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자전거 여행자가 물었다 "살려낸 강 아닌가요?"

김성만(채색) 2012. 0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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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과 유하의 한반도 도보 여행기 ④ 남한강 인공보

물때 낀 ‘호수’와 끝없는 공원, 대체 누굴 위한 건가
보에서만 들리는 물소리는 강의 비명…홍수 때 펄에 덮힐 저류지에도 공원 조성

야영장에서 하루를 보냈다. 예상대로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큰 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막 걸을 정도는 아니었다. 텐트 바깥 천에서 또닥또닥 빗소리가 끊임없다. 하루를 더 그곳에서 머물기로 작정하고는 이포보를 견학하기로 했다. 


오토캠핑장에서 이포보까지는 1㎞가 조금 더 되는 것 같았다. 그곳까지 가는 길 주변으로는 거의 모든 곳을 공원으로 만들어놓았다. 이전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거의 모든 나무는 조경수였고, 키작은 관목들도 심어진 것이었다. 넓은 땅은 대부분 잔디로 덮여져 있었다. 원래 자라던 식물들을 활용해 공원을 꾸미는 지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 넓은 땅을, 인구 10만이 조금 넘는 여주읍내와도 20㎞ 이상 떨어진 이곳에 공원을 만들어 놓은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게다가 ‘조경’은 반드시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그 ‘손’은 곧 돈이다. 작은 도시에서 거대한 강변공원을 유지하기 위한 예산을 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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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포보 일대에 조성된 공원. 자연스러운 것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포대교를 지나치자 이포보가 떡하니 나타났다. 멀리서 걸어올 땐 이포대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아래에서 보를 바라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이포대교 위에서만 바라볼 수 있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물은 예상대로 거의 흐르지 않았다. 중앙의 수문 한 개를 제외하고 모두가 굳게 닫혀 있었다. 우안으로 물길이 하나 있었는데 설명을 보니 어도였다. 물고기가 이동하는 통로다. 폭 오백미터가 넘는 강에서 이제는 오직 5m 안팎의 어도에서만 흐르는 것이다. 이포보 상류부분은 이제 한강이 아니라 ‘이포호’가 된 셈이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S자 굴곡을 정확하게 주어 구불구불 흘러가게 만들었다. 물길 주변에는 아직 추워서 그런지 풀은 거의 없고, 공사용 녹색 천만이 덮여져 있었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두고 ‘녹색성장’이라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도 끝단 가까이 가 보았다. 그 부분은 녹색천이 아닌 커다란 돌로 축대가 쌓여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돌과 돌 사이에는 회색빛의 시멘트가 꼼꼼하게 메꾸어져 있었다. 그리고 물이 흐르는 부분은 갈색빛이 돌았다. 뭔가 싶어 내려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물때가 두껍게 껴 있었다. 인공 하천에서 흔히 보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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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m가 넘는 강 폭 중 5m 내외의 어도에서만 물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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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도, 물이 흘렀던 지역에는 두껍게 물 때가 껴 있다.

전망대로 올라갔다. 아직까지는 정식 개방단계가 아니라서 안내판 몇 개만 놔 둔 채 텅 비어 있었다. 아주머니 두 분이 뜨거운 커피를 무료로 나누어주고 있었다. 한 잔을 받아들고 창 밖의 이포보를 바라보았다. ‘아…’ 길고 긴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알고보니 이포보 공도교로도 마음껏 다닐 수 있게 되어 있다. ‘일단 건너가 봐야지’


차량이 비좁게 교행할 수 있는 정도의 폭이었다. 다행히 ‘도로’는 아니라서 안정감 있게 걸을 수 있었다. 다만 수문을 들어올리는 권양기(백로알 조형물)의 크기나 아래쪽 수문이 열린 곳에서 들리는 ‘폭포’ 소리가 좀 무섭긴 했다. 아무래도 처음엔 사람들이 더러 오겠지만 나중에는 크게 올 일이 없겠다 싶었다. 하구둑이나 댐에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리 즐겨 찾을만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량 아래로 보이는 물놀이 시설인 ‘수중광장’에도 어도처럼 물때가 형편없이 껴 있었다. 여름철 수영장처럼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저정도라면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활용하게 된다면 매일 몇 번의 청소를 해야만 할 것이다. 보가 생기기 전에 아이들이 물가에서 이상없이 놀았던 걸 생각하면 분명 안타까운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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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포보 공도교에서 바라본 수중광장, 물놀이 시설이지만 과연 물놀이를 할 수 있을까?! 물 때가 심하게 껴 혐오감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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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 알을 형상화 한 조형물, 이 속에는 수문을 들어올리는 시설인 권양기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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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사람들이 궁금해 찾아오겠지만 여느 댐이나 하구둑처럼 혐오시설이 될 것이 틀림없다.


