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떼의 저주가 봄이면 진분홍 선물로

조홍섭 2011. 0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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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ax000(최종)이야기가있는한국의숲.jpg ① 지리산 바래봉 산철쭉 군락

 방목 양들이 다 뜯어먹고, 독 있는 산철쭉만 남겨 

 자연이 산딸기 앞세워 복원…8년 뒤면 ‘처음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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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래봉 능선의 산철쭉 군락.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 제공

 

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 숲의 해’이다. 숲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관리하고 보전하는 노력이 중요함을 일깨우기 위해서이다. 사람의 현명한 손길은 자연과 인간을 모두 살린다. 사람의 삶과 역사, 생태가 어울어진 대표적인 숲을 찾아 자연과 인간, 보전과 이용의 갈등을 푸는 길을 성찰해 본다. 편집자.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 자리한 지리산 바래봉(해발 1165m)은 해마다 5월이면 진분홍 산철쭉 꽃으로 물든다. 전국 제일의 철쭉 군락지라는 유명세를 타고 한 달도 안 되는 개화기 동안 약 20만명의 탐방객이 꽃구경을 온다.

 

그러나 이 철쭉 군락이 1970년대 호주에서 들여온 양떼가 수십년 동안 산지를 훼손한 결과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게다가 양떼가 사라진 뒤 산철쭉의 쇠퇴현상이 두드러져, 그 복원을 둘러싼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자연의 가차없는 복원력 막을까, 독특한 문화경관 유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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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봉 능선에는 해마다 약 20만 명의 탐방객이 몰린다.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 제공  

 

양떼가 다니던 바로 그 길을 탐방객이 무리지어 걷고 있다. 산철쭉은 운봉읍 가축유전자원시험장 목초지가 끝나고 바래봉 기슭이 시작되는 곳부터 탐방로 양쪽에 폭넓게 자리잡고 있고, 바래봉 정상부터 능선을 따라 팔랑치와 부운치에 이르는 능선 양쪽에 꽃터널을 이룬다. 철쭉 군락의 면적은 무려 22㏊에 이른다.

 

이곳의 철쭉사진을 찍어온 류오선(62·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씨는 “초록 양탄자 같은 목초 위로 진분홍 철쭉이 만개한 모습은 전국에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경치”라며 “최근 산딸기가 철쭉 군락에 침입하는 등 단정한 철쭉 군락 모습이 사라져 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제는 양들이 남긴 ‘선물’이 한시적이라는 데 있다. 자연의 복원력은 약 20년 동안 바래봉을 완강히 지키던 산철쭉 군락을 흔들고 있다. 일시에 철쭉 꽃망울이 터지듯 바래봉의 미래와 관련한 중요한 질문이 터져나오고 있다. 자연의 가차없는 복원력을 막는 게 바람직할까, 또는 그것이 가능할까. 아니면 바래봉에만 있는 이 독특한 문화경관을 유지하는 것이 옳을까.

 

지난 3일 ‘제 17회 지리산 운봉 바래봉 철쭉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린 운봉읍 사무소에서 자뭇 심각한 토론회가 열렸다. 서부지방산림청과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가 연 이 자리엔 두 기관과 주민대표, 시민단체, 생태 전문가들이 참가해 바래봉의 산철쭉 복원 문제를 논의했다.

 

서부지방산림청은 2007년 국립공원과 협의를 거쳐 바래봉 일대 21㏊에 새로 산철쭉을 심는 한편 73㏊에서 산딸기, 미역줄나무 등 ‘잡 관목’을 제거하는 내용의 복원 계획을 수립했다. 올해부터 5년 동안 10만 그루의 산철쭉을 심을 계획이었다.

  

 “철쭉 군락도 살리고 자연생태도 살리는 두 마리 토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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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봉 바래봉 철쭉 군락지 지도(위). 바래봉 기슭에 있는 국립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시험장 전경.

 

이날 모임은 전문가와 시민단체가 국립공원인 지리산에 산철쭉을 대량 식재하는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관련 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4월 이후 세번째 연 토론회였다.

