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에너지 확대에 안보·경제까지 달렸다"

김정수 2014. 12.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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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달라졌다, 기후협상 걸림돌 노릇은 옛말
청정에너지·주 차원 노력 업고 국제사회 기후변화 논의 주도

 

San_Gorgonio_Pass_Wind_Farm_03.jpg »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카운티에 자리잡은 샌고고니오 고개 풍력발전단지(San Gorgonio Pass Wind Farm) 모습. 풍력발전기 3218개가 들어선 이 풍력단지의 발전용량은 615㎿로 고리 1호기 원전 발전용량(587㎿)보다 크다. 사진=난다로,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난달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 문제는 예정된 의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이 논의를 적극 주도해 공동선언문에 “기후변화에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미국은 앞서 열린 중국과의 양자 정상회담에서는 2025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수준보다 26~28%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해, 중국으로부터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동결하겠다는 구체적 감축 약속을 처음 끌어냈다.
  

국제사회 기후변화 대응에 갈수록 적극적인 미국의 태도와 관련해 기후협상에 간여해온 환경부 관계자는 “국제사회 기후변화 논의를 주도해온 유럽연합 쪽에서 주도권을 미국에 빼앗기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할 정도”라고 말했다.
  

11월18~21일 주한미국대사관이 주관한 청정 에너지 프레스 투어에 참가했다. 워싱턴과 샌프란시스코 등을 돌며 만나본 미국 국무부·환경보호청 등 정부기관과 에너지분야 민간단체·연구소·공급업체 관계자들은 이런 변화가 오래 준비된 것임을 확인해주었다.
  

미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의 40%를 차지하는 발전 부문 온실가스 감축에 자신감을 갖게 해준 셰일가스 개발 성공도 갑자기 이뤄진 것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록히드마틴·제록스 등의 전·현직 최고경영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미국에너지혁신위원회의 제이슨 버웬 선임정책분석가는 “에너지 분야 연구·개발의 혜택은 5~20년 뒤에야 드러난다. 셰일가스 채굴도 1980~90년대 지열에너지를 얻기 위해 개발한 굴착기술을 바탕으로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Drilling for natural gas, Rulison Field, south of Rifle, Colorado.jpg » 미국이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배경의 하나인 셰일가스 채굴 현장. 사진=Plazak, 위키미디어 코먼스

 

2007년까지 2.5%에 불과하던 미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높아져 5년 만인 2012년 5.4%를 기록하며 두 배를 넘어섰다. 워싱턴에 있는 비영리재단인 ‘퓨 자선기금’의 청정에너지 보고서를 보면, 미국이 지난해 에너지 효율 개선을 포함한 청정에너지 분야에 투자한 돈은 367억달러(약 40조 8000억원)로 유럽연합 전체 투자액(340억달러) 보다 많다. 
 

19일 한국 기자들과 만난 국무부 관계자는 “오바마 정부는 202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두 배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공공용지에 50개의 대규모 재생에너지 프로젝트를 허가했다. 미국이 청정에너지에 주력하는 이유는 기후변화와 국가 안보, 경제적 기회 때문”이라고 말해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더욱 강화될 것임을 내비쳤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는 과거 미국이 국제 기후협상장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저해하는 ‘악당’으로 손가락질받는 중에도 자체적으로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펼쳐온 곳이 적지 않다. 이 과정에 쌓인 경험과 성과도 미국이 뒤늦게 기후변화 대응에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된 배경이다.

 

대표적인 곳이 캘리포니아다. 미국 인구의 12%가 살며 국내총생산(GDP)의 13%를 만들어내는 캘리포니아는 나라로 치면 경제 규모 8위 국가가 된다.

 

Sarah Swenty_USFWS_Solar_Panels_at_California_Valley_Solar_Ranch_1_(8159038006).jpg » 캘리포니아 밸리 솔라 랜치의 태양전지판 모습. 사진=Sarah Swenty/ USFWS,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난 10~11월 캘리포니아주의 각 가정에는 평균 35달러의 ‘기후 크레딧’(climate credit)이 전기요금 고지서와 함께 배달됐다. 지난해부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시작한 주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업체들을 상대로 배출권을 경매해 확보한 자금의 일부다.
  

현금과 같은 기후 크레딧은 배출권 거래제에 따른 요금 상승을 상쇄하면서 온실가스 추가 감축을 이끌어낼 방안으로 설계됐다. 크레딧을 이용해 집안의 오래된 전구를 고효율 전구로 바꿔 장기적으로 전기 소비를 줄이는 가정이 있다면, 온실가스 배출은 그만큼 더 줄게 된다.
  

캘리포니아주는 2006년 미국 최초로 지구온난화대응법(AB 32)을 제정해 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1990년 수준으로 줄이는 목표를 설정했다. 배출권 거래제는 이 목표를 달성하려고 오랫동안 준비한 온실가스 감축 프로그램의 하나다.
  

전기와 산업 부문에만 적용되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배출권 거래제는 내년부터 수송 부문과 연료 소비 부문까지 확대된다. 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85%를 아우르는 세계에서 가장 포괄적인 배출권 거래제가 되는 것이다. 2005년부터 시행된 유럽연합의 같은 제도는 전체 배출량의 45%, 내년부터 시행하는 한국의 배출권 거래제는 전체 배출량의 66%에만 적용될 뿐이다.
  

캘리포니아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2012년 현재 15.4%로 미국 평균의 세 배다. 주정부는 전기공급업체들에 이 비율을 2020년까지 33%로 높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캘리포니아가 이처럼 적극적인 것은 가뭄과 산불 등 기후변화의 영향이 가시화하고 있는데다 기후변화 대응을 경제성장 기회로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 설명이다. 실제 캘리포니아는 1990년 이후 주민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을 연 평균 1%씩 줄이면서도 1인당 국내총생산을 2%씩 증가시켜왔다.
  

북캘리포니아 최대 전기·가스공급업체인 퍼시픽가스전기회사(PG&E)의 장기에너지정책 담당 이사인 레이 윌리엄스는 여기에 덧붙여 “자동차 연비 기준과 같은 많은 아이디어가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돼 미국 전체로 확산됐다. 그렇게 하는 것이 캘리포니아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가 이 전통을 지키며 미국의 온실가스 감축을 선도할 수 있는 밑바탕은 변화와 혁신에 개방적인 주민들이다.
  

같은 회사의 에너지 조달 부문 책임자 시에나 로저스는 “미국에서 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한 지붕의 4분의 1이 캘리포니아에 있다”며 “우리 고객은 미국에서 가장 적극적인 친재생에너지 고객들”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가장 주력하는 것은 에너지 효율 높이기다. 에너지 분야 석학인 제임스 스위니 스탠퍼드대 교수는 “에너지 효율의 빗방울을 모아 에너지 감축의 강을 만든다”는 비유를 들며 한국 정부도 에너지 효율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워싱턴·샌프란시스코/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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