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업도는 '꿈의 나비' 왕은점표범나비 천국
한국 등 동아시아서에만 분포…일본에선 멸종
국내 최대 서식지 골프장 추진으로 벼랑 위기

굴업도의 왕은점표범나비. 사진 제공 이상영 박사.
숲이 우거져 헐벗은 땅이 없어진다고 모든 동물이 좋아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풀밭에서 먹이를 찾고 짝짓기를 하는 동물들은 삶터를 잃게 된다.
한때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보던 왕은점표범나비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희귀한 나비의 하나가 된 중요한 이유도 초지가 사라진 때문이다.
그런 나비가 최근 골프장 건설 논란을 빚고 있는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의 굴업도에 대규모로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학계에 보고됐다.
김성수 동아시아환경생물연구소장 등 연구팀은 최근 <한국응용곤충학회지>에 실린 논문에서 왕은점표범나비가 굴업도 전체 나비 개체수의 32%를 차지할 정도로 우점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지난해 6차례에 걸쳐 굴업도의 서쪽 섬(느다시 지역) 등에서 조사한 결과 이 섬에 약 1000마리의 왕은점표범나비 성충이 서식하며 유충은 4000~7000 마리가 사는 것으로 추정했다.

왕은점표범나비의 성체(a, b)와 애벌레(c). b는 연구를 위해 표시를 한 성체. 출처=한국응용곤충학회지.
왕은점표범나비는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에만 분포하는 종인데, 최근 급속히 감소하고 있어 종 보전대책이 시급하게 요청되고 있다. 환경부는 이 나비를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1977년부터 이 나비를 조사해 온 김성수 소장은 “2000년대 들어 개체수가 급감했다”고 말했다. 1990년대까지 전국에 비교적 흔하게 분포했던 이 나비는 현재 계방산과 경북 울진의 고산 초지에서 일부 발견될 뿐이다.
김 소장은 “계방산과 울진 서식지에서도 하루 종일 다녀 봐야 발견하는 개체수가 5마리가 안 된다”라며 “그렇지만 굴업도에는 하루에 수백 마리까지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굴업도가 왕은점표범나비의 최대 서식지가 된 이유에 대해 “다른 종과의 경쟁이 심한 내륙과 달리 고립된 섬 생태계에서 그런 제약이 없고 개체수가 늘어날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방목했다 야생화한 굴업도 사슴. 야생화한 흑염소와 함께 나무 싹을 먹어 초지가 유지하도록 만든다. 조홍섭 기자
굴업도 서쪽 섬은 1970년대까지 소를 방목해 기르던 곳이어서 초원지대가 형성돼 있으며, 현재는 방목한 흑염소와 꽃사슴이 어린 나무를 뜯어먹어 초지가 숲으로 바뀌는 것을 막고 있다.
이 때문에 개머리 초지에는 왕은점표범나비 애벌레가 먹는 제비꽃류와 나비가 꿀을 빠는 금방망이와 엉겅퀴가 많이 분포한다.
이 나비가 내륙에서 급감한 이유는 숲이 점차 우거진데다 도시개발, 골프장 건설, 집약 농업 등으로 초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 이유로 1960~1980년대 사이 이 나비의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공동연구자인 이철민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일본에선 거의 채집이 불가능해져 ‘꿈의 나비’라고 불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굴업도에서는 씨제이 그룹 계열사가 관광개발을 추진하고 있고, 초지대인 왕은점표범나비 주 서식지는 개발 사업 가운데 골프장 예정지이다.
김 소장은 “초지가 잔디로 바뀌면 이 나비의 먹이 식물, 쉬는 곳과 짝짓기 하는 곳 등이 모두 없어지고 농약이 치명적 영향을 끼치게 돼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며 “골프장을 짓기보다 왕은점표범나비의 국내 최대 서식지를 유지하는 편이 관광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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