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끓듯 한 제주에 마지막 불 뿜은 ‘세계적 수성화산’

조홍섭 2016. 04. 20
조회수 23886 추천수 0
한반도 지질공원 생성의 비밀 <7> 제주권-송악산

 제주도의 오해와 진실입니다
 
 백록담 용암과 재 뿜어낸 한라산이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수많은 작은 화산체인 오름이 
 한라산의 기생화산이라고?
 
 제주 땅의 절반 만든 100여개 수성화산 
 
 바닷가의 물기 많은 지층 
 마그마가 뚫고 나오면서 대폭발
  
 용암호 마그마 다시 폭발해
 독립화산인 오름  370여개 생겨
 
 송악산 탐방로 겹겹이 쌓인 절벽
 당시 격변 현장이 고스란히


so4.jpg » 바다가 잘라낸 화산체 내부 모습. 3500년 전 큰 폭발을 일으킨 송악산 수성화산체의 단면이 해안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비스듬한 사면에 화산재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오른쪽은 화산 꼭대기로 화구에 용암이 담겨 있었다. 층을 이룬 화산재와 이를 대각선으로 자른 용암층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백록담에서 용암과 재를 뿜어낸 거대화산이 제주도를 형성했다고 믿는다면, 제주도와 한라산을 잘못 아는 것이다. 한라산과 백록담이 현재 모습을 갖춘 것은 2만5000년 전으로, 180만년에 이르는 제주 형성사에서 비교적 최근 일이다. 
 
마찬가지로, 370여개에 이르는 소형 화산체인 오름을 한라산 화산의 곁가지인 기생화산으로 치부하는 것도 잘못이다. 바다 밑에서 제주 땅덩어리를 만든 것은 수성화산을 포함한 수많은 작은 화산이었고, 가장 최근까지 불을 뿜은 것도 한라산이 아닌 수월봉·일출봉·송악산 같은 바닷가 화산이었다. 마치 커다란 궁궐이 왕조의 상징으로 남았지만, 그 왕조를 이룩하고 끝까지 지탱한 것은 수많은 백성들인 것과 같다.

so5-1.jpg » 위성영상으로 본 제주도의 지형. 수백개의 오름은 독자적인 화산이다.

so6-1.jpg » 제주도의 형성과정(아래에서 위로 진행). 180만년 전 서해와 비슷한 대륙붕에서 해저 화산활동으로 제주도가 탄생하는 모습(맨 아래). 이어 화산활동으로 인한 퇴적층이 서귀포층을 형성했고 100만년 전부터 육상에 용암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간헐적인 화산활동은 30만년 전부터 활발해져 제주도 지형의 뼈대를 이뤘고 10만년 전부터 현세에 이르기까지 한라산체를 포함한 현재의 지형을 이루었다. 그림=마르코 브레너 외 <화산학회보> (2015)

so4-1-1.jpg » 시추조사로 드러난 제주도 남서해안 일대의 지질 구조. 그림=손영관 외 <화산학 및 지열 연구>(2005)
 
한가운데 칼로 자른 듯 내부 그대로
 
10일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까지 불을 뿜었던 화산 가운데 하나인 송악산을 찾았다. 송악산에는 후기 신석기 시대인 3500년 전 얕은 바닷물을 뚫고 대규모 화산폭발을 일으킨 분화구와 화산체 일부가 남아 있다. 
 
제주도 남서쪽 바닷가에 위치한 이 산은 외해의 파도가 곧바로 들이치는 곳이어서 화산체는 한가운데를 칼로 잘라놓은 듯 깎여나가 내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송악산 산책로를 따라가면, 화산이 폭발해 화산재가 쏟아지고 다시 용암이 고인 뒤 새로운 폭발을 일으킨 과정을 하나하나 되짚어갈 수 있다.

so1.jpg » 송악산 응회환의 단면이 드러난 해안.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so7.jpg » 수성화산의 폭발과 이어진 용암과 분석구 형성 과정을 전용문 박사가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송악산의 서쪽 산책로를 따라 언덕에 오르자 동행한 전용문 제주도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 박사가 바닷가를 가리킨다. 해수면에서 산꼭대기까지 위로 오를수록 가팔라지는 화산의 단면이 한눈에 드러났다. 
 
