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선구자는 왜 회의론자가 됐나

이수경 2020. 05. 19
조회수 11089 추천수 0

인간은 생태계 밖에 존재하는 천사도 악마도 아냐

유해물질, 서식지 파괴 등 중요한 환경문제 외면 말아야


c1.jpg » 기후변화가 가장 중요한 환경문제인 건 맞지만 전부는 아니다. 인류가 지구를 구하는 것이 산업화 이전의 이상향으로 돌려놓는 초월적 존재일까. 게티이미지뱅크


회색지대에 머무를 권리가 사라진 시대다. 위기와 양극화는 서로서로 부추기면서 회색지대를 잠식한다. 양극화는 경제적, 정치적 문제만이 아니다. 기후변화라는 위기 앞에서 기후변화를 부정하거나 기후변화가 모든 환경문제의 원인이라고 믿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여지는 없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생태학자이며,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 가능성을 최초로 연구한 학자 중의 한 명인 대니얼 B. 보트킨의 <환경을 해치는 25가지 미신-환경을 보호하지 못하는 환경주의자들의 어떤 믿음>(박경선 옮김/ 개마고원)은 기후변화의 최전선에 섰던 전문가가 회색지대로 물러 나와 쓴 글이다. 45년간 기후변화가 생태계와 생물 다양성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해왔으며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는 최초의 컴퓨터 모델을 만들기도 한 저자는 2014년 미국 하원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보고서 검증 청문회’에서 인류에 의한 기후변화를 확신할 수 없다고 증언하였다. 저자는 청문회에서 인류가 기후변화를 일으켰고 기후변화가 전 세계의 생물 종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보편화한 믿음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폈고 이 책은 그 주장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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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혹은 환경주의자 모두에게 아니 나 자신에게조차 불편한 글일 수 있지만,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사실을 심히 왜곡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의 변절(?) 이유가 정말 궁금하긴 하다. 수많은 반대를 뿌리치고 인류에 의한 기후변화를 주장해 온 전문가가 기후변화 회의론자로 돌아선 이유는 무엇일까? 또 저자가 주장하듯이 환경주의자가 사로잡힌 환경을 망치는 미신은 무엇일까? 물론 저자가 제임스 러브록 류의 과대 망상가 혹은 비외른 롬보르 류의 사기꾼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받는 것은, 기후변화를 지지하는 전문가와 환경운동가를 싸잡아 “미신에 사로잡힌 환경주의자”로 먼저 비판하며 자초한 일이니 어쩔 수는 없다. 따라서 진정성 있는 회의론자인지 이해에 따른 변절자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이 책을 끝까지 읽고 고민할 가치가 있는지를 판가름할 기준이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 중 의심스러운 대목을 먼저 소개한다.

 

