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고개 언제 가노" 옛 보부상 노래는 솔향을 타고…

조홍섭 2011. 07. 13
조회수 44293 추천수 3
  숲 로고.jpg ③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
 
바다와 육지 물품 오갔던 '동해의 차마고도'
문화재용 거목 '병풍'… 멸종위기 산양 피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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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고 단단한 재질을 가진 금강소나무를 둘러보는 탐방객(왼쪽). 금강소나무 숲길 1구간 지도(클릭하면 확대됨)

 

“여러분은 오늘 하루 금강소나무와 산양이 사는 이 숲을 전세 냈습니다.”
 
지난 22일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1리에서 금강소나무 숲길 탐방에 나선 참가자들에게 숲 해설가이자 이 마을 주민인 최윤석(56)씨가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부터 13.5㎞ 떨어진 소광2리까지 약 7시간 동안 차량도 사람도 만나지 않고 숲길을 걸을 수 있다는 얘기다.
 
뿌듯해하던 탐방객들은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매점, 화장실, 샘터는 물론이고 탈출로도 없다는 설명에 마음을 다잡았다. 이곳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리 예약한 하루 80명에게만 해설가의 안내로 개방하는 숲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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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들이 장터 관리자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내성행상불망비를 보관하고 있는 비각. 숲길 들머리에 있다.
 
두천1리에서 숲길로 접어들자마자 쇠로 된 비석 두 개가 길가 비각에 보존돼 있다. 조선 말 봉화 소천장을 관리하던 이들의 은공을 잊지 말자는 공덕비이다. 이 숲길이 조선 시대 보부상과 뒤이은 선질꾼 등 수많은 행상이 동해와 내륙의 물산을 나르던 ‘동해의 차마고도’였음을 보여준다.
 
동해안의 울진, 죽변, 흥부 장에서  구입한 미역, 간 고등어, 소금 등을 짊어지고 내륙인 봉화 소천장에 가려면 어디서 오든지 반드시 바릿재를 오르기 전 두천리에 하루 묵어야 했다.
 
1960년대까지 소 장수들이 드나들어 주먹이 번성했던 두천1리는 이제 금강소나무 숲길 1구간의 시발점으로 다시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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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금강소나무(왼쪽). 지난해 폭설로 울진에서 죽은 산양의 박제. 방문자센터에 전시돼 있다.
 
탐방객들은 오전 9시 두천1리를 떠나 바릿재와 임도를 지나 찬물내기에서 주민들이 만든 점심을 먹었다. 새벽에 말래(두천리) 주막을 떠난 보부상들은 보통 이보다 2배 거리인 느삼밭에서 지고 간 옹기솥으로 밥을 해먹었다고 한다. 수십㎏의 등짐·봇짐을 지거나 지게에 이고, 소를 몰면서 맨손의 탐방객 못지않은 속력을 낸 것이다.
 
초여름을 맞은 숲길은 꿀풀, 털중나리, 인동 등의 꽃으로 화사했고, 산 능선에 붉은 수피의 금강소나무가 병풍처럼 늘어서 이 숲길의 주인임을 과시했다.
 
숲길은 산림유전자원보호림과 왕피천 생태경관보호지역 사이를 관통한다. 금강송이 대부분인 자연림이 숲길 주변의 90%를 차지한다. 이곳은 비무장지대를 빼고는 멸종위기종 1급인 산양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배제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 팀장은 “지난해 폭설로 인한 먹이부족으로 폐사해 발견된 산양만 25마리에 이른다”고 말했다. 국내 산양의 전체 개체수는 500~700마리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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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재 성황사. 보부상이 수백년 동안 관리해 온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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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사 옆 금강송 거목.수령이 450년을 넘는 것으로 문화재 복구용으로 쓰인다는 노란 띠가 표시돼 있다.
 
숲길의 ’깔딱 고개’인 샛재를 넘으면 보부상이 반드시 들러 행로의 안전과 번영을 기원하고 갔다는 성황사가 나온다. 여기서 소광2리의 해설사 박영웅(69)씨가 일행을 넘겨받았다. 어릴 때 장을 보러 이 숲길을 한 달에 한두번은 오갔다는 박씨는 그때 배운 선질꾼의 노래를 들려줬다.
 
“미역 소금 어물 지고 춘양장을 언제 가노/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시그라기 우는 고개 내 고개를 언제 가노/ 한 평생 넘는 고개 이 고개를 넘는구나….”
 
샛재 주변에는 어명을 받아야만 베어낼 수 있는 문화재 복구용 금강송 거목들이 노란 띠 표지를 두르고 서 있었다. 샛재를 넘어 느삼밭재에 이르는 구간은 계곡을 따라 푹신한 솔잎을 밟으며 하늘을 가린 활엽수 지붕 밑으로 걷는 곳이다. 서어나무, 고로쇠나무, 까치박달 등이 우거졌고 과거 화전민의 집터와 습지로 변한 묵논이 곳곳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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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엽수가 하늘을 가린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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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민의 흔적인 디딜방아 터.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으로 이 일대 화전민들이 모두 정착촌으로 이주하게 됐다.
 
