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 청소동물’ 독수리는 왜 동료를 잡아먹었나

조홍섭 2018. 09. 20
조회수 13213 추천수 0
해남 금호호서 동종포식 장면 직접 목격, 환경생태학회 보고
먹이 부족 추정되나 일반화는 곤란…먹이 주기 의존 대규모 월동 문제

KakaoTalk_20180919_103918769.jpg » 살아있는 동료 독수리를 포식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독수리 한 마리가 죽은 독수리의 다리뼈에서 살점을 훑고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강승구 박사 제공.

지난해 1월 17일 오후 3시께 강승구 국립생물자원관 박사는 전남 해남군 금호호 주변에서 겨울 철새를 조사하고 있었다. 독수리 다섯 마리가 하늘을 선회하다 갈대밭으로 내려앉았다. 무언가 먹이가 있다는 뜻이다. 현장에서 20m 거리까지 차로 접근했다.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독수리 한 마리가 갈대밭에 누워 날개를 편 채 양발을 공중으로 뻗어 방어 자세를 취하면서 내는 소리였다. 동료 독수리 3마리가 누운 독수리를 발로 찍어누르며 부리로 쪼아댔다.

이때만 해도 강 박사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보았다. 먹이를 놓고 동료 독수리끼리 엎치락뒤치락 싸우는 것은 흔한 일이다. 물론 그 자리에 다른 동물의 사체가 눈에 띄지 않은 것은 이상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독수리가 살아있는 동료를 잡아먹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해야 할 조사도 바빴다.

현장에서 60m쯤 떨어진 곳에서 조사를 하느라 30분쯤 보냈을 때 독수리의 비명이 더 높고 강하게 한 5분쯤 계속되다가 멈췄다. 무언가 이상했다. 쌍안경으로 확인한 뒤 서둘러 현장에 달려갔다. 밑에 깔린 독수리는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식사는 이미 끝무렵이었다. 동료 독수리 9마리가 뼈에서 남은 살점을 발라먹고 있었다. 둔덕 위에는 독수리 7마리가 불룩한 배를 드러낸 채 쉬고 있었다. 마지막 독수리가 떠난 뒤 현장에 다가갔다. 이상하게 독수리 한 마리가 남아있었지만 사체를 먹지도 않았고 날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현장 바닥에는 동료 독수리가 먹다 남긴 독수리의 깃털, 두개골, 가슴뼈, 다리가 널려 있었다. 주변 풀밭은 독수리의 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KakaoTalk_20180919_103916380.jpg » 1시간 반 동안 동료 독수리가 포식해 깃털과 뼈 일부, 다리만 남은 모습. 국립생물자원관 강승구 박사 제공.

강 박사는 “독수리의 동종포식(카니발리즘)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독수리는 날개를 펴면 2.5∼3.1m에 이르는 큰 몸집에 날카롭게 굽은 부리와 발톱으로 사냥에 능한 포식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살아있는 동물은 거들떠보지 않고 죽은 동물만 먹는 청소동물이다. 그는 “그동안 독수리를 오래 관찰했지만 살아있는 동물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며 “문헌을 보아도 기껏 메뚜기 등을 호기심이나 장난삼아 먹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물론 다른 맹금류에도 동종포식이 보고된 일이 있긴 하지만, 주로 둥지의 번식과정에서 일어난다. 먹이가 부족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아 어미가 새끼를 잡아먹거나 새끼끼리 잡아먹는 일이 벌어진다. 카메라를 설치해 번식과정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이런 동종포식 행동이 포착되곤 한다. 야생에서 언제 어디서 벌어질지 모를 동종포식을 포착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강 박사는 목격한 독수리의 동종포식 행동을 <한국환경생태학회지> 6월호에 보고했다.

KakaoTalk_20180919_103917139.jpg » 동료 독수리의 두개골에서 살점을 떼어먹는 독수리. 국립생물자원관 강승구 박사 제공.

그렇다면 순한 독수리가 왜 동료를 잡아먹었을까. 강 박사는 “현장에 매우 수척해져 날지 못하는 독수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희생된 독수리도 이 독수리와 함께 탈진한 상태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그는 “동종포식이 먹이 부족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엔 해마다 약 2000마리의 독수리가 몽골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온다. 이들은 철새 도래지나 도로변에서 죽은 야생동물의 사체를 먹기도 하지만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거의 전적으로 축산농가에서 나오는 가축 부산물에 의존한다. 그러나 가축 부산물을 함부로 버리는 건 법으로 금지돼 있어 독수리는 늘 먹이 부족에 시달린다.

그렇다면 우리 눈에 잘 띄지 않아서일 뿐이지, 독수리의 동종포식은 전국에서 널리 발생하는 현상 아닐까. 강 박사는 “그렇게 단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탈진한 개체가 있더라도 꼭 동료가 공격하는 건 아니다. 무엇이 동종포식을 일으키는지는 아직 불확실한 점이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해남 금호호에 모이는 독수리 30∼50마리는 가축 부산물에 의존하지 않는다. 야생 오리와 기러기 등이 폐사한 것을 주로 먹는다. 이번 동종포식도 이들 오리와 기러기가 11∼12월에 가장 많이 모였다가 1월 들어 개체수가 줄어들자 만성적 먹이 부족에 시달린 결과일 것으로 강 박사는 추정했다.

05480554_P_0.JPG » 정기적인 먹이 주기 행사를 벌이는 경남 고성군은 대표적인 독수리 도래지가 돼 수백마리가 모여든다. 최상원 기자

가축 부산물을 먹이로 주는 경기도 파주·철원, 경남 고성·김해 등에는 500마리가 넘는 독수리의 큰 무리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런 먹이 주기가 굶주린 독수리를 살리는 효과도 있지만, 몽골에서 더 많은 독수리를 유인하는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는 독수리의 최대 월동지이다. 독수리가 한 곳에 다수 모이게 되면 질병 확산으로 일거에 큰 피해를 볼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관련 기사: 독수리 수수께끼…콘도르보다 큰가, 수리와 독수리의 차이).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강승구, 월동지에서 독수리(Aegypius monachus)의 카니발리즘, 한국환경생태학회지 32(3): 256-260, 2018, https://doi.org/10.13047/KJEE.2018.32.3.25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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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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