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황선도 2012. 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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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도 박사의 물고기 이야기 ⑤ 멸치

떼 지으면 포식 확률 낮지만, 그물에 통째로 걸려

조숙과 다산으로 유지하는 바다생태계의 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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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모노세키 수족관의 멸치 떼. 사진=오픈케이지 포토라이브러리.

 

■ 해양생태계의 허리 구실
  

바다에는 2만여 종의 물고기가 살고 있다. 이 중 가장 많은 식구를 거느린 물고기가 ‘너도 생선이냐’ 할 정도로 작고 힘 없어 보이는 멸치다.

 

멸치는 바다 속의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먹이사슬에서 낮은 단계에 속하는 무리로 작은 플랑크톤을 먹고 살지만, 또한 더 큰 물고기의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멸치는 먹이사슬에서 중간자 구실을 하며 해양생태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험한 세상에서 멸치는 어떻게 대가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일찍 성숙하고 알을 많이 낳는 적응능력이 그 비결이다. 육식성 대형어류의 먹이가 되어야 할 운명인 멸치는 어떻게 해서든 빨리 자라서 많은 새끼를 번식시켜야 하므로 다른 어류보다 생식주기가 짧다.

 

한 마리의 멸치가 낳는 알은 보통 4000~5000개 정도인데, 이들의 작은 몸집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수이다. 멸치는 연안 회유성 물고기로 대륙붕의 얕은 바다에 살며 주 산란기는 5~9월이지만, 한 겨울을 제외하고는 거의 일년 내내 산란한다.

 

멸치는 17~27 ℃의 수온과 30 psu(psu는 바닷물 1㎏에 녹아있는 물질의 질량(g)을 나타내는 단위) 이상의 염분을 동시에 만족해야 산란하며, 한밤중에 알을 낳고 1~2일내 새끼를 부화시켜 자손을 번식한다. 봄의 시작과 함께 산란을 시작하여 빠르게 자라 어민의 그물에 첫 수확의 기쁨을 주는 멸치는 정녕 봄의 전령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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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Engraulis japonicus)의 모습. 사진=국립생물자원관 김병직 박사. 

 

멸치(Engraulis japonicus)는 청어목 멸치과의 바닷물고기로, 몸은 길고 횡단면은 타원형에 가까우며 옆으로 납작하다. 몸 색깔은 등 쪽이 암청색이고 배 쪽은 은백색이며 옆줄은 없다. 위턱이 머리의 앞쪽으로 튀어나온 '앞 짱구'이며, 양 턱에는 작은 이빨이 한 줄 있다.

 

멸치 이름과 그 유래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는 업신여길 멸(蔑) 자를 써서 멸어(蔑魚)라 하였고, ‘물 밖으로 나오면 급한 성질 때문에 금방 죽는다’는 뜻에서 멸할 멸(滅) 자의 멸어(滅魚)라고도 적혀 있다.

 

멸치란 이름에 얽힌 다른 설은 물에서 나는 물고기의 대표인지라 물의 고어인 ‘미리’가 ‘며리’ 그리고 ‘멸’로 음운변화하고, 물고기를 뜻하는 접미사인 ‘치’를 합성하여 멸치로 되었다고 한다.

 

영어로는 앤초비(anchovy)라 부르는데, 전 세계 멸치속 어류는 엘니뇨와 관계 있는 페루 멸치 ‘안쵸베타’를 포함해 8종이 있다.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잡히는 멸치를 특히 태평양산 멸치라고 하여 패시픽 앤초비(Pacific anchovy, 일본 사람들은 Japanese anchovy라 부름)라고 부른다. 

 

멸치의 일본 이름은 가다구치이와시(カタクチイワシ, 片口鰯)라 하는데, 이는 아래턱이 위턱에 비하여 작아 정어리류 중 턱이 한쪽에 치우쳤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중국 이름은 티위(鯷魚)로 표현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멸치란 놈이 모슬포 연안 수역에 떼를 지어 들어와서는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다가 제풀에 모래 언덕에까지 뛰어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는 잘 헤엄쳐 다닌다는 뜻에서 행어(行魚)라고 불렀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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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의 여러가지 크기. 저마다 다른 이름을 지닌다.

 

어업인들은 크기에 따라 멸치를 달리 부르는데, 거의 일본말과 혼용하고 있다. 가장 작은 것을 ‘실치’라 부르고, 크기에 따라 지리멸(1.5㎝ 이하), 시루쿠(2㎝ 이하), 가이루(2㎝ 정도), 가이루고바(비늘돋치기: 2.0~3.1㎝), 고바(3.1~4.0㎝), 고주바(4.0~4.6㎝), 주바(4.6~7.6㎝), 오바(7.6㎝ 이상), 그리고 가장 큰 것을 ‘정어리’라고 부른다. 이는 진짜 정어리가 아니고 정어리 만큼 크다고 해서 붙은 이름일 것이다.

