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뻐꾸기, 지금 강남 아닌 아프리카에 있다
중·영 탐조가, 베이징서 초소형 위성 추적장치 부착 결과
동남아 아닌 인도 거쳐 인도양 사흘 만에 횡단, 소말리아에
» 베이징에서 인도와 인도양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이동한 뻐꾸기 `스카이봄'. 등에 초소형 위성 추적장치를 부착하고 있다. Terry Townshend
초여름을 알리던 여름 철새 뻐꾸기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른이라면 ‘따뜻한 강남’이라 할 테고 어린이라면 ‘동남아’라는 답이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반도에서 개개비 등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맡겨 번식하는 뻐꾸기가 겨울을 어디서 나는지는 수수께끼다. 아무도 그런 조사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올여름 우리나라를 찾아온 뻐꾸기는 지금쯤 아프리카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베이징에서 위성 추적기를 부착해 날려 보낸 뻐꾸기의 이동 경로로부터 미루어 짐작해 본 것이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뻐꾸기는 같은 종으로 유라시아 전역에 분포한다.
» 여름철새 뻐꾸기. 탁란행동이 널리 알려져 있으나 어디서 월동하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Vogelartinfo
중국과 영국의 탐조가와 전문가는 지난 5월부터 ‘베이징 뻐꾸기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베이징 야생동물 구조 및 재활 센터, 중국 탐조회, 영국 조류학 트러스트 등이 참여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중국 뻐꾸기의 이동 경로와 월동지를 규명하고, 이 과정에 학생과 일반인이 참여해 환경교육과 조류 보호 등의 효과를 거두기 위한 사업이다.
연구자와 탐조가들은 포획한 뻐꾸기 등에 초소형 위성 추적 장치를 붙였다. 무게 4.5g인 이 장치는 태양광 전지로 작동하며 위치 정보를 주기적으로 위성을 통해 발신한다. 뻐꾸기 5마리에 이 장치를 붙였고, 현재 3마리가 정보를 보내오고 있다. 뻐꾸기가 현재 어디 머물러 있는지는 트위터나 누리집을 통해 실시간으로 알려져 일반인과 학생이 조류 이동의 신비를 맛보고 환경 수업에 응용하도록 하고 있다.
» 11월 13일 현재 뻐꾸기의 이동 경로. 주황색이 스카이봄, 붉은색이 플래피, 푸른색은 밍을 가리킨다.
이 프로젝트의 누리집을 보면, 11월 13일 현재 뻐꾸기 3마리 가운데 2마리가 동아프리카에 도착했고 나머지 한 마리는 인도에 머물고 있다. 가장 먼저 이동한 ‘스카이봄’은 10월 말 아프리카 소말리아에 도착했는데, 현재 케냐로 남행길을 재촉하고 있고 적도를 넘어섰다.
베이징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던 스카이봄은 9월 중순 동남아로 갈 것이란 일반의 예상을 뒤집고 미얀마에서 방향을 서쪽으로 틀어 인도로 향했다. 몬순을 맞아 비가 오는 인도에서 갓 출현한 애벌레로 배를 채웠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 놀라운 일은 10월 벌어졌다. 인도 중부에서 머물던 이 새는 갑자기 아프리카로 향해 곧장 비행을 시작했다. 인도양을 건너 동아프리카까지는 3700㎞ 거리다.
아프리카의 몬순과 때를 맞춰 바람을 등지고 논스톱 대양 횡단을 시도한 것이라고 주최 쪽은 설명했다. 일반인이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이 뻐꾸기는 800m 상공에서 직선 경로로 사흘 만에 대양을 무사히 건넜다. 마지막 날에는 풍향이 역풍으로 바뀌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소말리아 해안이 힘겨운 날갯짓을 도왔을 것이다.
» 아라비아 반도를 경유해 아프리카로 가는 경로를 택한 뻐꾸기 플래피. '베이징 뻐꾸기 프로젝트' 누리집 갈무리.
또 다른 뻐꾸기 ‘플래피’는 조금 더 북쪽 루트를 이동했다. 인도 북부에서 아라비아 해를 건너 오만에 도착한 뒤 이어 소말리아로 향했다. 세 번째 ‘밍’은 스카이봄과 비슷한 경로로 인도까지 왔지만 인도 서해안에 머물며 대양 횡단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 '베이징 뻐꾸기 프로젝트'를 활용한 환경 수업 모습. '베이징 뻐꾸기 프로젝트' 누리집 갈무리.
주최 쪽은 “베이징 뻐꾸기 프로젝트는 과학과 보전, 대중의 참여와 환경교육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누리집에서 밝혔다. 아프리카에서 겨울을 보낸 이들 뻐꾸기는 내년 봄 이동 경로를 되짚어 베이징 근처로 돌아올 것으로 보인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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