생태학자인 저자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생물 대멸종은 없다고 단언한다. 엘리자베스 콜버트의 <여섯 번째 대멸종>을 저자는 과학이 아닌 기정사실화된 유행으로 치부한다. 그 근거로 내세운 것이 “화석기록 연구 결과를 봐도 평균 연 1종 정도는 멸종한다”는 주장인데, 이쯤 되면 이 책도 교묘한 데이터 왜곡을 주장의 근거로 삼는 <회의적 환경주의자>의 저자인 비외른 롬보르 류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왜냐하면 저자가 주장하는 미미한 멸종실적으로 치부되는 16세기 이후 “평균 연 1종”이라는 데이터에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동원된 여러 속임수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먼저 가속화되는 멸종 속도를 감추기 위해 멸종 추세가 아닌 “평균값”을, 멸종 생물 종이 적어 보이도록 “척추동물 1종”을 설명 없이 “1종”이라고 표현해 금세기에 진행되고 있는 생물 종 멸종위기를 감춘다. 또 산업화 이후의 멸종 혹은 이번 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멸종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멸종은 화석기록만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과학적 엄격성을 내세우면서 진실을 호도하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이러한 과학적 엄격성은 기후변화를 주장하는 많은 과학자 간의 협업을 인정하지 않는 근거로도 사용된다. IPCC 보고서가 채택된 방식이 ‘과학적 방법’이 아닌 ‘과학자들의 합의’에 의해 작성되었기 때문에 이 보고서에서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 제시한 기후변화를 과학적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가 혼동하고 있는 것은 IPCC 보고서는 “전 세계적으로 발표된 최신의 과학적, 기술적 및 사회경제적 정보를 바탕으로” 정책결정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행동에 나서도록 촉구할 목적으로 작성된 보고서이지 과학적 진실을 따지자고 만들어진 보고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차피 과학자들이 작성한 정책보고서를 두고 저자는 과학보고서가 아니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시급하고 현존하는 환경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엄격한 과학적 결과를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무망한 일인지는 수은중독으로 인한 유명한 공해병인 미나마타 사건이 잘 보여준다. 하나의 원인과 수많은 증거로 상식적으로는 뻔한 사건인데도 인과관계를 찾는다고 수십 년 과학적 논쟁을 거친 미나마따 사건처럼, 과학적 엄격성은 진실을 찾는 것보다 오히려 인과관계를 모호하게 하는 데 주로 이용되어 왔다. 따라서 IPCC 보고서의 일부 결함이 인류에 의한 기후변화 가능성을 부정하는 증거가 될 수도 없고 IPCC 보고서를 근거로 정책결정자들이 행동하는 것을 망설이거나 주저할 이유가 될 수도 없다. 저자는 “환경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과학의 영역”이라고 주장하지만 환경정책은 “과학이 아닌 합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John_Houghton_High_Wycombe_20050226.jpg » 2005년 IPCC 총회에서 존 휴튼 경이 이산화탄소가 급증하는 추세를 보여주는 유명한 '하키 그래프'를 보이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렇게 저자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고, 때로는 불편하거나 의심스러운 마음이 드는데도 이 책을 끝까지 놓지 못하고 읽었다. 그것은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일관되게 독자에게 혹은 자신에게 묻고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나 또한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기후변화를 이끌던 과학자에서 기후변화 회의론자로 돌아서게 한 의문은 어쩌면 저자를 생태학이나 기후변화로 이끈 질문 혹은 철학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지구의 운명을 좌우하는 존재인가, 기후변화로 지구의 생물 종을 절멸시킬 수도 또 절멸되어가는 지구의 생물 종을 구할 능력이 있는 존재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저자는 이 책에서 보여준다. 저자는 인류가 산업화 이후 겨우 수백 년 만에 지구 기후체계나 생태계의 수용 능력을 넘어 훼손하고 파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 인류가 수백 년 동안 기후변화를 일으켰다고 해서 수십 년 안에 기후체계나 생태계의 망가진 작동을 멈춰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기후모델의 불확실성, 기후변화 연구가 빠뜨렸을지도 모를 과학적 엄격성에 대해 지적하면서 인류가 기후변화를 일으킨 것이 맞는지 질문한다.

 

활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저자는 인류에 의한 기후변화를 부정함으로써 기후변화에 대한 인류의 책임이나 의무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저자가 말하고 있는 것은 생태계 내에서 인류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다. 생태계 밖의 인류, 지구 관리자로서의 인류라는 산업화 세력이 꾸준히 견지해온 오만한 인류 상을 ‘환경주의자’가 그대로 답습해, 지구를 멸망케 할 수도 지구를 구할 수도 있는 유일한 존재로 보는 것 아니냐고 저자는 묻는다.

 

이 질문은 또한 지구 기후의 정상상태, 생태계의 정상상태가 무엇인지 묻는 것으로 이어진다. 즉 기후변화대책이든 환경정책이든 추구하는 이상적 상태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환경문제의 모든 악덕의 요소로 지목되어 왔던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기후변화가 전 세계적 최우선 과제가 된 이후, 기후는 산업화 이전, 자연은 인간의 간섭 이전 상태를 회복해야 할 이상적 기준 혹은 정상 기준으로 삼는 것에 암묵적 합의가 이뤄진 듯하다. 진화에 방향성이 있고 그 완결이 인간이라는 착각처럼, 산업화 이전 혹은 인류 이전을 이상적 자연으로 추구하는 것 또한 인류를 초월적 존재로 보는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저자는 원시림은 기후변화 해결에도 또 숲의 환경적 관리에도 바람직한 모델은 아니라는 것을 사례로 들며 인간의 관리가 사라진 생태계가 자연에도 또 인류 자신에게도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인간은 생태계의 일원일 뿐이지 생태계 밖에 존재하는 천사도 악마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기후변화도 지구 기후체계의 끊임없는 변화 혹은 생태계의 끊임없는 진화의 일환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주문하면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가 정상성의 범위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근거로 지질학적 시간(수십억 년에서 수백만 년)과 생물학적, 역사적 시간을 넘나드는 사실을 섞는 저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기후변화 해결 과정에서 빚어지는 문제가 오히려 기후변화를 포함한 환경문제 해결에 더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저자의 우려는 충분히 공감된다.


