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자연강 섬진강을 걷다

윤주옥 2011. 0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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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에선 사라진 강변 모래밭을 지나 강물을 두 발로 건넜다

걷는 요령? 그늘 나오면 쉬고, 트인 곳에선 경치 감상하며, 만난 동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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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으로 내려온 지 3년이 되어 간다.

 

지리산만 바라보고 내려온 첫 해, 섬진강은 매 순간 감동스러웠다. 섬진강을 걸으며 햇살과 바람, 풀빛 등 섬진강이 펼치는 색의 향연에 넋을 잃었고, 사람은 너무 좋아서도 미칠 수 있음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섬진강을 새롭게 느끼던 둘째 해, 섬진강을 가슴에 품고 '지리산 만인보'란 이름으로 지리산 자락을 걸었다. 지리산 자락을 걸으며

유장한 지리산 능선이 보일 때면 가슴 뛰었고, 골골마다 나름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만나며 저들처럼 화날 때 소리 지르고, 기쁠 때 퍼질러 앉아 웃으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올해는 지리산자락에서 봄과 여름을 맞이한 세 번째 해이다. 올해는 어떤가? 올해는 특별하다.


지리산을 바라보면 가슴이 터질 것 같고, 섬진강가에 서면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절절해지는 올해는 특별하다. 특별한 올해, 특별한 느낌으로 섬진강을 만나고 싶었다.

 

섬진강을 두 발로 건너는 것, 그게 뭐 특별하냐고, 다리로 건너는 섬진강이 뭐 그리 대단하냐는 사람이 있었다. 차가 아닌 발로 건너는 섬진강이라,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2011년 6월 19일, 섬진강을 두 발로 건너기 위해 개치마을로 갔다. 우기가 시작되었으니 갑자기 불어난 강물이 내 몸을 집어삼키면 그 순간 얼마나 시원할까, 란 괴이하고 야릇한 생각을 하며 섬진강으로 갔다.

 

개치, 미서, 미동, 먹점, 흥룡.

섬진강을 두 발로 건너기 전에 걷는 마을들이다.  

 

개치마을회관 앞 살구나무엔 살구가 먹기 좋은 빛깔로 익어 있었다. 한적한 개치마을과 어울리는 빛깔이었다. 


길바닥에 나뒹구는 살구를 보며 마을 분들은 살구에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서리하는 입장에서는 맘 편하게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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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치마을 입구엔 악양루가 있다. 미서마을 뒷산에 있던 악양루를 이곳으로 옮긴 이유는 그곳이 바람골이었기 때문이란다.


악양루는 개치마을 앞길이 4차선으로 확장되면 원래 자리로 옮겨질 계획이다. 불쌍한 악양루, 다음엔 무슨 이유로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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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양루가 있던 미서마을 뒷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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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치마을 앞 악양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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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양루는 도로 확장으로 옮겨질 운명이다.

 

미서마을 뒷산은 대나무숲이다. 대나무 숲길은 미동마을 어르신들이 학교에 다녔던 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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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섬진강 걷기를 안내하는 최지한 님은 대나무밭 한 마지기면 자식 농사가 가능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했다.


우리나라 대나무산업은 플라스틱 제품이 나오며 한 풀 꺾이고, 한중수교로 값싼 죽공예품이 들어오면서 또 한 풀 꺾이더니, 마을 어르신들이 공공근로 일터에 고용되자 완전히 뿌리 뽑혔다고 한다.


힘들고 돈 안 되는 죽세공을 하려는 사람이 없으니, 죽세공은 삶과 멀리 있는 예술이 되어 간다. 이런 와중에 최지한 님은 죽세공을 하겠다고 한다. 기특하나 대책 없는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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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서마을 뒷산에 올라 악양들판을 바라봤다. 미동마을로 가는 길에선 개치마을이 보였다. 미동마을 지나 먹점마을로 가는 길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은 너무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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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중순, 마을길을 걷다보면 풍요로움이 느껴진다. 매실이 익어가고, 감은 제 꼴을 찾아가고, 보기 드문 흰 앵두를 만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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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시작되는 6월, 길을 걸을 때는 더위와 햇살에 대비해야 한다. 모자나 양산, 자외선 차단 크림, 안면 마스크, 얼음 물, 오미자 효소, 수박 등 뭐든 준비해아 한다.


그늘이 나오면 무조건 쉬고, 확 트인 곳에선 반드시 경치 감상을 하며, 새롭게 만난 동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여름날 걷는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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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점마을 정자에서 낮밥을 먹었다. 먹점마을은 3월 초순 매실꽃이 예쁜 마을이다. 매실 수확 철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다. 오늘 먹점마을의 주인은 강아지 3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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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 아래 섬진강을 건너려면 기운을 보충해야 한다. 흥룡마을에서 한숨 자고, 남아있던 새참을 먹고, 물도 마셨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처럼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강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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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에 달궈진 모래밭을 맨발로 걷는 것은 기특하며 대책 없는 청년이 아니고는 시도하기 힘든 일이다.


모래는 델 것처럼 뜨거웠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헛것이 보이는 것이 사막을 걷는 것 같았다. 사막에 가보지 않았으나 아마도 이런 느낌일 거라 생각되었다. 


쓰러지면 몸도 마음도 모두 모래가 될 것 같았다. 마음은 갈래갈래 흐트러지고 있었으나 걷는 일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으니 걷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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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걷는 건 무리다 싶을 때, 강물이 보였다. 오아시스라 생각되었다. 오아시스에 발을 담갔다. 햇살 받은 강물이 따뜻했다.


진안 데미샘에서 시작하여 임실, 순창, 남원, 화순, 장흥, 보성, 곡성, 구례, 순천, 광양을 거쳐 하동까지 내려온 강물은 아프고 슬픈 사연까지도 따뜻함으로 녹이고 있었다. 마술 같은 일이다. 강물은 진실을 알고 있으나 사실을 말하기보다는 말 없이 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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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길을 지나, 긴 모래밭을 걷자 이번엔 큰 물길이 나왔다. 엉덩이까지 오는 물을 헤치고, 물살에 휘청대는 몸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섬진강을 걸었다. 두 발로 섬진강을 건너 하동에서 광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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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을 두 발로 건너는 건, 섬진강을 잘 알고 물때를 맞추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섬진강을 두 발로 건넌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다. 오늘은, 잠시 투아레그족이 되어 오아시스 만나길 희망한 하루였다.

 

다리로 건너는 섬진강, 배로 건너는 섬진강, 그리고 두 발로 건너는 섬진강. 같은 섬진강이지만 다르게 느껴지듯이 매일이 같은 날이지만 그 매일 매일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드는 건, 우리 자신이다.

 

섬진강을 두 발로 건넌 날, 해는 달처럼 투명한 빛깔로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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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주옥/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사진 허명구, 민종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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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현장 감시와 정책 개발을 통한 국립공원의 대표적 파수꾼이다. 현재 전남 구례에 거주하며 지리산과 섬진강 일대의 자연을 섬세한 감성으로 그려낸 글을 쓰고 있다.
이메일 : windjuok@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windjiri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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