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 임팩트’ 재앙, ‘최후의 날’ 공룡의 흔적

조홍섭 2010. 0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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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6> 최후의 피난처, 여수
■ 시리즈 차례 ■
제1부 격변의 시대
   1. 북한산의 기원    

   2. 이동과 충돌   
   3. 한반도의 속살   
   4. 시간이 바뀐 곳   
   5. 백두대간의 탄생   
   6. 한국의 갈라파고스    
   7. 120만년의 화산분출  
   8. 꺼지지 않은 백두산   
   9. 용암 흐르던 한탄강    
   10. 땅이 흔들린다    
제2부 생명의 땅
   1. 소청도 스트로마톨라이트   
   2. 삼엽충의 바다, 태백산 분지  
   3. 3억년 전 원시림의 선물, 석탄  
   4. 시화호 공룡계곡  
   5. 거대 익룡 고향 군위  
   6. 공룡 최후의 피난처, 여수
제3부 한반도 지질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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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마지막 거처…가장 긴 걸음걸이 행렬

추도 등 인근 섬 지역 3500여 점 발자국 화석
 
 


초식공룡 한 무리가 얕은 호숫가를 두 발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메마른 황무지에 점점이 흩어진 호수와 골짜기를 따라 몇 달째 이동하느라 지칠 대로 지쳤다. 이곳엔 골짜기 강들이 간간이 범람하여 마르지 않는 물과 먹이 식물도 많았다.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나자 공룡 무리는 고개를 들어 신경을 곤두세웠다. 거대한 목 긴 공룡은 이제 거의 보기 힘들어졌지만 육식공룡은 아직도 끈질기게 이들을 노린다. 안도하는 순간 하늘을 찢는 굉음이 땅을 울렸다. 화산재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발자국 화석에 풍부하게 담긴 살아있는 공룡 정보
 
마지막 공룡은 아마도 이런 고단한 삶 속에서 안식처를 한반도 남쪽에서 구했을 것이다. 지난 28일 공룡이 멸종을 앞두고 아시아 지역에서 최후의 흔적을 남긴 전남 여수시 화정면 낭도리의 사도·추도·낭도를 찾았다. 이들 섬에는 중생대 백악기의 마지막 시기에 쌓인 퇴적층이 해안에 드러나 있다.
 
파도에 깎인 낭도의 남쪽 해안 절벽은 희거나 녹색인 사암과 어두운 회색 이암이 교대로 시루떡처럼 층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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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길 보십시오.” 썰물로 드러난 바닥 암반에서 파래를 걷어내면서 허민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한국공룡연구센터 소장)가 하트 모양으로 움푹움푹 패인 곳을 가리켰다. 초식공룡 한 마리가 두 발로 걸어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주변을 주의 깊게 둘러보니 공룡 발자국 화석은 곳곳에 있었다. 초식공룡의 발자국은 발가락이 두툼하고 양쪽 가장자리가 넓다면 육식공룡의 것은 새 발자국 모양이고 끝에 날카로운 발톱 자국이 남아있기도 하다. 절벽엔 퇴적물이 눌린 발자국 단면도 보인다.
 
이웃 섬인 추도에는 6마리의 조각류 초식공룡이 나란히 걸어간 84m 길이의 발자국 화석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공룡 보행렬이다. 얕은 호숫가 바닥이 물결 모양을 이룬 연흔 위에 찍힌 발자국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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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이 뼈 화석 못지않은 정보를 준다”고 허 교수가 설명했다. 골격화석과 달리 발자국 화석만으론 어떤 종류의 공룡인지 가려낼 수 없다. 그러나 뼈 화석이 죽은 공룡의 모습을 간직한다면, 발자국 화석은 살아있던 공룡의 자취를 전달한다.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 이동습성은 무언지, 집단생활을 했는지, 기후가 어땠는지 등 생태정보가 담겨있다.
 
