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시대 퇴적층 교과서 ‘2천만년 시간여행 ’

조홍섭 2010. 04.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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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부> ② 부산 다대포 해안
 문 밖 나서면 바로 백악기 그들의 놀이터
 지금의 아프리카 사바나 기후 흔적 ‘뚜렷’

 

송도 해안 산책로_공룡시대 지구를 알 수 있는 자연학습장이다.jpg

송도 해안 산책로. 공룡시대 지구를 알 수 있는 자연학습장이다.
 
p4.jpg 아파트 문을 나와 10분만 걸으면 공룡 서식지에 닿을 수 있는 곳이 있다. 부산 다대포 일대가 그곳이다. 고성, 해남, 시흥처럼 멋진 공룡박물관은 없지만, 언제라도 기분이 내키면 산책삼아 중생대 백악기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다.
 부산 사하구 다대2동의 아파트 단지와 두송중학교를 지나자마자 범상치 않은 바닷가와 마주친다. 바닥에 붉은 암반이 깔려 있고 절벽에는 지층이 시루떡처럼 층을 이룬 모습이 독특하다.
 
 조각류의 공룡알 화석 발견
 
  지난달 30일 백인성 부경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의 안내로 다대포 해안을 찾았다. “지금 우리는 약 8천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의 범람원을 걷고 있다”고 백 교수가 말했다.
 메마른 건기가 끝나고 우기에 접어들자 강물이 저지대로 넘쳐흘렀다. 강둑 넘어 평원의 둥지에 알을 낳은 작은 초식공룡이 안절부절했다. 키 큰 겉씨식물의 잎을 뜯으며 느긋하게 이 모습을 바라보던 거대한 초식공룡의 모습이 조선소 타워크레인과 고층아파트 건물과 겹쳐졌다.
 다대포항 건너 바다로 삐죽 뻗어있는 두송반도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백악기 퇴적층은 지금의 아프리카 사바나처럼 건기와 우기가 뚜렷했던 당시의 아건조 기후를 잘 보여준다.
 검붉은 이암은 그 증거이다. 강물에 실려온 진흙이 오랫동안 공기에 노출돼 철 성분이 붉은 산화철로 바뀌었으며, 석회질토양이 만들어졌다. 공룡들은 물을 마시기 위해 또는 식물을 먹기 위해 건조한 범람원의 저지대에 모여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백 교수는 2004년 이곳에서 초식공룡인 조각류의 공룡알 화석을 발견했다.
 붉은 이암층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노란색 또는 흰색의 석회질 덩어리가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범람원 식물이 지하수를 빨아들인 뒤 수분만 증발시킨 결과 뿌리 부근에 석회질이 농축돼 생긴 것으로, 건조기후의 또다른 증거이다. 국내에서 이런 칼크리트(석회질 단괴)가 여기처럼 다양하게 나오는 곳은 없다.
 
 천혜의 지질유산, ‘백악기 공원’ 만들 생각도 없나
 

중생대 백악기 때 쌓인 이암과 사암이 차례로 쌓인 다대포 두송반도의 지층은 자연학습을 위한 천혜의 장소이다.jpg

중생대 백악기 때 쌓인 이암과 사암이 차례로 쌓인 다대포 두송반도의 지층은 자연학습을 위한 천혜의 장소이다
 
p5.jpg옛 지진의 흔적도 남아있다. 보통 마그마가 지층을 뚫어 암맥을 이루지만, 다대포에는 퇴적암인 사암으로 된 암맥이 있다. 미처 굳지 않은 이암을 뚫고 지진충격으로 액화된 사암이 관입하거나 빈 틈을 모래가 채운 결과이다.
  절벽에는 이암, 역암, 사암이 가지런히 쌓여있다. 홍수로 떠내려온 자갈과 모래가 진흙층을 파낸 모습도 있다. 백 교수는 “지층 하나하나가 수천~수만년 동안의 환경변화를 담고 있다”며 “백악기 말 퇴적층의 교과서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도시에 위치한 이런 지질유산을 ‘백악기 공원’으로 관광자원화하거나 교육자료로 활용하려는 시도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약수터 등을 만드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흉물스럽게 들어서고 있고, 청소년 과학교육을 위한 시설이나 안내판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백 교수는 “두송반도를 비롯해 몰운대와 송도 해안산책로를 합쳐 도시 지질공원으로 만들면 훌륭한 관광·교육 자원이 될 수 있다” 며 “이용자의 눈높이에 맞는 안내판 설치, 탐방로 개설, 전문가이드 양성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불바다 휴식기에 만들어진 다대포 분지  
 

