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발 달린 원시 뱀도 몸으로 조여 먹이 잡았다

조홍섭 2015. 0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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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1300만년 전 '최초 뱀' 화석 브라질서 발견, 작지만 발달된 사지 달려

먹이 감아 사냥…먹이 조이면 질식 아닌 혈액 운반 중단으로 수초만에 사망

 

sn1.jpg » 1억 1300만년 전의 원시 뱀 테트라포돈피스 암플렉투스가 먹이를 조이는 모습 상상도. 다석 개의 발가락이 오롯이 있는 네 다리로 먹이를 움켜쥐고 있다. 그림=줄리어스 초토니

 
뱀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치명적인 독, 끊임없이 날름거리는 길쭉하고 갈라진 혀, 종종 자기보다 큰 동물을 잡아먹는 포식성 등 이유는 많다.
 
그러나 모든 뱀이 독을 지닌 것도 아니고 사람이 잡혀먹히는 일은 극히 드물다. 오히려 뱀의 독특한 모습과 행동에서 공포가 생기는지도 모른다.
 
뱀은 도마뱀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오면서 네 다리가 없는 쪽으로 진화했다.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 사냥하거나 적을 피하기에 적합한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거치적거리는 사지는 점점 작아져 마침내 사라졌다.

 

지구에는 3400여 종의 뱀이 사막에서 열대우림까지, 고산지대에서 바다까지 분포한다. 새, 박쥐와 함께 가장 성공한 척추동물에 속한다.
 
이런 성공으로 이끈 가장 뱀 다운 특징은 무엇일까. 최근 발견된 아직 네 다리가 달려있던 최초의 뱀 화석은 그 질문에 한 가지 답을 제시한다. 바로 길고 유연한 몸을 이용해 먹이를 조여 사냥했다는 사실이다.

 

sn6.jpg » 네발 달린 뱀의 완벽하게 보존된 화석 모습. 사진=데이브 마틸, 포츠머스대
 
데이비드 마틸 영국 포츠머스대 박사 등 영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24일치에 실린 논문을 통해 네 다리가 달린 초창기 뱀의 화석을 분석했다. 브라질에서 발견된 이 화석은 1억 13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 때의 것으로 현재 보는 뱀의 가장 먼 조상이다.
 
길이 20㎝인 이 뱀의 앞다리와 뒷다리의 길이는 각각 4㎜와 7㎜로 작았지만 발가락과 발톱이 잘 발달해 흔적기관이 아니었다. 연구자들은 “이 뱀의 발톱이 딱따구리나 나무늘보처럼 움켜쥐기에 적합한 형태”라며 “잡은 먹이를 움켜쥐거나 짝짓기 상대를 붙드는 데 썼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sn2.jpg » 화석의 뒷다리 부분을 확대한 모습. 사진=데이브 마틸, 포츠머스대

 

sn4.jpg » 화석의 앞다리 부분을 확대한 모습. 사진=데이브 마틸, 포츠머스대

 

sn5.jpg » 화석의 머리 부위. 굽은 이와 큰 먹이를 삼킬 수 있는 턱 구조를 지녔다. 사진=데이브 마틸, 포츠머스대

 
흥미롭게도 이 뱀의 뱃속에는 미처 소화되지 않은 먹이가 들어 있었는데, 작은 척추동물이었다. 뱀은 처음부터 포식동물이었던 것이다. 연구자들은 꼬리 앞에 150개가 넘는 척추가 있는 골격에도 주목했다. 많은 척추는 몸을 유연하게 구부리게 해준다. “최초의 뱀은 이미 먹이를 조이는 방법을 개발했을 것”이라고 논문은 밝혔다.

 

sn3.jpg » 최초의 뱀이 도마뱀을 잡아먹는 상상도. 그림=제임스 브라운, 포츠머스대
 
이 뱀은 날카롭게 구부러진 이와 함께 커다란 먹이를 삼킬 수 있는 유연한 턱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또 땅파기에 적합한 뭉툭한 코와 짧은 꼬리 등에 비춰 최초의 뱀이 바다에서 온 것이 아니라 육지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편, 뱀이 먹이를 신속하게 죽이기 위해 조이는 방법을 개발했고 그 덕분에 자기보다 큰 먹이를 사냥할 수 있었다는 연구 결과도 최근 나왔다. 스콧 보백 미국 디킨슨대 박사 등 연구자들은 <실험생물학 저널> 22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뱀은 먹이를 질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혈관을 막아 죽인다는 실험 결과를 밝혔다.

 

Jens Raschendorf.jpg » 먹이를 조여 죽인 뒤 삼키는 보아 뱀. 사진=Jens Raschendorf,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진은 마취시킨 쥐를 보아 뱀이 조이도록 한 뒤 쥐의 혈압을 측정하는 실험을 했는데, 쥐는 뇌 등 핵심 장기로 혈액 운반이 중단되면서 불과 몇 초 만에 심장박동에 이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길고 고통스런 질식과정이 아니라 짧은 심장마비로 먹이가 죽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처럼 조이기를 통해 먹이를 재빨리 죽이는 방법을 개발하면서 뱀은 먹이의 크기를 맘껏 늘릴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artill, Tischlinger & Longrich. 2015. A four-legged snake from the Early Cretaceous of Gondwana. Science http://dx.doi.org/10.1126/science.aaa9208
 

Boback, S. M. et. al., (2014). Snake constriction rapidly induces circulatory arrest in rats. J. Exp. Biol. 218,
 2279-2288.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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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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