사도에서 발견될 가능성 있는 소행성 충돌 흔적
 
Untitled-1 copy.jpg허 교수는 지금까지 추도 1759점, 낭도 962점, 사도 755점 등 모두 3500여 점의 발자국 화석을 여수 섬지역에서 발견했다. 82개 보행렬이 있는데, 이 가운데 65개가 두 발 초식공룡인 조각류의 것이고, 16개가 육식공룡인 수각류, 네 발 초식공룡인 용각류의 것은 1개에 그쳤다.
 
흥미롭게도 이곳 공룡발자국은 2개의 큰 방향성을 보였는데, 하나는 호숫가를 따라 걸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와 직각 방향인 호수 중심을 향한 것이다. 호숫가의 방향은 물결무늬 화석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허 교수는 “발자국의 방향에서 일부 공룡이 호숫가를 이동 경로로 이용했으며 또 일부는 정기적으로 물을 마시러 호수에 찾아왔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발자국의 길이와 폭, 깊이, 보폭 등에서 공룡의 크기와 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 허 교수는 사도의 초식공룡이  엉덩이까지의 높이가 약 2m, 전체 길이 약 7m로 시속 2.8㎞의 속도로 천천히 걸었을 것으로 짐작했다.
 
공룡은 중생대가 끝난 약 6500만년 전 멸종했다. 여수 낭도리의 섬들에는 약 7000만년 전 퇴적층에 공룡 발자국이 남아있다. 아시아 공룡화석 산지 가운데 최후기에 속한다.
 
사도 남쪽 해안에 가면 중생대 퇴적암 위에 화산재가 쌓인 위로 용암이 굳은 20여m 높이의 화산암 절벽이 펼쳐져 있다. 응회암 가운데는 불에 타 숯이 된 중생대 나무의 화석이 들어있다. 이곳이 중생대의 최후가 기록된 곳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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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성 부경대 환경지질학과 교수팀이 화산암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사도 암석의 형성연대는 6820만~6550만년 전으로 나왔다. 중생대와 신생대의 경계층은 소행성 충돌로 인한 이리듐이 많은 퇴적층의 띠로 확인된다. 백 교수는 “사도에서 그런 경계층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미 침식돼 사라졌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기-건기가 되풀이된 반건조지대…간헐적인 화산활동 영향
 
여수의 섬들은 당시 쇠퇴하던 공룡의 마지막 피난처였을 가능성이 있다. 중생대 중기인 쥐라기를 풍미하던 거대한 몸집의 용각류는 중생대 말인 백악기에 들어서면 아시아와 유럽, 북미 등에서만 살아남고, 백악기 후기엔 거의 사라진다. 우리나라에서도 시기가 오랜 마산 호계리와 창녕 등지에선 용각류가 적지 않게 확인되지만 백악기 말 극히 일부가 여수에서 발견될 뿐이다.
 
여수의 퇴적층은 이곳이 우기와 건기가 되풀이된 반건조지대였으며 간헐적인 화산활동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백인성 교수는 “지금의 캘리포니아주 내륙처럼 땅속에 소금기가 많은 건조지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에 따라 호수는 불어나고 줄어들었지만 물이 마르지는 않았고, 세쿼이어 같은 식물들이 무성했다. 마지막 공룡은 이곳에서 중생대를 끝낸 거대한 소행성의 충돌 여파와 그 재앙을 뚫고 살아남은 ‘나는 공룡’인 새들의 비상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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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한국의 공룡발자국 화석지
 
Untitled-4 copy.jpg1982년 경남 고성군 덕명리 해안에서 처음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이후 이 ‘위대한 흔적’은 1990년대 경남북과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공룡 발자국 화석은 보존상태가 좋고 다양성이 높아 세계적으로 학술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전남 화순에서는 육식공룡이 40m 이상 걸어간 자국이 남아 있다. 경남 남해군 창선면 가인리 해안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길이 1.27㎝의 소형 육식공룡 발자국이 발견됐다. 여기서는 또 발가락이 2개인 신종 육식공룡 발자국이 발견됐는데.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 티라노사우루스류의 육식공룡 말고도 벨로시랩터와 같은 육식공룡도 서식했음을 알 수 있다. 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에서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초대형 초식공룡 발자국과 해남이크누스 익룡발자국, 그리고 물갈퀴새발자국이 다수 발견됐다. 