 

오구균 호남대 조경학과 교수는 “바래봉은 최초 국립공원에 걸맞은 생태경관을 갖춰야 한다”며 산철쭉 위주의 식재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바래봉이 지리산의 또다른 봉우리와 비슷하게 바뀌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고 버텼다. 이영진(74) 전 운봉 애향회장은 “주민들이 애써 지키고 가꿔 이제 전국의 명물이 됐는데 어떻게든 복원해 살려나가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윤지홍 남원시의원은 “1990년대까지 1만 2000여명이던 운봉읍 인구가 현재 4300여명이고 그 절반이 노인”이라며 “이제 가진 건 철쭉밖에 없다”고 주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전했다.

 

김준선 순천대 산림자원학과 교수는 “산림의 아름다움에는 지역 주민이 그 산을 가꾸기 위해 들인 노력도 포함된다”며 바래봉 복원에 생태학과 함께 주민의 염원도 전향적으로 고려할 것을 제안했다.

 

주무기관인 산림청과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양쪽 주장을 타협시킬 짐을 지게 됐다. 김용무 지리산국립공원북부사무소장은 “철쭉 군락도 살리고 자연생태도 살리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밖에 없다”며 “훼손지역 등에 우선 산철쭉을 심고 정상부 등은 신중하게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지시로 농가소득 위해 호주에서 들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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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방목할 당시의 바래봉 정상 모습.

 

 

바래봉 산철쭉 군락의 기원은 1968년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를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도 면양을 길러 농가소득을 올려보자고 말한 데서 비롯된다. 1972년 운봉에 한·호 면양시범농장이 국립종축장의 분소로 설치되면서 바래봉 일대는 가축몰이 개가 3000~4000마리의 양떼를 이끄는 한국 속의 호주로 바뀌었다.

 

당시 ‘털깎이 달인’으로 불리던 한종식(59) 가축유전자시험장 반장은 “5월부터 10월까지 양들을 바래봉 일대에서 방목했는데, 양들이 다른 풀이나 나무는 모조리 뜯어먹었지만 독성이 있는 철쭉은 살아남았다”고 회고했다.

 

산비탈을 초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구획 속에 다수의 양을 몰아넣어 관목과 풀을 모조리 뜯어먹게 한 뒤 발굽에 패인 곳에 목초 씨앗을 뿌리고 다음 구획으로 옮겨 가는 ‘제경법’을 처음 도입했다.

 

양들의 발굽 아래 바래봉 일대는 철저하게 파괴됐다. 지리산이 1967년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되고 1971년 관리사무소가 설치됐지만, 공원 안인 바래봉까지 양떼를 위한 도로는 아무런 차질없이 건설됐다.

 

그러나 양들에게 선택받은 산철쭉은 목초지에 뿌린 비료가 풍부하고 경쟁자가 없는 양 이동통로를 중심으로 번성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말부터 경제성이 떨어진 목양 방목은 중단됐지만 점차 무성해진 산철쭉은 전국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처음부터 철쭉 보전에 나선 것은 아니다. 이병채 남원문화원장은 "바래봉에는 현재의 산철쭉 말고도 고산지대에 사는 철쭉도 많았지만 1980년대 말 업자들이 무분별하게 캐가는 바람에 사라졌다"며 "한 명이 구속되는 등 철쭉 도채 파문이 있고 나서 산악인과 지역주민을 중심으로 산철쭉을 지키자는 움직임이 시작됐다"고 회고했다. 

 

 

 군락 사이사이 이미 노린재나무, 조록싸리, 고광나무 등 돋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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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래봉 원 식생을 설명하는 오구균 호남대 교수.

양떼가 사라진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 바래봉 일대의 생태는 어떤 상태일까. 지난 4일 오구균 호남대 교수와 함께 산철쭉 군락지의 중심인 팔랑치~부운치 능선을 조사했다.

 

능선 등산로 양쪽에 자리잡은 산철쭉 군락을 억센 가시가 있는 산딸기가 밀어내고 있었다. 오 교수는 “광양 백운산에서 나무를 벌채한 곳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산딸기와 미역줄나무”라며 “햇빛을 좋아하는 산딸기도 7~8년 지나면 그늘에 가려 사라지고 정상 숲으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에게 산철쭉을 쫓는 원흉인 산딸기가 자연 복원의 선구자인 셈이다. 산딸기 밑에는 과거 목장의 유산이 외래종 목조를 뚫고 쑥이 돋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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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양쪽에 빽빽하게 자란 산딸기. 제거의 대상인가 복원의 신호인가. 

