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을 향한 뿌리 깊은 공포, 새들도 그러하다

조홍섭 2020. 0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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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박새, 뱀 침입에 탈출 경보에 새끼들 둥지 밖으로 탈출

서울대 연구진 관악산서 9년째 조사 “영장류처럼 뱀에 특별 반응”


512.jpg » 뱀이 둥지로 접근하면 박새는 독특한 경보음을 계속 내면서 포식자를 쫓아내려 애쓴다(왼쪽). 누룩뱀은 봄철 둥지를 떠나기 전 새 새끼를 많이 잡아먹는 대표적 파충류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6달 된 아기 48명을 부모 무릎 위에 앉히고 화면으로 여러 가지 물체를 보여주었다. 꽃이나 물고기에서 평온하던 아기들이 뱀을 보여주자 하나같이 동공이 확대되는 스트레스 반응을 나타냈다. 스웨덴 웁살라에서 이뤄진 이 실험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도 사람은 뱀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을 포함한 영장류가 뱀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스스로 물려봤거나 부모나 동료가 보이는 반응을 배워서라기보다 타고난 공포라는 설명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영장류뿐 아니라 뱀이 천적인 박새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관찰됐다.


관악산 박새의 최대 천적은 뱀


서울대 생명과학부 행동생태 및 진화연구실은 지난 9년 동안 관악산에 인공둥지 약 500개를 설치하고 박새의 번식행동을 연구해 왔다. 박새는 해마다 이맘때가 번식기여서 둥지마다 약 10마리의 새끼가 깨어난다. 어미는 새끼가 독립해 둥지를 떠날 때까지 부지런히 애벌레를 잡아 나른다.


그러나 새끼 박새에게는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이다. 누룩뱀, 능구렁이 등 뱀은 물론이고 다람쥐와 족제비 등 포유류, 어치, 까마귀 등 새들이 새끼를 노린다. 뱀이 둥지에 다가오면 어미는 뱀 위를 맴돌며 위협하고 경고음을 쉬지 않고 내며 긴박하게 대응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덩치 큰 뱀이 둥지 구멍 속으로 들어오면 새끼를 모조리 삼켜 번식을 망치기 때문이다.


t1.jpg » 한창 번식기인 지난주 서울 관악산 박새 둥지로 침투한 누룩뱀. 다 큰 누룩뱀은 10마리에 이르는 박새 새끼를 모조리 집어삼키기도 한다. 박진석, 서울대 행동생태 및 진화연구실 제공.

관악산에서 4년째 박새의 번식을 연구해 온 이 연구실 하정문 박사과정생은 “뱀은 특히 새끼에게 위협적인 존재”라며 “관찰 결과 번식 둥지의 10∼15%가 뱀의 습격을 받는데, 일반적으로 박새의 번식 실패율이 25%가량인 점을 고려하면, 뱀 혼자 전체 번식 실패 요인의 50∼60%를 차지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건, 뱀이 둥지에 접근할 때 박새 어미가 내는 경고 신호는 다른 포식자일 때와 구별된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박새 연구자인 스즈키 토시타카 교토대 박사가 2010년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논문을 통해 뱀이 다가올 때 어미 박새는 독특한 경고음을 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매우 강하고 빠르게 ‘자’를 반복하는 이 경고음을 들은 새끼들은 둥지 밖으로 뛰쳐나가 날아갔다. 둥지 구멍에서 부리로 새끼를 잡아먹는 까마귀의 접근을 알리는 경고음을 들은 새끼가 둥지 바닥에 납작 엎드리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뱀이다’ 경보에 새끼들 둥지 ‘탈출’


하씨 등 서울대 연구자들은 박새 어미의 뱀 경고 신호가 효과를 내려면 새끼가 둥지를 탈출해 날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런데 조사해 보니 새끼가 비행하기엔 너무 이른 시기에도 어미는 ‘탈출 경고 신호’를 보냈다. 어미는 왜 뱀이 다가오면, 새끼의 발육상태와 무관하게 일단 경고부터 하는 걸까.


