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메라 화산' 8개 올망졸망, 수백m 너덜 줄줄이

조홍섭 2016. 0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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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jpg » 오랜 세월 화산의 몸체를 이루던 주상절리가 떨어져 사면에 너덜을 형성했다. 산의 크기에 견줘 너덜의 규모가 매우 크다. 곽윤섭 선임기자한반도 지질공원 생성의 비밀 <11-1> 강원평화권-고성
오를수록 뾰죽한 산 골짜기에 거대한 연필 수만개 '싹뚝싹뚝'
화강암 위에 현무암...동해 열리던 끝자락에 마그마 솟아올라

0.jpg »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운봉리 운봉산의 너덜. 주상절리가 부러져 단면이 육각형인 바위가 사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750만년 전 분출한 이 화산의 몸체는 거의 대부분 무너져 너덜이 되었고 현재 산 정상의 일부와 화도 부분만 남아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녹아내릴 정도였다는 격전지 아이스크림 고지(219m)는 현무암 대지인 철원평야에 외따로 선 화강암 언덕이다. 27만년 전 용암이 흘러와 이 일대를 메울 때 높은 곳을 미처 덮지 못해 이런 특이한 지형이 생겼다.

아이스크림 고지와 백마고지 등이 ‘현무암 바다에 떠 있는 화강암 섬’이라면 동해 최북단 접경지역인 강원도 고성에는 ‘화강암 바다에 뜬 현무암 섬’이 있다. 운봉산을 비롯해 고성산·오음산·뒷배재·갈미봉 등 8개의 화산체가 그곳이다.
 
map.jpg » 고성 일대 8개 화산체 위치도(검은 부분). 김화성 외(2012) <대한지질학회지>

8개 화산체.jpg » 8개 화산체의 단면도. 붉은 부분이 용암이 굳은 현무암. 오른쪽 끝이 운봉산. 김화성 외(2012) <대한지질학회지>

이들은 해발 300m에 못 미치는 작은 산이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생대 제3기 화산지역이다. 특히, 화강암 지대를 뚫고 분출한 화산이 ‘아래는 화강암, 위는 현무암’인 보기 드문 혼성 화산 지형을 이루고 있다. 
 
7.jpg » 운봉산 야경. 구름이 걸친 위 뾰족한 부분이 상대적으로 단단한 현무암이고 아래는 화강암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7일 찾은 고성군 토성면 운봉산(285m)은 야트막한 산인데도 고성군 해안 어디서나 눈길을 끌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경사가 급해 뾰족한 봉우리가 흔히 보는 야산과 달랐다. 산 서쪽 사면으로 접어들자 전날 내린 폭우로 팬 길 어디에나 화강암이 풍화한 푸석돌과 모래가 드러나 있었다. 고성 일대는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 위에 놓여 있다. 

1.jpg » 운봉산 자락의 심하게 풍화된 화강암 지대. 화산이 분화하기 전 기반암을 이룬 암석이다. 조홍섭 기자
 
4~5m 돌밭 밑 시냇물 소리 졸졸
 
능선에서 골짜기로 이동하자 눈에 번쩍 띄는 경관이 펼쳐졌다. 작은 산에서 예상치 못한 큰 규모의 너덜이 정상 바로 아래부터 산자락까지 사면을 덮었다. 

8.jpg » 오랜 세월 화산의 몸체를 이루던 주상절리가 떨어져 사면에 너덜을 형성했다. 산의 크기에 견줘 너덜의 매우 큰 규모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너덜을 이루는 바위는 대부분 반듯한 육각기둥 꼴이었다. 마치 거대한 연필 수만개를 부러뜨려 놓았거나 고대 신전의 기둥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너덜을 이룬 바위는 현무암으로 지름 30~40㎝에 길이 80㎝가량이었고 너덜은 길이 340m에 최대 폭 140m 규모였다.
 