 

오 교수는 “산철쭉은 원래 중부 이남지역의 산자락에서 주로 자라며 고산의 능선에서 자랄 나무가 아니다”고 말했다. 바람 센 능선에는 철쭉과 진달래가 잘 자란다.

 

산철쭉 군락 사이사이에는 이미 바람 센 능선을 좋아하는 노린재나무, 조록싸리, 고광나무, 떡버들, 쇠물푸레나무, 병꽃나무, 조팝나무 등이 돋아나고 있었고, 이 산의 최종 주인인 신갈나무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바래봉 능선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사람과 양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가파른 사면으로 가자, 200년은 돼 보이는 대형 철쭉과 30여년생 신갈나무, 야광나무, 떡버들이 훼손되기 이전 이 산의 모습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오 교수는 “정상 숲으로 가는 징조인 산딸기를 베어내고 제 자리가 아닌 산철쭉을 심겠다는 건 국립공원 능선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이곳의 산철쭉도 모두 없애는 것이 옳을까. 오 교수는 “인위적인 식재가 곤란하다는 것이지 기존 산철쭉을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며 “이곳은 사람과 양이 선택해 만들어진 독특한 문화경관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고 해설판 등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운봉(남원시)/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산철쭉의 독성

 

산철쭉의 독성은 진달래를 ‘참꽃’, 철쭉을 ‘개꽃’으로 부르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식물 방언에서 흔히 접두어 ‘ 참’은 먹을 수 있는 식물을, ‘개’는 먹지 못하는 식물을 가리킨다.

 

철쭉에는 ‘그라야노톡신’이란 독성물질이 들어있음이 학술적으로 밝혀져 있다.

 

면양에게 철쭉이 치명적임이 국내에서 밝혀진 일도 있다. 어경연 서울대공원동물원 수의사는 2009년 <한국임상수의학회지>에 낸 논문에서 면양 4마리와 재래산양 5마리에게 정원수를 가지치기 한 철쭉을 먹이로 준 뒤 무기력, 침 흘림, 구토, 호흡곤란 등의 중독증상이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응급처치를 했는데도 산양 1마리는 폐사했다.

 

흔히 진달래는 화전 등 요리 재료로 쓰고 야산에서 꽃을 따 먹기도 한다. 이때 철쭉과 진달래를 구분하지 않으면 사람도 일시적 중독 증상을 겪을 수 있다.

 

북한에서는 굶주림에 지친 중학생 9명이 철쭉을 잘못 따먹고 사망했다고 <오늘의 북한>이 2008년 6월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철쭉 꿀을 다량 섭취해도 중독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진달래, 철쭉, 산철쭉 뭐가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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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철쭉(왼쪽)과 철쭉

 

 

진달래와 철쭉, 산철쭉은 모두 진달랫과의 식물로 봄철 산을 물들이는 대표적인 야생화이지만 종종 혼동을 일으키는 식물이기도 하다.

 

진달래는 이 가운데 가장 먼저 피며 잎보다 진한 분홍색 꽃이 먼저 나와 쉽게 구분된다. 철쭉과 산철쭉은 잎과 꽃이 함께 나온다. 진달래가 강렬한 분홍색이라면 철쭉은 초록과 어우러진 분홍이란 차이가 있다.

 

철쭉과 산철쭉을 헷갈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주로 산자락에서 철쭉보다 먼저 피는 산철쭉은 꽃이 진한 분홍색이고 잎 끝이 뾰족하다. 철쭉은 고산에 많으며 연분홍색 꽃을 피우고 잎 끝이 주걱모양이라는 차이가 있다.

 

산철쭉이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 피는 데 이어 철쭉 꽃은 5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산철쭉 군락은 지리산 바래봉과 주왕산 상의계곡에 있고, 철쭉 군락은 소백산 연화봉과 지리산 노고단이 유명하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이 기획은 복권기금(산림청 녹색사업단 녹색자금)의 지원으로 마련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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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언론인/ 자연작가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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