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 공격 맞서 잎 ‘변신’…새 눈 잘 띄게 색깔·빛 조절

조홍섭 2017. 06. 09
조회수 24415 추천수 0
식물의 반격…‘도와줘요’ 가설 이어 ’위장 감소’ 가설 나와
엽록소 줄여 잎 뒤에서도 보이도록, 잎 색깔도 달라져

Rosember.jpg » 새끼에 줄 애벌레를 물고 둥지에 돌아온 박새. 박새는 여러가지 단서를 바탕으로 애벌레를 사냥한다. 그 가운데는 나무가 제공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Rosember, 위키미디어 코먼스

먹이를 졸라대는 새끼를 둥지에 둔 박새 어미는 어떻게 애벌레를 그토록 쉬지 않고 잡아오는 걸까. 박새가 나뭇잎을 하나씩 샅샅이 훑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박새는 마치 미리 알고 있듯이 애벌레가 있는 곳을 곧바로 찾아가 쉽사리 잡아낸다. 그 비결은 박새가 애벌레를 찾는 단서가 따로 있다는 데 있다.

단서는 애벌레의 공격을 받은 나무가 제공한다. ‘도와줘요’ 가설이 그것이다. 손상을 입은 잎에서 화학적 시각적 단서를 보내 애벌레를 잡아먹거나 기생하는 포식자를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새에게도 "도와줘요", 식물은 소통의 '달인'). 

실제로 일부 식물은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을 때 휘발성 유기물질(VOCs)을 방출해 기생벌이나 포식성 진드기를 유인한다. 박새는 이 냄새를 맡거나 시각적으로 벌레 먹은 잎을 단서로 애벌레를 사냥할 수 있다.

wo1.jpg » 자작나무 잎을 갉아먹는 나방 애벌레.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벌어진다. 코스키(2017).

식물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애벌레의 위장을 무력화시키려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가설이 최근 나오고 있다. 이른바 ‘위장 감소’ 가설이다.

애벌레는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교묘하게 위장한다. 배경색에 녹아드는 색깔을 띠고, 밝게 빛나는 부위에 색소를 많이 넣고 어두운 부위에 적게 넣는 식으로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게 한다. 

Gopp pi _Actias_luna_back_uppermost.JPG » 애벌레는 주변에서 눈에 띄지 않도록 위장한다. 사진의 애벌레는 나뭇가지 밑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것이어서 윗부분이 더 밝게 색소를 분포시켰다. Gopp pi,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런 위장을 무력화하기 위해 애벌레의 공격을 받는 나무는 잎의 엽록소 농도를 줄여 빛이 잘 투과하도록 한다. 그렇게 하면 잎 뒤에 숨은 애벌레도 윤곽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나무는 또 공격받은 잎의 색조를 초록이나 노랑 등 더 긴 파장으로 바꾸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나무의 조직적 대응은 애벌레를 주변 환경으로부터 더 도드라지게 보이는 효과를 낼 것이다. 과연 이런 전략은 얼마나 효과를 거둘까.

Michael Jastremski_1280px-Apple_tree_leaves_with_insect_damage.jpg » 애벌레에 앙상하게 뜯긴 사과나무 이파리. 식물은 이런 치명적 결과를 막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한다. Michael Jastremski, 위키미디어 코먼스

툴리-마르야나 코스키 핀란드 투르쿠대 생태학자 등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행동 생태학과 사회생물학> 5월 30일 치 온라인판에 실린 논문에서 자작나무에 나방 애벌레를 올려놓고 박새를 이용해 이 가설을 정량적으로 검증했다.

실험 결과 애벌레에 잎을 갉아 먹힌 자작나무 잎에서 엽록소 농도가 줄어드는 한편 잎의 콘트라스트를 늘리고 반사하는 빛이 더 긴 파장을 띠는 식으로 변화하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시 말해, 애벌레가 더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식물이 변했다.

그러나 애벌레를 올려놓은 나무와 그렇지 않은 나무에서 나타나는 이 차이가 실제로 위장 감소 효과를 거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어느 경우에도 박새는 애벌레를 잘 찾아냈다. 연구자들은 “새가 나무의 이런 변화를 얼마나 알고 반응하는지 행동 생태학적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Jon Sullivan _Leaf_1_web.jpg » 애벌레의 공격을 받은 나뭇잎은 애벌레가 새 등 천적에게 더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엽록소 양을 줄여 빛이 잘 투과하도록 한다. Jon Sullivan,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자들은 또 이처럼 애벌레의 위장이 효과를 잃게 되면 장기적으로 2차 방어의 진화를 촉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포식자에게 발견되는 것을 전제로 화학적 방어물질을 내고 경고색을 띠는 쪽으로 애벌레가 변화할 것이란 얘기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uuli-Marjaana Koski et al, Insect herbivory may cause changes in the visual properties of leaves and affect the camouflage of herbivores to avian predators, Behav Ecol Sociobiol (2017) 71:97. DOI 10.1007/s00265-017-23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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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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