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기 거대 악어는 왜 두 발로 걸었나

조홍섭 2020. 06. 26
조회수 6952 추천수 1

사천 화석서 육식공룡과 비슷한 악어 확인…“공룡도 진화 초기 두 발 보행”


cr1.jpg » 경남 사천 자혜리에서 발견된 백악기 원시악어의 발자국 화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두 발 보행 원시 악어 ‘바트라초푸스 그란디스’ 상상도. 앤서니 로밀리오 박사 제공.


경남 사천 자혜리에서 발견된 중생대 백악기 원시 악어가 공룡처럼 두 발로 걸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왜 원시 악어가 두 발로 걸었는지 주목된다. 악어는 공룡과 함께 2억5000만년 전 중생대 초에 출현한 대표적 고대 파충류이다. 그러나 아직 살아남은 악어의 모습이 악어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같은 파충류이지만 악어와 육식공룡은 걷는 자세가 다르다. 악어는 육지에서 스쿼트 자세처럼 다리를 반쯤 굽히고 어기적거리며 걷는다. 반면 육식공룡은 타조나 사람처럼 두 발로 사뿐사뿐 걷는다. 오랜 진화과정에서 골격구조가 다르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두 발로 걷는 악어가 있다는 사실은 2004년과 2015년 미국 와이오밍과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중생대 초인 트라이아스기 지층에서 잇따라 원시 악어의 골격 화석이 발견되면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소형 원시 악어가 두 발로 걸었다는 결정적 증거인 발자국 화석은 발견되지 않았다.


cr2.jpg » 자혜리 원시 악어 발자국 화석 모습. 김경수 교수 제공.

김경수 진주교대 과학교육과 교수와 임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 복원기술연구실장, 발자국 화석 권위자인 마틴 로클리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 등 국제 연구진이 12일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논문에서 마침내 그런 증거가 나왔다.


지난해 6월 경남 사천시 서포면 자혜리의 해변 전원주택 단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약 100개의 발자국 화석을 분석한 연구자들은 이것이 1억1000만년 전 앞발과 꼬리를 치켜든 채 두 발로 가뿐하게 걸었던 길이 3m의 거대한 두 발로 걷는 악어라고 결론 내렸다.


김경수 교수는 “악어의 전형적인 걸음은 쭈그려 앉은 자세여서 양쪽 발 사이의 간격이 넓다”며 “그러나 사천의 원시 악어 발자국 흔적은 마치 두 발로 균형을 잡으며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양발 사이의 간격이 좁다”고 말했다.

공룡이나 새는 발가락으로 걸어 발자국 화석에는 발가락이 남는다. 그러나 악어는 발바닥으로 걷기 때문에 사람처럼 발바닥이 찍힌다.


cr3.jpg » 원시 악어 발자국의 자세한 모습. 길이 18∼24㎝로 세 번째 발가락이 긴 것은 현생 악어와 비슷한 특징이다. 일부 발자국에서는 발바닥 피부의 무늬도 나왔다. 김경수 교수 제공.

이번에 발견된 화석 가운데는 현생 악어의 발바닥 피부 무늬와 거의 일치하는 피부 자국이 고스란히 남은 것도 악어의 발자국임을 뒷받침한다. 꼬리가 끌린 자국이 없고, 앞발 자국 위에 뒷발 자국이 중복해 찍힌 흔적이 없는 것도 두 발 보행의 증거로 제시됐다.


그렇다면 당시 한반도 남부 호숫가를 두 발로 어슬렁거렸던 거대한 원시 악어의 모습은 어땠을까. 김 교수는 “육식공룡과 비슷한 모습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석이 발견된 지층에는 육식공룡과 초식공룡은 물론 포유류, 도마뱀, 개구리 등 다양한 동물과 빗방울, 물결, 펄이 말라 갈라진 흔적 등 당시의 호숫가 환경을 말해주는 화석이 다수 나왔다. 수심이 얕은 호수 주변이 광범하게 드러난 곳이었다.


