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코뚜레 낀 소 봤어?" 수몰지 터줏대감 윤씨 할아버지

최수경 2020. 06. 03
조회수 7228 추천수 1

 100호 이평리 수몰민 산증인, 소장사로 돈 모았지만 이제는 퇴비 위해 소 키워 


2.jpg » 이평2구 마을 전경.


금강에 대청댐이 생기면서 대대로 살던 곳을 물 아래에 남기고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나. 대청댐을 둘러싸고 있는 대전, 청주, 옥천, 보은 가운데 수몰 면적이 가장 큰 곳이 옥천이요. 그 중에서도 군북이다. 군북에서도 이평리는 금강으로 서화천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한 물가 마을로, 물이 적을 때에는 여울로도 건너다녔다 하여 배여울이라고도 불렀다. 지금이야 버스도 안다니는 오지마을이 되었지만, 댐이 생기기 전에는 논이 하도 많아 양수장이 세 개나 돌아갔고, 새마을 사업이 일찍 들어와 풍요를 누리던 마을이었다. 이평리를 가장 빨리 가려면 대청호에 가두리양식장이 있던 시절에 향어회 마을이었던 방아실 쪽에서 고개를 넘으면 만난다. 마을 들머리에 서 있는 장승과 돌탑이 잘 정리된 이평2구 마을의 초입을 알린다.


1.jpg » 이평리 들머리에 장승과 돌탑.


호수로 내려가는 경사진 골을 따라 새로 지은 몇 안 되는 집들이 있다. 유독 오래된 흙집이 하나 있어 길을 멈춘다. 집 주변 검은 흙 텃밭에 고추 모종을 참 정갈하게 가꾸었기 때문이다. 밭에서 일하시는 어르신께 고추를 어쩌면 이리도 나란히 잘 세웠느냐 물으니, 몸소 시범을 보인다. 짊어진 배낭에 넣어둔 노끈이 빠져나오면서 고추를 돌려가며 나무묶음을 해보이시는데, 직접 터득한 농사법이라며 열과 성을 다해 일러주신다. 한 수 배우러 온 아낙인 줄 아셨는지, 음료수나 한 잔 하고 가라며 집으로 안내하신다.


3.jpg » 이평리에 새로 들어선 집들.


4.jpg » 이평마을 터줏대감 어르신.


밀장문(미닫이문) 없는 툇마루, 불 때는 아궁이, 소가 사는 외양간 등 할아버지가 물 가까이에서 이주해 직접 지은 집이라는데, 크게 변형되지 않았다.


5.jpg » 밀장문을 내지 않은 마루.


6.jpg » 이주해 올라온 그대로의 집 외양간.


“댐 생기기 전에는 강 밑으로 100호가 살았어. 올라와 이주한 집도 있고, 죽은 사람도 있고. 이평리 2구 우리 부락에는 한 자리에 앉아 산 사람이 나밖에 없어.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컸지. 터줏대감인 셈이여. 애들 셋을 가르치고 여우살이 시키려니 땅도 팔고, 소도 팔고, 다 팔았어. 죽을 때 가져가는 게 어딨어? 빈손인디.”


7.jpg » 이평리 터줏대감 유신열(75) 할아버지.


10년 전에 처음 찾아 뵈었을 때도 외양간에서 음매~ 우는 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검은 소가 있었다. 뿔이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하는 윤기가 반드르 흐르는 송아지였다. 어르신이 얼마 전 사들인 검은 송아지와 장에서 같이 사갖고 온 강아지가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8.jpg » 외양간에 검은 소.


9.jpg » 검은 송아지와 함께 시장에서 사온 강아지.


