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잃은 꺼병이의 걸음마 연습, '잘만 자라다오'
너구리에 어미 잃고 발가락 뒤틀려, 테이프 교정신발 신고 '아장 아장'
동료의 피 수혈받는 황조롱이…자연에선 도태, 하지만 최선 다할 뿐
▲기형으로 태어난 꿩 새끼가 발을 교정하기 위해 테이프를 단 채 걸음마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대개 2~3일 안에 교정됩니다.
구조센터에서는 수많은 동물이 입원하고 죽거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 야생으로 돌아갑니다. 어쩌면 죽기보다 힘든 과정들인 셈이지요.
최근 센터에는 새끼 동물들의 봇물이 터진 셈인데 특히 황조롱이 새끼들이 많습니다. 더불어 너구리와 싸우던 어미 꿩이 갸륵하여 주민이 들고온 꿩알들도 부화를 하였지요.
들어온 황조롱이들은 거의 대부분 둥지를 떠나는 과정에서 잠시 지치거나 하여 사람들에게 붙들린 녀석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경우 '해킹'(hacking)이라는 과정을 통해 야생으로 다시 돌려보냅니다.
사람에게 먹이를 의존하는 습성을 줄이고 차츰 야생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버는 셈입니다. 풀어준 뒤에도 당분간은 먹이를 일부 제공하여 일종의 보험에 들 수 있게 해 주죠. 먹이 사냥을 못하면 다시 와서 먹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황조롱이의 해킹 과정)
하지만 모든 개체가 이렇게 건강하게 들어오지는 못합니다.
힘들게 부화한 10개의 꿩 알 중에서 제일 마지막 개체의 발가락이 굽어져 있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제대로 걷지 못해 다리가 휘고 죽게 되죠. 임시방편으로 발가락을 펼 수 있지만, 도대체 자연이 이러한 유전자를 선호할런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부화 중인 알을 이리저리 옮기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이렇게 되었을 수도 있죠. 살리는 게 맞을까요?
▲꿩 새끼의 굽은 발 모습입니다. 발생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라고도 하죠.
■ 꺼병이의 걸음마 연습
오늘 새로 황조롱이 새끼들이 아산 둔포에서 구조되어 왔습니다. 깃 상태로 보아서는 체중이 거의 210~220g 정도는 나가야 했는데 각각 164, 114g밖에 안 됐습니다. 앞선 녀석은 그나마 어미가 돌본 개체라 하겠지만 뒷 녀석은 자연 도태의 과정에 있는 녀석입니다.
굶어서 들어온 황조롱이 164g짜리 개체입니다. 가슴 근육은 말랐지만 그나마 체중이 나가서 먹이를 잔뜩 먹었습니다. 제 발 옆에 발만 남은 메추리의 발이 보일 겁니다. 낮에 돌아다니는 주행성 맹금류의 특징 상 앙가슴의 모이주머니가 먹은 먹이로 인해 잔뜩 부풀어 있습니다.
응급수혈을 실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건강한 개체로부터 혈액을 채취합니다. 통상적으로 체중의 1%까지는 안전하게 채혈할 수 있습니다. 채혈 전 교차반응시험과 항응고제 처리, 채혈 후 빠른 수혈이 매우 중요합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는 어린 황조롱이. 114g이라면 제 아들이 16kg 나가는데 8kg밖에 안 되는 상태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서 혈액검사는 언감생심입니다.
■ 수혈 받는 어린 황조롱이
제일 마지막에 수혈을 결정하고서 영구장애가 되어버린 12-181번 황조롱이에게서 1.2ml 정도의 혈액을 채취하여 척골내로 수혈해 주었습니다. 먹이도 먹지 못하고 있는데 앙가슴 근육은 말라붙어버렸습니다. 살아날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저희로서는 모든 카드를 다 꺼내든 셈이군요.
▲다 큰 황조롱이의 피가 힘들어하는 어린 개체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런 개체들은 분명 자연의 섭리대로 두면 낙오해야만 하는 개체들입니다만, 야생동물치료센터에서는 그 경계선을 긋는 것에 항상 난감해 하고 있습니다. 비록 결과가 좋지 않더라 하더라도 끝까지 가보는 겁니다.
글·사진 김영준/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선임수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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