3.jpg » 너덜은 대개 반듯한 육각기둥 꼴이었다. 곽윤섭 기자

동행한 길영우 전남대 교수(지질학)는 “화강암을 뚫고 지표로 올라온 용암이 땅속에서 천천히 식으면서 주상절리가 형성됐고, 지상에 노출된 뒤 주상절리의 틈이 벌어져 기둥이 떨어져 나가 너덜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운봉산에 있는 12개의 너덜은 지금보다 훨씬 컸던 화산체의 잔해인 셈이다.
 
un.jpg » 운봉산의 암석 구성. A는 화강암 기반암, B는 화강암 풍화토, 경사가 가파른 C는 화산 분출물인 현무암으로 상대적으로 단단해 침식이 덜 이뤄졌다. 김화성 외(2012) <대한지질학회지>

너덜의 깊이는 4~5m이고 그 밑에는 화강암 암반이다. 너덜 밑에서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상절리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바위는 어떻게 사면을 채우게 됐을까. 

강원도 지질공원 담당자인 최돈원 박사(지질학)는 “전체적으로 쪼개진 기둥이 사면 아래 방향을 가리키고 있고 위로 갈수록 기둥이 길어져 절벽에서 떨어진 바위가 암괴류를 이뤄 사면을 흘러내렸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반도는 빙하에 직접 덮이지는 않았지만 그 영향을 받아 영구동토층이 생겼다. 영구동토층은 수분 침투를 막아 봄가을이면 지표가 질척해졌고 너덜은 사면 아래로 서서히 이동했다. ‘바위 강’이 흐른 것이다.

4.jpg » 쪼개진 주상절리가 기다란 '바위 강'을 이루고 있다. 빙하기의 영향으로 토양이 흘러내리면서 생긴 지형이다. 곽윤섭 선임기자
 
고성에 화산활동이 벌어진 것은 약 750만년 전 신생대 마이오세 후기였다. 사람과 침팬지 조상이 갈라진 때이지만 길 교수는 “지질학적으론 아주 가까운 과거”라고 했다. 마그마가 뚫고 올라온 기반암은 중생대 쥐라기인 1억7000만년 전 형성된 화강암이다.
 
연필심 같은 현무암 화도 깊이 몰라

6.jpg » 길영우 전남대 교수가 맨틀에서 마그마가 주변의 암석을 뜯어내면서 급속히 상승한 흔적을 설명하고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당시 한반도에는 고성을 비롯해 백령도, 보은, 아산, 평택 등에서 화산활동이 벌어졌다. 제주도나 울릉도의 화산활동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들 화산에는 마그마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지상으로 올라오면서 지하 깊은 곳의 암석과 광물을 가지고 올라왔다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길 교수의 연구 결과 이 지역 마그마는 지하 160㎞에서 생성됐는데, 지하 57~67㎞ 지점에 있던 암석을 뜯어내 지상으로 가져왔다. 1400도나 되는 고온의 마그마에서 암석이 녹지 않았다는 것은 마그마가 그만큼 빨리 상승했음을 가리킨다. 

2.jpg » 전통 민속마을인 왕곡마을을 둘러싼 산 6개는 모두 신생대 화산활동을 벌인 화산체이다. 사진은 뒤배재 화산. 조홍섭 기자
 
고성 등 한반도 곳곳에서 화산활동이 벌어진 이유는 뭘까. 길 교수는 “당시 한반도 일대는 2300만년 전부터 시작된 동해가 열리는 격동기의 끝자락이었다”며 “한반도 지하의 맨틀이 불안정해 격렬한 화산활동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 오랜 풍화와 침식을 거친 화강암을 뚫고 분출한 화산 또한 식은 뒤 같은 운명에 처했다. 화산체는 주상절리와 너덜로 대부분 떨어져 나가고 남은 것은 화산 정상 부분의 현무암과 마그마 통로이던 화도뿐이다. 

5.jpg » 운봉산 정상에는 아직 무너지지 않은 현무암 주상절리의 윗 부분이 바닥에 드러나 있다. 곽윤섭 선임기자

운봉산에서 현무암은 정상에서 해발 200m 지점까지만 남았고 나머지는 모두 화강암이다. 물론 현무암 화도는 연필심처럼 산 아래까지 이어지지만 얼마나 깊은 곳까지 연장되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고성(강원도)/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공동기획: 한겨레, 대한지질학회, 국립공원관리공단 국가지질공원사무국, 한국지구과학교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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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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