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탄생과 성장통 함께 한 신의 돌기둥

조홍섭 2010. 06.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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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⑥광주 무등산 주상절리대
병풍같은 입석대와 서석대는 9천만년 살
풍화와 침식 받아 절벽에 돌의 윤회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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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모퉁이를 반듯하게 깎고 갈아 층층이 쌓아올린 품이 마치 석수장이가 먹줄을 튕겨 다듬어서 포개놓은 듯한 모양이다.”
 
1574년 무등산 입석대를 처음 본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고경명(1533~1592) 선생은 무등산 산행기인 <유서석록(遊瑞石錄)>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이어 “천지개벽의 창세기에 돌이 엉키어 우연히 이렇게도 괴상하게 만들어졌다고나 할까. 신공귀장(神工鬼匠)이 조화를 부려 속임수를 다한 것일까. 누가 구워냈으며, 누가 지어부어 만들었는지, 또 누가 갈고 누가 잘라냈단 말인가”라며 입석대의 형성과정을 궁금해 했다.
 
 
10~18m인 5각·6각 기둥 30여 개가 40여m 늘어서
 
요즘 무등산을 오르는 이라면 천연기념물인 무등산의 주상절리대가 화산활동의 결과라는 것쯤은 안다. 그렇다면 돌기둥은 어떻게 생겼으며 왜 산꼭대기에 남았을까. 지난 26일 안건상 조선대 과학교육과 교수(암석학)와 함께 무등산에 서 벌어진 일을 더듬어봤다.
 
광주와 화순의 경계인 장불재(해발 900m)에 올라 정상쪽을 바라보니 포근한 흙산의 분위기가 바뀐다. 무등산의 정상인 천왕봉(해발 1187m)이 있는 봉우리 양옆에 서석대와 입석대가 호위하듯 서 있다. 장불재에서 입석대를 바라보고 산길을 오르다보면 등산로 오른쪽에 누워 있는 거대한 돌기둥 무더기를 먼저 만나게 된다. 단면이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이고 길이가 10m에 이르는 돌기둥이 마치 교각이 무너져내린 듯 널부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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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교수는 “미래 입석대의 모습”이라며 “입석대는 돌기둥이 하나씩 무너지며 뒤로 후퇴하고 있다”고 말했다. 입석대(해발 1017m)는 한 면이 1~2m이고 높이가 10~18m인 5각 또는 6각 기둥 30여 개가 동서로 40여m 늘어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돌기둥 사이의 벌어진 틈에는 작은 관목이나 이끼가 자라고 있다. 같은 주상절리이지만 서석대(해발 1100m)는 입석대보다 침식이 덜 진행돼, 직경 1~1.5m인 돌기둥이 30m 높이로 촘촘하게 병풍처럼 서 있다. 동서방향으로 늘어선 서석대에 저녁노을이 비치면 수정처럼 반짝인다 해서 ‘수정병풍’이라고도 불린다.
 
서석대의 까마득한 절벽을 쳐다 보다가, 절벽 틈새에서 불꽃이 일어나듯 핀 철쭉을 발견했다. 안 교수는 “용암이 절벽 높이보다 훨씬 깊게 흘렀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무등산을 중심으로 직경 약 40㎞ 범위는 주변보다 땅이 꺼진 함몰지대였다. 최근 아이슬란드 화산처럼 얇아진 지각을 찢고 여기저기서 마그마가 분출했고, 뜨거운 용암과 화산재가 흘러내렸다. 무등산 정상은 오히려 다른 곳보다 지대가 낮아 화산분출물이 두텁게 쌓인 곳이었다.
 
무등산의 화산암을 연대측정한 결과 화산활동은 약 4500만~8500만년 전 사이에 벌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공룡시대가 종말을 고한 중생대 말에서 신생대 초까지의 기간이다. 3조각으로 나뉘어 남반구로부터 북상한 한반도는 중생대 말 백악기 때 봉합을 마쳤다. 그러나 뒤이어 북상한 인도대륙이 아시아와 충돌해 히말라야 산맥이 형성되고, 그 여파로 동해가 열리고 태백산맥이 솟는 등 지각변동이 끊이지 않았다. 무등산은 그런 한반도 탄생과 성장에 따른 산통과 성장통을 고스란히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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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식을 견디고 우뚝 살아남은 이유는 두 가지