여러 개의 보행렬 화석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 원시 악어는 무리생활을 했고, 거대한 몸집에 비추어 다른 육식공룡과 경쟁하며 사냥했을 것이다.


김 교수는 “보행 방식이 육식공룡과 비슷한 원시 악어가 1억년 이상 동안 미국과 한반도에 걸쳐 분포했다는 것은 이런 악어가 꽤 성공적인 몸 형태였음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오늘날과 같은 악어의 모습이 악어의 전부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cr4.jpg » 사람과 크기를 비교한 원시 악어. 걷는 방식은 현생 악어보다는 육식 악어나 사람과 오히려 비슷했다. 앤서니 로밀리오 박사 제공.

그는 “공룡도 진화 초창기인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두 발 육식공룡이 먼저 나왔고, 이후 몸집이 커지면서 네 발 초식공룡 등 다양한 형태로 분화했다”며 “이런 점에서 진화 초기에 두 발로 걷는 원시 악어가 출현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자혜리 원시 악어는 육식공룡처럼, 긴 꼬리로 균형을 잡으면서 앞발을 든 채 긴 뒷다리로 민첩하게 걷고 달리면서 백악기 호수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했을 것이다.


인용 저널: Scientific Reoprts, DOI: 10.1038/s41598-020-66008-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쓸모없다고? 코끼리 사회에서 늙은 수컷도 중요하다쓸모없다고? 코끼리 사회에서 늙은 수컷도 중요하다

    조홍섭 | 2020. 09. 22

    젊은 수컷에 역경 이길 지식과 경험 제공…‘불필요하다’며 트로피사냥, 밀렵 대상나이 든 아프리카코끼리 암컷의 생태적 지식과 경험이 무리의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늙은 수컷 또한 암컷 못지않게 코끼리 사회에서 ...

  • 얼어붙은 설원의 다람쥐, ‘도토리 점심’만 먹을까?얼어붙은 설원의 다람쥐, ‘도토리 점심’만 먹을까?

    조홍섭 | 2020. 09. 18

    캐나다 북극토끼 사체 청소동물 24종, 4종의 다람쥐 포함 캐나다 북서부 유콘 준주의 방대한 침엽수림에서 눈덧신토끼는 스라소니 등 포식자들에게 일종의 기본 식량이다. 눈에 빠지지 않도록 덧신을 신은 것처럼 두툼한 발을 지닌 이 토끼는 ...

  • ‘노래하는 고대 개' 뉴기니서 야생종 발견‘노래하는 고대 개' 뉴기니서 야생종 발견

    조홍섭 | 2020. 09. 17

    `늑대+고래’ 독특한 울음 특징…4천m 고원지대 서식, ‘멸종’ 50년 만에 확인오래전부터 호주 북쪽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 뉴기니에는 독특한 울음소리의 야생 개가 살았다. 얼핏 늑대의 긴 울음 같지만 훨씬 음색이 풍부하고 듣기 좋아 ‘늑...

  • ‘겁 없는 야생닭’ 골라 10대 육종했더니 가축 닭 탄생‘겁 없는 야생닭’ 골라 10대 육종했더니 가축 닭 탄생

    조홍섭 | 2020. 09. 16

    1만년 전 가축화 재현 실험…온순해지면서 두뇌 감소 현상도동남아 정글에 사는 야생닭은 매우 겁이 많고 조심스러워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8000∼1만년 전 이들을 가축화하려던 사람들이 했던 첫 번째 일은 아마도 겁 없고 대범한 닭을...

  • 코로나 록다운에 ‘자연이 돌아왔다’…좋기만 할까?코로나 록다운에 ‘자연이 돌아왔다’…좋기만 할까?

    조홍섭 | 2020. 09. 15

    외래종과 밀렵 확산 등 ‘착한, 나쁜, 추한’ 영향 다 나타나코로나19로 인한 록다운(도시 봉쇄)은 못 보던 야생동물을 도시로 불러들였다. 재난 가운데서도 ‘인간이 물러나자 자연이 돌아왔다’고 반기는 사람이 많았다.그러나 록다운의 영향을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