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 물범 없으면 산딸기 따먹으면 되고?

조홍섭 2008. 11. 11
조회수 19139 추천수 0

멸종위기 ‘적색목록’ 올라

곧 개봉할 장편다큐 <지구> 주인공 ‘미래 경고’
얼음은 생존필수품…기후변화 첫 희생물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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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4일 개봉하는 장편 다큐멘터리 <지구>에는 수많은 야생동물들의 굉장한 모습들이 담겨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가창오리의 군무부터 초미속으로 촬영한 치타의 사냥 장면,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철새 쇠재두루미, 물을 찾아 몇 주째 일렬로 강행군을 하던 코끼리 무리의 선두가 갑자기 서자 잇따라 앞 코끼리의 엉덩이를 들이받는 집단추돌 사건 등등.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북극곰이다. 거대한 눈 절벽의 동굴에서 암컷 북극곰이 기지개를 켠다. 이어 두 마리의 깜찍한 새끼가 어미를 따라 나서는 모습이 영화 초반에 기다랗게 소개된다. 그리고 끝 부분에 가면, 녹아버린 바다에서 끝없이 헤엄치던 굶주린 북극곰이 크고 위험한 바다코끼리를 습격하려다 실패하는 모습이 다시 나온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주려는 메시지는 "이런 자연의 극적인 모습을 내년에도 다시 볼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로 기후변화이다.

 

세계에서 가장 팬 많이 거느린 동물

 

 영화 <지구> 동영상

 

 

세계에서 가장 팬을 많이 확보한 동물 한 마리를 꼽는다면 아마도 독일 베를린동물원의 크누트일 것이다. 2년생 암컷 북극곰인 크누트는 기념우표와 은화에 얼굴이 나왔는가 하면 환경장관의 양자가 됐고, 해마다 수백만명의 방문을 받는 호사를 누린다.

 

북극곰에 대한 열광은 독일만의 현상이 아니다. 북극곰은 지구온난화의 상징 동물이 됐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도시열섬 현상의 심각성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한 환경단체 활동가들도 북극곰 가면을 썼다.

 

'북극곰을 살리자'는 환경단체의 메시지가 지닌 뜻은 분명하다. 북극의 얼음 위에서 사는 북극곰이 기후변화로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으며, 기후변화의 첫 희생물이 되고 있는 북극곰은 바로 인류의 미래 모습이라는 것이다.

 

지난 6월 아이슬란드에서는 그린란드에서 수백㎞를 헤엄쳐 온 북극곰이 어슬렁거리며 관광객을 '위협'하다 잇따라 사살되는 일이 발생했다. 얼음이 줄어들면서 먹이를 찾아 곰들이 더 먼 거리를 헤엄치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몇 년 전에는 익사한 북극곰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폭풍 때문이란 주장과 기후변화 탓이란 목소리가 맞섰다.

 

멸종위기종에 관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2006년 멸종위기종의 목록인 '적색목록'을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북극곰을 '취약종'으로 분류했다. 미국 정부도 지난 5월 논란 끝에 북극곰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 법으로 보호하기로 했다. 유전개발업자 등이 반발했지만 이대로 두면 2050년이면 기후변화 때문에 개체수의 3분의 2가 사라질 것이란 과학계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얼음에 특화해 진화한 아주 취약한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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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도 있다. <회의적 환경주의자>의 저자인 덴마크 정치학자 비외른 롬보르가 대표적이다. 기후변화의 위험이 과장됐다고 주장해온 그는 최근 국내에서도 발간된 <쿨잇>의 첫째 장을 '북극곰-재앙의 전조일까'로 잡았다. 여기서 그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북극곰전문가그룹 2001년 보고서를 인용해 1960년대 5천 마리이던 북극곰이 2만5천마리로 늘어났으며, 게다가 기온이 높아진 곳에서 늘고 낮아진 데서는 줄었다고 주장했다. 또 교토의정서에 따라 수조 달러를 들이더라도 매년 0.06마리의 북극곰을 살리는데 비해, 사냥을 금지시키기만 해도 수백마리를 살릴 수 있다고 역설했다. 약간 뜬금없지만, 그는 얼음이 사라져 이제까지의 사냥방식을 이어가기 힘들어지면 북극곰이 친척뻘인 불곰의 생태를 닮아갈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물범 없으면 산딸기 따먹으면 되고'라는 얘기다.