 
윤성효 부산대 과학교육학부 교수(화산학)는 백악기 말 아직 일본이 한반도에서 떨어져나가기 전에 옛 태평양판이 유라시아판 밑으로 파고들면서 한반도는 현재의 일본처럼 대륙이동의 직접영향권에 놓여 있었다고 설명했다. 격렬한 화산활동이 부산-대구 일대와 함께 영동-광주에 이르는 길이 230㎞, 평균 폭 30㎞의 쐐기형 함몰지대에서 벌어졌다. 이 가운데 무등산은 직경 40㎞의 광주함몰체의 중심으로서, 화산분출로 형성된 화구호인 칼데라의 상부와 외곽이 모두 침식돼 사라지고 칼데라 안에 쌓였던 화산암이 당시 화산분출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등산이 침식을 견디고 우뚝 살아남은 이유는 무얼까. 안건상 교수는 무등산의 해발고도 400m 이상을 이루는 석영안산암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해양지각이 대륙 밑으로 파고들 때 생기는 석영안산암은 규암(차돌)처럼 이산화규소 성분이 많아 단단하다. 무등산 주변에는 안산암과 화강암이 분포하는데, 이들은 석영안산암보다 약해 상대적으로 먼저 침식된다. 예컨대 무등산 북사면의 원효계곡은 안산암보다 무른 화강암으로 돼 있는데, 쉽게 침식돼 완만한 지형에 맑은 물이 흐르는 지형이 형성됐다.
 
또 다른 이유는 화산분출의 영향이다. 화산활동이 끝나자 석영안산암으로 이뤄진 화산체가 용암이 흘러나간 빈 공간으로 무너져내려 두껍게 쌓여, 이후의 풍화와 침식을 견딜 수 있었다. 무등산엔 9천만년의 풍상을 겪고도 석영안산암이 아직 600m 깊이로 남아 있다.
 
너덜은 주상절리의 미래상이다. 무등산의 너덜은 오랜 세월 침식과 풍화의 흔적을 담고 있다. 서사면에 발달한 무등산 최대의 덕산너덜은 동화사터에서 바람재와 토끼등 사이에 길이 600m, 최대 폭 250m 규모로 펼쳐져 있다. 안 교수는 “최근 빙하기에 형성된 대구 비슬산이나 밀양 만어산 암괴류와 달리 훨씬 오래 전인 중생대부터 주상절리가 절벽에서 떨어져나와 붕괴되는 과정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어 매우 독특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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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주상절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바위가 녹아 1000도에 이르는 용암이 지표에 나오면 급격히 식는다. 액체인 용암이 고체인 암석이 되면 부피가 줄어들어 움츠러든다. 용암이 수축되면서 그 중심을 기준으로 표면은 육각형 또는 그와 비슷한 다각형이 되고, 그런 수축이 아래쪽으로 진행돼 돌기둥 형태의 균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가뭄 때 논바닥이나 쑤어놓은 풀이 굳을 때 거북등처럼 갈라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입석대, 서석대, 규봉암, 신선대 등 무등산 정상 부근에 발달한 주상절리는 용암과 화산재가 갑자기 식어 만들어진 것이다. 주상절리는 제주도와 경기도 연천군 한탄강 등에서도 볼 수 있지만 고산지대의 주상절리는 무등산이 유일하고 기둥의 직경도 훨씬 굵다.
 
제주나 한탄강 용암의 이산화규소 함량이 45~52%라면 무등산 것은 63~70%로 높아 점성이 높고 따라서 기둥의 직경도 크다. 시기적으로도 제주도와 한탄강의 주상절리가 약 20만년 전 생겼다면 무등산의 것은 약 9천만년의 연륜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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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등산 이름의 유래
 
무등산은 적어도 삼국시대부터 이 지역의 진산으로서 백성의 숭배와 사랑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만큼 이름도 많고 해석도 분분하다. 무등산을 이르는 명칭에는 무진악, 서석산, 무당산, 무덤산 등이 있다.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무등산의 옛 이름은 ‘무돌뫼’였다고 본다. 삼국사기에 무진악(武珍岳), 고려사에 무등산(無等山), 동국여지승람에는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표기했지만 모두 무등산을 한자식으로 적은 것이란 설명이다. 신라 때 우리말을 한자로 묘사한 향찰식 표기법으로 ‘무진’과 ‘무등’은 모두 ‘무돌’을 일컫는다는 것이다. ‘서석’은 상서로운 돌이란 뜻으로 무등산 꼭대기의 돌기둥을 가리킨다. 마찬가지로 무돌도 신령스런 돌을 일컫는다.
 
<무등산>을 지은 박선홍씨도 무등산의 이름은 백제 이전까지는 무돌이나 무당산, 통일신라 때는 무진악 또는 무악으로 부르다가 고려 때부터 서석산이라는 별칭과 함께 무등산으로 불렀다고 밝히고 있다.
 
육당 최남선은 무등산 입석대가 천연의 신전으로 전라도 지방 종교의 중심지였다고 보았다. 그는 무등산 전체가 당산으로 ‘무당산’이라고 불렀다고 주장했다.
 
무등산의 수많은 사찰과 고승의 전설에 비추어 부처님은 견줄 이 없이 높다는 뜻의 ‘무등등(無等等)’에서 왔다고 보는 이도 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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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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