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고래를 죽였다

조홍섭 2009. 0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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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경 반대 앞장 서는 미·영이 남획 원죄
‘주식·채권 투자보다 훨씬 합리적’ 명분
 
6000162274_20090106.JPG5천만년 동안 천적이 거의 없이 대양을 유유히 헤엄치던 고래가 불과 300여년만에 멸종위기에 몰린 과정은 인간이 환경을 대하는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역사학자 맥닐은 <20세기 환경의 역사>(에코리브르/홍욱희 옮김/3만8천원)에서 경제논리가 어떻게 고래의 몰락을 불렀는지 개괄했다.
 
그는 원시시대부터 19세기 말까지의 포경이 “보트를 타고 쫓아가서 작살을 던지는” 방식이란 점에서 동일했다고 썼다. 원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해변의 죽은 고래나 가까운 바다에서 고래를 잡았다. 먼 바다로 나가는 포경은 바이킹과 바스크족이 북대서양에서 시작했다.
 
참고래는 맞춤한 사냥감이었다. 몸길이 20m에 100t의 거구이지만 유순한데다 느려 노를 저어 추적하기 쉬웠다. 게다가 죽으면 물에 떠올라 사냥감을 잃을 우려도 적었다. 그래서 사냥꾼들은 잡기 좋은 이 고래에 ‘바른’(right) 고래란 이름을 붙였다. 우리 이름도 먹을 수 있는 동·식물에 주로 붙는 앞머리 ‘참’을 단 참고래가 됐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선단 만들어 씨 말려
 
애초 인간을 천적으로 여기지 않던 고래에게 이런 포경도 치명적이었다. 네덜란드와 영국의 포경선단은 1610~1840년 북극해 일대의 고래무리를 거의 멸종 단계로 몰아넣었다. 미국의 포경선단도 1820~1860년 태평양 곳곳을 누비며 향유고래, 참고래 등의 씨를 말렸다.
 
그 바람에 고래로 삶을 영위하던 추크치족 등 원주민들은 먹을 게 없어 큰 고통을 겪었고, 20세기 초에 포경업은 사양산업이 돼 버린다. 오늘날 포경반대와 고래보호에 극성스럽다 싶을 정도로 앞장서고 있는 미국과 영국이 고래남획의 길을 튼 원죄를 지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포경업계는 이 난국을 기술개발로 돌파했다. 노르웨이는 작살포를 개발해 대형 수염고래를 새로운 사냥감에 올려놓았다. 빠르게 헤엄치고 죽으면 가라앉아 기존의 포경방식에서 살아남았던 대왕고래, 긴수염고래, 밍크고래 등이 표적으로 떠올랐다.
 
노르웨이는 또 잡은 고래를 포경선 뒤에 설치한 경사로를 통해 끌어올려 빠른 시간 안에 해체하는 공장식 포경을 선보이기도 했다. 포경산업은 다시 융성해 1920~1930년대에 영국, 미국, 덴마크, 독일 등이 대왕고래 사냥에 나섰고, 1934년엔 일본, 1946년엔 소련도 대서양 고래잡이에 뛰어들었다.
 
환경문제라는 값 비싼 대가 치러
 
19세기 동안 가로등 기름을 제공해 런던, 파리 등 세계적 대도시의 밤을 밝히던 고래는 이제 마가린, 비누, 화약 등의 원료로 널리 쓰였다.
 
고래가 드물어지자 사냥터를 남극해로 넓혔고, 잠수함을 추적하던 음향탐지기와 항공기가 고래 추적에 동원됐다. 1900년 남극해에 15만~25만 마리가 서식하던 지구 최대의 동물 대왕고래는 1989년 500 마리로 급감했다.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밍크고래가 이제 포경선의 주요 표적이 됐다.
 
맥닐은 이 책에서 고래를 멸종으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경제논리라고 밝혔다. 번식속도가 느린 고래를 보호하는 것보다는 되도록 빨리 잡아서 얻은 수익을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쪽이 훨씬 ‘합리적’이란 것이다.
 
지난 세기 동안 인류가 바다와 흙과 공기를 이용해 온 방식은 바로 이런 것이었고, 그 결과 환경문제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 삐걱거리는 세계 경제가 얻어야 할 교훈의 하나도 이것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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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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