산의 지표면과 평행하게 어둡고 밝은 화산재가 층을 이뤄 쌓여 있다. 송악산은 대표적인 수성화산이다. 바닷가의 물기 많은 지층을 마그마가 뚫고 나오면서 커다란 폭발을 일으킨 화산이다. 전 박사는 그 폭발의 양상을 이렇게 설명했다.
 
펄펄 끓는 기름 솥에 물을 부으면 격렬한 폭발과 함께 솥이 깨어지겠지요. 여기선 그보다 수만 배 큰 규모로 핵폭탄 여러 개가 터지는 정도의 폭발이 일어났을 겁니다. 2000도에 이르는 마그마가 찬물과 만나면 물이 갑자기 끓어올라 격렬한 폭발을 일으키고 그 과정에서 마그마와 주변의 기반암은 유리질의 돌가루가 되어 날아갑니다.”


뜨거운 수증기, 화산재, 돌가루는 버섯구름이 되어 하늘에 치솟은 뒤 화구 주변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어 시속 수백㎞의 속도로 사면을 따라 쏟아져 내렸다. 폼페이를 덮쳤던 것과 같은 화쇄난류이다. 절벽에 층층이 쌓인 응회암에는 화구에 가까울수록 큰 암석이 쌓이고 곳곳에 화산탄이 박혀 있는 당시의 격변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화구에 고인 용암이 호수 이룬 복합 화산

so2.jpg » 송악산 화산체 화구 부분의 모습. 맨 아래가 화륜을 이룬 화산재층이고 그 위에 용암이 굳은 현무암, 가장 위에는 마그마의 자체 폭발로 인한 분석이 쌓여 있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화산체의 꼭대기 부분을 자세히 보면 특이한 모습이 드러난다. 가지런히 쌓이던 화산재 층을 거무튀튀한 용암이 대각선으로 자르고 있다. 전 박사는 “여기가 바로 분화구의 테두리인 화륜인데 화구 안에 용암이 호수처럼 고여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so3.jpg » 화구 안에 고여있던 용암이 두터운 현무암으로 굳었다. 그 위에 2차 폭발의 결과인 붉은 분석층이 보인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폭발을 일으킨 분화가 끝나고 다시 마그마가 올라와 고여 용암호를 이뤘다. 용암으로 수분이 차단된 상태에서 마그마가 계속 공급되자 이번에는 마그마가 자체 폭발을 일으켰다. 마그마 속에 들어 있던 휘발성 가스가 축적돼 압력이 높아지자 어느 순간 지층을 뚫고 마치 사이다 병뚜껑을 딴 것처럼 폭발한 것이었다. 
 
이 폭발은 처음 수성화산의 폭발에 견줘 강도는 떨어졌지만 다량의 가벼운 돌(분석 또는 송이)을 내뿜었다. 제주도에 있는 370여개 오름의 거의 대부분은 이처럼 수분이 없는 상태에서 독립적인 화산폭발로 형성됐다.

so3-1.jpg » 송악산 화산체의 외부는 모두 깎여나갔고 화구 안에 나중에 분출한 분석구가 낮은 언덕을 이룬채 침식을 맞고 있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탐방로를 따라 송악산의 동쪽으로 가면, 화구 안쪽에 가지런히 쌓인 화산재 위로 용암이 고이고, 그 위에 다시 분석과 화산재가 쌓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2차 폭발을 일으켜 분출한 분석이 막 공사장에서 파낸 진흙더미처럼 탐방로 옆에 쌓여 있다.

