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덩이' 흰 제비가 마을 화목 물어왔네

윤순영 2011. 0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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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시 송정동서 태어난 흰 제비, 주민들 길조라며 막걸리 잔치  

동네 사람들 한 마음으로 돌봐, 성공적으로 둥지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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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제비.


삼월 삼짇날(음력 3월3일)이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고 했다. 제비가 추녀 밑에 집을 짓거나 옛 집을 수리해 번식을 하는 무렵이면 날씨도 온화하고 산과 들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


제비는 미끈하게 빠진 18cm 길이의 작지만 멋진 모습을 지닌다. 위는 푸른 빛이 도는 검정색이고 이마와 멱은 어두운 붉은 갈색, 아래는 크림색을 띤 흰색이다. 검은 정장을 입은 신사가 떠오르는 모습이다.


꼬리 깃에는 흰색 얼룩무늬가 있다. 어린 새의 긴 꼬리는 어른 새보다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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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의 바깥 꼬리깃은 길이가 유독 길다.


70년대 무분별한 농약 살포와 4월의 논갈이 전통 농사기법이 5월로 늦춰지고, 건물의 구조가 처마가 없는 형태로 변하면서 흔한 여름철새였지만 최근 도심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추억의 새가 됐다.


제비는 둥지를 지을 펄흙을 얻기 위해 땅에 내려앉는 것 말고는 거의 공중에세 생활해, 먹이도 날면서 곤충을 잡아먹는다. 새끼한데 먹이를 줄 때도 둥지 앞에서 날면서 준다, 


공중에서 높이 날다가 땅 표면을 스치듯이 날기도 하고 물위를 쏜살같이 날면서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물을 발로 힘껏 뒤로 차면서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일컬어 '물 찬 제비'라 한다. 


급강하와 급선회를 반복하면서 원을 그리듯이 날아오를 때도 있다. 번식이 끝난 6월부터 10월 상순까지 평지 갈대밭에서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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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암컷. 수컷과 달리 바깥 꼬리깃이 짧다.


건물 처마 밑에 한 집에 1개의 둥지를 짓거나 매년 같은 둥지를 고쳐서 사용한다. 귀소성이 강해서 여러 해 동안 같은 지방에 돌아온다. 4월 하순~7월 하순에 3∼5개의 알을 낳아 13∼15일 동안 품고 부화한 지 20∼23일이면 둥지를 떠난다. 


벌, 잠자리, 파리, 딱정벌레, 매미 등 날아다니는 곤충을 잡아먹는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번식하고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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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제비 둥지가 있는 동해시 송정동 골목길. 오른쪽 감나무 옆 처마 밑에 제비 둥지가 있다.


지난 6월14일 SBS 동물농장 촬영제작자로부터 전화가 왔다.강원도 동해시 송정동 854-70번지 박희원씨 댁 제비가 새끼를 쳤는데 흰 제비 새끼가 1마리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인터뷰 요청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흰 제비이기에 흔쾌히 승낙하고 6월17일 동해시로 향했다. 초행길이어선지 흰 제비를 어서 보고 싶어서인지 4시간의 여정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송정동에 오후1시30분 도착했다.


단독주택들이 정감 있게 다가왔다. 주변엔 동해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져 있었다. 1960년대 이곳은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고 길이 3km의 북평 해수욕장이 있던 곳이지만 동해항 개발로 사라졌다. '소나무 정자'라는 동네 이름이 그때를 모습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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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제비를 보려고 몰려든 동네 주민들.


골목길로 접어들자 흰 제비가 있는 집을 금세 알 수 있었다. 골목길에서 담 너머로 흰 제비를 구경하는 동네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설렌다. 고속도로를 달려온 피곤함이 확 사라진다.


작년 9월에 집만 짓고 떠났다가 올 4월에 다시 찾아와 5월15일 알을 낳고 5월31일 새끼가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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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를 꽉 메운 다섯 마리의 새끼들.