05786067_P_0.jpg » 기후변화의 중요성에 압도된 일부 환경론자는 핵발전소 찬성으로 '변절'하기도 했다. 2011년 최악의 폭발 사고를 일으킨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의 2017년 모습. 후쿠시마공동취재단


기후변화가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 많은 근원적 모순으로 빚어진 문제라는 점에 대한 합의는 이미 이루어졌다. 그러나 기후변화 문제가 우리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해서 다른 문제가 덜 중요해지는 것도 아니고 기후변화가 늘 우선 고려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가이아>의 저자 제임스 러브록은 반핵론자에서 찬핵론자로 돌아섰지만, 기후변화 저감 효과조차 불분명한 핵발전을 받아들여야 할 만큼 기후변화만 중요한 문제인 것은 아니다. 저자의 기후변화에 대한 회의는 이렇게 다른 가치를 훼손할 만큼, 다른 모든 환경문제를 제쳐둘 만큼 인류에 의한 기후변화는 확실하고 가장 중요하며 시급한 문제냐는 항변이다.

 

재정적 문제든 인적자원의 문제든, 한정된 자원이 유행처럼 기후변화에 쏠리면서 다른 환경문제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기후모델의 정확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은 좀 더 광범위하고 훨씬 더 세부적인 기후모델을 구동할 더 빠르고 성능 좋은 컴퓨터가 되어버렸다. 이제 10억 달러를 훌쩍 넘어버린 기후모델 비용은 한 나라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액수가 되어버렸고 기후모델을 위한 국제적 차원의 협력까지 필요해졌다.

 

저자는 생물 멸종의 가장 큰 원인인 서식지 파괴를 막아내기 위한 자원이 기후변화에 쏠리면서 서식지 파괴의 현장에서는 재원도 연구자도 구하기 힘들어진 현실에 분노한다.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는 최초의 컴퓨터 모델을 만들기도 했던 저자가 기후모델의 불확실성 혹은 부정확성을 지적하는 것은 이미 기후모델이 우주망원경과 입자가속기처럼 ‘거대과학’이 돼버려 블랙홀처럼 자원을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후모델을 불신하고 인류에 의한 기후변화에 대해 회의하지만, 저자는 다른 기후변화 지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지속가능에너지의 전면적 확대를 역설한다. 저자가 비판적인 것은 기후변화가 아니라 ‘기후변화 유행’이기 때문이다.

 

사실 기후변화가 진행되든 아니든 해결해야 할 환경문제는 산적해 있다. 기후변화가 해결된다고 다른 환경문제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러한 문제의 근원에 기후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면 다른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기후변화의 해결에 기여할 수도 있다. 기후변화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건강과 생명을 빼앗기고 서식지 파괴로 생물 종은 사라지고 인근 지역주민의 삶이 위협받는다. 현존하는 위협과 피해자, 현장을 두고 미래의 문제, 전 지구적 문제에만 자원을 쏟아부어도 되느냐는 물음은 기후변화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하더라도 여전히 필요하다.

 

Global_Climate_Model.png » 기후모델의 얼개. 과학자들은 대기를 수많은 작은 정육면체로 나누어 각각의 풍속, 열 전달, 복사, 상대 습도 등을 바탕으로 기후변화를 예측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회의론자는 상대편이 아니라 늘 자신이 서 있다고 믿는 영역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회의론자는 자기 진영의 모순을 가장 먼저 고발하는 자이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나라 정책당국의 가장 큰 성과는 국민과 전 세계로부터 신뢰를 얻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신뢰는 정책당국이 코로나19 행정에 대한 외부 비판을 끊임없이 수용하고 정책에 반영하면서 쌓아간 것이다. 확진자 정보공개가 인권침해일 수 있다는 외부의 비판을 수용해서 정보 공개방식을 계속 바꾸어 사생활 보호와 알 권리 사이의 충돌을 조정해왔다. 공중보건의 위협 속에서는 인권이 제한될 수 있다는 국제인권법을 핑계 삼지 않고 비판을 수용하고 정책의 개선 계기로 삼은 것이 오히려 우리나라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신뢰를 강화했다.

 

회의론자의 질문은 땅을 다지는 작업이다. 기후변화는 여전히 우리 세대가 직면한 가장 커다란 과제다. 기후변화는 환경 분야뿐 아니라 정치, 경제, 외교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새로운 해결과제를 던지고 있다. 전인미답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기후변화 시대에 회의론자의 질문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회의론자의 질문에 답을 찾는 일은 우리와 다음 세대가 디뎌야 할 땅을 다지며 앞으로 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수경/ 환경과 공해연구회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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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환경과 공해 연구회 운영위원장
전 환경과 공해연구회 회장. 1980년대부터 환경운동을 했으며 에너지 문제와 지역균형발전에 특히 관심이 많다.
이메일 : eprgsoo@gmail.com      
블로그 : https://blog.naver.com/sooep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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