경남 고성군 덕명리 남쪽 해안에는 화성암에서 공룡 발자국 화석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곳에선 모두 4천개의 발자국이 보고됐다.
 
경남 고성군 영현면 대법리에 있는 사찰 계승사에서도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됐다. 뒷 발자국의 지름이 80㎝로 중간 크기의 목 긴 초식공룡인 용각류가 남긴 것이다.
 
바닷가뿐 아니라 경남 마산시 호계리 구마고속도로 내서인터체인지 부근에서도 용각류의 발자국이 발견됐다.  
 
이들 공룡발자국 화석은 모두 중생대 후반기인 백악기 때 호숫가이던 남해안 퇴적층에 공룡이 남긴 것이다.
 
조홍섭 기자
 

 
◈ 공룡은 왜 멸종했나
 
중생대 초인 2억3천만년 전 출현한 공룡은 6500만년 전 중생대와 함께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1억6천만년 동안이나 지구 전체에 군림했던 공룡의 멸종에 대한 이론과 논쟁은 수없이 많다.
 
가장 인기있는 설명은 월터 알베르즈가 1980년 내놓은 소행성 충돌설이다. 지름 5~15㎞의 소행성이 유카탄 반도에 떨어져 지름 180㎞의 칙술룹 화구를 남긴 대충돌이 거대한 화재와 ‘핵겨울’같은 기후변화를 일으켰다는 설명이다.
 
충돌로 인한 먼지와 화재로 햇빛이 장기간 차단되면서 먹이사슬의 토대인 식물플랑크톤과 식물이 타격을 입었고, 그 영향은 연쇄적으로 육식동물로 번졌다. 유기물 부스러기를 먹고사는 곤충이나 달팽이, 이들을 먹는 잡식성 동물이나 청소부 동물 등은 살아남았다. 몸집 큰 공룡보다 악어나 포유류, 조류 등 작은 동물도 생존에 유리했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충돌로 대규모 멸종사태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는 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거대산불이나 핵겨울의 증거가 없고, 또다른 소행성 충돌이 멸종을 일으켰다는 등의 반론도 장기 멸종설을 뒷받침한다.
 
중생대 말 활발했던 화산활동은 멸종의 큰 이유이다. 특히 지상 최대 화산활동의 하나로 꼽히는 인도 데칸고원에서는 중생대 말 약 3만년 동안 용암이 분출해 남한 면적의 5배인 50만㎢에 2㎞ 두께의 현무암을 쌓았다. 이때 뿜어나온 이산화황은 지구의 기온을 2도 떨어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중생대 백악기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산업화 이전의 6배에 이르고 지표의 온도가 현재보다 4도가 높은 18도에 이르는 등 지구온난화가 현저했다. 극지방엔 얼음이 없었고 해수면이 상승해 육지가 잠기면서 얕은 바다가 넓게 펼쳐졌다. 이런 상태에서 화산분출 등으로 기후가 바뀌고 지각운동으로 해수면이 낮아져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대륙붕이 사라지면서 대멸종 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특히, 공룡은 대충돌 300만년 전부터 다양성이 줄어들고 몸집이 줄어드는 등 쇠퇴 조짐을 보였다. 허민 전남대 교수는 “전남 보성에서 공룡알이 200여 개 발견됐지만 태아는 전혀 없었던 것도 중생대 말 최후의 소행성 충돌 이전에 공룡의 번식에 이상이 있었던 게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고 말했다.
 
암모나이트, 어류, 포유류도 중생대가 끝나기 훨씬 전부터 쇠퇴하고 있었다. 결국 운석충돌이 치명타가 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 이전의 기후변화는 중생대의 종말을 재촉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홍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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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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