다음날은 다시 강을 따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곧 저류지가 나왔다. 저류지는 한강의 수위가 높아졌을 때(30년 빈도의 비) 물을 일시적으로 가두어 홍수위를 낮추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공식적인 설명으로는 수위를 11㎝ 정도 낮출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곳 설명을 보니 안쪽에는 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란다. 

인공습지, 미로원, 피크닉장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친절히 설명 돼 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강물을 가두게 된다면 시설물들이 망가질 것이 뻔했다. 서울의 한강만 하더라도 둔치가 잠기게 되면 뻘흙이 두껍게 깔려 초강력 살수차를 동원하지 않으면 시설물 사용이 불가하다. 차라리 자연습지로 복원을 한다면 비용도 아끼고 생태보전에도 기여할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이 하늘을 찔렀다.

여주보까지의 길은 거의 곧은 길이었다. 높은 제방길과 그 아래 둔치에 난 흙길. 둔치는 정비가 되어 너무나 깨끗한! 상태였다. 강은 너무나 고요했다. 이 일대는 여울이 군데군데 있어서 물소리가 세차야 했건만. 

사실 이 건너편은 재작년 남한강 모니터링 활동당시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 곳이다. 늦은 밤 주민들의 제보를 받고 다음날 아침 그곳을 방문했다. 어른 팔뚝만한 누치 수천 마리가 눈앞에서 펄떡펄떡 뛰며 죽어갔다. 그리고 세찬 여울에서만 산다는 작은 물고기 ‘꾸구리’도 여러 마리 발견했다. 그는 멸종위기 동물로 지정되어 있어 보호되어야 하는 종이기도 했다.

무엇이 살아남았는지, 아직도 살아있는 녀석들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중요하고 확실한 것은 여울에서 살아가던 작은 물고기들은 이제는 없다는 것이다. 준설로 여울은 이미 사라졌고, 보의 수문을 닫으며 호수가 됐기 때문이다. 

여주보도 이포보와 마찬가지로 수문을 꼭 닫고 있었다. 만수위에 다달아 수문 위로 물이 넘치고 있었다.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보’ 구실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보의 뒤편에서 바라보니 어찌나 담수가 잘 되었는지, 강물이 마치 거울처럼 변하여 ‘여주보 데칼코마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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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저류지 내부. 30년 빈도의 강우 시에 물을 채우게 된다. 그럼에도 내부에는 공원 시설공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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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치를 걸었다. 이곳이 사막인지 강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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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내양리 일대. 재작년 이곳에서 물고기 수천 마리가 폐사하는 걸 직접 목격했다. 이제는 누가 살아 남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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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수로 호수가 되어 버린 강. 잔잔해진 물 위로 여주보가 그대로 반사되었다. 

다음날 아침도 강을 따라 열심히 걸었다. 여주대교를 건너 ‘은모래 금모래 유원지’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지명에서도 드러나지만 이곳은 물이 ‘ㄱ’자로 도는 곳으로 안쪽면에 모래가 아름답게 쌓였던 곳이다. 분명 상류에 충주댐이 생긴 이후로 모래가 줄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자갈밭과 모래밭이 어우러져 있었다.

원래 있던 자갈밭과 백사장은 다른 곳에서 가져온 모래가 섞인 자갈들로 덮여져 있었고, 습지가 발달했던 둔치지역은 데크 시설물과 보도블럭으로 덮여져 있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표현을 이런 데다 쓰는 것일까? 굴러온 돌이 좋은 돌이었으면 좋았으련만!

수백미터의 공원 끝에 나타난 것은 또 하나의 보, 강천보다. 고요하던 강(사실 호수)은 강천보 가까이에 이르자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듣기 좋지 않았던 이유는 그게 강의 비명소리일 수도 있어서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 중 모든 것은 고통을 느끼기 마련이다. 강은 당연히 살아있었다.

여주보와 똑같이 만수위에 다달아 강물은 월류하고 있었다. 주위엔 아직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중 대부분은 막바지 조경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진짜 완공에 가까운 것 같다. 

강천보에 다다르자 한 편에 거대한 건물이 서 있었는데 ‘강천보 한강 살리기 기념 문화관’이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도 다른 보 홍보관과 마찬가지로 아직까지 ‘정식 개방’ 전이었다. 안의 전시실은 텅 비어 있었다. 다행히 전망대에는 올라가 볼 수 있었다. 

보는 넓고 거대한 강을 완전히 가로질러 막고 있었다. 완전한 단절이다. 어도가 좌안에도, 우안에도 하나씩 있다고 하지만 어느 물고기가 그렇게 똑똑할까? 강물의 소통은 아예 불가능해 보였다. 정부는 우리의 강이 ‘동맥경화’에 걸려 모래들을 퍼 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젠 ‘혈관’ 속에 철판을 가로질러놓은 셈이다. 이 어찌 황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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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은모래 금모래 유원지 일대. 강변 습지는 방부처리가 된 목재데크로 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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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은모래 금모래 지역. 아름답던 백사장, 자갈밭은 다 어디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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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보 문화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천보. 강을 그대로 가로질러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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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도교 위에서 강천보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물소리는 마치 그들의 비명소리 같았다.