 

어쨌거나 여수에서는 ‘대멸’을 쌈에 싸서 먹는 식당 간판에 버젓이 ‘정어리 쌈밥집’이라고 적혀있다. 실치는 어종에 관계없이 실처럼 가는 정도로 작은 크기의 어린 새끼를 부르는 말이고, ‘비늘돋치기’는 말 그대로 비늘이 돋아나는 정도 크기의 멸치를 일컫는 순우리말로 참 예쁘다는 느낌이 든다.

 

공식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수산물 검사법에 의하면 건조품 중 전장 7.7㎝ 이상을 대(大)멸, 7.6~4.6㎝를 중(中)멸, 4.5~3.1㎝를 소(小)멸, 3.0~1.6㎝를 자(仔)멸, 1.5㎝ 이하를 세(細)멸이라고 구분하여 부른다.
 
■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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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경으로 찍은 멸치 이석의 모습. 나무의 나이테와 같은 연륜이 보인다. 사진=황선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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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나이테를 가리키는 멸치 이석의 일륜, 고배율 광학 현미경으로 찍었다. 사진=황선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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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이석의 핵에 나타난 부화와 치어가 난황을 모두 흡수하고 외부의 먹이를 먹기 시작한 시기를 가리키는 나이테 모습. 초 고배율 주사전자현미경으로 찍었다. 사진=황선도 박사.
 
그럼 그 작은 멸치도 나이가 있다는데, 물고기의 나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사람이라면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 등·초본을 떼어 보면 알 수 있지만 물고기는 출생신고도 하지 않고, 말로 물어볼 수도 없으니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과학은 이러한 것들을 하나씩 탐구해내는 재주가 있고, 필자는 사실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했다. 단단한 뼈를 가지는 모든 물고기는 그들의 머리, 엄밀하게 말하면 귀속에 이석(耳石, otolith)라는 귓돌을 가지고 있다. 이는 칼슘과 단백질이 주 성분으로 이루어진 뼈 같은 형질로 몸의 균형을 감지하는 평형기관 구실을 한다.

 

그런데 이 이석을 쪼개거나 갈아서 단면을 보면 나무 나이테 같은 무늬가 있어 나이를 알아낼 수 있다. 몇 살 먹었는지, 심지어는 몇 년, 몇 일에 태어났는지를 말해주는 일일 성장선(일륜, 日輪)도 찾아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석에는 비행기의 블랙박스처럼 살아온 여러 정보가 기록되어 있어 물고기의 생활사에 대한 숨겨진 비밀을 캐낼 수 있으니 과학에도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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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나이 관련 포스터

 

<자산어보>를 보면, ‘멸치(추어, 鯫魚)는 몸이 매우 작고 큰 놈은 서너 치, 빛깔은 청백색이다. 6월초에 연안에 나타나 서리 내릴 때(상강, 霜降)에 물러간다. 성질은 밝은 빛을 좋아한다. 밤에 어부들은 불을 밝혀 멸치를 유인하여 함정에 이르면 손그물(광망, 匡網)로 떠서 잡는다. 이 물고기로는 국이나 젓갈을 만들며 말려서 포로도 만든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단한 관찰력이다. 필자가 1996~2003년 동안 멸치 연구를 위해 현장조사하고 이후 1년간 캐나다에 방문연구원으로 가서 분석하여 무려 10여년 만에 밝혀낸 연구결과를 선생은 200여년 전에 이미 꿰뚫고 있었다.

 

이석에 나타난 미세한 성장선을 분석해 보니 서해산 멸치는 산란 시기에 따라 3개의 산란군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늦여름(수온 20~26 ℃) 산란군이 이보다 낮은 수온을 보이는 봄과 이른 여름에 산란한 멸치보다 더 빨리 자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성장이 빠른 멸치는 짧은 시간 동안에 혹독한 겨울을 지낼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자라 살아남게 되니 참 자연의 이치란 죽으란 법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생태 정보 하나를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지라 자연과학에는 투자하고 그냥 기다려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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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망 멸치잡이 배. 사진=황선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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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삶는 배. 사진=황선도 박사.


멸치는 권현망, 유자망, 안강망, 낭장망, 연안들망, 죽방렴 등 30여개의 다양한 어업으로 어획되고 있는데, 이중 대표적인 어법은 기선 권현망으로 전체 멸치 생산량의 50~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권현망 어업은 주로 남해안 경남권 먼바다에서 조업하는데, 멸치를 잡는 즉시 선상에서 삶아 말리고 또 마른 멸치를 그때 그때 육지로 운반하는 등 여러 배가 선단을 이루는 기업형 어업 형태이다.

