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초파리에서 사랑의 냄새…좀비 세균 전략

조홍섭 2017. 08. 24
조회수 13330 추천수 0
세균 감염 초파리 배설물에 다량의 성호르몬, 몰려든 상대에 퍼뜨려
세균 이용한 새로운 ‘페로몬 함정’으로 병·해충 제거에 이용 기대

Drosophila_melanogaster_-_André Karwath aka.jpg » 초파리에 감염된 세균은 더 많은 감염 상대를 꾀기 위해 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앙드레 카르와트 아카, 위키미디어 코먼스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쥐는 겁을 잃고 고양이 배설물에 이끌려, 결국 이 기생충의 숙주인 고양이를 감염시킨다. 어떤 기생성 편형동물은 달팽이의 눈 자루에 모여든 뒤 마치 이발소 간판처럼 다른 색깔과 무늬를 펼쳐 천적인 새의 눈길을 끈다(아래 동영상)

 

병원체나 기생동물이 이처럼 숙주의 행동과 생리 활동을 조작해 일종의 ‘좀비’로 만드는 사례가 최근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그런데 세균이 숙주의 사회적 소통을 조작하는 사실이 초파리 연구에서 밝혀졌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미국 코넬대 연구자들은 치명적 세균에 감염된 초파리가 내는 냄새를 조사했는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연구자의 하나인 마르쿠스 크나덴 막스플랑크연구소 박사는 “초파리에게서 병든 냄새를 감지해 회피하는 신경회로를 발견할 생각이었는데, 대신 건강한 초파리들이 감염된 초파리 냄새를 맡고 곁으로 몰려들었다”며 “병든 초파리가 아주 많은 양의 페로몬(성호르몬)을 방출해 결국 모여든 초파리를 모두 감염시키는 걸 보고 놀랐지만 더 흥미로웠다”라고 막스플랑크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병든 초파리가 내는 냄새가 어떤 화학물질이고 얼마나 많은지 등을 측정했다. 처음 예상처럼 병균에 감염된 초파리가 페로몬을 많이 분비해 짝짓기 기회가 늘어 번식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험 결과 감염 초파리의 세균에 엄청나게 많은 페로몬이 들어 있어 여기 몰려든 초파리를 감염시켰다. 병균이 번성해 초파리에 끼친 피해가 클수록 페로몬 생성량도 늘어났다. 

Anna Schroll.jpg »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초파리 실험 시설 모습. 아나 쉬롤.

페로몬은 사회적 소통 수단이다. 세균은 이런 소통을 늘림으로써 감염 기회도 키울 수 있다.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일수록 더 학질모기에 잘 물리며, 말라리아 원충을 보유한 학질모기일수록 더 자주 흡혈한다는 연구결과가 그런 사례이다. 소통을 통해 말라리아 원충은 감염을 늘린다.

연구자들은 다른 초파리 7종과 황열병을 옮기는 모기를 이용한 실험에서도 세균 감염이 냄새의 종류를 극적으로 바꾼다는 것을 확인했다. “병균이 사회적 소통을 조작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자연계에서 흔한 현상인 것 같다”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나아가 새로운 ‘페로몬 함정’을 이용해 질병 확산을 막고 농업용 해충을 퇴치할 가능성도 있다. 크나덴은 “곤충에 세균을 감염시킴으로써 페로몬 방출을 늘릴 수 있다. 이를 통해 이제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페로몬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Ian W. Keesey, Sarah Koerte, Mohammed A. Khallaf, Tom Retzke, Aurélien Guillou, Ewald Grosse-Wilde, Nicolas Buchon, Markus Knaden, Bill S. Hansson. Pathogenic bacteria enhance dispersal through alteration of Drosophila social communication. Nature Communications, 2017; 8 (1) DOI: 10.1038/s41467-017-00334-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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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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