연구자들은 2018년 과학저널 ‘행동’에 실린 논문에서 “경고 신호가 새끼의 둥지 이탈 행동보다 먼저 진화했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연구자들은 “애초 뱀 경고 신호는 주변의 새들을 불러모아 뱀을 겁주어 쫓아내기 위한 행동으로 진화했지만, 나중에 새끼가 이 신호를 듣고 둥지를 이탈하는 행동이 따로 진화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워낙 뱀의 포식압력이 크기 때문에 애초 그런 목적은 아닌데도 새끼가 둥지를 탈출하는 행동이 진화했을 것”이라고 하씨는 설명했다.



어미가 내는 경고음을 들은 새끼는 뱀을 본 적은 없지만, 둥지를 뛰쳐 나가야 살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는 얘기다. 토시타카 박사는 ‘뱀 경고음을 들은 박새는 움직이는 막대기만 보아도 놀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17년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회보’에 실린 논문에서 그는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뱀 경계음을 들려준 뒤 길쭉한 막대기를 나뭇가지 위로 끌어올리거나 바닥에서 끌어 뱀 흉내를 내자 박새는 실제로 뱀인 것처럼 공격 행동에 나섰다.


t2.jpg » 사람과 뱀의 관계는 그저 끔찍히 싫어하는 관계 이상이다. 클립아트코리아

박새가 이처럼 뱀을 겁내는 이유는 뭘까. 둥지 안으로 침입해 꼼짝 못 하는 새끼를 삼키는 뱀의 특별한 사냥 방식 때문일지 모른다. 서울대 연구팀은 최근 박새의 뱀 공포가 어디서 기원하는지를 알아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산 다람쥐와 뱀을 투명한 상자에 넣어 박새 둥지 앞에 놓고 박새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실험했다. 다람쥐는 뱀과 마찬가지로 박새 둥지에 들어와 새끼를 잡아먹는다. 놀랍게도 박새는 다람쥐에 대해서는 뱀과 같은 특이한 경고음을 내지 않았다.

 

박새는 왜 둥지 안으로 침입하는 사냥방법이 아닌 뱀 자체에 특별한 반응을 보일까.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동물 행동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영장류에서처럼 뱀이 끼친 뿌리 깊은 특별한 진화적 영향 때문일 것”이라고 밝혔다.


사람 시력, 뇌 진화도 뱀 때문?


사람과 뱀의 관계는 그저 끔찍하게 싫어하는 관계 이상이다. 사실 사람은 사람이 되기 훨씬 전부터 뱀과 부대끼며 살아왔다. 맹수 등 대형 포유류가 아직 지구에 출현하기 전인 4000만∼6000만년 전부터 뱀은 초기의 소형 포유류를 위협하는 주요한 포식자였다. 처음엔 비단구렁이처럼 조이는 방식으로, 나중엔 독을 이용해 포유류를 사냥했다.


t3.jpg » 어미 박새는 뱀을 발견하면 다른 포식자를 발견했을 경우와 다른 독특한 경고 신호를 보낸다. 게티이미지뱅크

린 이스벨 미국 캘리포니아대 인류학자는 2006년 영장류가 뛰어난 시각과 큰 두뇌를 갖게 된 것도 바로 진화 초기 치명적 천적인 뱀과의 만남에서 비롯했다고 주장했다. 뱀을 피하기 위해 입체적 감각과 색깔을 구분하고 가까운 것을 특히 잘 보는 뛰어난 시각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서울대 연구진은 이스벨의 가설이 새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진화 초창기 포식자 뱀이 낳은 뿌리 깊은 공포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새의 조상이 기원한 곳은 뱀이 많은 열대지역이다. 연구진은 “뱀 경고음과 그에 따른 반응은 아주 오랜 계통 유전학적 뿌리를 지닌다”며 “뱀이 온다는 걸 알리는 행동에서 특별히 강력한 자연 선택이 일어났던 것 같다”고 밝혔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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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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