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음주의 기원은 발효 과일 먹는 원숭이일까

조홍섭 2019. 10. 16
조회수 6674 추천수 1
거미원숭이 실험 결과, 알코올 선호 맞지만 주요 칼로리 원 못돼

a1.jpg » 너무 익어 발효한 과일에서 알코올을 섭취한 데서 인류의 음주 행위가 비롯됐을까. 잘 익은 과일이 주식인 중앙아메리카 검은손거미원숭이가 베텔 야자를 먹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과일이 너무 익으면 알코올이 생긴다. 과육의 조직이 무너지면서 효모가 침투해 과일 내부의 탄수화물을 발효시켜 에틸알코올을 만들기 때문이다.

과일을 많이 먹는 동물들이 종종 알코올을 섭취하는 이유이다. 영장류, 새, 아프리카코끼리, 쥐, 박쥐 등에서 그런 사례가 발견됐다. 

킴벌리 호킹스 포르투갈 인류학연구센터 연구원 등은 2015년 서아프리카 기니의 야생 침팬지 무리가 장기간에 걸쳐 수시로 알코올을 섭취하는 사실을 보고했다. 침팬지들은 사람이 라피아야자의 수액을 채취하기 위해 설치한 용기 속에서 발효된 수액을 나뭇잎 도구로 떠먹었는데, 알코올 농도가 평균 3.1%인 수액을 어떤 침팬지는 취할 때까지 먹기도 했다.

a2.jpg » 기니의 야생 침팬지 수컷 성체가 수액을 채취하기 위해 사람이 설치한 용기에 고인 발효 수액을 먹고 있다. 나뭇잎을 수액에 적셔 입으로 빨아먹는 모습이다. M. 나카무라

인류가 술을 먹게 된 것도, 과일을 주로 먹으면서 부산물로 섭취한 알코올로 칼로리를 보충하던 행동에서 진화했다는 주장도 있다. 로버트 더들리 미국 텍사스대 생물학자는 2010년 ‘인류의 알코올 중독은 과일 먹는 영장류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을 펴 화제가 됐다. 

그는 “호미니드는 과일을 주식으로 하는 다른 동물들과 함께 과일의 당분이 효모에 의해 발효되어 생성되는 에틸알코올을 주기적으로 섭취했다. 오랜 기간 익은 과일을 찾아 먹은 결과 에틸알코올을 추가 칼로리로 간주해 추구하는 행동이 진화했다”며 “그래서 알코올 중독은 유전된다”고 주장했다.

사람과 영장류는 포유류 가운데 알코올을 가장 잘 분해하기도 한다. 매튜 캐리건 미국 산타페이대 생물학자 등은 2015년 분자생물학적 방법으로 그 이유를 밝혔다. 1000만년 전 알코올을 잘 분해하는 효소가 진화했는데, 그 시기는 사람과 영장류의 공통조상이 나무 위 생활을 버리고 숲 바닥으로 내려와 농익은 과일을 자주 접하기 시작한 때이다.

그러나 음주의 영장류 기원설을 둘러싼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사람 이외의 영장류에서 알코올 섭취가 칼로리를 유의미하게 늘리는 행동이어야 자연선택을 받아 진화할 텐데 실제 실험해 보니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나왔다.

a3.jpg » 나무를 휘감을 수 있는 긴 꼬리를 이용해 중앙아메리카의 열대림에서 과일을 주로 따먹는 검은손거미원숭이. 미카엘 샤미즈,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다니엘 바우시 이바냐 스웨덴 리셰핑대 생물학자 등은 영장류 가운데 익은 과일 의존도가 높은 중앙아메리카 검은손거미원숭이를 대상으로 알코올에 관한 선호도와 민감도를 측정하는 다양한 실험을 했다. 

과일이 농익어 발효가 일어나면 알코올 농도는 0.05∼3% 범위이다. 연구자들은 자연상태의 알코올 농도로 실험했다.

거미원숭이들은 물보다 알코올이 0.5∼3% 든 물을 선호했다. 교신 저자인 매티아스 라스카 교수는 “이 실험에서 과일이 주식인 거미원숭이가 에틸알코올 맛에 매우 민감함을 알 수 있었다”며 “자연적으로 발효 중인 과일의 알코올 농도를 선호한다는 것도 확인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알코올은 달콤함, 쓴맛, 향기, 타는 듯한 느낌을 복합적으로 준다. 대부분의 동물은 알코올 농도가 어느 정도 이상 높아지면 쓴맛과 타는 듯한 자극이 커져 섭취를 중단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같은 농도의 설탕물에 한쪽은 알코올을 치고 다른 쪽은 치지 않은 상태로 두었다. 원숭이들은 알코올을 섞은 쪽을 선호했다. 그러나 알코올로 ‘맛’을 낸 설탕물과 이보다 당도가 2배 높지만 알코올은 들어있지 않은 설탕물을 주자, 원숭이는 알코올은 없어도 더 달콤한 설탕물을 골랐다.

연구자들은 “알코올은 단맛 수용기에 작용해 단맛을 더 달게 느끼도록 한다”며 “이 실험에서 원숭이가 선호한 것은 알코올이 아니라 달콤함”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알코올을 탄 설탕물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칼로리는 3배 컸지만 선택받지 못했다.

a4.jpg » 코코넛 열매를 먹는 보르네오 섬의 오랑우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거미원숭이는 과일이 주식이지만 그 대부분은 잘 익은 과일이지 농익은 것이 아니다. 연구자들은 “농익은 과일에는 독성물질인 아플라톡신 같은 2차 대사산물이 형성돼 인간이 아닌 영장류는 일반적으로 기피한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또 발효 중인 과일에서 가장 알코올 농도가 높은 3%라도 거기서 얻는 칼로리는 거미원숭이의 기초 대사량의 1%에 불과하다며, 알코올이 보조적인 칼로리 섭취원이라는 가설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라스카 교수는 “과일 먹는 원숭이가 섭취하는 에틸알코올이 칼로리 보충원이 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영장류가 알코올을 포함하는 농익은 과일을 선호하는 것이 인류 알코올 중독의 진화적 기원이라는 가설도 맞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Daniel Dausch Ibañez et al, Taste responsiveness of spider monkeys to dietary ethanol, Chem Senses. 2019 Aug 11. pii: bjz049. doi: 10.1093/chemse/bjz04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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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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