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한가운데서 공포 떨던 어린 오리 9남매, 그 후

김봉균 2015. 0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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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잃고 중앙분리대 모여 '덜덜', 구조 뒤 센터서 정성껏 길러

석달 뒤 마침내 자연 방사, "고마웠어요" 저공비행 인사에 뭉클

 

du2.jpg » 도로 중앙분리대 부근에서 위태롭게 모여 있는 상태로 발견된 새끼 흰뺨검둥오리 9남매.  
 
2015년 5월23일 토요일 이른 아침 차를 타고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이른 아침이지만 하늘도 파랗고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오는 상쾌한 아침이었습니다.
 
약 30분 정도 흘렀을까요? 창 밖으로 야생동물의 주검 하나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사실, 도로 위에서 희생되는 야생동물의 로드킬 실태를 조사한 경험이 있어서 운전을 하다가도 야생동물의 주검이 나도 모르게 눈에 들어오곤 합니다.
 
이미 명을 다한 것이 확실했고, 딱히 조처를 취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굉장히 긴박한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순간적으로 지나쳤어도 무언가 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아직 늦지 않은, 구해내야 할 생명이 있다는 것을 말이죠.
 
급하게 갓길에 차를 세우고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확인해 보니 역시 아직 살아있는 흰뺨검둥오리 새끼들이 있었습니다. 앞서 스쳐 지나갔던 주검은 이 새끼들의 어미였을 테죠.
 
흰뺨검둥오리는 보통 하천 주변의 야산이나 풀밭에서 알을 낳아 품습니다. 태어난 새끼는 바로 어미를 따라 강가로 이동합니다.
 
이때는 아직 날지 못하기 때문에 어미의 뒤를 따라 열심히 걸어서 이동하게 되죠. 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du1.jpg » 하천 주변의 야산이나 풀밭에서 알을 낳은 뒤 부화한 새끼를 데리고 강으로 이동해 기르는 습성이 있는 흰뺨검둥오리.  
 
새끼가 알에서 깨자 어미는 새끼들과 앞으로 함께 지낼 강을 향해 앞장서 걸었을 것이고, 새끼들은 어미 뒤를 따라가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강으로 가기 위해선 매섭게 달려드는 자동차를 피해 이 도로를 건너야만 했겠죠.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의 중앙까지 왔는데 앞에는 높은 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새끼들이 이 높은 중앙분리대를 넘을 수 있을 리 만무하지요. 다시 돌아가려고 해도 빠르게 달려오는 자동차가 계속해서 이들을 몰아세우고 있었을 겁니다.
  
어미는 얼마든지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을 겁니다. 새끼들을 포기했다면 말이죠.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새끼를 지켜내기 위해 자리를 뜨지 못하고 도로 위에 머물렀고,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 차량에 치여 죽었을 겁니다.
 
그렇게 남은 새끼들은 도로 가운데 위치한 중앙분리대를 벽 삼아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거센 바람과 굉음을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혹시 사람이 갑작스럽게 다가가면 새끼들이 놀라 뿔뿔이 흩어질까 봐 몸을 낮추어 조심스럽게 다가갔습니다. 가까이서 마주한 새끼들은 서로 몸에 기댄 채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을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정말 작고 아직은 나약한 생명이지만 집어삼킬 듯이 달려오는 자동차를 마주하고도 살기 위해 버티고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결국, 9마리의 작은 생명을 모두 무사히 구조할 수 있었습니다.

 

du3.jpg »  얼마나 두려웠던지 새끼들은 구조되고 나서도 계속해서 서로 품에 파고들어 떨어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구조된 새끼들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올해 처음 들어온 새끼 흰뺨검둥오리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게 된 구조센터 직원들 모두가 정성껏 돌봤고, 새끼들 역시 무럭무럭 자라주었습니다.

 

du4.jpg » 한시라도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흰뺨검둥오리 9남매.

 
구조된 지 약 2개월이 조금 지난 8월 초부터는 계속해서 날갯짓을 하고, 다소 높은 위치에서 뛰어내리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가에 서식하는 특성에 걸맞게 수영도 곧잘 했고, 잠수실력도 뽐냈습니다.
 
처음 30g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몸무게가 어느덧 1㎏이 넘어 그들의 어미를 쏙 빼닮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이들은 어느덧 멋진 흰뺨검둥오리가 되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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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7.jpg » 제법 많이 성장한 새끼 흰뺨검둥오리의 모습.

  
8월10일 흰뺨검둥오리 남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흰뺨검둥오리들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털 고르기로 분주했습니다. 그들을 하나하나 포획하면서 눈을 맞추고 부디 잘 살아달라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흰뺨검둥오리의 방생 예정 장소는 충남에 소재한 어느 저수지입니다. 군데군데 자라나 있는 수초와 연꽃…. 그곳에는 이미 원앙, 쇠물닭, 해오라기, 백로 등 다양한 물새들이 살아가고 있어 흰뺨검둥오리에게도 적당한 서식지였습니다.
 
그날 도로 위를 지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어미와 함께 더 일찍 이런 멋진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흰뺨검둥오리를 구조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드디어 고대하던 자연과 만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상자의 문이 하나씩 열리고, 안에 있던 흰뺨검둥오리들이 조심스럽게 상자 밖으로 첫 발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는 것도 어찌나 조심스러운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채로 구조되어 그동안 사방이 철망과 벽으로 둘러싸인 계류장에 머물고 있었으니 넓디넓은 야생이 낯설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멋진 ‘야생동물’이었습니다.

 

du8.jpg » 이송 상자에서 나와 드디어 자연으로 첫발을 내딛게 된 흰뺨검둥오리.
 
자연으로 돌아간 흰뺨검둥오리들이 모두 자연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넓은 저수지에 몸을 맡기고 수영을 즐기는 친구, 꽥꽥 소리를 내며 물장구를 치는 친구, 그동안 느낄 수 없었던 바람을 느끼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친구….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잘 살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바라보다가, 이제 정말 마지막 인사를 하고 뒤돌아 가려는데 한 친구가 저희의 머리 위로, 그것도 아주 가까이 다가와 지나갔습니다. 아마도 구해줘서, 그동안 돌봐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아니면 잘 살아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인사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우리도 고맙다. 다치지 말고 부디 잘 살아라.”

 

du9.jpg » 머리 위로 지나가는 흰뺨검둥오리, “그래, 우리도 고맙다. 부디 잘 살아라.”
 
흰뺨검둥오리와 저희의 인연은 3개월에 걸쳐서 그 첫 번째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빈번하고 위험한 사고, 사람과 야생동물 그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로드킬…. 이들의 위태로움과 고통을 흰뺨검둥오리를 통해서 보았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로드킬의 위험에 처해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지켜주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흰뺨검둥오리들이 어미가 되었을 때, 그들의 새끼를 데리고 안전하게,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줘야 하니까요.
 
글·사진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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