숲길 1구간의 종착점인 소광2리에 도착한 탐방객들은 숲길에 쓰레기나 인공 시설물이 거의 없어 자연성이 뛰어나다고 입을 모았다. 윤대원(56·부산 동래구 사직동)씨는 “해설가가 숲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많이 알려줘 인상 깊었다”며 “탐방객의 인원수 제한을 앞으로도 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울진/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보부상과 선질꾼의 삶과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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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마루의 음나무 거목. 보부상들은 이 밑에서 땀을 식혔을 것이다.

 
불영계곡 옆으로 국도 36호선이 뚫리기 전까지 내륙인 경북 봉화와 바닷가인 경북 울진을 잇는 가장 가까운 길은 십이령 길이었다. 이 길은 조선시대부터 방물고리에 댕기, 비녀, 얼레빗, 분통 등을 담아 멜빵에 맨 봇짐장수와 지게에 생선, 소금, 토기, 목기 등을 진 등짐장수를 일컫는 보부상의 길이기도 했다.   
 
물류 통로인 십이령 길은 거의 일직선으로 뚫려 있다. 에둘러 갈 여유가 없으니 수많은 고개를 넘는다. 큰 고개만 해도 바릿재, 평밭, 샛재, 느삼밭재, 너불한재, 저진치, 한나무재, 넓재, 고치비재, 멧재, 배나들재, 노루재 순으로 열두 개를 넘어야 한다. 작은 고개는 30~40개에 이른다.
 
조선시대 보부상은 이후 선질꾼으로 바뀌었는데, 이들이 거래한 물목은 울진·흥부의 미역, 각종 어물, 소금과 내륙지방에서 생산된 쌀과 보리, 대추, 담배, 옷감 등이었다.
 
이들은 울진에서 봉화까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130리 길을 3박4일 동안 주파했다. 안동의 간 고등어가 유명해질 수 있었던 건 이들이 길바닥에 뿌린 땀방울 덕분이었다.
 
울진문화원이 최근 발간한 <열두 고개 언제 가노>를 보면, 선질꾼은 가지가 없는 지게를 지고 가다 선 채로 쉬었는데 자신이 먹을 밥을 지을 도기로 만든 솥과 여벌 짚신을 꼭 달고 다녔다. 또 소 장수들은 고개를 넘으면서 소의 발굽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밤새 수 십 켤레의 ‘소 짚신’을 만들어 신겼다고 한다.
 
행상이 머무는 곳마다 주막이 있었는데, 숙박비는 따로 받지 않고 밥과 술값을 받았으며 잠을 자는 봉놋방은 장작을 넉넉히 때 따로 이부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행상 중에는 집 없이 처자를 이끌고 장삿길에 오르는 이도 적지 않았다. 최윤석 숲 해설가는 “길 위에서 들꽃 을 꺾어 혼인하고 주막에서 아이 낳은 가난한 상인의 삶의 애환이 깃든 곳이 바로 이 숲길”이라고 말했다.
울진/글 사진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주민과 환경단체, 정부가 빚어낸 절제의 거버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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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에 설치된 산양 서식지 표지판을 주민이자 숲 해설가인 최윤석씨가 가리키고 있다.

 

 요즘 전국에서 숲길과 걷는 길이 인기이지만 금강소나무 숲길은 미리 예약한 방문객을 하루 80명만을 교육받은 해설가가 안내한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김재현 건국대 환경과학과 교수는 이것을 ‘절제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거버넌스 체제’라며 “물리적인 길을 조성하는데 급급하거나 급증하는 방문객으로 인한 부작용 때문에 갈등을 빚지 않도록 지역주민과 지원 시스템이 잘 융합했다”고 평가했다.
 
아름다운 숲길 아이디어는 이 지역의 자연생태를 지키기 위해 댐, 온천, 도로 건설을 반대해 온 녹색연합과 지역 시민운동가들에게서 나왔다. 배제선 녹색연합 팀장은 “워낙 반대운동으로 악명이 높아 처음엔 명함 내밀기도 힘들었다”며 “그러나 빼어난 자연을 노린 난개발을 막고 지역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개발을 모색하면서 숲길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배 팀장은 “주민이 중심이고 산양은 그 다음”이라고 강조했다.
 
생태조사 등 3년간의 준비 끝에 2010년 제 1구간이 개통됐다. 산림청이 사업비를 댔고 사단법인 울진숲길이 위탁운영을 하고 있다. 전체는 4개 구간으로 70㎞에 이른다.
 
숲 해설가 6명은 소광2리와 두천1리 주민이 맡고 있다. 장수봉 두천리 울진숲길 운영위원장은 “적적한 시골생활에서 민박손님과 이야기를 나눠 재미있고 보부상 길의 의미를 알아줘 자긍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규봉 울진숲길 사무국장은 “작년에 월 1천명 정도가 방문했고 민박과 식사, 농산물 구입 등으로 얻는 농외소득이 주민에게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숲길 탐방은 적어도 사흘 전에 인터넷(http://www.uljintrail.or.kr/main2.php)으로 예약을 해야 하며 화요일은 쉰다. 참고로 7월 말까지 주말 예약은 모두 찬 상태이다.
울진/글·사진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이 기획은 복권기금(산림청 녹색사업단 녹색자금)의 지원으로 마련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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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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