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빚은 불과 얼음의 합작품

조홍섭 2010. 05.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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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부> ④  돌 흐르는 강, 대구 비슬산
  길이 2㎞ 깊이 5m, 집채만한 바위 등 계곡 가득
  너덜겅과 함께 빙하기 한반도 기후의 비밀 간직
 
 
z5.jpg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악지형의 하나가 너덜겅이다. 산비탈에 모난 돌무더기가 넓게 쌓여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곳이다. 흔히 산사태의 흔적쯤으로 잘못 알고 있는 너덜지대는, 수만 년 전 빙하기 때 한반도 기후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대구 분지의 남쪽 울타리인 비슬산에는 많은 너덜겅(애추)뿐 아니라, 너덜지대와 비슷하지만 탄생배경이 전혀 다른 세계 최대 규모의 암괴류(돌강)가 있다.
 
 물은 보이지 않고 물소리만 귓전에
 
 지난 27일 전영권 대구가톨릭대학 지리교육과 교수와 함께 비슬산을 찾았다. 소재사를 지나 비슬산자연휴양림에 이르면 주 등산로 양쪽으로 너덜겅과 암괴류가 한눈에 들어온다.
 등산로 오른쪽 계곡으로 나서자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계곡을 가득 메운 장관이 압도한다. 이 돌강은 대견사 터 아래 해발 1000m 지점에서 흐름을 시작해 700m 고도에서 맞은편 산에서 온 다른 돌강과 합류한 뒤 450m 고도까지 이어진다. 현재 식별할 수 있는 암괴류의 길이는 1.4㎞로, 하천개수공사와 휴양림 시설을 짓기 위해 훼손된 곳까지 합치면 2㎞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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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교수는 “세계적으로 영국 다트무어, 미국 시에라네바다, 호주 타스마니아 암괴류가 유명하지만 비슬산의 규모에 미치지 못한다”며 “국내에선 경남 밀양 만어산과 부산 금정산 암괴류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돌강을 이루는 바위는 직경 10m가 넘는 것을 포함해 대개 크고 모서리가 둥글둥글했다. 마치 강물처럼, 암괴류는 가운데가 가장 깊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얕아진다. 깊이가 5m에 이르는 돌강 바닥을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청량했다. 이 커다란 바위들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비슬산을 이루는 화강암은 중생대 말 백악기 때 깊은 땅속에 뚫고 들어온 마그마가 굳어 형성됐다. 화산 용암이 굳어 만들어진 안산암을 뚫고 녹은 바위가 침투한 것이다.
 수천만 년 동안 지표가 깎여나가면서 깊은 땅속의 화강암은 차츰 지표 가까이로 나왔다. 억눌렸던 압력에서 해방된 화강암은 부풀어오르면서 표면에 균열이 생겼고, 그 틈에 수분이 침투해 땅속에서 화학적 풍화작용을 일으켜 암석을 부스러뜨렸다. 신생대 제3기의 고온다습한 기후는 이런 심층풍화를 가속시켰다.
 
 큰 강에 지류가 흘러들 듯 너덜겅이 돌강으로
 
 이제 비슬산의 화강암은 아직 땅속에 묻힌 채 심층풍화 과정에서 풍화되지 않은 돌알 둘레를 푸석돌(석비레)과 돌과 진흙이 둘러싼 모습이 됐다. 돌강을 만든 자연의 마지막 작업은 얼음공정이었다.
 지난 8만~1만 년 사이 마지막 빙기가 지구를 덮쳤을 때 한반도는 빙하에 뒤덮히지 않았지만 얼음의 영향권에 속했다. 지금의 시베리아나 알래스카 툰드라 지역처럼 1년 중 9개월은 영하의 날씨가 계속됐다. 나머지 석 달 동안 지표면은 질척하게 녹았다. 지표 밑에 영구동토층이나 기반암층이 있어 물이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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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고 녹음이 빈번하게 반복되는 여름 동안 지표면의 퇴적층은 경사를 따라 움직였다. 연간 수㎝에서 수십㎝의 느린 속도였지만 거대한 바위가 들어있는 밀가루 반죽처럼 걸쭉한 상태의 지표가 비슬산 계곡을 따라 흘러내렸다.
 마침내 1만 년 전 빙기가 끝나고, 빗물이 모래와 진흙을 씻어내리자 바위만 자리에 남게 됐다. 돌강이 탄생한 것이다. 전 교수는 “비슬산 암괴류는 오랜 세월에 걸쳐 불과 얼음이 빚어낸 합작품인 셈”이라며 “이제는 활동을 멈추고 화석화한 지형”이라고 설명했다.
 비슬산에는 큰 강에 지류가 흘러들 듯이 여러 개의 너덜겅이 암괴류로 흘러든다. 얼핏 비슷한 돌무더기이지만 너덜겅은 경사가 더 급하고 바위의 크기가 작고 각진 특징이 있다.
 너덜겅도 빙기의 산물이다. 암석 틈새에 스며든 수분이 얼고 녹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틈이 벌어져 떨어져 나온 암석이 너덜을 이뤘다. 돌강이 15도 안팎의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비해 너덜겅의 경사도는 30도 전후로 급하다. 돌강을 이루는 거대한 바위가 땅속에서 오랜 풍상을 겪어 둥글둥글한 모습을 띤다면, 너덜겅에는 거대한 암벽 틈에 스며든 수분이 얼면서 깨진 돌이 암벽 아래쪽으로 굴러떨어져 쌓인 모가 난 돌이 많다.
 
