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바람 길 다스리는 ‘나무 병풍’ 400년 간 마을 지킴이로

조홍섭 2011. 0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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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로고.jpg⑦ 을 감싸 은 '전통 마을숲'


생태계 원리 오롯한 풍수이론 수구막이
도시화와 난개발로 사라지는 ’고향 경관’

마을숲은 가장 오랜 전통을 지닌 인공림이다. 토착신앙과 풍수, 유교 등 우리의 전통문화가 녹아 있어, 고향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경관이기도 하다. 거
의 모든 마을에 있던 마을숲은 급격한 도시화와 토지 사유화, 관리 부재, 지나친 이용 등에 따라 사라지고 있으며 그나마 남아있는 곳도 쇠퇴현상이 심각하다. 전국에 약 1000곳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숲 가운데 대표적인 4곳을 지난달 31~1일 ‘생명의 숲’ 마을숲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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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인 금당실 솔숲 전경. 수령 250~300년의 소나무 600여 그루가 마을숲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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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로 본 마을숲의 배치도.

수구막이의 전형, 이천 송말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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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송말숲에서 바라본 마을 안들.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 안고 외부로부터 차단하는 것이 수구막이숲의 실질 기능이다.

두 아름이 넘을 듯한 느티나무 거목들이 줄지어 늘어선 숲 속은 어둑했다. 숲을 넘어가면 너른 들판과 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숲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숲은 마을의 안과 밖을 자연스럽게 차단하고 있었다.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송말2리에 있는 송말숲(연당숲)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던 임내신이 1520년 낙향해 이룬 풍천 임씨 집성촌에서 조성한 마을숲으로, 전형적인 수구막이로 꼽힌다.
 
원적산 줄기가 양쪽으로 뻗어내려 마을을 감싸 안는 지형인데, 마을 앞쪽에 시냇물이 흘러나가는 터진 곳(수구)에 마을숲을 만들어 양쪽 산줄기와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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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 송말숲 전경. 전형적인 수구막이숲으로 양쪽 산을 이은 가운데 부분이 마을숲이다.

수구막이를 한 이유에 대해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풍수이론에 따른 것이지만 마을을 안온하고 정서적으로 편하게 만들고, 밖으로부터의 시선을 차단하는 실질적인 효과도 거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풍수이론에서 수구란 단지 물이 흘러나가는 곳이 아니라 번영, 다산, 풍요 등의 기운이 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송말2리에는 수구막이와 함께 연못을 만들어 이런 상서로운 기운이 마을에 머물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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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말숲 옆에 조성한 연당지. 풍수지리에 따라 조성했지만 실질적 의미도 적지 않다.

이 마을은 산자락이 마을을 에워싼 모습이 풍수지리상 물 위에 연꽃이 피어있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형국인데 이를 완성하기 위해 트인 곳을 마을숲으로 막은 것이다.
 
송말숲은 수구막이의 생태학적 의미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연구가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 국립산림과학원과 서울대 환경대학원 연구진은 마을숲 안팎의 풍향, 풍속, 온도 차이를 정밀 측정해 실제로 이 숲이 바람을 누그러뜨려 주고 봄 갈수기에는 안쪽 논의 수분 증발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에 참여한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마을숲은 양쪽 산자락을 잇는 생태통로 구실을 하고 있으며 연못은 지하수위를 높여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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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말숲 미기후연구시설. 국립산림과학원이 송말숲이 기온과 풍속 등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런 효과를 이미 체감하고 있다. 임광빈(64)씨는 “여름에는 더운 바람을 막아줘 숲 안쪽이 훨씬 시원하고 겨울엔 훨씬 포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송말숲은 다른 마을숲에 닥친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기도 하다. 주민들의 소중한 생활공간이던 마을숲은 외지인들의 유원지가 됐고, 이를 막기 위해 울타리를 둘러쳤다. 마을숲 안에는 이천 시민들의 단체행사를 위한 무대 등 각종 시설이 들어섰다.
 
400여년 동안 이어진 이 숲에는 평균 수령이 150살인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음나무 거목들이 들어서 있지만 앞으로 숲을 이어갈 후계목은 자라지 않고 있다. 주민의 노령화와 함께 외지인의 전원주택이 늘어나면서 전통 마을숲은 점차 마을과 멀어지고 있다.
 
매운 강 바람 막아주는 춘천 심금솔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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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심금솔밭 전경. 200년 전 방풍과 풍수 비보를 위해 조성한 마을숲이다.

논 가운데 훤칠한 소나무들이 기다란 띠를 이루며 도열해 주변을 압도한다.
 
강원도 춘천시 신사우동 올미마을엔 한때 ‘춘천의 명소’로 초등학생들의 단골 소풍장소였던 심금솔밭이 있다.
 
올미마을은 여우고개, 시루고개 등 산을 등지고 앞에는 너른 벌판이 있는데 그 끝엔 북한강과 소양강이 흐른다. 풍수지리상 이런 허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약 200년 전 조선 초기에 솔숲을 조성한 것으로 알려진다.
 
