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들이 노니는 600년 참나무 숲

조홍섭 2011. 09. 07
조회수 26927 추천수 0
숲 로고.jpg⑨ 종묘 숲
 
수령 300~400년 거목 즐비, 속세와 신의 세계 차단
일제 때 도로 뚫으면서 종묘 주산 응봉 주맥 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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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빽빽한 갈참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속세로부터 차단된 종묘 정전
 
외대문을 넘어 종묘로 한 걸음 내딛으면 종로3가의 번잡함이 한 순간에 사라진다. 마치 깊은 산속에 들어온 것 같은 적막감과 엄숙함이 감돈다. 어른 두 아름은 돼 보이는 갈참나무의 쭉 뻗은 가지가 팔을 벌리고 막아서는 듯하다.
 
서울 한복판에서 600년째 자리를 지켜온 종묘 숲은 조선 왕조의 신림(神林)이다. 나무는 신의 대리물이나 수호신으로 숭배돼 왔다. 민중의 신림이 성황림이나 당산나무라면, 왕조의 신림은 국가에서 보호하던 신성한 숲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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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의 참나무 거목. 종묘에는 800 그루가 넘는 대형 참나무가 있다.
 
지난달 30일 찾은 종묘 숲은 갈참나무와 잣나무 아래 쪽동백과 때죽나무가 우거져 어둑했다. 단청과 정자, 누각을 짓지 않은 ‘죽은 자의 공간’ 답게 꽃나무를 심지 않고 연못엔 소나무 대신 향나무를 심은 모습이 특이했다.
 
그러나 종묘의 숲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갈참나무 숲이다. 전체 숲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갈참나무는 수령 300~400년 거목이 즐비하다. 멀리서 보면, 일자형 전각인 정전과 영녕전은 참나무의 바다에 배처럼 떠 있다.
 
참나무 숲은 속세와 신의 세계를 차단하는 구실을 한다. 조상신과 만나는 의식이 벌어지는 정전에 갈 때 왕은 동문으로, 신은 남문에서 들어온다. 남문 밖에 있는 것은 바로 참나무 숲이다. 이 숲은 신성한 공간을 차폐하는 곳이기에 앞서 신이 사는 곳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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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갈참나무 숲에 둘러싸여 정전이 지붕만 드러나 있다.
 
그렇다면 참나무 숲은 언제 생긴 것일까. 전문가들은 애초 종묘에는 소나무가 더 많았지만 수백년이 흐르면서 차츰 참나무 숲으로 바뀌었을 것으로 본다.
 
신준환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세종 13년 종묘의 소나무를 간벌했다는 등의 역사기록으로 볼 때 처음엔 소나무가 주요 수종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전영우 국민대 산림환경시스템학과 교수는 “소나무가 주인이었겠지만 참나무도 꽤 많이 심었을 것”이라며 “가벼워 보이는 나무를 의도적으로 도태시키고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는 참나무류만 남기면서 자연히 참나무 숲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종묘 숲은 왕궁 못지않게 중요한 숲이었지만 가지를 치거나 하는 식으로 숲을 관리하지 않고 자연미를 살렸다. 전 교수는 “우리 조상의 자연관과 전통지혜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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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의 연못. 다른 궁궐의 연못과 달리 소나무 대신 향나무를 심었다. 또 물소리가 나지 않도록 땅속으로 스며 유입하는 잠류기법을 썼다.
 
외대문 쪽에 야트막한 인공 언덕인 ‘가산’ 3곳을 지어 종묘 내부 공간을 포근하게 감싸도록 하고, 인공 연못에는 흘러드는 물소리를 죽이기 위해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유입되도록 설계하는 등 세심하게 자연을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우리 궁궐 지킴이 활동가인 이옥화씨는 “정전 앞에 깔아놓은 박석도 투박해 보이지만 우둘투둘한 표면이 난반사를 일으켜 흐린 날도 어둡지 않고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등 자연미 속에 세련된 기능을 감추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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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과 종묘를 단절하는 율곡로. 일제가 지기를 끊기 위해 개설한 도로로 현재 도로를 터널로 만들어 녹지를 잇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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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일대의 위성 사진
 
