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로 빨래 하기?-전기 난방기기, 겨울 대정전 부를라

조홍섭 2011. 11. 04
조회수 105341 추천수 0

물 끓여 발전하느라 60% 버리는 고급 에너지로 난방은 비효율 극치

원가 아래 전기요금, 원전 확대가 부른 공급 위주 전력정책이 근본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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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난방기기를 찾는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전기온풍기 매장의 모습. 이정아 기자.

 

만일 생수를 붓고 세탁기를 돌리려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나 달려들어 말릴 것이다. 사람이 마시기 위해 애써 만든 ‘고급 물’을 빨래하는데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요즘 사무실이나 식당, 가정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전기 난방기기로 추위를 이기려는 것은 생수로 빨래하는 격이라고 지적한다. 고급 에너지인 전기를 허투루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에너지 낭비를 넘어 무분별하게 전기 난방기기를 사용하다가는 올 겨울 자칫 대규모 정전사태를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소리도 높다.
 

지난 2일 에너지시민연대가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연 정책토론회 ‘겨울 전력 대란, 전기난방을 잡아라’에서 에너지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대중화하고 있는 전기난방의 문제점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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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방과 난방이 모두 가능한 시스템에어컨. 최근 140만 대가 보급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혹한일 때 보조히터를 가동해야 하는 등 전력수요가 높아 피크전력의 6%를 차지한다. 

 

맹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1월17일 정오 전력수요는 7313만㎾를  기록하면서 그해 여름철 최대 전력수요를 훌쩍 넘겼다. 냉방기를 많이 트는 여름철 전력 피크보다 겨울철 전력 피크가 더 높아진 건 2009년부터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조영탁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전기소비가 모든 난방을 전기로 하는 프랑스나 영국형으로 접어들었다는 조짐”이라고 풀이했다. 프랑스는 전력의 80% 가깝게 원자력발전으로 충당하지만 난방 수요가 몰리는 겨울철엔 외국에서 전기를 수입하고 있다.
 

이처럼 겨울철 전력 수요가 폭증한 배경에 전기난방의 증가가 놓여 있다. 사실 겨울철 피크는 2000년대 초·중반에도 나타났다. 정부가 남아도는 전기를 값싼 심야전기로 판매하자 농촌의 심야전기 수요가 크게 늘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피크는 한밤중인 밤 11시~12시 사이에 나타났지만 최근의 겨울철 전력수요는 낮 11시~12시 사이에 치솟는다.  전기 난방기기를 주로 가동하는 시간이 이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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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스토브. 전국에 640만대가 보급돼 있다. 

 

 가장 많이 보급된 난방기기는 전기스토브로 약 640만 대에 이른다. 이어 히트펌프로 냉·난방을 모두 하는 시스템에어컨(EHP) 140만 대, 전기온풍기 120만 대 등이 최근 급속히 보급됐다. 이밖에 음식점 등에서 손님이 앉은 바닥을 순간적으로 덥히는 데 널리 쓰이는 전기 패널, 농업용 창고나 시설원예 등에 많이 쓰는 전기열풍기, 집집 마다 한 두 개씩 있는 전기 담요와 전기 장판이 대표적인 전기 난방기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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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온풍기. 120만대가 보급돼 있다.
 

문제는 겨울철 피크 때 이들 전기난방으로 인한 부하가 전체의 25%나 차지한다는 것이다. 전기 난방기기 가운데 전력 피크에 기여하는 비중은 전기온풍기와 시스템에어컨이 각각 24%로 가장 높고 전기스토브가 16%, 전기 패널 5%, 전기장판 2% 등의 순서이다.
 

피크 때 난방 부하의 용도는 상업용이 702만㎾, 산업용이 680만㎾, 주택용이 475만㎾로 상업용 난방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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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난방이 각광은 받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 편리하고 싸기 때문이다.
 

다른 화석연료에 견줘 전기는 그을음도, 폐기물도 나오지 않고, 금세 난방효과가 나고, 필요한 곳에만 난방을 할 수 있는 등 여러 모로 깔끔하고 쓰기 편한 에너지이다. 하지만 전기가 생산되는 모든 과정을 돌아보면, 눈앞의 편리함 뒤에는 엄청난 낭비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화택 국민대 기계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열과 일의 관계로 이 문제를 설명했다. 일을 열로 바꾸는 것은 쉽지만 열로 일을 하는 것은 힘들다. 일은 100% 열로 변환이 가능하지만 열을 100% 일로 변환시키지 못하는 것은 열역학의 기본법칙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은 섭취한 칼로리의 18%만을 일로 바꿀 수 있다. 나머지는 체온과 신체를 유지하는데 쓴다. 화석연료를 태워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에서도 투입된 에너지의 약 60%는 폐열 등으로 버려지고 전기 형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30~40%에 불과하다.
 