강천보를 건너갔다. 건너기 전에 만들어 놓은 ‘자연형’어도도 어디가 ‘자연’인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건너간 곳의 어도는 아예 인공형 어도다. 분명 누군가의 연구에 의해 탄생했겠지만 대체 저길 어떤 물고기들이 지나간다는 말인지! 조련사에 의해 묘기를 한바탕 배운 뒤에나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려간 곳의 제방에는 놀라운 것이 또 있었다. 3월 중순께인데도 녹조류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햇살은 있었지만 바람은 제법 쌀쌀했다. 겨울을 벗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녹조류가 가득 낀 것은 크나큰 문제 아닌가. ‘고인물은 썩는다’는 오래된 격언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공사가 되기 전 이곳엔 큰 바위들이 있었고, 조금 더 상류는 바위늪구비 습지가 넓게 발달한 곳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녹조류는 아주 소규모로 군데군데 있었지 이렇게 대규모로 발달하진 않았다. 자연상태에서는 이렇게 흉칙한 상태가 결코 되지 않는 것이다. 

수온이 올라가고 햇볕이 더 따뜻해지는 봄부터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한강은 수도권의 식수원이기 때문이다. 팔당댐이 많은 물을 가두고도 그나마 깨끗했던 이유는 상류에서 깨끗한 물을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북한강도 많은 댐으로 수질이 점점 나빠지고 있고, 결국 남한강조차도 오염된 물을 흘려보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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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보 우안의 인공어도. 이를 넘기 위해선 '묘기'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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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보 우안에는 녹조가 심하게 끼어 있다. 3월 중순에 이 정도라면 따뜻해지는 4월부터는 훨씬 심각해질 수도 있다.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또 걸었다. 그곳에서 수㎞ 동안 공원의 연속이었다. 대체 누구를 위하여 이 넓은 공원을 만들어 놓은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제방 안쪽의 마을들은 몇가구 되지 않는 여느 시골 마을과 똑같다. 버드나무가 울창했던 습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남한강 유역의 최대 습지지역이었던 바위늪구비 지역도 이젠 한낱 조경 공원에 지나지 않는다. 홍수를 조절하고 수질을 좋게 하던 습지의 능력을 결코 이 조경공원이 따르지 못할 것이다. 그저 겉으로 ‘좋아’ 보이게 할 뿐이다.

아픈 가슴을 쥐고 바위늪구비를 통과하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한 자전거 여행자 커플이 달려왔다.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었다. 스위스인 커플이었는데 1년 반을 걸려 이곳까지 왔노라고 했다. 스마트폰에 담겨져 있던 유라시아 자전거 여행 때의 사진을 보여주며 “나도 한 때 자전거 여행을 했어요”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도보여행을 하고 있는 우리가 반가웠는지 연신 웃는다.

“왜 이 여행을 하세요?” 라는 그들의 질문에 자연스레 “저희는 파괴된 자연과 남아있는 자연을 보러 다닌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이곳은 원래 자연이 풍부하던 곳이에요. 그런데 정부가 모조리 파괴해버렸어요”라는 내 말에 놀란 표정으로 “그들은 이곳을 살려놨다고 하던데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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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온 자전거 여행자 커플. 정부는 이들에게도 '강을 살렸다'고 거짓말을 했다.

한국을 처음 찾은 외국인들을 감쪽같이 속인 정부의 실력이 놀라웠다. 사실 서울에서 이곳까지 자전거 도로가 안전하게 닦여 있었으므로 자전거 여행자에겐 4대강 사업이 호의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와 ‘동지’인 그들이기에 더 화가 났다. 그리곤 그들에게 “그들은 다 거짓말쟁이에요 They are all liar!” 라고 강조했다. 이메일 주소를 서로 주고받고 헤어졌다. 우리도 다시 걸었다. 

가슴이 너무나 아픈 며칠이었다. 수십에 달하는 강이 모조리 파괴되었다. 남아있는 곳이라곤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를 살리는 것이 강이요 자연임에도, 자꾸만 죽이는 것이 안타까웠다. 언젠가는 이 보들은 물론, 아래위의 댐들도 철거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죽은 것을 형상만 유지하는 ‘미이라’보다 살아숨쉬는 ‘진짜 생명’이 우리에게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글·사진 김성만(채색)/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생태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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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만(채색) 생태활동가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4대강 현장팀에서 활동했었다. 파괴를 막는 방법은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라 믿고 2012년 3월부터 '생태적인 삶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행을 떠난다. 중국 상하이에서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자전거로 여행하고 <달려라 자전거>를 냈고, 녹색연합에서 진행한 <서울성곽 걷기여행>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메일 : sungxxx@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likeb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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