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벨트, 개발벨트, 갈등벨트 ?

신창현 2008.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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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벨트 될 뻔한 백운호수 택지 사업 추진중
협상과 포용하라는 충고 무시하지 않았더라면

 

가을이다. 의왕시장으로 재직할 때 있었던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의왕시의 인구는 11만 명에 지나지 않는 작은 도시였다. 시 전체 면적의 93%가 그린벨트였다. 청계산, 백운산, 모락산, 오봉산 등 4개의 산과 백운호수, 왕송호수 등 2개의 호수 사이로 경수산업도로와 경부선 철도, 서울 외곽순환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도농 복합도시다. 재정자립도가 60%를 겨우 넘고 교육청과 경찰서는 군포시, 세무서는 안양시에 있을 정도로 공공시설과 주민 편의시설이 열악한 의왕시다. 그린벨트는 지역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인 동시에 지역발전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95년 시장에 취임했을 때 전임 시장이 넘겨준 자료 중에는 그린벨트 지역인 백운호수 주변을 골프장과 눈썰매장으로 개발하는 연구용역 보고서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린벨트를 골프장과 눈썰매장으로 개발하는 계획은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은 계획이었다. 마침 한국연극협회에서 세계연극제 개최지를 공모한다는 소식을 듣고 의왕시는 백운호수 일대를 유치 후보지로 신청했다. 함께 신청한 과천시와 수원시 등에 비하면 도시기반시설이나 문화예술 공간 등 모든 조건이 열악했지만 ‘자연과 연극의 만남’을 주제로 밀고 나갔다. 음식점들이 무질서하게 난립하는 유원지나 골프장, 눈썰매장 대신에 문화벨트로 개발하여 그린벨트 보존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싶다고 심사위원들을 설득했다. 덕분에 의왕시와 가평군이 개최도시로 결정됐다.

 

의왕시가 세계연극제 개최도시로 선정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당이 다른 도의원과 시의원들도 축하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의왕시에 산다고 하면 의왕이 어디냐고 되묻는 것이 싫어서 과천 아니면 안양에 산다고 대답하던 의왕시민들에게 세계연극제는 의왕에 사는 자부심을 심어주는 좋은 계기가 됐다. 그러나 잔치 분위기도 잠시, 가을 정기의회에서 세계연극제 준비예산을 만장일치로 승인해준 시의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의왕이 고향인 도의원이 백운호숫가에 계획한 대공연장을 자신의 지역구로 옮겨달라는 요청을 거절했을 때만 해도 갈등이 그렇게 심각해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연극제의 주제가 자연과 연극의 만남이었고, 그린벨트 문제의 대안으로 추진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경수산업도로 주변의 상업지역으로 대공연장을 옮기자는 요청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었다. 도의원이 너무 끈질기게 요구하는 바람에 마지막에는 이런 말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의원님 대공연장을 그렇게 옮기고 싶으면 백운호수를 먼저 옮겨주세요.”

 

도의원은 도에서 지원하기로 한 연극제 준비 예산을 삭감해 버리고, 시의원들은 연극제 준비 때문에 다른 일은 하나도 못하게 생겼다며 반대했다. 백운호수 주변 음식점 주인들은 연극제가 열리면 모두 쫓겨날 거라며 반대하고, 환경단체들은 서울시의 허파 역할을 하는 그린벨트를 훼손한다며 반대했다. 백운호수 주변이 관광지로 개발되기를 원하는 지주들은 환경주의자라며 비난하고, 그린벨트의 풀 한 포기도 건들면 안 된다는 환경단체는 개발주의자라며 비난했다. 결국 반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세계연극제는 무산되고 호수 위의 대공연장, 청계산 기슭의 청소년수련원, 모락산을 가로지르는 연극문화의 거리 등 ‘자연과 연극의 만남’은 도중하차 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연극제 준비에 매달려 밤낮없이 일한 공무원들은 예산낭비의 죄인이 되어 감사원 감사를 한 달씩 받는 수모를 겪었다.

 

이 때 내가 갈등과 분쟁에 대해 알았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협상과 조정에 대해 알고 있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되돌아보면 후회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반대의견에 대한 나의 오만과 편견 때문에 나를 믿고 헌신적으로 일한 공무원들이 겪은 고통은 아직도 커다란 빚으로 남아있다. 연극제를 반대하는 여론이 꿈틀거리던 초기에 주위에서 걱정하며 “반대하는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고 동기가 순수하지 않더라도 그럴수록 더 만나서 포용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나는 그때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과반수가 찬성하면 된 거지 어떻게 100% 찬성을 바랄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세계연극제는 의왕시의 발전을 위한 사업인데 몇몇 사람이 반대한다고 해서 찾아가 설득하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잘라버렸다.

 

반대하던 사람들은 더욱더 반대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시민들은 사업 자체보다 절차의 문제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는 시장의 소신과 추진력이 독선행정으로 비치면서 그 동안 세계연극제를 찬성하던 여론이 서서히 반대편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이 때 내가 갈등영향분석을 통해서 세계연극제를 반대하는 이해관계자들이 누구인지, 반대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하여 협상과 조정을 시도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개발과 보존의 갈등벨트가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문화벨트’로 의왕시의 새로운 자랑거리가 되지 않았을까? 연극제가 무산된 백운호수 옆 30만평의 그린벨트에 지금은 토지공사가 택지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린벨트가 개발벨트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백운호수에 심은 나무들이 보고 싶다.

 

신창현 환경분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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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그린벨트
신창현 환경분쟁연구소 소장
환경분쟁연구소장. 갈등과 분쟁이 있어야 먹고 사는 분쟁 전문가. 복잡한 환경분쟁을 명쾌한 논리와 합리적인 대안 제시로 풀어나간다.
이메일 : green@bunjae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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