종묘 건너편 세운전자상가 옥상에 오르면, 종묘 숲이 ‘도심의 허파’이자 북한산에서 북악산 응봉을 거쳐 흘러 내려온 녹지축임을 실감할 수 있다. 우리 조상에게 이것은 땅의 기가 흐르는 지맥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는 돈화문에서 이화동으로 넘어가는 도로를 뚫어 종묘의 주산인 응봉의 주맥을 잘라 버렸다. 잘린 창경궁과 종묘를 잇는 다리가 만들어졌지만, 현재 도로를 지하 터널화하고 두 지역을 연결하는 공사가 진행중이다.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종묘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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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파르테논 신전 종묘 정전 건물. 조선 역대 왕과 왕비 등 19기의 신위를 모신 100미터가 넘는 건물로 기둥은 중간이 약간 불뚝한 배흘림 양식을 채용했다.
 
조선 왕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해 착공해 이듬해인 태조 4년(1395년) 완공한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서울 종로구 훈정동 19만 4000여㎡의 터에 본 건물인 정전과 추가로 지은 영녕전, 그리고 여러 부속 건물로 이뤄진다.
 
늘어나는 신위를 모시기 위해 정전의 증축을 거듭해 처음 7칸에서 19칸으로 길어져, 우리나라 목조건물 가운데 가장 긴 101m에 이르게 됐다.
 
왕이 친히 모시던 큰 제사인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이 계승되고 있으며,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외국인 건축가들이 한국의 전통 건축물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건물의 하나로 꼽는 곳이며, 건축가 고 김중업은 종묘를 ‘동양의 파르테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종묘의 핵심인 정전에서도 일부 주변 빌딩이 그대로 보이는 등 경관을 훼손하고 있다.
 
국내보다 외국에 더 많이 알려져 주로 일본인인 외국인 탐방객은 연간 20만 명에 이른다. 내국인 탐방객은 27만명이다.
글·사진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거목의 정원’ 창덕궁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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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 부용정의 모습.
 
종묘 숲과 창덕궁 후원, 그리고 창경궁 북쪽은 하나의 숲으로 연결돼 있다. 종묘 숲이 죽은 왕들을 위한 숲이라면 창덕궁 후원은 살아있는 왕족을 위한 숲이었다. 이곳은 휴식과 재충전뿐 아니라 활 쏘기 등 야외 행사와 농사 체험, 양잠 등이 이뤄졌다.
 
창덕궁 후원은 나이 많은 거목의 정원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만 해도, 돈화문 근처의 300~400년 수령의 회화나무 7그루를 비롯해 4종에 이른다.
 
선원전 서쪽 향나무는 최고령으로 수령 750살 정도로 추정된다. 1405년 창덕궁 조성을 시작할 때 어느 정도 자란 나무를 옮겨 심은 것으로 보인다. 1820년대 후반의 궁궐 기록화인 <동궐도>에도 이 향나무는 현재처럼 받침목을 댄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돈화문 근처의 회화나무와 금천교의 느티나무도 이 그림에 나와 있다.
 
애련지 부근의 뽕나무는 왕비가 양잠을 권하기 위해 키웠던 뽕나무 가운데 하나로 수령 400년 정도의 거목이다. 후원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다래나무도 수령 600년으로 국내에서 가장 크고 굵은 다래나무이지만 수나무여서 열매는 맺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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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된 국내 최대 다래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않은 거목도 적지 않아, 수령 300년 이상의 나무가 70여 그루에 이른다. 아쉽게도 거목은 태풍 등 자연재해로 인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창덕궁 후원에는 소나무, 잣나무, 회화나무, 뽕나무, 주목 등 160여 종의 나무가 심겨져 있다.
 
후원 숲의 가장 큰 변화는 소나무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후원 취한정 편액에는 “정원 가득한 소나무 소리가 밤 바다의 파도소리 같다”는 구절이 적혀 있지만 지금은 소나무를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글·사진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이 기획은 복권기금(산림청 녹색사업단 녹색자금)의 지원으로 마련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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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언론인/ 자연작가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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