그 이유는 전기를 만들려면 물을 끓여 수증기를 만든 다음 이것을 이용해 터빈을 돌려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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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이 일로 변환되면서 에너지가 손실되는 과정. 자료=한화택 교수 

 

석유의 에너지가 100이라면 보일러에서 열로 만들 때 95가 되고, 이 열을 터빈에서 일로 만들면서 45로 줄어든다. 다시 발전기에서 전기가 만들어지면서 40이 되고 송전선에서 또 5% 가량의 손실을 보면서 가정이나 사무실로 배달이 된다. 결국 애초 에너지의 3분의 1만을 사용하는 셈이다. 전기 대신 석유를 태워 열을 얻었다면 3배나 효과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한 교수는 “전기 난방기기의 효율이 높다고 광고하는데 애초 전기난방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100% 효율인들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비효율적이면서도 전기 난방기기가 급속히 늘어나는 핵심 이유는 전기 값이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이다. 한 교수가 예시한 계산 결과를 보자.
 

월 320㎾h의 전력을 써 약 5만원의 전기요금을 내는 가정에서 2㎾급 전기스토브를 쓴다고 하자. 하루 3시간을 쓰면 추가요금은 약 7만원으로 전기요금은 12만원 정도가 된다. 만일 매일 8시간 동안 충분히 쓴다면 추가요금 30만원을 합쳐 35만5000원의 전기요금을 내야 한다. 적지 않은 돈이지만, 한 달 내내 따뜻하게 보내는 비용으로 터무니 없다는 느낌은 안 든다.
 

만일 같은 전기히터를 사무실에서 쓰면 어떻게 될까. 하루 8시간을 틀어놓아도 산업용 전기는 단가가 싸기 때문에 한 달에 3만 7000여원만 더 부담하면 된다. 주택과 마찬가지로 월 320㎾h의 전력을 쓰는 사무실이라면 이렇게 풍족하게 히터를 틀어놓고 지내도 한 달에 전기요금은 6만 7000원에 불과하다.
 

겨울철 전기난방 수요가 전기 단가가 싼 상업용과 산업용에 집중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태 뒤엔 원가의 86.1%에 불과한 전기요금의 문제가 있다. ㎾h당 전기요금은 주택용이 120원인데 견줘 산업용 77원, 농사용 43원, 교육용 87원, 심야전기 51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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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수는 “연탄 한 장의 발열량을 기준으로 놓고 볼 때 연탄이 490원이라면 석유는 2400원, 전기는 4800원”이라며 “전기가 등유나 가스보다 싸기 때문에 전기난방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겨울철 전기난방 문제와 정전위기의 근본원인을 우리나라 전력정책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조영탁 교수는 “1990년대 전기수요 촉진정책과 2000년대 전기요금 억제 및 세제와 요금정책 간의 부정합이라는 정책 실패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지속가능한 전력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제까지의 전력 정책은 원전을 확대해 저요금-저효율-고수요-고갈등의 경로였고, 이는 정부가 원전의 자기 확장 논리를 관철하도록 방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심야전기와 전기난방으로 인한 연료비 손실만 연 1조원을 웃돌고 이산화탄소 추가배출도 연 700만t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조 교수는 “원전 확대로 공급을 늘리는데 급급하지 말고 수요관리와 올바른 전원 구성을 통해 고요금-고효율-저수요-저갈등의 경로로 바뀌어야 한다”며 “에너지 세제와 요금, 온실가스 감축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에너지 관련 통합 부처 설립 등 독립적인 규제기구 설립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서민의 마지막 온기 전기장판

전기방석은 전기스토브의 50분의 1 전력 소비

 

기초생활수급자인 오옥순(76, 왼쪽), 이금례(77) 할머니가 8일 오후 서울 구로구 오류동 무허가건물에서 난방을 위해 숯과 전기장판을 사용하고 있다. 두 할머니는 집에 기름보일러를 사용할 수 있지만 기름값을 감당하지 못해 연탄보일러로 교체를 했다. 모든 생활을 전기로 하기 때문에 한달에 전기세만 6만여원 정도 나온다. 김명진 기자.jpg

▲어느 기초생활수급자의 겨울나기. 전기장판과 나무를 태운 숯이 난방기구의 전부이다. 김명진 기자.

 

전기 난방기기 가운데 전기장판, 전기담요, 전기방석 등은 서민이 혹한을 이길 마지막 수단이기도 하다. 집 전체를 난방하지 않고도 추위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세 서민 가운데는 따로 기름보일러를 가동할 여건이 안 돼 전기장판만으로 겨울을 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또 주로 사용시간이 심야시간이어서 겨울철 피크가 나타나는 오전 10~12시와 오후 4~6시 동안에는 사용률이 낮아 전력 수요피크를 악화시키지도 않는다.

 

전기 난방기기라고 획일적으로 수요를 줄이려고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같은 전기 난방기기 가운데서도 전기방석은 전력소비가 매우 적어 전기스토브나 전기온풍기처럼 전력 소비량이 많은 기기의 대체품 구실을 할 수 있다. 마치 여름철 선풍기가 에어컨을 대체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전기방석의 소비 전력은 전기스토브나 전기온풍기의 2% 정도에 그친다. 에어컨이 선풍기 30대의 전기를 소비하는 것처럼 전기스토브 한 대는 전기방석 50개가 쓰는 전기를 잡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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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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