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눈의 구렁이, 원앙 둥지 습격해 알 털다

윤순영 2014. 06. 04
조회수 31183 추천수 0

완벽한 위장술과 '시속 10㎝' 초저속 이동, 구렁이는 위에서 우릴 내려다 보고 있다

원앙이 알 품는 나무구멍은 구렁이가 알 훔치는 양계장일지도, 알 뺏기고 넋잃은 어미 원앙

 

gu8.jpg » 인가 근처에서 살아 우리에게 가장 친근하지만 멸종위기인 구렁이. 나무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대형 구렁이의 모습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헛걸음만 수십 번 했다. 지난 2년 동안 구렁이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여기저기 다녔지만 구렁이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5월 초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과 함께 구체적인 제보를 접했다. 경기도 포천의 국립수목원에 구렁이가 출몰한다는 것이었다.
 

광릉의 국립수목원에는 540년을 지켜온 오랜 숲과 습지가 있어 다양한 파충류가 서식하는 곳이다. 수목원 숲 해설사의 안내로 구렁이가 나타난다는 곳에 가 보았지만 구렁이가 우릴 기다리고 있을 턱이 없다. 허탈했지만 발길을 돌릴 수밖에.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 나무 위를 보았더니 검은 구렁이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gu6.jpg » 나뭇가지로 위장한 구렁이. 좀처럼 알아보기 힘들다.

 

gu6-1.jpg » 구렁이가 내려다 보는 아래로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고 있다. 구렁이는 사람을 믿어 곁에서 사는 동물이다.  

 

머리와 얼굴이 달걀 모양으로 길고 주둥이 끝 부분은 잘린 듯 뭉뚝했다. 목은 가늘지만 몸통은 길고 굵었다. 전체적으로 검은 빛이었지만 몸통부터 꼬리까지 배 부위에 밝은 가로줄 무늬가 있었고, 얼굴 아래는 유난히 노란 황색이 도드라졌다. 2m까지 자라는 대형 파충류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었다.
 

제보 장소인 계곡에서 해설사가 나무 위를 가리켰다. 먹구렁이가 나뭇가지에 기다랗게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하루에 구렁이를 2마리나 보다니! 지난 한 달 동안의 고생이 한순간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gu9.jpg » 나무 위의 먹구렁이.

 

구렁이는 타고난 위장술을 지니고 있었다. 나뭇가지의 굴곡에 따라 몸의 형태를 바꿨고, 바람을 불어 나뭇잎과 가지와 함께 흔들리는 것을 빼곤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물론 나뭇잎이 햇볕을 가리면 양지쪽으로 슬그머니 이동했는데, 그 속도가 너무 느려 거의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한 번은 5시간 동안 50㎝를 이동하는 것을 관찰했다. 시속 10㎝!
 

배가 불룩한 것을 보니 먹이를 사냥한 뒤였던 것 같다. 햇살로 체온을 올려 느긋하게 소화를 시키려던 모양이다. 나뭇가지에서 굴러 떨어질 걱정은 없어 보였다. 배를 넓게 벌려 가지를 감싸 안듯 나무에 업혀 있다.
 

gu10.jpg » 참나무에 광택과 형태를 일치시키며 매우 느린 속도로 이동하는 구렁이.

 

구렁이는 활엽수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참나무의 회색 어린 가지는 햇빛을 받으면 유난히 반짝이는 구렁이의 광택을 위장하기에 제격이었다. 이런 위장술 덕분에 수목원을 찾은 탐방객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구렁이가 내려다보는 나무 밑을 무심코 지나가고 있었다.
 

며칠째 허탕을 치던 지난 28일 마침내 나뭇가지를 휘감고 밑을 내려다보고 있는 황구렁이와 마주쳤다. 2m는 됨직한 커다란 녀석이었는데, 색이 밝아서인지 둥그런 눈이 더 크고 선하게 보였다.
 

gu11.jpg » 황구렁이. 커다란 눈이 더 선해 보인다.

 

꼬리로 나뭇가지를 꼭 움켜쥐고 목을 이리저리 뻗으며 나무에 난 구멍으로 향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체온 조절을 위해 구멍 속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행동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구멍을 여러 차례 살핀 뒤 목에 힘을 주고 몸을 수축시켰다. 꼬리로 감은 나뭇가지가 구멍 쪽으로 딸려오면서 무게 중심을 잡아주었다. 구멍으로 들어갈 자세를 확보하자 꼬리로 움켜쥔 나뭇가지를 풀었다. 구렁이가 구멍 속으로 완전히 들어갔다.

 

이제 구렁이가 다시 나올 때까지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그 순간 구멍에서 원앙 암컷이 튀어나왔다. 원앙은 넋이 나간 듯 둥지 들머리에 10여분 동안 앉아있더니 체념한 듯 다른 나무로 날아갔다.
 

원앙의 둥지를 침입해 알을 훔치는 구렁이 연속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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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5.jpg » 구렁이가 포란중이던 알을 습격하자 화들짝 놀란 어미 원앙이 둥지 밖에 나와 어쩔줄 모르는 채 넋이 나간 모습으로 10여분 앉아 있었다.