 봄 아닌 봄 때문에 진달래 분홍빛 기지개 못 펴
 
 비슬산을 오르다 보면 등산로 오른쪽엔 돌강이, 왼쪽엔 너덜겅이 펼쳐진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두 지형의 차이를 쉽게 비교해 볼 수 있다.
 예년이라면 비슬산 정상 근처의 고위평탄면에 진달래 군락이 흐드러지게 피어 참꽃축제가 열렸을 터이지만, 봄추위로 꽃봉우리는 움처러든 채였다. 하지만 탐방객 들은 “꽃 대신 돌 구경도 짭짤하다”며 너덜겅에 돌탑을 쌓고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비슬산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영희(52)씨는 “집채만한 바위가 강처럼 흐르는 모습을 보러 오는 사람이 꾸준히 많다”며 “그 큰 바위가 어디서 왔는지 늘 궁금했는데 설명을 듣고나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비슬산은 인구밀집지에 가까우면서도 암괴류, 너덜겅, 가마솥바위(나마), 돌알(핵석), 푸석바위, 판상절리, 탑바위(토르), 거북등 바위(다각형 균열바위), 고위평탄면 등 화강암 지형의 발달과정을 알 수 있는 천혜의 자연학습장”이라고 말했다. 
대구/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1만 마리 물고기가 돌로 변했다는 만어사 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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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삼랑진읍 우곡리 만어산(670m) 정상 아래에도 길이 1㎞, 최대 폭 110m인 대규모 암괴류가 있다. 특히 이 암괴류를 위해 사찰이 창건돼, 신비로운 전설과 자연유산이 어울린 절경을 이루고 있다.
 만어사는 신라 수로왕이 46년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다. 수로왕은 기상이변을 일으켜 오곡의 결실을 방해하던 용과 나찰녀를 부처의 도움으로 물리쳤는데, 이 과정에서 목숨을 구하기 위해 만어서 터로 향하던 용왕의 아들인 용과 수많은 물고기가 돌로 굳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만어사 암괴류도 비슬산 암괴류와 마찬가지로 약 3만년 전 빙기 주변부의 깊은 땅속에서 심층풍화를 거친 화강암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비탈을 미끌어져 내려와 형성됐다.
 만어사에 있는 미륵바위는 동해 용왕의 아들이 돌로 변했다는 전설이 있지만, 심층풍화 때 부서지지 않고 남은 돌알(핵석)이고, 거북등처럼 균열이 나 있는 소원바위도 오랜 세월 화강암이 풍화를 받아 양파껍질처럼 벗겨져 나가 형성된 다각형균열바위이다.
 이곳의 바위 네댓개 가운데 하나는 두드리면 맑게 울리는 소리가 나 종석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화강암의 성분 차이에 의한 현상이다. 경남도 기념물로 지정됐으나, 2003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슬산 암괴류와 학술적 경관적 가치가 못지않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홍섭 기자
 
 
 ◈ 얼음골인 너덜지대는 빙하기 식물의 피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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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덜겅 일부는 한여름에도 찬 공기가 나오거나 결빙현상을 보이는 얼음골(풍혈, 빙혈)이다. 얼음골은 안산암이나 유문암 등 화산암으로 이뤄진 암괴가 두텁게 쌓여 있고 햇볕이 적은 북사면의 너덜겅에 많이 형성된다. 경남 밀양 얼음골, 경남 함양 지리산 얼음골, 경북 의성 빙혈, 경북 청송 얼음골, 충북 제원 금수산 얼음골, 전북 진안 풍혈 등이 그런 예이다.
 너덜겅은 마지막 빙하기 주변기후의 산물이지만, 얼음골은 당시 식물이 고립된 피난처 구실을 한다. 빙하기 때 추운 날씨를 따라 남하했던 북방계 식물이 빙하기가 끝난 뒤에도 국소적으로 찬 기운이 남아있는 얼음골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김진석 국립환경과학원 박사 등이 2006년 <식물분류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을 보면, 얼음골에는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북방계식물이 다수 분포한다. 연구진은 의성 빙혈에서 북한 백두산과 낭림산 고산지대 바위틈에 자라는 한들고사리가 찬 공기가 나오는 바위틈에서 자라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또 함경도에 분포하는 뚝지치도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운치리 얼음골에 생육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밖에 설악산 중청봉이 남방한계인 대표적인 극지·고산식물인 월귤이 강원도 홍천의 얼음골에 분포하고 있는 등 주로 아고산지대에 자라는 주저리고사리, 요강나물, 민둥인가목, 산새풀, 집사초 등 북방계 식물이 해방 350m 이하의 얼음골에서 발견됐다.
 연구자들은 “얼음골의 식물이 식물지리학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며 “주민과 관광객에 의한 과도한 이용과 개발, 외래종 유입 등으로 훼손이 심각해 보존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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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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