6월5일 태어 난 지 6일 만에 5마리 새끼 중에 1마리가 흰 색인 것을 집주인 박희원씨가 발견했다. 동물의 조직에 있는 검은색이나 흑갈색의 색소가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피부나 머리카락, 망막의 색깔이 결정된다.


'백화 현상'(알비노)는 색소가 없거나 부족해서 생기는 돌연변이로, 과거 참새나 까치 등의 조류에서 간혹 발견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자연 상태에서 생존율이 높지 않아 사람의 눈에 쉽게 발견되지 않는 희귀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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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서로 먼저 먹으려고 보채는 제비새끼들. 합창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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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흰 제비가 둥지 밖이 궁금한지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도착한 날은 이들이 태어난 지 19일째 되는 날이다. 내일 아니면 모레 둥지 밖으로 날아갈 확률이 높다. 제비는 태어난 지 20~23일 정도 되면 둥지 밖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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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롭게 깃을 다듬는 흰 제비. 흰 모습이 토끼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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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인 박희원씨 부부가 제비 새끼들을 어린 아이를 보살피듯 지키고 있다.


집 주인 박희원 씨가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집에 들어서자 처마 밑에 검은 새끼 제비 속에 석인 흰 제비가 확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 셔터를 정신없이 눌러댔다.


5마리 중 1마리가 흰 제비였다. 행동도 다른 제비들보다 활발하고 호기심도 많아 사람의 행동을 주시하며 살피고 눈빛도 마주친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름대로 애교도 부린다. 정말로 깜직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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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가지 사이로 먹이를 물고오는 어미 제비.


제비 둥지 앞에 감나무 한 그루가 있어 둥지를 감춰주고 있고, 남향으로 적당한 볕이 들어 새끼를 키우기에 좋은 조건이다. 박희원씨의 관심과 보살핌도 한 몫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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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제비의 날갯짓, 둥지 밖으로 나가기 위한 필수적인 준비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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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새끼 제비의 날개 운동.


대체로 흰색으로 태어나면 눈이 붉은 색깔이지만 육안으로 봐서는 색소 부족이 아주 심하지 않아 검은 눈동자여서 귀여움을 더한다. 
새끼들은 둥지에 붙어 날갯짓을 자꾸만 반복하고 다시 둥지로 들어간다. 둥지를 떠날 사전연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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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집 주인 박희원씨, 동네 주민 김영상 ,최준천씨. 모두 흰 제비 팬이다.


동네 사람들이 아예 의자를 가져다 놓고 관찰을 한다. 생일을 맞아 고향에 다니러온 김영상씨는 큰 복을 받았다며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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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제비 탄생을 막걸리로 축하하는 동네 주민들.


동네 분들이 또 모여든다. 잠시 후 축하하는 마음으로 김치 안주 하나에 막걸리 술자리가 벌어졌다. 모두들 즐거워한다. 우리 민족은 흰색과 흰 옷을 좋아해 백의민족이라 했던가. 예부터 흰 새는 길조라 여겨 복과 평안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좋은 일이 생긴 것은  틀림없다. 동네 사람들이 너도나도 찾아와 흰 제비 구경하느라 떠들썩하다. 이 동네에 이렇게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인 적은 처음이라고 한다. 


주민자치센터에서 방송을 한다. "우리 동네 박희원씨 댁에 흰 제비가 태어났습니다. 복을 가져다 주는 길조이니 모두 축하합시다." 이어 "둥지에 가까이 접근하지 마시고, 큰 소리도 내지 마시고, 근처에서 경적은 울리지 마십시오."라는 당부를 덧붙인다. 흰 제비가 태어나 동네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는 느낌을 받았다. 동네에 경사가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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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서 날면서 먹이를 주는 모습. 제비의 특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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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를 떠날 때가 되자 어미 제비는 정신없이 먹이를 주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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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새끼 제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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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받아먹는 어린 흰 제비.