이번에 찾아뵈니, 외양간에서 여물 먹는 소리가 여전히 요란한데 소리의 주인공은 황소 한 마리였다. “작년에 사온 송아지가 올해 처음 임신했어. 한 스무날 있으면 출산여.” 작년에 젖 떼고 사온 송아지라 지금도 성장 중이다. 사람 같으면 청소년인 셈이라 소 표정이 해맑고 피부도 참 곱다. “요즘 코뚜레 낀 소 보기 힘들어. 여태껏 저 밭들을 다 소가 갈어. 내가 대추나무 깎아 불에 달궈서 직접 뚫어. 내 손으로 코뚜레 한 소가 셀 수도 없어.” 어르신은 소를 키우는 이유 중 하나가 퇴비 때문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소똥을 허투루 하지 않고, 별도의 장소에 잘 발효시켜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외양간에는 사료용 짚단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집 한쪽에서 발효되는 소똥이 있었는데, 가까이 들여다 보아도 냄새가 구수한 것이 전혀 더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10.jpg » 출산을 앞둔 어린 소.


11.jpg » 전에는 소 7마리를 키웠던 외양간이지만 잘 정돈해 창고로 쓰고 있다.


12.jpg » 외양간에 쌓여있는 사료용 짚단.


13.jpg » 발효시켜 퇴비로 사용될 소똥.

우리 농촌은 집집마다 소를 길렀다. 가옥에 외양간은 필수였다. 지금이야 소 값이 600만~700만 원은 족히 하지만, 땅 한 평이 몇 십 원하던 때 소 한 마리 가격은 몇 십만 원이었다. 땅 문서는 바로 돈이 안 돼도, 소는 내다 팔면 돈을 쥘 수 있어 요긴한 현물재산이었다. 소 값에 비하면 아무도 안 쳐다보던 땅을 지금은 외지사람들이 땅 보러 집 보러 많이들 드나든다.


과거 소시장으로는 옥천장이 가장 컸고, 수몰된 내탑장이 있었다. 대전장에는 비래동, 태평동, 오정동에도 장이 있었고, 멀리 공주장에도 갔다. 댐이 생긴 후에도 소를 싣고 가는 나룻배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당시에는 마을 구마다 100호, 70호씩 살았고 집집마다 소를 키웠다. 댐이 들어서기 전에는 소를 끌고 꼬불꼬불 좁다란 길로 대전장과 옥천장을 다녔다. 지금처럼 좋은 길이 생기기 전, 대전을 가려면 새벽에 길을 나서야 했다. 지금 비래동의 옛 이름인 비름들에 가서 나무를 해다 팔았는데, 질러가려면 계족산이 있는 질티재를 넘어야 했다. 닭이 우니 몇 시라는 것을 알고 출발했고, 갔다 오면 밤 12시였다. 남자들은 나무를 팔아 좁쌀과 보리쌀을 갖고 왔고, 여자들은 집안일하고 호미질하고, 소똥과 풀을 깎아 밭에 거름을 주었다. 


14.jpg » 질태고개에서 내려다 본 대전 전경.


15.jpg » 비래장이 있었던 폐 경부고속도로 모습.


어르신은 한 시절 소 장사꾼이었다. 소 장사하며 돈을 좀 만졌다며, 까막눈이라도 돈 버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시골서 큰 동네 주막이라고 해야 술안주는 말린 명태와 계란이었다. 두드린 북어를 안주 삼아 사람들이 모이면 으레 누구네 집에 송아지 있다, 소가 있다는 얘기를 했다. 어르신은 이게 일감이구나 싶어, 아버지에게 수소 한 마리 값을 간신히 얻어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소 한 마리 값을 받으면 한 마리밖에 살 수가 없으니, 한 마리 값으로 열 마리를 사는 방법에 착안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소가 나오면, 일단 계약서만 쓰고 계약금만 지불하는 방식으로 여러 마리를 샀다. 그리고 차를 불러 기름 값을 떼어주고 웃돈을 얹어 파는 것이었다. 굳이 소시장에 가지 않아도, 또 지금처럼 경매장을 거치지 않고도 소를 사고파는 것이었는데, 걸어 다닐 때는 엄두도 못할 일을 차로 다니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16.jpg » 옥천 소시장의 아침 풍경.


17.jpg » 경매에 나온 육우들.


