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야생곰과 방사곰, 어디서 사랑 나눴나

남종영 2013. 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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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야생 반달곰의 숨겨진 아성 있어, 이번에 방사 곰과 2세 봐

정·재계 유력자 청탁으로 밀렵 성행, 웅담 2억 호가하기도…현재 토종과 방사곰 30마리 오손도손

 

1983년 5월22일 오전 11시45분 설악산 마등령의 범잠바위골. 반달가슴곰이 마지막 토해낸 숨소리가 지켜보던 사람들을 울렸다. 이튿날 ‘반달곰 끝내 숨지다’라는 <경향신문> 1면 기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설악의 깊은 계곡에 누워 총상의 고통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비운의 반달곰. 부상 2주간의 마지막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반달곰은 ‘으엉, 으엉’ 계곡을 뒤흔드는 신음소리를 냈다. 구조반의 긴급출동도 보람 없이 곰은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gom1.jpg » 밀렵꾼의 총탄에 쓰러진 설악산 반달곰을 최초 보도한 <경향신문>1983년 5월21일 1면 기사. 이 보도를 시발로 신문과 방송이 이 반달곰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국민들이 반달곰의 생사를 지켜봤다.

 

gom2.jpg » 사흘 만에 반달곰은 구조되지 못하고 숨진다. <경향신문> 1983년 5월23일 1면 기사.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야생동물 밀렵에 대한 경각심과 야생동물 보호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킨다.


밀렵꾼의 총을 맞고 도망친 반달곰은 이곳에 쓰러졌다. 주민들의 신고로 19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국민들은 깊은 산속에 누워있는 반달곰의 생존을 기원했다. 하지만 반달곰은 사흘 만에 병원으로 옮겨지지도 못하고 숨졌다. 임종식 설악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계장이 말했다. "그 뒤 반달곰 봤다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외설악 공원에는 그 사건을 기려 반달곰 동상이 세워졌고요.” 반달곰 동산은 외설악공원의 명물이 되어왔다. 지금도 관광객들은 이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남한에서 야생 반달곰은 멸종한 걸까? 일반인의 선입견과 달리 그렇지 않다. 호랑이, 표범, 스라소니 등 중대형 포유류 가운데 많이 살아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이 바로 반달곰이다.

 

1983년 설악산 반달곰 사건에서 숨진 반달곰은 '마지막 반달곰'으로 상징되곤 했으나, 1986년 11월 문화방송 촬영팀이 설악산 권천계곡에서 반달곰을 추가로 촬영하기도 했다. 물론 반달곰은 카메라를 스치고 금방 사라졌기 때문에 1983년 반달곰 사건처럼 부상과 죽음이라는 드라마틱한 장면을 담을 순 없었다.


지난 1일에는 지리산에서 야생 반달곰의 생존을 보여주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지리산에는 2004년부터 인위적으로 야생방사된 반달곰과 새끼 26마리가 산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방사곰(RF-18·식별번호)이 지난해 낳은 새끼곰 한 마리의 아비가 지리산에 사는 ‘토종 반달곰’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RF-18은 2011년 6~8월께 수컷과 교미해, 2012년 1월께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7월 공단 생태복원팀은 새끼 두 마리의 모근을 채취해 유전자를 분석했다. 한 마리의 아비는 ‘옆 동네’에 사는 수컷(RM-19)임이 밝혀졌으나, 다른 한 마리의 아비는 확인되지 않았다(반달곰의 수정란은 착상이 느려, 다른 아비의 새끼를 한 배에 임신할 수 있다).

