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쓸모 없어야 오래 산다?

홍경낙 2013. 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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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낙 박사의 이야기가 있는 나무 ⑤원주 성황림

중부 온대림 대표…더불어 살아서 쓸모있는 활엽수림

보호 위해 주민 삶과 단절, 이제 쓸모없는 숲 되려나

 

sung8.jpg » 원주 성황림 성황당과 표지석. 좌우에 음나무와 전나무 거목이 심겨져 있다.

 

기원전 6·7세기에 번성했던 중국 제나라에는 솜씨가 빼어난 목수 석(石)이 살았다. 여행 중에 큰 나무 하나를 보았다. 그 나무 그늘에는 몇 천 마리의 소가 쉴 수 있고, 줄기는 백 아름에, 높이는 산을 올려보는 것과 같고, 열 길 위에서야 가지나 나 있고, 가지 하나로도 배를 만들 만큼 큰데, 그런 가지가 수십 개나 되었다. 그러나 석은 그 나무가 쓸모없다고 말했다.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널빤지를 만들면 금방 썩고, 가구를 만들면 부서지고, 문짝을 만들면 나무진이 배어나오고, 기둥을 만들면 좀이 슬고…. 전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크기만 한 나무다. 이렇게 크게 자라나게 된 것도 사실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 고전 ‘장자(莊子)’>

 

장자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이 일화는 노거수의 생존방법을 잘 보여준다. 한마디로 쓸모없었기에 오래 산다는. 마을 입구에서 주로 위치한 천연기념물 노거수나 보호수는 한 그루만 덜렁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노거수로 키울 생각으로 씨앗을 뿌리고 수백 년을 지켜봤을 리는 없을 테니, 작게나마 숲을 이룬 나무들 중에서 목재로 쓸 만한 것을 먼저 이리저리 베어내 써버리고 한여름의 쉼터로 남겨졌던 한 그루가 어느 날 우연찮게 ‘노거수 보호수’로 눈에 띄는 것이리라. 

 

금강송 분포지로 유명한 강원도 울진 소광리 숲에 들어가면 이 능선 저 능선에 ‘정이품송’ 감들이 즐비하지만, 결국 충북 보은 속리산의 그 소나무만 눈에 띄는 것도 동료 나무들이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왔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깊은 산중에서 다른 나무들과 어울려 자랐으면 그저 ‘큰 나무 한 그루’였을 터인데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목재와는 다른 또 다른 쓸모를 만들어 내고, 연륜과 더불어 사연이 붙어 ‘명목’이 되지 않았나 싶다.

 

sung7.jpg » 성황림 들머리

 

그런데 저 혼자 살아남아 보호수가 되는 경우와 다르게 서로 다른 나무들이 그들끼리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사람들과도 잘 어울려 대접받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어울림이 좋은 대표적인 경우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산191번지 일대의 천연기념물 제93호(1962년 12월 3일자 지정) ‘원성 성남리의 성황림(原城 城南里의 城隍林)’의 나무들이다.

 

치악산국립공원 상원사 지구에 자리잡고 있는 성황림(면적 5만 4314㎡)에는 아름드리 전나무와 소나무, 복자기, 귀룽나무, 느릅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신갈나무, 찰피나무, 말채나무 등을 비롯한 50여종의 목본식물이 분포하며, 숲 양쪽으로 흐르는 내와 그 주변에 발달한 산림습지에 남산제비꽃, 애기나리, 흰진범 등 다양한 초본식물이 생육하고 있다.

 

sung6.jpg » 성황림 들머리에 흰 꽃이 만개한 귀룽나무가 서 있다.

 

우리나라 중부 온대지역을 대표할 만한 활엽수림으로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또한 성남리 주민들은 토지와 마을을 지켜주는 성황신(城隍神)을 믿어 지난 100여 년 동안 매년 4월 초파일과 9월 9일에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문화재청은 온대 지방을 대표하는 활엽수림으로서 학술적 가치와 우리 조상들의 과거 종교관을 알 수 있는 민속자료로서의 기능을 감안하여 성황림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현재 성황림은 성남2리로 들어가는 차도를 경계로 산사면의 사면림과 성황당이 있는 평지림으로 나눌 수 있다. 사면림은 자연림이지만, 평지림은 몇 백 년 전 당산숲 조성을 위해서 주변의 자연림에서 나무를 옮겨 심은 인공림으로 추정된다.

 

마을주민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숲의 유래나 같은 수종이 무리지어 있는 분포 형태로 미루어 평지림은 사람이 심은 나무들이다(최재웅 등, 2007). 성황림은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황당이 숲의 중심이다. 성황당의 좌우로는 숲의 신목(神木)인 300년생 음나무와 200년생 전나무가 한 그루씩 자라고 있는데, 각각 ‘암(雌)성황수’와 ‘수(雄)성황수’라고 불리는 이 두 나무는 평상시에도 금줄을 둘러두고 있다.