 

이 권현망(權現網)은 ‘멸두리’나 ‘오개도리’라는 속칭으로도 불리는데, 이 말은 일본어인 오케도리(바닷속에 통을 띄어 놓고 잡는다는 의미) 또는 오키도리(육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잡는다는 의미)라는 말이 와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권현망이란 명칭은 풍어를 상징하는 일본의 바다 수호신인 권현신(權現神)에서 따온 것이라는 유래도 있다. 어쨌거나 멸치를 좋아하는 일본사람들에 의해 개발된 어법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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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를 이용한 생태적 전통어법인 남해 죽방렴. 사진=<한겨레> 사진 디비.

 

죽방렴(竹防簾)은 말 그대로 대나무로 만든 어살(한자로는 漁箭)이다. 죽방렴은 독살(한자로는 石防簾)과 마찬가지로 아주 오랜 옛날부터 고기잡이에 활용된 원시 어구로 기본적인 원리도 독살과 거의 같다.

 

조석 간만의 차가 커서 썰물 때 수심이 얕은 바닷속에 참나무 말뚝을 'V'자 형태로 박는다. 이렇게 박은 말뚝을 ‘삼각살’이라고 하는데, 한 변의 길이가 무려 수십m에 이른다. 그리고 살 안쪽 끝의 뾰족한 부분에 참나무 말뚝을 둥그렇게 박은 다음, 대나무로 촘촘하게 발(簾)을 쳐서 함정장치인 불통을 만든다.

 

불통과 살 사이에는 대나무를 엮어 만든 문짝이 매달려 있다. 이 문짝은 밀물 때에는 조류의 힘으로 활짝 열려 있다가 썰물 때에 물이 빠지고 축 늘어지면 꽉 닫히게 된다. 이런 장치가 되어 있어 일단 불통 안으로 들어온 물고기들은 다시 빠져나갈 수가 없다. 이렇게 불통 안에 갇힌 고기는 하루 두 번씩의 물때에 맞춰 후릿그물이나 뜰채로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남해 죽방렴에는 날씨가 따뜻한 봄부터 가을까지 멸치가 드는데, 죽방렴 멸치는 다른 그물로 잡은 것보다 몇 곱절 비싼 값에 팔린다. 끄는 그물로 잡은 멸치는 서로 쓸려 비늘이 벗겨지고 온 몸에 상처를 입어 보기에도 좋지 않은 반면, 조류를 따라 자연스레 죽방렴 안에 들어온 멸치는 전혀 손상되지 않을 뿐더러 모양이 좋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맛이 더 좋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죽방렴 멸치는 서울의 유명 백화점에서 브랜드화한 상표를 붙이고 비싼 값에 팔리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점수를 쳐주는 이유는 그물을 끄는 어로 방식은 물고기를 쫓아다녀야 하지만 죽방렴은 멸치가 제 스스로 들어오기를 기다린다는 점에서 생태적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죽방렴 이야말로 오늘날 행해지는 조업 방식 가운데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고기잡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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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잡이 연안들망. 사진=황선도 박사.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가 살았던 마을이 있고 거북선을 만들었던 선소가 있어 진정한 충무공의 고장인 여수시(과거에는 여천군)의 한 작은 마을, 화양면 용주리에 근거를 두고 있는 멸치잡이 어업으로 ‘연안들망’이 있다. 연안들망 멸치어업은 전국에서 여수 가막만에만 국한하여 수십척의 들망배가 멸치잡이를 한다.

 

2006년 어느 초여름날 밤, 멸치 잡는 조업 현장을 승선 취재하기 위하여 찾아온 모 방송국 촬영팀과 동행한 적이 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면서 용주리 선창에 김동철 선장의 배가 나타났다. 낮 동안 바다 위에 배를 띄워놓고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하다가 저녁이 되면 출어를 한다. 이는 멸치가 불빛을 좋아하는 성질이 있어 캄캄한 밤에 불빛을 비춰 멸치떼를 유인하여 잡기 때문이다.

 

먼저 고기 떼를 탐색하는 어탐선이 멸치 떼를 먼저 찾아 어장을 선점하려고 부아앙~하며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는데, 그 스피드가 해전을 방불케 하였다. 어군을 탐색하면 이내 등선이 불을 비추어 멸치 떼를 모으고 본선이 그물을 내려 둘러치는데 마치 거북선 함대가 노량해전에서 보였던 학익진(鶴翼陣) 편대를 연상케 하였다. 뒤이어 그물 안에 포위되었던 등선이 멸치가 놀라 튀어나오지 않도록 손으로 노를 저어 그물을 타고넘어 빠져나온다. 멸치를 잡는데 속전속결과 완급을 조절하는 책략이 이순신 장군의 후예답다.

