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 뻐꾸기' 감돌고기는 꺽지의 새벽을 노린다

조홍섭 2014. 07.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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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기 무리의 번식전략 '탁란', 물속 관찰 동물행동 연구로 밝혀져

감돌고기, 산란터 지키는 꺽지를 대리모 삼아 목숨 걸고 둥지곁에 알 낳아

 

ga1.jpg » 꺽지 수컷이 산란터를 지키는 주변을 감돌고기 무리가 헤엄치며 호시탐탐 탁란 기회를 노리고 있다. 꺽지가 침입한 감돌고기를 몰아내느라 둥지를 비우는 사이 감돌고기가 꺽지 알 주변에 알을 낳고 방정한다. 새끼가 태어날 때까지 꺽지 수컷이 대리모 구실을 한다. 사진=이흥헌 박사, 생물다양성연구소

 

꺽지 산란 귀신같이 알아내는 감돌고기

 

바닥에 바위와 돌이 깔린 맑은 하천에 사는 돌고기란 민물고기가 있다. 우리나라 하천에 흔하고 중국 동북부와 일본 남부에도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는 1820년 펴낸 <난호어목지>에 이 물고기를 ‘돗고기’로 소개했다. 주둥이가 돼지코를 닮았다고 민간에서 이렇게 불렀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 종을 ‘발견’해 1892년 학계에 보고한 이는 러시아 동물학자 솔로몬 마르코비치 헤르첸슈타인이다.
 

근대과학 이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돌고기의 해부학적 특징을 꿰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조상도 몰랐던 돌고기의 비밀이 우리 연구자들에 의해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돌고기 무리 가운데 감돌고기와 가는돌고기라는 새로운 종이 있고 이들은 한반도 고유종이란 사실을 밝혀낸 것이 대표적 성과이다.

 

돌고기 무리가 뻐꾸기처럼 다른 종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맡기는 ‘탁란’이란 번식전략을 쓴다는 사실도 최근 새롭게 드러났다. 2004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감돌고기의 탁란 행동이 김익수 전북대 교수 등에 의해 밝혀져 눈길을 끌었다. 연구자들은 이후에도 돌고기 무리의 산란행동을 물속에서 관찰해 왔다.

 

그 결과를 담아 <한국어류학회지> 최근호에 보고한 이흥헌·최윤·최승호 박사의 논문에는 알을 맡기려는 ‘물속 뻐꾸기’ 감돌고기와 숙주인 꺽지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공방이 잘 드러나 있다.
 

ga4_꺽지의 번식 모습.jpg » 꺽지 암수가 돌밑 산란터에 알을 붙이고 있다. 사진=이흥헌 박사, 생물다양성연구소

 

수컷 꺽지는 5~7월 사이 산란터를 마련하느라 바쁘다. 그곳에 불러들인 암컷의 알이 깨어날 때까지 지키고 정성껏 관리하는 일은 오롯이 수컷의 몫이다.
 

이흥헌 생물다양성연구소 박사는 “꺽지는 돌 아래 주먹 하나에서 사람 얼굴이 들어갈 정도의 공간에 산란터를 만든다. 방어능력이 있으니 넉넉한 크기로 장만하는 것 같은데, 넓은 평수 아파트로 여성의 호감을 사려는 남성과 비슷하다”라고 설명했다.
 

ga5_산란터를 지키는 꺽지_ 바위에는 주로 꺽지의 알이 붙어있다_탁란 초기여서 꺽지 알 주변에 소수의 감돌고기 알이 붙어있다.jpg » 산란터를 지키는 꺽지 수컷. 알을 낳은 지 얼마 안돼 주변에 감돌고기의 알(지름이 작은)이 일부만 붙어 있다. 사진=이흥헌 박사, 생물다양성연구소

 

이런 널찍한 산란터의 허점을 노리는 물고기가 바로 감돌고기이다. 감돌고기는 꺽지의 산란을 귀신같이 알고 산란터로 몰려든다. 이 박사는 “꺽지가 산란과 수정을 할 때 함께 방출되는 화학물질을 감돌고기가 감지한다는 가설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탁란은 꺽지 산란 뒤 3~4일 안에 대부분 이뤄졌다. 때를 놓쳐 꺽지 새끼가 깨어나기 전에 부화해 둥지를 벗어나지 못하면 감돌고기 새끼는 꺽지의 밥이 되고 만다.
 

산란터에 40~50마리가 ‘인해전술'

 

ga8_choi.jpg » 무리지어 헤엄치면서 꺽지의 산란터를 노리는 감돌고기 무리. 사진=최승호 박사,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

 

감돌고기는 꺽지 산란터에 떼지어 몰려든다. 그 수는 많으면 40~50마리에 이른다. 암컷 1마리에 수컷 10마리 비율로 수컷이 많다. 꺽지는 자신의 산란터 주변에 접근하는 어떤 동물도 공격하는 사나운 습성을 지녔다. 감돌고기의 집단행동은 이를 이용한 것이다.
 

꺽지의 산란터 주변을 배회하던 감돌고기 수컷은 암컷이 산란장 안에 들어오면 일제히 따라 들어온다. 침입에 분노한 꺽지가 일부 감돌고기를 거세게 물어뜯고 몰아내는 사이 나머지 감돌고기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십마리가 한꺼번에 꺽지 알 주변에 알을 낳고 방정을 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감돌고기는 꺽지에 물려 부상을 입고 잡아먹히기도 하지만 압도적인 수로 밀어붙인다.

