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도박한다, 주변 여건이 나쁘면

조홍섭 2016. 07. 07
조회수 28505 추천수 0

상황이 좋을 때는 안전을, 나쁠 때는 모험을 거는 사람의 심리와 비슷

완두 이용한 실험에서 식물도 사람 등 동물처럼 전략적 판단 능력 보여


Hagai Shemesh.jpg » 식물도 동물처럼 역경에 맞서 전략적 판단을 한다는 사실이 완두를 이용한 연구로 밝혀졌다. 완두 실험실 모습. Hagai Shemesh


다음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어떤 쪽을 고를까. 


“1만원을 95% 확률로 가질래, 아니면 100% 확률로 9499원을 가질래.” 앞의 제안은 기댓값이 9500원이어서 뒤보다 낫지만 혹시 재수 없게 5%에 걸릴 우려가 있으니 보통 사람들은 안전하게 액수는 조금 적지만 뒤 제안을 받는다.


반대로 “95% 확률로 1만원을 낼래, 아니면 100% 확률로 9499원을 낼래”라는 질문에는 대개 첫 번째를 택한다. 손실 기댓값은 앞의 제안이 더 크지만 한 푼도 내지 않을 5%의 확률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


심리학을 고려하는 행동경제학에서 위험이 따르는 대안 가운데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는지를 설명하는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의 한 예이다. 이 예는 조건이 좋을 때(돈을 받는)는 안전한 쪽을, 나쁠 때(돈을 내는)는 위험해도 모험을 거는 쪽을 택하는 것을 보여준다.


Rasbak _800px-Doperwt_rijserwt_peulen_Pisum_sativum.jpg » 완두.


사람을 비롯해 유인원, 새, 사회성 곤충은 위의 예처럼 나름대로 위험을 판단해 행동을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식물도 비슷하게 전략적인 판단을 한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이스라엘과 영국 생태학자들은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1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완두가 위험을 감지해 행동을 바꾸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pea1.jpg » 완두를 이용한 실험 결과를 요약한 그림. <커런트 바이올로지>


연구자들은 완두의 뿌리를 차례로 잘라 양쪽으로 두 가닥만 남도록 한 뒤 둘로 나뉜 화분의 경계에 심는 얼개로 실험했다. 먼저 화분 양쪽의 영양분에 차이를 뒀다. 당연히 완두는 양분이 풍부한 쪽으로 뿌리를 풍부하게 뻗었다.


pea.jpg » 완두 실험 얼개. <커런트 바이올로지>


이어진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화분 양쪽의 양분 평균농도를 같도록 하되, 한쪽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도록 하고 다른 한쪽은 들쭉날쭉하도록 했다. 위의 전망이론 예처럼 완두에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를 물은 것이다.


양분이 풍부할 때 완두는 농도가 일정한 안전한 화분 쪽으로 뿌리를 많이 냈다. 그러나 양분의 평균농도가 식물이 성장하기에 충분치 않은 수준이 되자 완두는 변동 폭이 크지만 일시적으로는 양분이 풍부한 화분으로 향하는 모험을 택했다.


구체적으로는 토양의 평균 양분(질소) 농도가 ℓ당 0.01g 이하일 때 완두는 예측불가능한 쪽으로 뿌리를 뻗는 모험을 택했고, 0.15g 이상일 때는 일정한 안전한 쪽으로 뿌리를 냈다.


논문 제1 저자인 이프라트 데네르 이스라엘 벤 구리온대 석사과정생은 옥스퍼드대의 보도자료에서 이렇게 말했다.


경험 많은 농부나 정원사라도 식물이 환경조건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로 봅니다. 저도 그랬지요. 그런데 이 연구는 일반인이 지닌 생각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잘 보여줍니다. 생명체는 자연선택으로 자신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도록 설계됐습니다. 생물체가 종종 놀라운 유연성을 보이는 이유입니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생물의 복잡한 적응 전략이 꼭 복잡한 인지능력에서 나오는 건 아님을 이 연구에서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식물뿐 아니라 세균, 곰팡이 등이 생존의 고비마다 놀라운 판단 능력을 보이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중추신경계가 없는 식물의 이런 능력은 문제가 뭔지 알 거나 생각할 줄 몰라도 오랜 진화과정에서 획득한 수많은 단순한 규칙이 모여 복잡한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연구자들은 말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Dener et al., Pea Plants Show Risk Sensitivity, Current Biology (2016), http://dx.doi.org/10.1016/j.cub.2016.05.008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개구리 사냥하는 거미, 나뭇잎 엮어 덫으로 사용개구리 사냥하는 거미, 나뭇잎 엮어 덫으로 사용

    조홍섭 | 2021. 01. 11

    농발거미 나뭇잎 2장 엮어 은신처 겸 덫으로…세계적으로도 개구리는 거미 단골 먹이 푹푹 찌는 열대우림에서 나뭇잎이 드리운 그늘은 나무 개구리에게 더위와 포식자를 피해 한숨 돌릴 매력적인 장소이다. 그러나 마다가스카르에서 크고 빠른 사냥꾼인...

  • 개 가축화, ‘단백질 중독’ 피하려 남는 살코기 주다 시작?개 가축화, ‘단백질 중독’ 피하려 남는 살코기 주다 시작?

    조홍섭 | 2021. 01. 08

    사냥감 살코기의 45%는 남아돌아…데려온 애완용 새끼 늑대 먹였을 것 .개는 모든 동물 가운데 가장 일찍 가축화가 이뤄졌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늑대가 가축이 됐는지는 오랜 논란거리다.개의 골격이 발견된 가장 오랜 구석기 유적은 1만4...

  • 새를 닮은 포유류, 오리너구리의 비밀새를 닮은 포유류, 오리너구리의 비밀

    조홍섭 | 2021. 01. 08

    젖샘 있으면서 알 노른자도 만들어…지금은 사라진 고대 포유류 흔적 1799년 영국 박물관 학예사 조지 쇼는 식민지였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보내온 이상한 동물 표본을 받았다. 오리 주둥이에 비버 꼬리와 수달의 발을 지닌 이 동물을 쇼는 진기한 ...

  • 말의 몸통 지닌 ‘키작은’ 기린 발견, 유전 다양성 감소 탓?말의 몸통 지닌 ‘키작은’ 기린 발견, 유전 다양성 감소 탓?

    조홍섭 | 2021. 01. 07

    우간다와 나미비아서 각 1마리 확인…동물원, 가축선 흔해도 야생 드물어 .아프리카 우간다와 나미비아에서 돌연변이로 인한 골격발육 이상으로 추정되는 왜소증 기린이 발견됐다. 일반적으로 왜소증은 근친교배가 이뤄지는 가축에서 흔히 발견되지만 야생...

  • 스타 동물 자이언트판다 그늘서 반달곰 운다스타 동물 자이언트판다 그늘서 반달곰 운다

    조홍섭 | 2021. 01. 06

    판다 좋아하는 고산 중심 보호구역…반달곰, 사향노루 보호 못 받아 급감 자이언트판다나 호랑이처럼 카리스마 있고 넓은 영역에서 사는 동물을 우산종 또는 깃대종이라고 한다. 이 동물만 보전하면 그 지역에 함께 사는 다른 많은 동물도 보전되는 ...

최근글

환경사진

인기글

최근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