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이 오래 사는 이유, 싸우지 않아서

조홍섭 2019. 0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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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바다거북 알 먹는 뱀 현장연구 결과…싸움 멈췄더니 수명 연장

sn1.jpg » 거북 알에 구멍을 뚫기 위해 이를 대는 대만 알 먹는 뱀 그림. 번식을 위한 ‘보물’을 지키기 위해 꼬리가 잘리는 싸움을 마다치 않는다. 대만 자연과학박물관(NMNS) 동영상 캡처

동물 암컷은 일반적으로 수컷보다 오래 산다. 포유류를 비롯해 새, 물고기, 곤충 등에서 두루 나타나는 이런 현상을 두고 많은 이론이 나와 논란을 벌인다.

예를 들어, ‘어머니 저주 가설’은 암컷을 통해서만 유전되는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 게놈(유전체)이 상대적으로 돌연변이가 잦아 본질에서 수컷에게 해롭다고 주장한다. 좀 더 일반적인 이론은 환경 요인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수컷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상처와 스트레스가 생기고, 경쟁적으로 빨리 자라는데, 이것이 수명 단축의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개코원숭이의 최상위 수컷은 성호르몬뿐 아니라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도 더 높다.

환경설을 뒷받침하는 실증적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 치잉 대만 국립 장화사범대 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25일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실린 논문에서 “성별 수명 차이는 성별 자체가 아니라 영역을 지키려는 공격적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드문 현장연구에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sn2.jpg » 대만 난초 섬의 이 뱀은 바다거북의 산란기에 거북 알을 집중적으로 포식한다. 대만 자연과학박물관(NMNS) 동영상 캡처

연구자들은 대만 ‘난초 섬’에 서식하는 알 먹는 뱀을 장기 조사·연구했다. 이 뱀은 도마뱀 등 다른 뱀의 알을 전문적으로 훔쳐먹는 포식자인데, 이 섬에서는 바다거북의 알을 주로 먹는다.

거북이 바닷가 모래에 구멍을 파 알을 낳고 바다로 돌아가면, 이 뱀은 3∼7시간 안에 알의 냄새를 맡고 모래 속으로 파고든다. 입이 작아 알을 통째로 삼키지는 못하고 구멍을 뚫어 내용물을 섭취한다.

바다거북의 알 무더기는 이 소형 뱀에게 엄청난 자원이다. 뱀은 자신이 발견한 ‘보물’에 다른 뱀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악취를 뿜어내지만, 경쟁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덤벼든다.

sn3.jpg » 알을 지키려다 경쟁자에 물려 상처가 난 뱀. 암컷 네 마리 가운데 한 마리꼴로 상처를 입는다. 황 웬산 제공.

싸움은 치열해 종종 꼬리가 잘려나가는 사태가 벌어진다. 꼬리가 떨어져 나가도 알 더미는 지킬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암컷은 꼬리가 잘려도 큰 문제가 없지만, 수컷은 생식기가 손상되기 때문에 치명적이다. 결국 알을 지키는 역할은 수컷이 아닌 암컷의 몫이 된다.

연구자들은 1997년부터 2012년까지 이 섬 두 곳에서 뱀의 거북 알 쟁탈 행동을 조사했는데,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왔다. 2001년 폭풍으로 한 곳의 거북 산란지가 파괴됐다. 결과적으로 알이 있었을 때와 없어진 이후 암컷 수명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조사 결과 거북 알 쟁탈전의 영향은 암컷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암컷의 25%에서 꼬리가 잘리는 등의 부상이 생겼다. 수컷의 부상 비율은 10∼15%에 그쳤다.

수명도 암컷이 수컷보다 현저하게 짧았다. 특히 조사 중간에 폭풍으로 거북 알이 송두리째 사라져 더는 영역을 지키기 위한 격렬한 싸움을 벌이지 않아도 되자 암컷 수명이 크게 늘었다.

폭풍 이전 수컷의 수명은 13년이고 암컷은 3년이었지만, 폭풍 이후 수컷 4년 암컷 3년으로 비슷해졌다. 실험실에서 기른 뱀의 수명은 암·수 모두 6년이었다.

sn4.jpg » 싸움으로 잘려나간 뱀의 꼬리. 황 웬산 제공.

연구자들은 “이 뱀의 사망률이 성별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은 공격적인 행동 탓임이 자연이 벌인 실험(폭풍)을 통해 밝혀졌다”고 논문에 적었다. 또 일반적으로 수컷이 공격적 행동을 하는 것과 달리 이 뱀은 암컷이 영역을 지키기 때문에 싸움이 수명 단축에 끼치는 영향이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이들은 “암컷 뱀은 자신의 수명 단축이란 대가를 치르고 번식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한다”고 덧붙였다. 부상과 수명 단축을 무릅쓰고 거북 알이라는 핵심 자원을 지키는 것이 높은 번식률을 보장해 결국 종의 번성에 기여한다는 얘기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hi-Ying Lee et al, When males live longer: Resource-driven territorial behavior drives sex-specific survival in snakes, Sci. Adv. 2019; 5, https://advances.sciencemag.org/content/5/4/eaar547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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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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