 

감돌고기의 꺽지 산란터 탁란 과정

 

ga3.jpg » A 꺽지가 산란한다. B 감돌고기가 이를 알아채고 주변을 배회한다. C, D. 기회를 노리다 꺽지 알 근처로 침입한다.

 

ga3-2.jpg » E, F. 침입한 감돌고기를 쫓아내는 사이 다른 감돌고기가 산란터에 들어와 자신의 알을 낳고 수정시킨다. 일부는 꺽지의 알을 뜯어먹는다. G. 꺽지는 자신의 알과 주변의 감돌고기 알을 부화할 때까지 지킨다.   

 

결국 꺽지 알 주변엔 감돌고기 알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꺽지 알을 뒤덮기도 한다. 암컷 3마리를 차례로 불러들여 낳은 꺽지의 알은 기껏 1000개 정도이지만 감돌고기 무리가 떠맡긴 알은 1만개에 이르기도 한다.
 

g꺽지 알(노란색)이 뒤덮이도록 감돌고기가 알(흰색)을 탁란해 놓은 모습.jpg » 꺽지 알(노란색)이 뒤덮이도록 감돌고기가 알(흰색)을 탁란해 놓은 모습. 사진=이흥헌 박사, 생물다양성연구소

 

감돌고기의 탁란 행동은 암·수가 다르다. 최승호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 박사는 “수컷은 위험을 무릅쓰고 꺽지 알에서 가까운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버티면 주변에서 지켜보던 암컷이 산란하러 들어온다”고 말했다.
 

꺽지는 가슴지느러미로 물살을 일으켜 알에 신선한 물을 공급하고 죽은 알을 제거하는 한편 물벌레나 다슬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다. 꺽지 알에 가까이 낳은 감돌고기 알일수록 이런 보살핌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수컷 감돌고기들은 알 낳을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미 낳아놓은 꺽지 알을 뜯어먹기도 한다.
 
■ 낮엔 감돌고기, 밤엔 돌고기 역할 분담

 

ga6_수중 조사.jpg » 감돌고기의 탁란 행동을 물속에서 관찰하고 기록하는 연구진. 사진=이흥헌 박사, 생물다양성연구소

 

연구진은 금강 지류인 주자천 상류에서 스노클링을 이용하여 물속에서 꺽지의 산란터를 관찰·녹화하고 메모판에 행동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놀랍게도 조사한 꺽지 산란터 61곳 가운데 56곳에 감돌고기가 탁란을 했다. 탁란이  감돌고기에게 얼마나 절실한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꺽지가 지켜주지 않는다면 감돌고기 알은 모두 다른 물고기의 먹이가 되었다. 꺽지에 탁란한 감돌고기 치어의 부화율이 74%에 이르렀지만 꺽지가 산란장을 포기한 곳에서는 2~3시간 안에 참갈겨니 등이 알을 모두 먹어치웠다.
 

흥미로운 사실은 감돌고기의 탁란이 일출을 전후한 오전 5~8시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감돌고기에 대한 꺽지의 공격횟수도 이 시간대에 현저히 떨어진다. 연구진은 “일출 전후 수온이 가장 낮아 꺽지의 활동이 둔해지는 시간을 이용해 탁란을 함으로써 상처를 입거나 잡아먹히는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ga2.jpg » 금강 지류의 감돌고기 서식지. 바닥에 바위와 돌이 깔리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다. 이곳에 함께 사는 돌고기도 꺽지에 탁란을 한다. 사진=이흥헌 박사, 생물다양성연구소

 

돌고기도 꺽지에 탁란을 한다. 조사한 꺽지 산란터 넷 중 셋에는 감돌고기와 돌고기가 함께 알을 맡겼다. 그런데 두 종은 시간대를 나눠 낮에는 감돌고기, 밤에는 돌고기가 탁란에 나섰다.

 

최승호 박사는 “낮이고 밤이고 번갈아 덤벼드는 돌고기 무리가 꺽지로서는 지긋지긋할 것이다. 꺽지 알만 있는 산란터를 보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돌고기 무리 때문에 꺽지의 번식률이 얼마나 떨어지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돌고기 무리 3종은 모두 꺽지에 탁란을 하지만 그 의존도는 다르다. 감돌고기는 번식을 전적으로 꺽지에 의존한다.

 

돌고기는 동사리에도 탁란을 하지만 돌 틈에도 산란한다. 일본의 돌고기는 꺽저기에 알을 맡긴다.

 

마치 뻐꾸기가 숙주를 붉은머리오목눈이에서 다른 종으로 계속 늘려나가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가는돌고기는 탁란도 하지만 가는 몸을 이용해 다른 물고기가 접근하기 힘든 좁은 바위 틈에 산란하는 것을 선호한다.
 

ganun.jpg » 가는돌고기. 가는 몸을 이용해 작은 돌틈에 산란하지만 탁란도 한다. 사진=한겨레 자료사진

 

탁란은 진화생물학의 유력한 연구 분야이다. 뻐꾸기 연구는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이제 돌고기의 번식행동도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됐다. 이흥헌 박사는 “돌고기 무리의 산란행동이 어디서 기원했고 앞으로 어떻게 분화해 나갈지를 규명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동물행동 연구가 멸종위기 어류의 보전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 최승호 박사는 “사람이 아닌 생물종의 시각에서 연구하기 때문에 생물의 보전과 복원에 꼭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예컨대 감돌고기 복원이 꺽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동물행동 연구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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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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