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에서 드리는 간절한 편지

박그림 2013. 09. 05
조회수 27671 추천수 0

케이블카 종점서 빤히 눈에 보이는 대청봉 정상길 열리는 건 뻔한 일

오색은 머무는 느린 관광에서 당일치기 경유지 전락할 것…설악산은 우리만의 것 아냐

 

해돋이를 보려는 대청봉 등산객. 한해 50만명이오르는대청봉, 케이블카로 50만명이더 오르면 해마다 100만 명이 산을 밟게 된다. 입산예약제만이 설악산을 살리는 길이다..jpg » 해돋이를 보려는 대청봉 등산객. 한해 50만명이오르는대청봉, 케이블카로 50만명이더 오르면 해마다 100만 명이 산을 밟게 된다. 입산예약제만이 설악산을 살리는 길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설악산에서 살고 있는 박그림이라고 합니다.
 

설악산 어머니와의 인연은 꿈도 많고 고민도 많았던 고등학생 때였습니다. 1966년 가을 설악산을 찾아와 아름다움에 빠지면서 잊지 못할 곳이 되었고 해마다 설악산에 들어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아름다운 설악산은 제 삶을 바꾸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20대 젊은 나이에 내설악 골짜기를 오르다 먼발치에서 본 산양은 오래도록 제 가슴에 남아 있었고 드디어는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1992년 10월 가족과 함께 설악산 언저리로 옮겨와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1993년 3월 설악녹색연합을 창립하고 설악산의 상처와 아픔을 기록하고 알리는 일을 해온 지 어언 21년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갑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 때문에 술로 지새우던 나날들, 생활에 쫓겨 가며 산을 오르내렸던 나날들, 설악산 세계자연유산 등록를 못했던 일은 천추의 한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뒤 내 삶을 바꾸기로 마음먹고 술, 담배, 커피를 끊었고 끼니를 생식으로 먹으면서 산에 들어 산양의 뒤를 밟았습니다.

설악산은 오랜 동안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보존한 결과 산양의 최대 서식지가 되었다. 산양의 똥자리 모습. » 설악산은 오랜 동안 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보존한 결과 산양의 최대 서식지가 되었다. 산양의 똥자리 모습.

 
산양이 사는 곳을 드나들며 산양을 조사한 지 벌써 19년째, 내 발로 설악산의 산줄기와 골짜기를 누비면서 흔적을 찾아 기록했고 너무나 궁금했던 것들을 나라 안에서는 알 수 없어 2001년 세계자연보존연맹(IUCN)에 우리나라와 같은 종의 산양 전문가를 소개해 달라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해서 러시아의 알렉산더 미슬란코프와 인나 볼로시나 박사 부부를 소개받고 그해 10월 달에 두 분을 초청해서 설악산의 산양을 조사했습니다. 그때 가지고 있었던 모든 궁금증이 풀렸고 그 뒤 서로 오가며 지금까지 교류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탐방객들에게 산양은 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흔적조차 쉽게 볼 수 없는 무관심의 대상일 뿐입니다. 지자체는 아예 설악산을 돈벌이의 대상으로 여길 뿐 환경보존과는 거리가 멉니다.

 

케이블카 노선이 지나는 관터골 3~6번 지주 모두 산양 서식지다. » 케이블카 노선이 지나는 관터골 3~6번 지주 모두 산양 서식지다.

 

작년에 이어 올해 다시 설악산에 케이블카 설치를 시도하는 강원도 양양군의 산양에 대한 대책은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습니다. “공사 중에 이동했다가 공사가 끝나면 돌아온다.”

 

과연 그럴까요? 정말 그들의 말처럼 된다 하더라도 산양은 천연기념물 217호이며, 멸종위기종 1급으로 지정된 전국에 800마리쯤 남아 있는 야생동물입니다. 케이블카는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칠 것이며 결국 산양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설악산은 정해진 넓이의 자연 생태계이며 오직 하나뿐인 곳입니다. 그곳에 겨우 목숨 붙여 살고 있는 산양의 삶터에 지자체는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이우성이고 정상을 찾는 탐방객은 끝없이 늘어나 상처는 깊어지고 아픔은 커가고 있습니다.

