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렬한 화산폭발 순간이 해안절벽에 고스란히
한반도 지질공원 생성의 비밀 <7-2> 제주권-'화산학 교과서' 수월봉
마지막 빙하기 1만8천년 전 습지 뚫고 마그마 폭발
지질공원 지정 뒤 ‘명품관광’ 발길, 마을이 달라졌다

제주도 서쪽 끄트머리인 한경면 고산리에 수월봉이란 높이 77m의 야트막한 오름이 있다. 2010년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제주의 지질명소 가운데 하나가 되면서 최근 인기가 치솟고 있는 곳이다.
마그마가 수분을 머금을 지층을 뚫고 나오면서 격렬한 폭발을 일으켜 쌓인 퇴적층을 세계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국제 화산학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지질학계에선 유명한 곳이지만 일반인에겐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곳이다.
그러나 지질공원이 된 이후로 마을이 달라졌다. 11일 차귀도 선착장에는 반건조 오징어가 곳곳에 진열돼 있었고 평일인데도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고산리 주민이자 지질공원 해설사인 강복순(55)씨는 “낚시꾼에게만 알려진 반농반어의 외딴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빈 가게를 얻기도 힘들 정도가 됐고, 부녀회에 가도 모르는 얼굴이 3분의 1쯤 된다”라고 말했다.
마을엔 카페와 식당, 방문자 숙소가 늘어섰고 오징어 가게들은 판매기록을 해마다 갈아치우고 있는 중이다. 몇년 전만 해도 집계조차 하지 않던 관광객 수가 지난해엔 33만 명에 이르러 제주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 관광지가 됐다. 2010년부터 해마다 여는 ‘수월봉 지질공원 트레일’ 행사는 명품관광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월봉은 1만8000년 전 대규모 화산이 폭발한 잔해(분석환)이다. 화구는 1㎞쯤 바다 안쪽에 있었다.
당시는 마지막 빙하기가 한창이던 때였다. 바닷물 속의 수증기가 육지에 눈과 얼음으로 쌓이는 바람에 해수면은 현재보다 100~120m 낮았다. 제주도를 포함해 서해는 모두 육지였다.

습지였던 수월봉 일대를 온도가 2000도가 넘는 마그마가 뚫고 올라오면서 물과 만났다. 물이 끓어올라 수증기 폭발을 일으켰고, 급랭한 마그마는 미처 결정이 자라지 못해 유리질의 돌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뜨거운 수증기와 화산재, 돌가루, 암석조각이 뒤섞여 하늘로 치솟았고 이어 화구 주변으로 쏟아져 내렸다. 폭발은 격렬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화산은 식었고 간빙기를 맞아 해수면이 높아지자 빠른 속도로 침식돼 사라졌다.

수월봉은 화산체 바깥 테두리의 일부이다. 파도에 깎여 드러난 해안 절벽에는 당시 화산재가 쌓인 흔적이 연속해서 드러나 있다.
안내 해설판이 있는 수월봉 입구에 닿으면 눈앞에 굵은 돌들이 층을 이룬 응회암 속에 박힌 특이한 절벽 단면이 눈에 들어온다. 폭발과 함께 주변의 암석이 뿜어져 나간 흔적이다.
절벽 아래로 내려가면 마치 커다란 화폭에 추상화를 그려놓은 것처럼 화산재가 퇴적층을 이룬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곳곳에 커다란 돌덩이가 화산탄이 되어 화산재에 떨어진 뒤 다시 화산재로 덮인 과정이 고스란히 보인다.

암석과 화산재가 층을 이뤄 쌓인 이유를 전용문 제주도 세계유산·한라산 연구원 박사는 “하늘로 치솟았던 각종 화산쇄설물이 떨어져 내려와 화구를 막으면 압력이 커져 큰 암석을 뿜어냈다.”라고 설명했다.
화산재가 쌓여 최대 70m에 이르는 응회암 절벽층을 이루는 데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전 박사는 “다른 수성화산 폭발 사례에 비춰 화산 폭발 기간은 며칠, 길어도 1주일 안쪽이었을 것이다. 지질학적으로는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어서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가치가 매우 크다.”라고 말했다. 화산재는 하루에 수십m 높이로 쌓였다는 얘기다.

수월봉 엉알길(절벽 아래 바닷가에 난 길을 말하는 제주 말)을 따라 해녀의 집에서 검은 모래 해변을 거쳐 고산 기상대 쪽으로 걸었다. 절벽에 드러난 퇴적층의 양상은 수월봉 들머리와 조금 달랐다.
화구에서 가까운 수월봉 입구에는 암석 덩어리가 많이 눈에 띄고 입자가 굵은 화산재 층이 많았다면 화구에서 멀어질수록 고운 입자가 층층이 쌓인 모습이 두드러졌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뜨거운 화쇄난류가 화산 아래로 가면서 난류를 일으켜, 입자가 굵은 층 위로 가는 입자가 분리돼 다양한 형태를 이룬 층이 나타난다. 화구에서 멀리 떨어진 해변의 퇴적층은 화산재가 수평으로 가지런히 쌓이고 화산탄이 떨어진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수월봉을 남긴 화산이 폭발한 것은 언제일까. 응회암에 포함된 석영 입자를 연대 측정한 결과 1만 8300~1만 8600년으로 나왔다. 화산재의 퇴적층 맨 아래를 보면 누런 점토층이 보인다.
화산이 폭발했을 때 습지를 이뤘던 퇴적층이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임재수 박사 등은 지난해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이 퇴적층(고산층)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최상부가 1만 7140년으로 나왔다. 약 1만 8000년 전에 화산이 폭발했음이 두 조사로부터 알 수 있다.

엉알길을 가다 보면, 응회암 퇴적층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오는 곳이 있다. ‘녹고 물’이라 부르는 이 샘물은 해녀의 목욕물 등으로 요긴하게 쓰인다.
동네에는 ‘녹고 물’과 관련해 이런 전설이 전해진다. 어머니 병을 고치기 위해 절벽에서 약초를 구하다 누이가 떨어져 죽었는데, 동생 녹고가 누이를 잃은 슬픔에 몇 날 며칠을 슬피 울어 이 절벽을 ‘녹고 물 오름’ 또는 수월봉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전 박사는 물이 잘 스며들지 못하는 점토질 고산층에 막혀 화산재 층을 통과한 물이 밖으로 스며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도에는 10여 개의 수성화산이 바닷가에 남아있다. 수월봉에 이어 5000년 전 일출봉, 3500년 전 송악산의 수성화산이 대규모 폭발을 일으켰다.
제주/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공동기획: 한겨레, 대한지질학회, 국립공원관리공단 국가지질공원사무국, 한국지구과학교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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