 

멸치가 무리 짓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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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멸치잡이 어선의 조업 장면. 사진=박미향 기자.

 

멸치는 떼를 지어 이동하며, 빛을 쫓는 대표적인 추광성 어류이다. 물고기뿐 아니라 육상동물들도 떼를 이루어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떼를 지어 사는 동물이 그 수가 많은 것을 봐서는 진화의 과정에서 무리를 이루는 것에 이점이 있음에 틀림없다.

 

경쟁관계에서 종족 보존의 성공 여부는 먹고 먹히는 관계에서 얼마나 많은 자손이 살아남느냐에 달려있다. 그럼 물고기가 무리를 이루면 생존에 어떤 장점이 있을까?

 

어떤 동물이 일정한 간격으로 퍼져 있으면 포식자에게 먹히기가 쉽지만, 떼를 지어 모여 있으면 설령 포식자에게 발견되더라도 포식자가 한 번에 잡아먹을 수 있는 수에 한계가 있으므로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가 잡아먹힐 확률은 적어진다. 몇 마리의 희생으로 무리 속의 다른 개체들은 살아남을 수 있고, 포식자가 포식을 만끽하는 사이에 이들로부터 먼 곳으로 도망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떼를 짓는 물고기는 진화의 과정에서 잡아 먹힐 확률이 줄어 생존하였고, 일부 포식자는 먹이 떼를 계속 따라 다니며 배고플 때마다 잡아먹도록 진화하였다.

 

그래서 과거 어군탐지기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에는 물고기를 잘 찾는 물새나, 어군을 따라 다니는 돌고래 무리를 보고 물고기 떼를 찾았다. 그러나 지금은 떼를 지어 사는 물고기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그물을 둘러쳐 한꺼번에 모두 잡아 버리려는 인간이다.

 

물속의 포식자에게는 떼 지어 다니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지만 인간이라는 포식자에게는 무리를 이루는 것이 오히려 불리하게 되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제 어군탐지기는 값이 싸져 웬만한 어선에는 장착되어 물고기 떼를 찾기가 쉽다.

 

또한, 디젤 엔진은 힘이 세어 배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그물도 점점 커지고 고기 잡는 방법도 발달하였다. 이와 같이 기술의 발달과 장비의 현대화는 멸치 떼를 쉽게 찾고 빠른 속도로 그물을 끌어 자원을 남획할 우려가 있어 현명한 자원관리가 필요하다.

 

멸치도 생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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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잡은 멸치를 말리는 모습. 사진=류우종 기자.

 

멸치는 어느 것 하나 버리는 것 없이 머리와 내장까지 통째로 먹을 수 있으니 다른 어종에 비해 섭취 효율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단백질과 칼슘 등 무기질이 풍부하여 성장기 어린이나 임산부는 물론 여성의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서도 적극 권장할 만한 식품이다. 불안하거나 신경질이 나는 것은 체내 칼슘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매일 일정량의 칼슘을 섭취하면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좋을 것이다.

 

멸치는 우리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어류로 생선 구경을 변변히 하지 못했던 산간벽지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중적이고 서민적이다. 국을 끓일 때 멸치 국물을 따를 게 없고, 김장할 때 멸치젓은 빠질 수 없는 재료이다. 여름철에 입맛 없을 때 밥에 물을 말아 마른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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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멸치. 가장 대중적인 생선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지역에 따라 갓 잡은 씨알 굵은 대멸의 회 맛은 일품이고 소금구이 또한 별미이다. 어느 방송사의 ‘6시 내고향’ 프로그램에 하도 많이 나와서 부산시 기장군 대변항에서 멸치 회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필자의 연구소가 그곳 가까이에 있어 제철이 되면 점심 때 간간이 멸치 회를 먹으로 갔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 멸치 철이 되면 명동거리 만큼이나 붐비지만, 10여년 전만 해도 대변항은 포구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할머니가 멸치 회를 묻혀주면 막걸리를 곁들이면서 유자망에 걸려 올라온 멸치 터는 광경을 구경할 수 있었던 조그마한 어촌이었다.

 

그렇게 작은 멸치를 어떻게 회를 뜨나 궁금하겠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멸치는 회를 뜨는 수준이 아니고 가시를 발라내고 살점에 양념 고추장을 묻힌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어쨋튼 멸치가 회가 되는 것을 보면 ‘멸치도 생선’임이 분명하다.

 

글·사진 황선도/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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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어류학 박사
고등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어류생태학자.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에서 자원조성 업무를 맡고 있다. 뱀장어, 강하구 보전,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수산자원 회복 등에 관심이 많다.
이메일 : sanisdhw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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