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신화 가면 벗기면 ‘탈핵’ 전환시대의 논리 보인다

조홍섭 2011. 07. 21
조회수 21171 추천수 0
<탈핵-포스트 후쿠시마…>, 원전 실체 이해 길잡이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해 2030년 탈핵 원년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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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탈핵’을 말하는 목소리가 부쩍 잦아졌다. 원자력에 의존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에 기반을 두는 지속가능한 사회로 에너지 전환을 이루자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원자력 드라이브 정책에 가속을 붙이고 있던 마당에 터진 후쿠시마 사고가 다행스런 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 

최근의 탈핵 담론은 각종 토론회나 단행본 등의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반 원자력’을 넘어 ‘탈 원자력’을 추구하는 이런 움직임은 아직 대중적인 지지를 받아 확산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원자력의 30여년 역사 상 처음 있는, 원자력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로서 주목을 받을 만하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기획한 책 <탈핵-포스트 후쿠시마와 에너지 전환 시대의 논리>(김명진 김현우 박진희 유정민 이정필 이헌석 지음/이매진/1만원)는 그런 대표적인 지적 작업의 결과물이다. 보수 언론과 정부가 제공하는 원자력에 관한 편향된 정보에 답답함과 갈증을 느꼈다면 이 책은 원자력에 관한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좋은 길잡이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0쪽이 되지 않는 작은 책이지만 핵에너지 이용의 역사를 일별해 그 성격을 밝히고(김명진), 우리나라 원자력 정책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며(유정민), 우리나라 원전의 실태를 훑어보고(이헌석), 독일의 탈 원자력 노선을 분석하며(박진희), 우리나라의 탈핵 시나리오를 제시(김현우)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출발한 원자력 이용, 마무리도 정치적 사회적 선택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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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에 미래가 있는가. 비 내리는 원전 단지를 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이종찬 기자

‘탈핵’을 하려면 그 출발인 ‘입핵’이 어땠는가 알아야 한다. 이 책을 보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군사적 목적에서 시작됐다는 아이러니를 안고 있다. 원자탄을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가 끝난 뒤 육군과 핵 주도권을 다투던 해군이 원자력 잠수함을 개발하면서 최초의 경수로 형 원자로를 채용하게 됐다. 

소련이 전력 생산용 원자로 개발에 나서고 이를 이용해 국제적 영향력 넓히는 것을 우려한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5년 유엔 총회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선언하고 개도국에게 원자력 원조를 시작한다. 우리나라가 원자력을 추진하게 된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결국 이 책에서 이현우가 지적한 대로 “핵 발전은 시작부터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에 그 반대인 탈핵도 정치적 사회적 선택이어야 한다. 안전성 논리나 경제성 논리만으로 원전의 미래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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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원전 반대 시위. 홍용덕 기자

우리가 후쿠시마 사고를 주목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원자력 정책은 일본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21기의 원전을 운전 중이고 2030년까지 원전 발전 비중을 59%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숙원이던 원전 수출에도 성공해 새로운 수출 전략산업으로 키울 의욕에 차 있다. 

유정민은 한국과 일본이 모두 중앙 집중적 계획과 지원을 통해 원전산업을 육성하면서 원전 계획과 운전에서 비민주적이고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공급 중심의 에너지정책을 펴면서 에너지 절약과 효율 향상은 뒷전에 놓였고 재생에너지 개발은 미미한 상태에 머물렀다.

원자력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안보 대책 못 돼
 
특히 유정민은 전체 에너지 가운데 원자력 에너지가 차지하는 위치가 종종 과장돼 있다고 지적한다. 2008년을 기준으로 세계의 에너지 소비 가운데 17.2%가 전력이고 그 가운데 13.5%만이 원전을 통해 공급된다. 결국 원전이 세계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는 계산이다. 따라서 아무리 원전을 늘려봐야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 효과에는 한계가 있다. 

또 하나는 원자력이 에너지 안보에 기여한다는 착각이다. 고속증식로와 핵연료 재처리가 비용과 기술의 문제로 현실성이 없는 상태에서 우라늄의 재고는 30년 정도면 소진된다. 또 원전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시스템이 불안정해 대규모 정전사태를 부를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원전은 전기를 만드는데 주로 쓰이기 때문에 수송용 석유 등을 대체할 수 없어 에너지 안보에 큰 기여를 하기 힘들다.
 
결국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은 “원전 중심의 전력 시스템, 성장과 공급 중심의 에너지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지속가능하고 민주적인 에너지 전환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독일은 그런 전환을 위한 유력한 모델이다. 원자력 의존도가 높은 주요한 산업국가로서 후쿠시마 이후 보수 정권이면서도 탈핵 정책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독일의 사례는 원자력 없이 산업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구체적인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특수성도 안고 있다. 이 책은 독일이 지난 40여 년 동안 탈핵과 재생에너지 미래를 위한 사회적 성찰, 치열한 운동, 정책적 대안 마련 등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정책이 있을 수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이 제시하는 ‘탈핵 시나리오’는 이렇다. 전체 에너지 소비의 6%, 전체 발전량의 30%를 차지하는 핵 발전의 비중을 대체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여기서 생기는 전력 부족분은 에너지 수요 관리와 효율화로 해결한다. 또 낡은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며 전력 부족분은 재생에너지를 확대해 충당한다. 2030년은 탈핵의 원년이 될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아직 시론일 뿐이다.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는 정치권의 의지와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 그리고 산업계의 협조 없이 나오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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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럽 여론조사

우리나라 사람들의 원전에 대한 지지는 매우 확고하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2010년 상반기 매달 조사한 결과 ‘안전하다’는 응답은 평균 70.2%에 이르렀다. 올해 후쿠시마 사고 직후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조사한 결과 ‘안전하지 않다’는 응답은 55.2%로 ‘안전하다’는 응답 41.9%보다 많았지만 대부분의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도 꽤 높은 편이다. 

갤럽의 조사를 보면 원자력에 대한 이런 믿음은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중국 다음으로 높다. 게다가 이 조사에서 원전의 추가 건설에 대해서는 찬성(50.8%)과 반대(46.2%)가 비슷했고, 오차범위 안에서 찬성 응답이 오히려 더 많았다. 원자력에 대한 정부의 오랜 홍보는 원자력에 대한 신화를 만들어 대중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아가 원자력은 기술자립, 핵 주권, 민족적 자긍심 따위의 정치적 후광을 두르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탈핵’은 이 책 뒷 표지에 적혀있는 "원전 지옥, 탈핵 희망!"이란 광고 문구처럼 단순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코 탈핵이나 찬핵이냐 가운데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에는 찬핵이냐 반핵이냐의 논란만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시민들은 원전에 미래가 있느냐, 없다면 벗어날 길은 무엇인가를 본격적으로 물을 것이다. 시민의 뇌리에 자리 잡은 원자력에 대한 신화는 그 과정에서 깨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랜 논란과 사회적 투자가 필요한 일이다. 독일의 탈핵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이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주관한 원자력에 관한 시민합의회의를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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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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