 

sung9.jpg » 성황당 오른쪽에 서 있는 200년생 전나무 거목.

 

동양사상의 음양을 맞추기 위해서 좌측에 가지를 넉넉히 펼친 음나무와 우측에 올곧게 치솟는 전나무를 배치하여 심은 듯하다. 나무 위치까지 맞추어 심은 정성과 공력이 심상치 않다.

 

성황림에서 제일 눈에 띄는 수 성황수 전나무는 높이 29m, 둘레 4m가 넘는데, 금줄이 쳐진 밑동에는 죽은 부위를 도려내고 합성수지로 채운 외과수술 자국이 있다. 전나무뿐 아니라 여기저기 큰 나무들에서 땜질 자국을 쉽게 볼 수 있다.

 

1998년 천연기념물 관리책임을 맡고 있던 원주시에서 3000여만 원의 예산을 들여 음나무와 전나무를 비롯한 노거수들을 보호한다고 조경업자를 동원하여 마구잡이 ‘노거수 수관조정과 외과수술’을 한 것이다. 오랫동안 성황림을 연구해온 상지대학교 김갑태 교수는 인위적 간섭을 최대한 배제해야 할 지역에서 노거수의 원형을 훼손한 ‘비전문가에게 맡겨진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관리 실태’라고 지적한다(<한겨레> 2003).

 

비단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성황림에서 이루어진 산림작업은 찝찝함을 남겼을 것 같다. 성황림에 노거수가 많이 남아있는 까닭이 신성시 여기는 나무를 베거나 함부로 손을 대면 천벌을 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에겐 당연한 금기이기도 했다. 하물며 성황림을 대표하는 성황수인 전나무에 누가 감히 손을 댄다는 말인가?   

 

sung1.jpg » 성황림 전경

 

강원도 신림면의 지명은 성황림을 가리키는 신림(神林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미 1757년 고지도인 ‘여지도’에도 나타난다(원주시사, 2000). 기록상 역사는 최소 250여년은 넘은 것이다. 성황림은 마을의 안위를 지키는 ‘상성황지신(上聖皇之神)’을 모시는 신성한 장소일 뿐 아니라 주민 모임이 열리던 휴양과 놀이의 공간, 그리고 일제시대를 전후한 궁핍한 시기에는 버섯 재배가 이루어지던 경제구역이기도 했다.

 

주민의 삶과 어울리던 숲으로 또한 당산숲이라는 독특한 지위로 잘 보존되던 나무들로 인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마을의 인구가 불어나고, 도로가 정비되어 외부인들의 출입이 잦아지면서 하부식생이 파괴되고 숲의 생태가 훼손되기 시작했다. 이를 막기 위해서 1989년부터 철제 울타리로 성황림을 둘러싸 봉쇄하게 되었으며, 2007년부터는 치악산국립공원의 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되어 출입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다행히 매년 거행되는 성황제가 일반인에게 공개가 되고 있으니 때를 맞추면 성황림을 둘러볼 수 있다. 어쨌든 과거 주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함께했던 공간이 급기야 주민 생활과 단절되게 되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쓸모’를 얻은 숲이었는데, 그로인해 사람들과 떨어지게 되는 ‘쓸모없는’ 숲이 될지도 모른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sung2.jpg » 성황림의 소나무 노거수.

 

sung3.jpg » 성황림 내 숲길.

 

sung4.jpg » 성황림 내 습지.

 

sung5.jpg » 외부에서 본 성황림.    

 

앞서 소개한 ‘장자’ 일화는 그 날 밤 목수 석의 꿈속에 ‘그 나무’가 나타나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너는 도대체 나를 무엇에 비교해서 쓸모없다고 하는 거냐? 결국 인간에게 소용이 되는 나무와 비교한 것이리라. (중략) 만일 내가 쓸모 있다면 벌써 베어져 넘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너나 나나 다 같이 자연계의 물건에 지나지 않는데, 물건이 물건의 가치를 평가해서 어찌하겠다는 건가? 가치를 평가하기로 말하면, (정작 쓸모가 뭔지도 모르면서) 쓸모 있는 것이 되고자 자신의 생명을 깎아내듯 아등바등 살아가는 너야말로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다. 쓸모없는 인간이 내가 쓸모없는 나무인지 아닌지를 알 까닭이 있겠는가?”            
 

글·사진 홍경낙/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과 박사

 

이 글은 국립산림과학원이 발행하는 <과학이그린> 2012. 5+6호에 실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다시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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