 

대청봉 정상은 50cm 이상 흙이 쓸려 나갔다. 이제는 케이블카가 아니라 입산예약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 대청봉 정상은 50cm 이상 흙이 쓸려 나갔다. 이제는 케이블카가 아니라 입산예약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해 50만 명이 정수리인 대청봉에 오르고 땅은 깊이 패여 나갔습니다. 땅속에 있던 바위들이 드러나 황량한 모습으로 바뀐 지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유한한 자원을 무한히 이용한다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끝내 설악산은 모든 가치를 잃고 죽은 산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오색~관모 능선에 케이블카가 설치된다면 훼손은 더욱 가속화해 설악산은 정수리에서부터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상부 종점의 시설물을 통해서 관모 능선 일대가 크게 훼손되는 것은 물론, 상부 종점 전망대에서는 전망이 좋지 않기 때문에 대청봉에 오르려는 욕구가 빗발칠 것입니다.

 

상부 종점에서 바라본 대청봉 모습.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뒤 눈앞의 대청봉에 가게 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이고 끝내 길은 정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 상부 종점에서 바라본 대청봉 모습.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 뒤 눈앞의 대청봉에 가게 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칠 것이고 끝내 길은 정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길이 열리게 되면 케이블카 탑승객 50만 명이 대청봉에 더 오르게 되고 한 해 100만 명이 대청봉에서 북적거릴 때 무엇이 남아나겠습니까? 더구나 대청봉에 올라 걸어서 내려간다면 훼손의 문제는 설악산 전체의 훼손으로 이어질 것이며 설악산은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케이블카 노선과 상부 종점 예정지가 들어설 관터 골 일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개방되지 않고 보존된 설악산 산양의 최대 서식지이며 천연보호구역의 핵심지역이고,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지역입니다. 대청봉 눈잣나무 특별보호구의 경계부에 위치하고 있는 전망대의 스카이워크는 특별보호구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케이블카는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의 핵심지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지역을 지납니다. » 케이블카는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의 핵심지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지역을 지난다.

 

양양군이 조사한 4번 지주 부근 포유류 분포도. » 양양군이 조사한 4번 지주 부근 포유류 분포도.

 

6_1-2 4번 지주 산양분포도(박그림조사).jpg » 박그림이 조사한 4번 지주 부근 산양 분포도.

 

7_2-1 5번 지주 포유류 분포도(양양군조사).jpg » 양양군이 조사한 5번 지주 포유류 분포도.   

 

8_2-2 5번 지주 산양분포도(박그림조사).jpg » 박그림이 조사한 5번 지주 부근 산양 분포도.

 
2015년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되면 서울에서 1시간 반이면 양양에 닿습니다. 오색에 와서 케이블카 타고 올랐다가 내려와서 머물다 갈 사람이 있을까요? 속초나 강릉으로 나가게 되고 오색은 지금보다 더 힘든 날들을 맞을 것입니다.
 
케이블카보다는 오색지역이 갖고 있는 산골마을로서의 특징을 살려서 느린 관광으로 지역에 머물다 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역민들의 삶을 지금까지 풍요롭게 만들어준 것은 머물며 바라본 설악산의 아름다움입니다.

 

설악산을 찾는 이들은 아름다운 경관을 찾아서 산에 오르지만 경관을 망치는 케이블카의 영향은 무엇으로도 보완할 수 없습니다. 결국 아름다움은 사라지게 되고 지역민들의 삶도 피폐해 질 것입니다. 자연은 우리들의 삶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9_아이들에게 되돌려줄 자연유산을 가로채지 말라.jpg » 아이들에게 물려줄 자연유산을 가로채지 말라.

 

나는 늘 꿈을 꿉니다. 산양이 뛰어노는 설악산을 우리 아이들이 바라볼 수 있기를 말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보고 누린 우리들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연한 일이며 설악산의 주인인 야생동물의 생존의 권리를 존중해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떠나간 설악산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 수 있으며 그들이 살지 않는 설악산에서 우리는 살 수 있을까요?
 
케이블카 설치 반대를 하며 올랐던 대청봉이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의 1인 시위는 설악산과 아이들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함께했고 그 자리에 올 수 없었던 사람들은 마음으로 함께했던 날들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연의 일부입니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으며 거스를 수도 없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긴 편지를 올립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올바른 결정을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설악산에 살고 있는 뭍생명과 아이들의 삶이 이번 결정에 달려 있음을 깨닫기에 오체투지로 대청봉에 오르던 때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놓아서는 안 됩니다! 
 
설악산에서 작은뿔 박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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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
설악산의 상처와 아픔을 기록하고 알리는 일과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되찾는 일을 하고 있다. 설악산에 살고 있는 천연기념물 217호, 멸종위기종인 산양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양을 찾아다닌다.
이메일 : goral@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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