 늘어
» 위급 종으로 평가돼 멸종에 한 걸음 더 다가선 동부고릴라. 내전과 밀렵으로 지난 20년 새 개체수가 77% 줄었다. Fiver Löcker, 위키미디어 코먼스
인간과 가장 가깝게 진화한 친척인 유인원 6종 가운데 4종이 멸종 위험에 한 걸음 다가섰다. 자이언트 판다는 중국 당국의 노력에 힘입어 위험에서 한 단계 멀어졌지만 장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5일 하와이에서 열리는 연맹 총회 자리에서 최근 멸종위기종의 위험 상태를 평가한 ‘적색 목록’을 발표했다. 연맹은 8만 2954종을 평가한 결과 29%인 2만 3928종이 멸종 위험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동부고릴라는 ‘위기’ 등급에서 멸종 다음으로 위험도가 높은 ‘위급’ 등급으로 상향 조정됐다. 지난 20년 사이 개체수의 70% 이상이 줄어든 것을 반영했다.
아프리카 동부 우간다, 르완다, 콩고민주공화국 등 내전이 벌어지는 지역에 서식하는 동부고릴라에는 그라우어고릴라와 마운틴고릴라 두 아종이 있다. 그라우어고릴라는 1994년 이후 개체수의 77%를 잃어, 1만 6900마리이던 것이 지난해 3800마리로 줄었다. 내전에 쫓겨 국립공원에 들어간 난민이 광물을 채취하면서 고릴라 고기를 식품으로 삼았다.
» 라면 등 가공식품에 널리 쓰이는 야자유를 생산하기 위해 벌채가 계속되면서 오랑우탄은 `위급' 종으로 평가됐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마운틴고릴라는 880마리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그나마 조금 늘어난 수치이다. 이밖에 ‘위급’ 판정을 받은 영장류로는 서부고릴라, 보르네오오랑우탄, 수마트라오랑우탄 등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오랑우탄은 야자유(팜오일)를 생산하기 위해 숲을 베어내면서 감소하고 있다. 침팬지와 보노보는 ‘위기’로 평가됐다.
잉거 앤더슨 국제자연보전연맹 사무총장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사촌의 하나인 동부고릴라가 멸종을 향해 미끄러지는 걸 보고 있는 건 정말로 비통스럽다”라고 연맹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엄청난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적색목록 최신판은 지구의 멸종위기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지 실감케 한다. 보전을 위한 행동은 먹히고 있는 그 증거도 많다. 흐름을 뒤집고 지구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건 우리의 책임이다.”라고 강조했다.
» 자이언트 판다는 중국 정부의 노력으로 개체수가 늘어 '위기'에서 '취약'으로 등급이 완화됐지만 전망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자이언트 판다는 보전 노력이 결실을 본 사례로 제시됐다. 판다는 ‘위기’에서 ‘취약’으로 멸종 위험 등급이 완화됐다.
연맹은 “판다의 상황 개선은 중국 정부가 이 종의 보호를 위해 쏟은 노력이 효과적임을 확인한다”라고 밝혔다. 현재 판다의 전체 개체수는 2000마리가 넘는다.
그러나 연맹은 보전정책의 성공과 별개로 판다의 장래는 밝지 않다고 밝혔다. 기후변화로 판다의 주식인 대나무 숲의 35% 이상이 앞으로 80년 이내에 사라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외래종 침입은 멸종의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이번 자연보전총회가 열린 하와이는 그런 대표적 사례임이 이번 평가에서 드러났다.
하와이에 분포하는 고유식물 1093종 가운데 평가가 이뤄진 종은 415종이다. 그런데 이들의 87%가 돼지, 염소, 쥐, 민달팽이, 외래 식물 등 외래종 탓에 멸종 위험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이번에 멸종 판정을 받은 하와이 고유식물 하하. 2003년 마지막으로 관찰된 이후 자취를 감췄다. David Eickhoff, 위키미디어 코먼스
카우아이 섬에만 사는 아름다운 꽃이 피는 나무인 오헤키쿨라는 그런 예다. 덤불 식물인 오하와이 등 38종은 멸종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마지막으로 관찰된 하하를 포함해 4종은 야생에서 멸종했다는 판정을 받았다.
연맹의 하와이 식물 평가 그룹 전문가인 매트 케어는 “하와이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장차 다른 섬이나 고립된 생태계에서 벌어질 일을 예고하고 있다. 하와이나 다른 나라들은 외래 침입종의 확산을 막고 작은 집단이 살아남은 종을 보호하는 일에 하루 속히 나서야 한다.”라고 연맹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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