 

공단은 지리산에 방사된 모든 곰의 유전자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새끼곰의 아비는 ‘소재 불명’이었던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생태복원팀의 양두하 박사가 말했다. "지리산에 야생곰이 산다는 걸 보여줍니다. 우리가 풀어놓은 반달곰(RF-18)이 야생 반달곰과 교미한 거죠.”


gom3.jpg » 2002년 환경부 무인카메라에 찍힌 지리산 야생 반달가슴곰. 몸집과 형태를 볼 때 수컷으로 추정된다. 2000년 진주 <문화방송> 촬영팀에서 찍힌 것은 암컷이었다. 두 반달곰이 찍힌 장소는 대성골 주변이다. 사진=국립공원관리공단

 

gom4.jpg » 지난해 지리산에 야생방사된 반달곰 RF-18이 낳은 새끼 두 마리를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기술원 직원이 들고 있다. 이 두 마리의 모근을 채취해 유전자를 분석했더니, 한 마리의 아비가 야생방사된 방사곰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RF-18의 서식지 등을 감안할 때, 아비는 원래부터 지리산에서 살던 야생 반달곰으로 추정된다. 사진=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 야생 반달곰이 가장 최근에 확인된 건 2002년 환경부 무인카메라에서였다. 2000년에는 진주 문화방송 촬영팀의 무인카메라에도 포착됐다. 최소한 두 마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환경부와 공단은 다른 지역에서 반달곰을 들여와 야생방사하기로 결정했다. 지리산, 북한, 러시아 등 고향은 달라도 사이좋게 짝짓고 번성하라는 ‘지리산 반달곰 복원사업’이 시작됐다.

 

이렇게 2004년부터 36마리의 반달곰이 지리산에 풀렸다. 대부분 적응에 성공했고 10마리의 새끼도 탄생했다. 반면 지리산의 주인인 야생곰의 소재는 2002년 이후 수수께끼였다. 전문가들은 1990년대 중반까지 지리산에 많게는 10~20마리의 야생곰이 살았다고 말한다. 당시 반달곰 보호운동을 벌인 우두성 지리산생태보존회 대표가 당시 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1996년만 해도 지리산에 전문 사냥꾼이 다섯 팀 있었어요. 설악산 반달곰 다 잡고 백두대간 타고 내려온 거지. 아예 지리산 부근으로 이사를 와서 곰 잡아서는 개인택시에 싣고 서울로 부산으로 가서 팔고. 그 사람들 감자폭탄도 썼어요. 대구사람들이 대성동 골짝에 엄청 깔아놨죠. 거기서 곰이 많이 죽었어요.”


gom5.jpg » 밀렵꾼들이 곰을 잡을 때 쓴 일명 '감자 폭탄'. 밀랍과 꿀 안에는 폭약이 들어있다. 사진=우두성

 

gom6.jpg » 지리산 야생 반달곰이 나무 속의 벌꿀(목통)을 잡아먹은 흔적. 나무를 부숴 꺼내 먹는다. 새끼 곰은 힘이 없어 이런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 사진=우두성 

gom7.jpg » 곰 배설물. 우두성 지리산생태보존회 대표는 "멧돼지 배설물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곰 배설물은 먹이가 한 종류만 들어있다. 곰이 서서 집어먹기 때문에 곰털도 간혹 나온다"고 말했다. 반달곰은 대개 이런 바위 난간에 배설물을 남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1996년 조사 당시 이 배설물은 일본의 연구기관으로 보내져 반달곰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이를 확인할 만한 기관이 거의 없었다. 사진=우두성
 

일반적으로 곰 포수들은 정계나 재계의 유력자에게 청탁을 받고 곰을 잡았다. 잡힌 곰에게서 채취된 웅담은 권력자에게 뇌물용이나 진상용으로 쓰였다. 주민들이 곰 밀렵이 있다고 경찰에 신고를 하면 오히려 경찰서장실에서 조인트를 까이던 시절도 있었다고 우 대표는 말했다.