 

우리나라 언론이 유독 비중 있게 소개하고 있는 롬보르의 얘기는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앤드류 디로처는 지난 5월 <액션바이오사이언스>에 실은 '북극곰과 기후변화'라는 논문에서 이런 문제제기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캐나다 앨버타대 생물학과 교수이자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북극곰전문가그룹 대표이기도 한 디로처는 24년간 현장에서 북극곰을 연구한 사람이다. 그는 또 다른 북극곰 권위자인 이안 스털링 캐나다 야생동물국 선임연구원과 함께 지난해에도 북극곰과 기후변화의 관계에 관한 일부 잘못된 견해를 논박하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북극곰이 아주 특별한 동물이라고 말한다. 참새나 찌르레기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끈질긴 동물이 아니라 얼음에 특화해 진화한 아주 취약한 동물이란 뜻이다.

 

시베리아 북부에 살던 불곰의 한 무리가 빙하에 고립됐다. 물범 새끼를 전문적으로 잡아먹는 집단으로 진화한 이들이 바로 북극곰이다. 연노랑 털 아래 피부는 햇빛을 잘 흡수하도록 검은 빛이고, 11㎝ 두께의 지방층은 단열기능이 완벽해 과열방지를 위해 너무 빨리 달리지도 못한다.

 

체온손실을 막기 위해 몸이 커져 수컷은 2~2.5m에 체중 400~600㎏까지 자란다. 채식을 주로 하는 불곰보다 3배는 크다.

 

북극곰은 현지에서 '얼음곰'으로 불린다. 그 만큼 얼음 의존도가 높다. 먹이 사냥, 계절적 이동, 여름 피서, 짝짓기, 번식이 모두 얼음 위에서 이뤄진다. 얼음은 동물원의 북극곰처럼 기호품이 아니라 생존필수품이다.

 

아주 특별한 굶기 선수로 임신 암컷은 8개월 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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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의 주식은 물범이다. 북극곰 한 마리는 한 해에 45마리의 고리무늬물범을 잡아먹어야 생존할 수 있다. 그것도 새끼 물범을 짧은 기간 동안 주로 포식한다. 갓 젖을 뗀 물범은 체중의 절반이 지방이고 아직 약지 않아 잡기도 쉽다.

 

북극곰은 봄철 해빙이 녹기 전 물범을 집중적으로 잡아먹어 몸집을 평소의 2~4배까지 불린다. 얼음이 깨져 녹아버리면 그 다음 4달 동안 다시 얼음이 얼어 물범을 잡을 수 있을 때까지 굶는다. 임신한 암컷은 겨울 동안 새끼를 낳기 때문에 8개월을 단식한다. 600g 무게의 새끼를 10~12㎏까지 불리고 난 뒤에야 어미는 새끼를 데리고 물범 사냥터로 떠난다. <지구>에서 새끼 둘을 데리고 굴을 나선 어미는 행복해 보였지만 이미 대여섯달은 굶은 상태다.

 

해빙이 일찍 녹는다면 북극곰은 물범을 잡아먹을 시간이 줄어든다. 지방비축도 줄고 출산할 새끼의 몸무게도 준다. 캐나다 허드슨만 서쪽에서 1987~2004년 사이 북극곰 집단이 22% 줄었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얼음이 일찍 녹는 것이었다. 북극 해빙은 10년에 1.5%, 영구빙은 10%씩 줄고 있다. 얼음 없는 바다가 늘고, 얼음이 덮이는 기간은 준다. 중요한 것은 물범도 얼음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얼음이 일찍 깨져 바람에 실려 이동을 하기 시작하면, 북극곰은 서식지에 머물기 위해서 바람 반대 방향으로 끝없이 걸어야 한다. 익사하는 곰이 생기고, 동족을 먹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북극곰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가져온다.

 

디로처는 북극곰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부족하다고 말한다. 전세계 19개 집단 가운데 장기추세를 말할 만큼 모니터링이 되고 있는 것은 2~3개 집단에 불과하다. 캐나다에 있는 13개 집단 가운데 2개는 심각한 감소 뒤 회복중이며, 5곳에서는 감소추세가, 나머지는 현상유지로 추정할 뿐이다. 명백한 것은 얼음이 감소한다는 것이고, 얼음이 줄어들면 북극곰은 바로 타격을 입는 동물이란 사실이다.

 

디로처는 "얼음바다를 잃는 것은 열대우림을 베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적었다. 서식지 상실은 특수하게 진화한 멋진 동물일수록 더 치명적이다.

 

조홍섭 한겨레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앤드류 디로처 논문 '북극곰과 기후변화' 원문
http://actionbioscience.org/environment/derocher.html
   
#이안 스털링, 앤드류 디로처 논문 '얼음이 녹지 않는다고?-기후변화와 북극곰에 관한 진짜 특종' 원문
http://www.wildlifejournals.org/archive/1933-2866/1/3/pdf/i1933-2866-1-3-2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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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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