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와 배추흰나비의 ‘9천만년 전쟁’

조홍섭 2015. 0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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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화 식물 독성물질과 이를 무력화시키는 애벌레의 창과 방패 화학전쟁

공진화 과정에서 진화 가속, 피터 레이븐과 폴 에를리히 가설 유전체 연구로 입증

 

Alvesgaspar-Butterfly_May_2008-3a.jpg » 흰나비의 일종이 꽃에서 꿀을 빨고 있다. 흰나비의 애벌레는 공룡시대부터 십자화 식물과 화학전쟁을 벌이면서 다양하게 진화해 왔음이 밝혀졌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겨자와 고추냉이의 톡 쏘는 맛을 좋아하는 이라면 그 내력도 알아둘 만하다. 이 자극적인 맛을 내는 물질은 글루코시놀레이트(겨자 기름 성분)로 십자화 목 식물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다.

 

애초 십자화 식물이 이 화학물질을 고안한 까닭은 벌레를 물리치기 위해서다. 애벌레가 무, 배추, 냉이, 겨자, 파파야 등 십자화 식물을 깨물면 이 물질은 치명적인 독성물질로 바뀐다.
 

십자화 식물이 이 방어물질을 개발한 것은 9000만년 전이었다. 그러나 1000만년도 안돼 흰나비과 곤충은 이 방어벽을 뚫었다. 흰나비 애벌레는 특수한 단백질을 합성해 이 독성물질을 무력화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십자화 식물은 곧 새로운 변형된 글루코시놀레이트를 개발했고, 곤충은 새로운 방패로 신무기를 막았다. 배추에 나풀나풀 날아드는 배추흰나비를 보면 서로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것은 겉모습일 뿐 이들은 공룡시대부터 조상 대대로 화학전쟁을 벌여온 셈이다.

 

아정아-04566713_R_0.jpg » 배추꽃에서 꿀을 빨기 위해 몰려든 배추흰나비.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전쟁 중이다. 사진=이정아 기자
 

저명한 생물학자인 피터 레이븐과 폴 에를리히는 1964년 나비와 식물을 예로 들어  ‘공진화’ 개념을 제안했다. 먹고 먹히는 두 종 사이의 경쟁이 진화를 가속시킨다는 것이다.

 

반세기 만에 이 가설을 증명하는 연구가 나왔다. 미국 미주리대와 스웨덴 스톡홀름대 연구자 등 국제 연구진은 십자화과와 흰나비과의 유전체를 분석해 새로운 독성물질과 이를 무력화시키는 방어물질을 번갈아 개발하는 과정에서 두 집단이 다양하게 진화했음을 밝혔다.

 

graph.jpg » 십자화 목 식물의 종 분화율(위)와 흰나비과의 종 분화율. 십자화 식물이 새로운 화학물질을 만들면서 분화할 때마다 나비의 종 분화가 가속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크리스토퍼 휘트 외, <피나스>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흰나비의 공격에 맞서 십자화목 식물은 120종 이상의 서로 다른 글루코시놀레이트 화합물을 합성했고, 이에 맞서 흰나비도 공격수단을 바꾸는 과정에서 다른 나비보다 다양한 종으로 진화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또 두 생물 집단의 핵심적인 혁신은 점진적인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아니라 유전자 또는 유전체의 중복을 통해 이뤄졌음을 알아냈다. 공진화의 메카니즘을 밝힌 이 연구는 앞으로 해충에 잘 견디는 작물을 개발하는데 응용될 것으로 보인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hristopher W. Wheat et al. The butterfly plant arms-race escalated by gene and genome duplications. PNAS, June 2015 DOI: 10.1073/pnas.150392611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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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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