 

설악산 반달곰 사건 때문에 곰 사냥꾼들의 신경이 곤두섰다. 곰 사냥꾼들은 지리산에 내려와 있었다. 지리산에선 눈에 띄는 사냥총보다는 올가미와 감자폭탄을 썼다. 물에 불려 말린 딱총 화약을 벌집에서 채취한 밀랍으로 싸서 감자처럼 만든 게 감자폭탄이었다. 꿀을 발라 나뭇가지에 실로 걸어놓으면, 이를 낚아채 씹던 곰이 ‘펑’ 터져 뇌진탕으로 죽었다. 우 대표는 감자폭탄이 국립수사과학원에서 '인마살상용 화기'라는 확인도 받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중국, 타이에서 오니까 웅담이 똥값이지만, 그때만 해도 최소 2000만원, 많게는 2억원 받았어요. 한 마리 잡으면 집 한 채 사거든. 곰사냥꾼들이 기를 쓰고 달려든 거죠. 우리가 밀렵 감시 운동 벌이면서 그 사람들 검찰에 잡혀가서 혼도 나고 그랬어요. 그 사람들한테 지금 곰 몇 마리 없지 않느냐, 더 잡으면 멸종한다, 더 이상 하지 말라고 설득했죠. 곰 생태조사 하는데 도움을 주신 분도 있어요.”

 

1990년대 후반 우 대표와 지리산생태보존회는 곰사냥꾼들을 어르고 달래 지리산에서 내보낸다. 그리고 동면굴과 배설물, 곰털 등을 공개해 지리산에 야생 반달곰이 산다는 사실을 알리고, 환경부와 공단이 반달곰 복원 사업을 추진하도록 이끌어낸다. 최소 5마리, 최대 10마리 이상이 산다는 게 당시 이 단체의 조사 결과였고, 환경부는 이를 용역 보고서에서 받아들인다. 우 대표에게 물었다.

 

"그럼 그 야생곰들은 지금 어디 살고 있나요?”

 

방사곰들이 아직도 못 들어가는 곳이 있어요. 거기에 야생곰들이 살지요. 곰 관리팀(공단)에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거야. 굉장히 넓은 지역인데, 그 곳은 아직도 (방사곰이) 못 들어가거든.”


반달곰 복원사업이 진전된 최근에 방사곰 26마리는 지리산 전역에 흩어져 산다. 지리산 동부와 북부 몇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골짝에 터전을 잡았다. 하지만 야생곰의 서식지는 2002년 마지막 카메라로 포착된 이후 분명치 않다. 양두하 박사가 말했다. 양 박사는 2005년부터 반달곰 복원작업에 참여해온 전문가다.

 

야생 반달곰이 어디에 사는지도 계속 찾아봤죠. 무인카메라를 여러 곳 설치했지만 한번도 안 찍혔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방사곰들은 지리산 북동부엔 잘 안 갔어요. ○○골, ◇◇골, □□골은 가더라도 곧바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거기에 야생곰이 살 거라고 생각해요.”

 방사곰들이 못 들어가는 제한구역이라도 있단 말인가요?”

  

그래도 많이 바뀌었어요. 방사곰들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야생곰의) 서식지를 치고 들어갔어요. 과거엔 덩치나 힘이 밀려서 못 들어갔다면, 지금은 8~9살 다 컸으니 터전을 넓힌 거죠. 이번에 새끼를 낳은 RF-18도 지리산 동부에서 활동한 놈이거든요. 2~3년 전만 해도 방사곰은 바로 쫓겨나오던 골짜기인데.”


"거기가 어디죠?”

 

"말하면 안 돼요”

 

지리산에는 수많은 세월 동안 산을 지켜온 곰들 그리고 인간이 외지에서 들여온 곰들이 함께 산다. 현재 활동하는 방사곰이 26마리이니, 1990년대 살던 야생곰들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지금 지리산에 사는 반달곰은 30여마리다.

 

불행하게도 지리산의 주인인 토종 야생 반달곰은 소수로 전락했다. 자기 터전을 야금야금 쳐들어오는 이주민들이 밉겠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새짝이 생겼는데.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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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한겨레신문 기자
2001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에서 환경 기사를 주로 썼고, 북극과 적도, 남극을 오가며 기후변화 문제를 취재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 종단 환경 에세이인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지었고 『탄소다이어트-30일 만에 탄소를 2톤 줄이는 24가지 방법』을 번역했다. 북극곰과 고래 등 동물에 관심이 많고 여행도 좋아한다. 여행책 『어디에도 없는 그곳 노웨어』와 『Esc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을 함께 냈다.
이메일 : fandg@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isoundmy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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