6월18일 제비가 태어난지 20일째 되는 날이다. 아침 6시30분에 제비 둥지에서 다시 관찰을 시작했다. 이른 아침이지만 어제보다 새끼들의 움직임이 무척이나 활기차다. 금방이라도 둥지를 박차고 나올 기세다.


8시께 한 마리가 둥지를 박차고 나왔다. 어미가 안정된 자리로 유도하려 유난히 '지지배배 지지배배' 울어댄다. 9시가 되자 또 한마리가 밖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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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둥지를 나와 어리둥절한 모습의 새끼제비.


둥지 안과 밖에서 새끼들의 소리가 요란하고 어미도 허둥거린다. 새끼 두 마리는 옆집 마당 빨랫줄에 앉아 어미를 불안하게 한다. 어미가 부르자 둥지 가까이로 날아온다. 다시 둥지로 들어간다. 둥지를 들락거린지 몇 시간이 흘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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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모이주기는 신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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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 제비가 받아먹다 바닥에 떨어뜨린 꿀벌.


이젠 둥지에서 새끼들의 활기찬 날갯짓이 계속된다. 어미가 열심히 먹이를 나른다. 먹이는 주로 벌과 파리이다. 잠자리와 매미류도 주요한 먹이이지만 계절이 일러 보이지 않는다.


흰 제비와 다른 새끼제비 한 마리는 둥지에서 한 번도 떠나보지 못하고 날갯짓 연습만 하루 종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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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 속으로 숨어버린 새끼 제비들.


다른 종류의 새들이 나타나거나 소리가 들리면 새끼들은 무조건 둥지 속으로 숨는 모습이 자주 관찰되었다. 갑자기 어미가 신호를 보내자 떠들던 새끼들이 둥지 속으로 몸을 바짝 엎드려 숨죽이고 꼼짝하지 않는다. 황조롱이가 상공에서 날고 있었다. 한동안 긴장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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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너머에서 휴대폰으로 흰 제비새끼를 촬영하는 주민들.


80살을 훌쩍 넘긴 듯한 노인이 평생 흰 제비는 처음 본다며 담 밖에서 즐거워하신다. '세상에 이런 일이' '예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 하시며 자리를 뜨지 않고 지켜보신다.


할머니, 흰 제비 보니까 어떠세요?  물었다. "기분 좋지 흰 제비가 태아나면 옛날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긴다고 했어"라고 하신다. 나이를 여쭈어 보니 88세란다. 정말 보기 힘든 희귀조임이 틀림없다. 담 너머에서 휴대폰을 들고 너도 나도 촬영을 한다. 오후4시께 둥지 밖으로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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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며 활발하게 움직이는 흰 제비새끼.


오늘은 둥지 밖으로 나갈 일이 없다고 판단해 관찰을 마치고 이튿날 새벽 5시에 둥지로 돌아왔다. 5시15분께 새끼 제비가 갑자기 둥지 밖으로 날아 나온다. 왠지 둥지가 분주하고 요란스럽다. 5시20분께 두 번째 제비가 둥지 밖으로 힘차게 날아오른다. 이젠 미련없이 둥지를 버리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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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5분께 관심의 주인공  흰 새끼제비의 날갯짓이 유난히 활발해졌다. 세 번째로 외출을 시작했다. 안절부절 뜸을 들이던 새끼 제비가 8시에 네 번째로, 9시에는 혼자 남은 다섯 번째 새끼가 둥지가 썰렁했는지 용기를 내어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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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지를 떠난 새끼제비. 모든 것이 낮설다.


4시간에 걸쳐 둥지 떠남이 마무리됐다. 미련없이 떠난 처마 밑엔 빈 둥지만 덩그러니 걸려 있다. 새끼들은 뿔뿔이 흩어져 보이질 않는다. 어미는 이들을 다시 모아 생존의 지혜를 가르쳐, 머나먼 여정의 길을 안내할 것이다.


윤순영/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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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김포의 재두루미 지킴이. 한강 하구 일대의 자연보전을 위해 발로 뛰는 현장 활동가이자 뛰어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이메일 : crane517@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c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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