so8.jpg » 화구 안에 쌓인 분석이 바닷물의 침식으로 깎여나가고 있다. 마치 엊그제 공사판에 파낸 것처럼 보이지만 3500년 전 분출된 미처 굳지 않은 화산재층이다. 사진=조홍섭 기자 
 
so11.jpg » 송악산의 지형도. a는 입면도, b는 경사도, c는 입체도, d는 단면 고도를 나타낸다. 그림=윤석훈 외<지질학회지> 2014.2

급격한 탄생 못지않게 급속히 침식
 
송악산의 폭발 현장은 사람이 지켜보았음에 틀림없다. 송악산과 가까운 제주 고산리에는 한반도에서 가장 오랜 1만년 전 신석기 유적지가 있다. 송악산에서 2㎞ 떨어진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해안에서는 당시 사람의 발자국이 발견되기도 했다. 

so5.jpg » 사계리 사람 발자국 '화석'. 사진=문화재청

so6.jpg » 사람발자국 화석지 안내판. 침식이 심해 출입이 금지돼 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so10.jpg » 사계리 화석지가 위치한 하모리 퇴적층(왼쪽). 송악산 화산체가 침식돼 쌓인 지층이다. 멀리 보이는 용암돔은 산방산(80만년 전)으로 인근에 있는 다른 화산체의 흔적인 용머리 해안(120만년 전)과 함께 제주도에서 가장 오랜 화산 지형이다. 이들이 가장 어린 송악산 화산체(3500년 전)를 마주보고 있어 이채롭다. 사진=조홍섭 기자
 
2004년 문화재청이 “아시아에서 처음 5만년 전 구석기인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됐다”고 발표한 이 발자국 화석은 발견 직후부터 생성연대를 둘러싼 뜨거운 논란에 휩싸였다. 애초 5만년 전에서 1만5000년 전으로 바뀌더니 최근 그 연대를 송악산의 분출 당시인 3700년 전으로 봐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손영관 경상대 지질과학과 교수 등 연구자들은 지난해 <지질학회지>와 국제학술지 <고고학 저널>에 실린 논문을 통해 사람 발자국 퇴적층 아래에서 발견된 응회암층을 분석한 결과 송악산에서 분출된 것과 같은 성분으로 드러난 것 등을 근거로 들었다. 새로운 견해가 맞다면 이 발자국은 현생 인류의 흔적이어서 화석의 가치를 잃게 된다.

so3-2.jpg » 송악산 화륜의 모습. 층층이 쌓인 화산재 위에 용암호가 굳었다. 침식이 화산체 중앙부까지 왔음을 알 수 있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그러나 이 가장 최근의 격렬한 화산폭발 잔해는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미처 굳지 않은 상태여서 외해의 강한 파도에 의해 밑부분이 침식되면 위가 무너지는 진행이 매우 빠르다”고 전 박사는 말했다. 
 
송악산 수성화산의 폭발과 화산체 형성은 한 주일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이뤄졌다. 급격한 탄생 못지않게 빠른 속도로 깎여나가고 있는 것이다. 송악산은 수성화산의 진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세계적 가치를 지니지만 사유지가 많고 주민이 반대해 2010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지질명소로 지정되지 못했다. 현재 추가 지정이 추진되고 있다.
 
제주/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공동기획: 한겨레, 대한지질학회, 국립공원관리공단 국가지질공원사무국, 한국지구과학교사협회

<한겨레> 물바람숲과 국가지질공원사무국이 3주에 한번 국가지질명소 퀴즈 이벤트를 펼칩니다.
퀴즈 정답자 중 75명에게 기프티콘(3,500원 상당)을 보내드리오니 많은 참여 바랍니다.
[퀴즈]
제주도에 분포하는 370여개의 화산체 중에서 3,500년 전 얕은 바다를 뚫고 올라온 마그마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제주의 서남쪽 해안(서귀포시 대정읍)에 위치하며 해안을 따라 쌓인 화산재 층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이 곳은 어디일까요?  
① 성산일출봉   ② 만장굴   ③ 송악산   ④ 백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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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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