어르신은 소 장사하면서 남의 돈 한 푼이라도 거저 먹으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혹여나 거래 중에 실수로 돈이 더 들어오면 기어코 주인에게 돌려줘야 직성이 풀렸다. 지금껏 살아오며 철칙이었고, 그게 상인의 도리라고 믿었다. 며칠 전 읍내 농약가게에서 잔돈이 더 들어왔을 때도 굳이 돌아가 돈을 돌려주니, 농약집 주인은 "거참 이런 사람 별로 없는데…. 지독하구먼." 하더란다. 어르신은 비록 평생 까막눈이지만, 마음만큼은 착하고 건실하게 살려 노력했다고 했다. 언제고 도시를 떠나 텃밭에 농사지으며 살 때, 어르신 옆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내가 나누어 주고, 도움받으면서 긍정적으로 사는 법을 배우며 말이다.


18.jpg » 들일하고 '퇴근'하는 마을의 일소.


19.jpg


글·사진 최수경/ 금강생태문화연구소 ‘숨결’ 소장, 이학박사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최수경 금강생태문화연구소 ‘숨결’ 소장, 이학박사
10년 넘게 시민들과 함께 `비단물결 금강천리 트레킹'을 운영하고 있는 환경교육자이자 생태해설가. 대전충남녹색연합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이메일 : tnrud4999@hanmail.net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뱃사공이 남긴 문화유산, 대청호 20년의 기록뱃사공이 남긴 문화유산, 대청호 20년의 기록

    최수경 | 2019. 08. 07

    대청호의 물 상태를 시간별로 기록 남겨, 문화유산이자 소중한 자원대청호로 인해 오지가 된 마을이 많다. 1981년 댐이 생기고, 호수에 물이 차오르자 사람들이 떠난 지 벌써 40년이 되어 가니, 대청호가 불혹을 넘기고 있는 것이다. 옥천군 군북...

  • 새벽을 여는 금강 변 간이역 사람들새벽을 여는 금강 변 간이역 사람들

    최수경 | 2019. 06. 26

    참깨 등 농작물 팔아 쌈짓돈 버는 소중한 발길 이어줘     대전에서 호남선과 나뉜 열차가 하행하다 옥천역을 지나 닿는 심천역, 이 역은 7080세대에겐 교련복에 기타 하...

  • 김덕수 낳은 ‘풍물의 고향’ 대청호 막지리김덕수 낳은 ‘풍물의 고향’ 대청호 막지리

    최수경 | 2019. 05. 09

    '장 치러 가자' 기세 높던 풍요로운 강마을…옥천군 퍼진 풍물이 자부심대전 충청지역 사람들에게 대청호는 어떤 의미일까. 벚꽃이 만발한 호숫가를 상춘객들이 한 바퀴 도는 드라이브 코스일까. 풍광을 벗 삼아 걸을 수 있도록 잘 조성된 오백리...

  • “새똥 치울 때가 좋았어”, 미호천 쇠머리 마을의 ‘황새 추억’“새똥 치울 때가 좋았어”, 미호천 쇠머리 마을의 ‘황새 추억’

    최수경 | 2019. 03. 22

    미호천과 생물이 되살아날 때 쇠머리 황새는 돌아올 것복원으로 다시 만난 황새'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참 좋다. 충북 청주시 한국교원대학교의 참나무 숲 사이로 난 갈잎&n...

  • 육지 속 섬마을, 집배원 가방엔 편지 대신 약봉지육지 속 섬마을, 집배원 가방엔 편지 대신 약봉지

    최수경 | 2019. 02. 15

    금강 방우리, 고생 끝에 범람원 자갈밭을 옥토로 일궜지만… 연재에 앞서10년 넘게 '비단물결 금강천리 트레킹'을 운영하면서 금강 천리길을 수없이 답사했습니다. 때로는 불어난 강물에 자동차가 미끄러질 뻔했고, 여울을 건너며 급류에 아찔한 적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