다대포 두송반도 중생대 퇴적층 전경.jpg
다대포 두송반도 중생대 퇴적층 전경

 
 중생대 말 백악기는 불의 시대였다. 아직 동해가 열리고 일본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떨어져 나가기 전, 옛 태평양판이 유라시아판 밑으로 파고 들면서 한반도 곳곳에선 화산활동이 맹렬하게 벌어졌다. 경상남북도 일대의 경상분지는 그 중에서도 가장 화산활동이 활발했다.
 몰운대, 두송반도, 송도에 걸치는 다대포분지는 이런 지각변동 과정에서 부산항 쪽을 위로 당기고 낙동강 쪽을 끌어내리는 힘이 작용해 만들어졌다.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는 “다대포 분지는 영남지역을 불바다로 만들던 화산활동의 휴식기에 퇴적돼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다대포층 아래 화성암의 형성시기가 약 9천만년 전이고, 다대포층 위에 다시 뜨거운 용암이 뒤덮인 것은 약 7300만년 전이다. 따라서 약 1000m 두께인 다대포 퇴적층은 약 2천만년 동안 쌓인 셈이다.
 다대포층의 하부엔 적색 이암, 역암, 사암 등 순수한 퇴적층이 주로 쌓였지만, 후반기로 가면 화산재로 굳어 형성된 녹색 응회질 사암이 많아진다.
 몰운대의 하부 다대포층의 역암에는 심해 방선충의 잔해가 굳어 만들어진 규산질 암석인 처트 조각이 발견된다. 내륙에서 심해 기원의 처트 조각이 발견된 것은 무슨 의미일까. 손 교수는 “일본 백악기 퇴적층에도 비슷한 처트 역암이 특징적으로 분포해 당시 한반도와 일본이 붙어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홍섭 기자
 
  ◈시간을 거슬러 느릿느릿, 송도 해안산책길
 
 송도 해안산책로는 심신 단련을 위해 조성한 길이지만, 한반도 공룡의 전성기인 중생대 백악기 지층을 시기별로 한 눈에 볼 수 있는 명소이기도 하다.
 다대포층의 초창기부터 밀려온 용암에 뒤덮힌 마지막까지의 지층변화를 해안 절벽을 따라 난 철제 산책로를 걸으면서 관찰할 수 있다.
 그 출발점은 부산 서구 암남동 암남공원 주차장이다. 산책로에 접어들기 직전 절벽에는 붉은 이암과 회색 사암이 교대로 쌓인 지층이 중간에서 뚝 잘려 한쪽이 180㎝나 내려앉은 정단층이 눈길을 붙잡는다. 지각변동 과정에서 양쪽을 잡아당긴 힘이 작용했던 흔적이다.
 철제 산책로를 따라 800m 거리를 20분 가량에 걸쳐 걷는 것은, 다대포층이 처음 쌓인 약 9천만년 전부터 약 2천만년 동안 시간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 하천범람원을 가리키던 붉은 이암은 산책 중간쯤 더 입자가 가는 이암과 셰일로 바뀐다. 시간이 지나면서 벌판이 호숫가와 같은 저지대로 바뀌었음을 가리킨다. 건조한 기후에서 습윤한 환경으로 기후변화가 이뤄졌다는 뜻이다. 백인성 부경대 교수는 “몇 분만에 시공간을 넘어 4차원 이동을 하는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해안산책로에는 이밖에 퇴적암이 풍화해 토양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곳, 물살 영향을 받아 경사진 퇴적층을 나타내는 사층리, 물결흔적이 화석처럼 남은 연흔, 퇴적층을 뚫고 들어와 굳은 마그마의 암맥 등 다양한 지질현상을 볼 수 있다. 산책로 끄트머리엔 다양한 암석과 설명을 덧붙인 작은 암석전시장도 있다.
 무엇보다 이런 지질장소에는 친절한 설명이 붙어있다. 서구청 관계자는 “산책로 조성 때 지질학 전문가가 참여한 것으로 안다”며 “송도해수욕장에서 이 산책로와 암남공원을 연결하는 송도해안볼레길에 많은 탐방객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이 산책로 인근 섬인 두도에서는 공룡의 알과 발자국이 대거 발견되기도 했다.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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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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