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매운 황무지에 '방풍 울타리'… 푸른 숲이 열리다

조홍섭 2011. 07. 13
조회수 21950 추천수 0
숲 로고.jpg   ⑤ 대관령 특수조림지
 
옛 대관령휴게소 중심 300여㏊ 전나무 낙엽송 빼곡
방풍책 세우고 묘목엔 '통발'…주민들 35년 노력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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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조림지 전경. 풍차가 있는 옛 대관령 휴게소에서 자연림으로 덮인 먼 능경봉 사이의 조림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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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조림 첫해 황무지에 방풍 울타리를 친 모습. 동부지방산림청 제공.

새 영동고속도로가 뚫린 뒤,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백두대간 마루금에 서서 사방을 조망하는 감흥을 느낄 수 있던 대관령 휴게소는 점차 잊혀져 갔다.
 
그러나 최근 옛 대관령 휴게소가 다시 북적거리고 있다. 양떼목장과 대관령 옛길 등이 인기를 끌면서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국내보다 외국에 더 많이 알려진 우리나라의 ‘조림 신화’가 깃든 곳이 있다. 대관령 특수조림지가 바로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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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조림지의 전나무 숲. 직경 16~18㎝ 직경으로 자랐다.
 
옛 대관령 휴게소를 중심으로 도로 양쪽 산자락 311㏊에 걸쳐 있는 이 조림지는, 1976년부터 10년 동안 황무지에 84만 3000여 그루의 전나무, 잣나무,낙엽송 등을 일일이 손으로 심고 가꿔 숲으로 일궈낸 곳이다.
 
한여름엔 33도이다 겨울엔 영하 32도까지 떨어지고, 초속 30~40m의 강풍이 늘 부는데다 연평균 강설량이 1.8m에 이르는 이곳은 일단 황폐해지면 다시 나무가 자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런 데서 어떻게 숲을 가꾸었는지를 보기 위해 요즘도 몽골과 중국, 그리고 임업 선진국인 캐나다에서까지 견학을 온다.
 
방풍 울타리, 통발, 방풍망 등 전통 기술 총 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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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전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대관령 광장에서 현재도 쓰이고 있는 방풍 울타리. 건너편 숲이 특수조림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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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정상의 방풍 울타리. 현재도 전나무를 강한 바람으로부터 지켜주는 유력한 도구이다.
 
지난 6일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박사와 함께 특수조림지를 찾았다. 대형 풍차와 함께 신재생에너지 전시관이 들어선 옛 대관령 휴게소에 서자 줄 맞춰 심은 삼각형 수형의 전나무 숲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숲이 울창한데 왜 조림이 불가능한 지역이라고 했을까. 의문은 광장 뒷 편에 설치된 사람 키보다 높은 통나무로 엮어 만든 방풍 울타리에서 풀렸다. 바람을 차단한 울타리 뒤에서 어린 전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35년 전 황무지를 숲으로 바꾼 기술은 아직도 살아있다.
 
야생화 숲길이 있는 광장 오른쪽 특수조림지에 오르는 길 옆에는 당시 방풍 울타리의 기둥이 잔해로 남아 있다. 방풍책은 높이 3m의 통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조릿대, 싸리 등을 엮어 만들었는데, 울타리의 앞과 뒤 바람을 50% 이상 줄이는 효과를 냈다. 특수조림지에는 20m 길이의 울타리가 240개 세워져 총 길이는 4800m에 이르렀는데, “거센 바람에 무너지면 세우기를 수십 번 되풀이해야 했다.”고 동부지방산림청의 <국유림 경영 100년사>는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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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림 첫해의 모습(왼쪽). 아직 황무지 모습 그대로이다. 오른쪽은 묘목을 보호하기 위한 통발. 동부지방산림청 제공.
 
큰 묘목은 이렇게 울타리로 바람을 막았지만 작은 묘목은 나뭇가지로 발을 만들어 둥글게 감싸는 ‘통발’로 보호했다. 조림한 모든 나무에는 지주를 설치해 뿌리가 흔들리지 않게 고정했다.
 
대관령 정상 일대는 극심한 바람과 추위로 산기슭의 조림사업이 성공한 뒤에도 벌거숭이로 남았다. 1999년부터 3년 동안의 복원사업에는 1970년대 이후 고안한 기술이 총동원됐다. 방풍 울타리와 통발 이외에 새로 방풍망이 도입됐다. 삼각기둥의 꼭짓점을 바람 방향으로 향하도록 설치하고 모기장을 씌워 바람을 막는 장치였다. 논 흙 90t을 산꼭대기까지 옮겨와 객토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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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정상 복원을 위해 도입한 삼각기둥 형의 방풍망을 설치한 모습. 동부지방산림청 제공.
 
신준환 박사는 “이 모든 과정은 일일이 사람 손이 가는 작업이어서 지금이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주민이 아니었다면 산림을 복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당시 이 지역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던 오영숙(43·평창국유림관리소 숲 해설가)씨는 “학교에서 방풍망을 만들어 오라는 숙제를 내주기도 했다”며 “어른들은 산에서 묘목을 캐오거나 마을마다 정해진 구역에서 반장의 인력동원에 따라 작업을 하고 밀가루 포대를 일당으로 받아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방풍 울타리와 통발 등은 현재 몽골과 내몽골에서 사막화 방지 조림을 하는데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기술은 지역 주민의 전통기술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있다.
 