실질적으론 겨울철 북서풍과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림 성격이 강하다. 문종석(48) 올미마을 이장은  “지금도 솔숲을 경계로 안쪽은 바깥보다 꽃 피는 시기가 1주일쯤 빠르다”고 말했다.
 
현재 450여 그루의 소나무가 있지만, 과거엔 이보다 3배 정도 커 길이가 2㎞에 이르렀고 폭도 지금보다 훨씬 넓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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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금솔밭의 소나무에서 돋아난 어린 소나무. 살아있는 소나무 둥치에 씨앗이 떨어져 움튼 드문 모습이다.

심금솔밭은 한국전쟁 때 군 주둔지로 징발돼 숲 가운데로 포장도로가 생기고 나중에 개인에게 불하되면서 개인주택과 농경지가 야금야금 갉아먹어 크게 위축됐다.
 
박미호 동국대 생태환경센터 연구위원은 “음식점과 개인주택이 숲 안에 들어서고 수세가 약해지는 등 몇 년 전 왔을 때보다 숲이 많이 나빠졌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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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근솔숲의 고민. 숲 가운데로 도로가 지나가고 일부는 개인집의 정원이 됐다.

특히 평지에 소나무들이 띠 모양으로 서 있다 보니 가장자리의 소나무가 햇빛을 받으려고 밖으로 웃자라 결국 쓰러지는 현상이 해마다 4~5그루에서 발생하고 있다.
 
문종석 이장은 “원상회복은 꿈도 못 꾸고 가지치기 등 현상유지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고의 명당 완성한 예천 금당실 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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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마다 번호를 매겨 관리하는 금당실 솔숲의 소나무들.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금당실 마을은 조선 중기 <정감록>이 난세에도 전쟁이나 흉년의 피해가 없는 길지로 꼽은 십승지(十勝地)의 하나이다.
 
이곳을 최고의 명당으로 만든 지형은 소백산 줄기의 높은 산자락이 포근하게 둘러싼 넓은 들과 마을을 굽이치는 금곡천이다. 한 가지 헛점이 있었으니, 마을 앞쪽에 터진 부분이다. 1500년대에 이런 풍수적 결함을 보완하는 솔숲을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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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 금당실 솔숲의 전경. 풍수적 비보숲이자 수해방비와 풍치림이기도 한 대표적 마을숲이다.

오미봉에서 금곡천을 따라 정자산까지 2㎞ 길이의 솔숲은 금당실 마을을 완전히 감싸 안는 형태였지만 현재는 600m 가량만 남아 있다.
 
마을사람들이 ‘솔 둥지’라고 부르는 마을숲에는 수령 250~300년 된 소나무 거목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소나무 하나하나에는 예천군이 관리하는 표찰이 붙어있었고 휴계림 육성과 빈 자리에 보식도 이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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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금당실 솔숲 내부. 350~400년 수령의 소나무 600여 그루가 마을숲을 이룬다.

박희식 예천군 문화해설사는 “숲이 전에는 어른과 아이들이 모두 모여들어 쉬고 생활하는 터전이었지만 지금은 문화재 비슷한 공간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숲 안에는 좁은 오솔길만이 나 있어 많은 주민이 이용하는 것 같지 않았다.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마을을 둥지처럼 보듬은 솔숲과 산세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원래의 형태로 복원한다면 한옥 체험마을과 함께 이 지역의 명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시인의 숲, 주실마을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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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림으로 바뀐 주실숲 내부. 거대한 느티나무 고목이 나뒹굴고 있다.
 
경북 영양과 봉화를 잇는 918번 지방도로를 가다 보면 갑자기 어둑한 숲 터널이 길을 가로막는다.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숲이 그곳이다. 

250살 느티나무를 비롯해 느릅나무, 소나무 등이 빼곡하게 들어찬 숲은 주실마을을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차단해 준다.
 
주실은 금당실과 함께 ‘반 서울’로 불리던 명당이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생가가 있는 곳으로 해마다 지훈 예술제가 열리는 ‘시인의 숲’으로 유명하지만, 1700년대 한양 조씨 집성촌이 풍수의 기맥을 보완하기 위해 조성한 마을숲이다.
 
숲 안에는 대부분 100년이 넘은 거목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이고 고목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어 자연림으로 바뀐 모습이었다.
 
주민이자 영양군 관광해설사인 조식걸(74)씨는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있다”며 “문화재 보호구역이라 시설물이 들어서는 등의 개발 우려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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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양의 주실숲. 마을을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가로막는 구실을 하고 있다.

행락객이 찾아올 뿐 주민들은 숲을 거의 이용하지 않고 있다. 조씨는 “주실 마을 55가구의 인구가 80명에 불과하고 평균연령이 70을 넘는다”며 “이대로 가면 10년 안에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마을 자체의 존폐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장미아 생명의 숲 마을숲 위원은 “영산홍이나 리기다소나무처럼 외래종을 심었는데 이를 자생수종으로 바꾸어나간다면 별다른 관리를 하지 않고도 현재의 숲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천·춘천·예천·영양/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이 기획은 복권기금(산림청 녹색사업단 녹색자금)의 지원으로 마련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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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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