 

구렁이가 노린 것은 원앙이 아니었다. 지금은 원앙의 포란 시기이다. 구렁이는 구멍 속에서 원앙 암컷을 밀어내고 알들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을 것이다.

 

이 나무구멍은 구렁이가 수시로 찾아와 알을 꺼내가는 양계장 비슷한 곳일지도 모른다. 알을 빼앗긴 원앙은 다른 둥지를 찾아 떠나겠지만 워낙 나무 구멍 쟁탈전이 심해 조만간 다른 원앙이 알을 낳으러 이곳에 올 것이다.
 

구렁이는 우리 눈에 띄지 않아서 그렇지 사람들이 드나드는 개방된 곳에서 해바라기를 즐기고 있었다. 동네 어귀의 오래된 정자나무 밑이나 장독대, 양지바른 흙 담장, 돌담의 터줏대감이 구렁이 아니던가.

 

구렁이는 사람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우리를 믿는 동물이다. 그들을 밀어내고 탐욕스럽게 먹어치운 것은 우리였다.

 

글·사진 윤순영 / 한겨레 웹진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아스팔트 좋아하는 구렁이

일광욕이나 산란할 때 이용

 

04828605_P_0.jpg » 트인 풀밭에서 일광욕을 하는 구렁이. 사진=강재훈 선임기자

 

구렁이는 쥐를 매우 좋아해 인가나 농경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서식지 파괴와 남획으로 급격히 감소해 현재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지정돼 있으며 먹는 사람까지도 처벌받는 보호동물이 됐다.
 

그러나 이처럼 희귀해진 구렁이가 뜻밖에 아스팔트와 같은 인공구조물을 선호해 이곳에서 일광욕을 하거나 알을 낳는 데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대식 강원대 교수(동물행동학) 등 연구진이 환경부의 의뢰를 받아 구렁이의 기초생태를 연구한 결과를 보면, 구렁이는 제방, 콘크리트 구조물, 아스팔트와 같은 인공 구조물에서 자주 관찰되었다. 이는 인공 구조물이 대부분 일광욕을 하기 쉬운 숲 가장자리나 하천변의 열린 공간에 위치하기 때문으로 연구진은 풀이했다.
 

특히 알을 낳는 암컷 구렁이는 콘크리트로 덮인 곳을 선호했는데, 조사 대상인 알을 밴 암컷 3마리 가운데 2마리는 하천 제방이 위치한 아스팔트 도로 아래에 알을 낳았고 나머지는 경작지 주변의 돌담에 산란했다. 아스팔트 아래에 알을 낳은 암컷들은 도로 가장자리의 돌 틈을 통해 도로 아래 지하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아스팔트나 돌담은 낮 동안 햇볕에 가열돼 밤에도 온기가 유지되기 때문에 구렁이가 산란지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그러나 이런 시설은 대개 도로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구렁이가 이동하는 차량에 치일 가능성이 크고, 열린 공간이어서 사람 눈에 쉽게 띄어 붙잡힐 위험도 크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번식을 하지 않는 암컷은 제방, 관목지대에 주로 서식했고 수컷은 초지, 콘크리트 구조물, 돌무덤 등에서 자주 관찰됐다.
 

연구진은 이 연구를 2007~2009년 동안 월악산국립공원에서 구렁이 13마리에 무선추적장치를 삽입해 추적하는 방식으로 수행했다. 연구 결과 우리나라 구렁이는 4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 5~6월에 짝짓기를 해 7~8월까지 평균 무게 20g인 알을 6~24개 낳는 것으로 밝혀졌다.
 

구렁이는 다른 뱀과 달리 낳은 알을 일정 기간 동안 품는 독특한 특성이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암컷은 알을 낳은 뒤 약 40일 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고 가끔 근처 풀밭과 제방에서 일광욕으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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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12.jpg » 먹구렁이(위)와 황구렁이(아래)는 다른 아종으로 알려졌으나 연구 결과 완전히 같은 종으로 밝혀졌다. 사진=윤순영  

 

한편, 그동안 우리나라 구렁이를 색깔과 무늬에 따라 먹구렁이와 황구렁이 등 2가지 아종으로 나누어 왔는데, 연구진은 우리나라와 러시아, 중국에 서식하는 구렁이의 유전자와 외부 형태, 서식지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한 결과 두 아종이 구분할 수 없는 같은 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산 구렁이와 중국산, 러시아산 구렁이 사이에도 유전적 분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구렁이에 몸빛깔 변이가 나타나는 이유로, 섬과 해안 같은 서식지의 개체는 무늬가 없고 밝은 빛깔을 가진 개체들이 빛을 반사해 적절한 체온을 유지하고 천적으로부터 은신에 유리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반대로 내륙의 산지나 숲에 서식하는 개체는 줄무늬를 지니는 편이 은신에 유리하고, 짙은 색깔이 체온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풀이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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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김포의 재두루미 지킴이. 한강 하구 일대의 자연보전을 위해 발로 뛰는 현장 활동가이자 뛰어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이메일 : crane517@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c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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