조림사업 당시 평창군 산림과 직원이던 김군섭(64·평창국유림관리소 숲해설가)씨는 “이 지역에서는 돌담을 쌓을 돌이 많지 않아 전통적으로 나뭇가지로 담을 세웠다가 나중에 화목으로 써 왔다”며 “방풍책은 이런 전통지혜를 조림에 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 특별지시, "말도 못하게 고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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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서 쪽에서 부는 강하고 찬 바람 때문에 영동 쪽으로만 자란 낙엽송.
 
애초 대관령 일대는 소나무와 전나무뿐 아니라 피나무, 신갈나무 등 활엽수가 우거진 숲이었다. 일제 말부터 가혹한 식민정책을 피해 숨어들어온 화전이 소규모로 분포했다. 5·16 쿠데타 직후에는 병역기피자와 불량배들에게 고된 노동을 시키기 위해 조직한 국토건설단이 이곳에서 대규모로 화전을 일구기도 했다.
 
이에 더해 북한 게릴라의 잇단 침투에 대응하기 위해 화전민들의 집단 정착촌을 이곳에 세우면서 대관령 일대의 산림은 순식간에 벌거숭이 산으로 바뀌었다.
 
특수조림의 계기는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영동고속도로 건설을 시찰하러 왔다가 헬기에서 황폐화된 대관령 일대를 목격하고 녹화를 지시한 것이었다. 당시는 1973년부터 ‘치산 녹화 10개년 계획’이 대대적으로 전개되던 시점이었다.
 
학계에서는 조림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대통령의 특별지시는 무서웠다. <국유림 경영 100년사>는 “상급관서의 사업 독려로 인해 담당자들의 고생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물론 조림에 생계가 달린 주민의 고생은 말할 것도 없다. 김군섭씨는 “황무지가 푸른 숲이 되기까지 주민의 노력이 가장 컸다”며 “대대로 후손에 물려줄 자랑스런 숲”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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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조림지 내부의 낙엽송. 애초 목재생산 숲은 아니지만 숲 가꾸기로 목재를 생산하기도 했다.
 
어렵게 키운 숲이어서 숲이 지나치게 울창해지는데도 아무도 손을 대려 하지 않았다. 마침내 1998년 금융위기 뒤 공공근로를 이용한 숲 가꾸기 사업을 벌여 1억 5000만원 상당의 목재를 생산하기도 했다.
 
김중기 평창국유림관리소 진부경영팀장은 “애초 특수조림지는 경제림 조성이 아니라 녹화, 곧 환경적 목적에서 출발했다”며 “바람 센 고산지역의 육림사업 모델로서 연구가치가 높은 곳”이라고 말했다.
평창/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이 기획은 복권기금(산림청 녹색사업단 녹색자금)의 지원으로 마련됐습니다.
 
장작→무연탄 연료 대체가
한국 녹화사업 성공의 '일등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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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대 만에 황무지에서 울창한 숲으로 바뀐 대관령 특수조림지 모습.
 
“2000년 11월 고속도로로 남한을 달리면서 한 세대 전만 해도 헐벗었을 산마다 나무로 꽉 들어찬 모습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여기서 나는 우리가 지구를 녹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세계적인 환경 사상가인 레스터 브라운의 책 <생태 경제학>의 한 대목이다.
 
일본의 식민지 침탈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거의 모든 산이 벌겋게 벗겨졌던 최빈국 한국에서 어떻게 녹화가 성공했는지는 국제적인 관심사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듯 단지 나무를 많이 심는다고 녹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심는 것보다 많이 베어내면 산림은 헐벗기 마련이다. 
 
18세기부터 1960년대까지 벌목을 막는 엄격한 형벌규정이 있었고 막대한 양을 조림했는데도 산림 황폐화를 막지 못했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나무를 베어 아궁이에서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식목일 행사가 일찍이 1946년에 시작됐는데도 산림 황폐화를 멈추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나무 태워 얻는 에너지 40년새 90.5%→0.9%, 당시 정부 의지도 한몫
 
전체 에너지에서 나무를 태워 얻은 에너지의 비중은 1950년 90.5%에 이르렀다. 그것이 1960년 62.5%, 1979년 21.6%, 그리고 1990년 0.9%로 격감한 과정이 바로 우리나라 산림 녹화의 역사이다.
 
배재수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한국임학회지>에 실린 논문 ‘해방 이후 가정용 연료재의 대체가 산림녹화에 미친 영향’에서 “1955년 당시의 연료재(목재) 소비량이 그대로 이어졌더라면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의 산림 대부분은 황폐화되었을 것”이라며 무연탄의 보급, 도시로의 임산연료 반입 금지, 농산촌의 연료림 조성 등이 산림녹화를 성공으로 이끈 핵심적인 정책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런 연료 대체도 경제성장과 소득 증가, 농촌 인구의 감소 등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도 무시할 수 없다. 산림녹화사업은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국가 주요사업으로 포함됐고, 1967년 산림청을 설립한 이후 1973년 시작한 제1차 치산녹화 10년 계획의 조림 목표량을 4년 앞당겨 달성했다.
 
1979년 시작한  제2차 치산녹화10년 계획에서는 1차 때의 속성수 중심에서 경제수 조림 비중을 높였고, 인건비 등 비용상승과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 자연휴양림 조성 등으로 정책 방향을 옮겼다.
 
산림 녹화가 성공한 데는 문화적 배경이 작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신준환 박사는 “마을마다 숲을 지키는 오랜 전통이 삼국시대부터 내려왔고 그것이 힘든 일제강점기에도 상당수 마을숲이 보존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며 “박정희 대통령은 그런 민중의 오랜 나무 사랑 의식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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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언론인/ 자연작가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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