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분 70% 잃고도 살아남는 남극의 '최강 곤충'

조홍섭 2011. 12. 02
조회수 78607 추천수 0

남극 깔다구 애벌레, 2년간 얼음 밑에서 추위와 탈수 견뎌

기후변화로 습도 변동폭 커지면 남극 특산 곤충도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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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분 손실을 막기 위해 얼음 밑에 뭉쳐 있는 벨지카 앤탁티카. 2년간 이런 상태로 지낸다. 사진=벨지카 연구 블로그 

 

사람은 몸 속 수분의 15%를 잃으면 죽는다. 하지만 수분의 70%가 사라져도 살아남는 끈질긴 곤충이 있다. 목마름에 가장 잘 견디는 이 곤충이 사는 곳은 사하라사막이 아니라 남극이다.
 

남극의 고유종이자 지구에서 가장 남쪽에 사는 곤충이기도 한 ‘벨지카 앤탁티카’는 깔다구 과에 속하는 곤충이다. 이 곤충은 수명이 2년인데, 2년 동안 에너지를 비축해야 번식을 할 수 있는 남극대륙 서부의 해안과 주변 섬의 척박한 곳에 산다.
 

바위 밑 얼음 틈에서 2년을 기다리던 벨지카의 애벌레는 얼음이 풀리는 남극의 여름이 오면 탈피해 성충이 된다. 열흘 남짓의 짧은 어른 시기 동안 짝짓기를 마치면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또 다시 기나긴 추위와 목마름과 싸움을 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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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없는 벨지카 앤탁티카 성체의 모습. 약 열흘간 살며 짝짓기를 하고 죽는다. 사진=벨지카 연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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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중인 벨지카 앤탁티카. 사진=위키미디아 커먼스.  

 

애벌레를 괴롭히는 것은 추위와 파도가 흩뿌리는 소금기, 그리고 수분 부족이다. 남극의 혹한은 거의 모든 수분을 얼려 버리기 때문에 무엇보다 탈수를 막지 않으면 생물이 살아남을 수가 없다.
 

그래서 겨울철 남극은 황량한 사막이 된다. 남극의 육상에 사는 곤충이 벨지카가 유일한 것은 이 때문이다.
 

벨지카의 애벌레는 단단한 키틴질 껍질과 함께 부동액 성분이 포함된 체액을 가지고 있어 추위와 수분 손실을 견딘다. 짙은 자줏빛 색깔은 햇빛의 열 흡수를 돕는다. 염도와 산성도 변화에 강한 내성을 지니고 있고 산소가 없는 곳에서도 2~4주를 버틴다. 이 애벌레를 유독성 시너에 하루 종일 담갔다 건졌는데도 살았다는 보고도 있다.
 

벨지카의 먹이는 식물플랑크톤인 조류와 미생물이다. 이들은 펭귄과 물개 서식지 근처에서 유일한 영양원인 배설물을 먹고 자란다.
 

이제까지 벨지카가 오랜 기간의 탈수에 잘 견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 탈수와 가습이 반복되는 실제 자연에서와 비슷한 상황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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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반도 팔머 기지 근처에서 벨지카를 채집중인 미국 연구자. 사진=벨지카 연구 블로그 

 

니컬러스 티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콜럼버스 캠퍼스의 생물학자 등 미국 과학자들은 지난 1~2월 동안 남극반도에 있는 미국의 팔머 기지에서 거듭된 탈수가 벨지카에 끼치는 영향을 조사해 국제학술지 <곤충생리학> 최근호에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이 바위 밑에서 벨지카를 채집해 연구실로 가져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냉장고에 집어넣는 일일 정도로 이 애벌레는 추위에 강했다. 애벌레의 체액에는 부동액으로 쓰이는 글리세롤 등이 들어있다.
 

각종 스트레스를 잘 견디는 이 곤충에게 가장 큰 문제는 겨울 동안의 탈수이다. 겨울에는 수분 손실을 막기 위해 호흡 빈도도 억제한다.
 

연구진은 실험실에서 수분의 75%를 제거한 상태에서 하루 동안 방치하고 다시 하루 동안 수분을 공급하는 과정을 1~5회 거듭했다. 그랬더니 탈수를 한 번 할 때마다 체내 수분의 30~40%가 감소했고 체액의 농도는 점점 높아졌다.
 

하루 동안의 탈수 실험에서 죽은 개체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닷새 동안 탈수와 가습이 계속되자 실험 대상의 35% 이상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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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팔머 남극기지의 벨지카 연구 실험실 모습. 서잔=벨지카 연구 블로그 

 

연구진은 체내의 수분이 사라지면 그때까지 잠자던 유전자가 발현해 세포의 형태를 조절하는 단백질이 변화한다고 설명했다. 아쿠아포린이란 특수한 단백질이 조직에 수분을 전달하고 애벌레의 취약한 소화기관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분부족을 이기는 과정에서 애벌레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이 논문은 밝혔다. 짧은 여름 동안 어렵게 비축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것이다.
 

애벌레는 탈수를 겪으면서 글리코겐 등의 형태로 비축한 탄화수소를 소모하는데, 다섯 번의 탈수 뒤에는 글리코겐의 89%가 사라졌다.
 

탈수와 가습을 반복하는 것이 애벌레에게 큰 타격을 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실제로 수분의 99%를 제거하는 강력한 탈수만을 열흘 동안 지속했을 때는 애벌레가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논문은 “기후변화와 함께 남극의 습도변동 폭이 커지고 있다”며 “벨지카가 아무리 목마름에 잘 견디더라도 극심한 에너지 손실로 인해 결국 서식지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의 원문 정보
  
Energetic consequences of repeated and prolonged dehydration in the Antarctic midge, Belgica antarctica
Nicholas M. Teets, Yuta Kawarasaki, Richard E. Lee Jr., David L. Denlingera Jr., David L. Denlingera

Journal of Insect Physiology

doi:10.1016/j.jinsphys.2011.11.01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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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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