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새 바람 낙엽…산 소리 들으면 자연 건강 보인다

김정수 2015.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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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내 첫 소리경관생태학자 주우영 박사
청진기로 환자 상태 알 수 있듯 눈보다 더 깊고 종합적 진단
소백산과 점봉산이 소리경관 최고…정상이나 산록보다 계곡

 

so2.jpg » 자연에 청진기를 대듯 주우영 박사가 26일 국립생태원에서 자연의 소리를 녹음해 세심하게 듣고 있다. 사진=김정수 기자

 
기침을 하는 환자를 맞은 의사는 으레 환자의 가슴에 청진기를 들이댄다. 가슴속에서 들리는 소리가 환자의 상태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충남 서천군에 있는 국립생태원 미래기획연구실 선임연구원 주우영(41) 박사는 종종 자연 속에 들어가 녹음기 단추를 누르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에게 소리는 자연을 이해하는 열쇠다.

 

건강한 자연은 풍부하고 다양한 소리를 낸다. 건강하지 않은 자연은 인간이 만들어낸 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소리를 내거나, 미국 생물학자 레이철 카슨이 디디티(DDT) 살충제에 의한 환경오염을 파헤친 환경 분야 고전 <침묵의 봄>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아예 침묵하기도 한다.
 

주 박사는 2009년 미국 미시간주립대 생물학과에서 소리경관생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소리경관생태학은 그가 박사 학위를 받은 해 미국에서 처음 경관생태학회 프로그램의 한 순서로 관련 세미나가 열렸을 정도로 막 탄생한 학문이다.

 

돌고래나 새들이 내는 소리와 행동 특성 분석을 주로 하는 연구는 과거에도 있었다. 이렇게 각각의 생물종에 초점을 맞춘 기존 ‘생물음향학’과 달리 소리경관생태학은 생태계나 경관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리를 기록·구분하고 그 소리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려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국 사람으로서 소리경관생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그가 처음이고 아직 유일하다.
 

좋은 소리경관이란 어떤 것일까? 그는 “소리를 생물이 내는 바이오폰(생물 소리), 인간이 내는 교통 소음과 같은 앤스로폰(인위적 소리), 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소리 같은 지오폰(물리적 소리)으로 구분할 때, 다양한 자연의 소리가 인위적 소리에 의해 간섭받지 않고 잘 유지되는 경관”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기준을 바탕으로 그는 우리나라 육지에서 가장 소리경관이 우수한 곳으로 소백산과 점봉산을 꼽았다. 설악산과 지리산 등 자연환경 면에서 더 뛰어난 곳도 있지만, 이런 곳들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접근하면서 내는 인위적인 소음에 의해 소리경관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본 것이다.
 

정보의 80%를 눈을 통해 받아들인다고 할 정도로 사람은 시각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자연이나 주변 환경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소리경관생태학에서는 청각으로도 충분히 자연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오히려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눈이 닿을 수 없는 자연 깊은 곳의 상태도 소리경관을 통해 종합적으로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00013902_R_0.JPG » 소리경관이 국내에서 가장 좋은 곳의 하나로 평가된 점봉산.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와 인적이 드문 숲에서 나는 다양한 소리가 어울어진다. 사진=박승화 기자
 

주 박사는 2012년부터 3년 동안 산지보전협회 산지연구센터에서 정책연구팀장으로 일하면서 소백산과 점봉산의 소리경관생태를 연구했다. 산림청 지원으로 이뤄진 이 연구에는 일반인들의 소리경관에 대한 인식과 평가도 포함돼 있었다.

 

주 박사가 산림 경관을 계곡부와 산록부, 산 정상부 등 3곳으로 구분해 사진으로 기록한 뒤 일반인들에게 보여줬을 때 가장 선호도가 높은 곳은 예상대로 전망이 좋은 산 정상부였다. 하지만 각 부분의 특성이 녹음된 소리를 들려주면서 경관 사진을 보여주자 계곡부의 선호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 정상은 사실 바람소리도 세고 헬리콥터 소리도 가끔 들리는 등 시끄러운 반면 계곡은 물소리가 소리경관의 다양성을 더해줘서 사람들이 더 선호하게 됐다”는 얘기다.
 

“숲 안으로 들어오니까 소리가 달라진 것이 느껴지죠?” 26일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 연구동 뒤편 숲 속에 난 ‘제인 구달의 길’을 걷던 그가 길 옆 숲에 녹음기를 설치한 뒤 귀에 헤드폰을 끼고는 눈을 감는다. 그를 따라서 눈을 감자 새로운 귀가 열린 느낌이었다.

 

박새 울음과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곤충이 뛰어다니는 소리에서부터 바람에 서로 부딛쳐 사각대는 나뭇잎 소리, 막 가지에서 떨어진 낙엽이 먼저 떨어진 낙엽들 위에 바스락거리며 내려앉는 소리에 이르기까지 숲길을 걸을 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온갖 소리들이 귓속으로 빨려들었다.

 

so1.jpg » 주우영 박사는 "눈을 감으면 귀가 열린다."라고 말한다. 소리경관은 시각경관에 더해 소중한 생태자원이 될 전망이다. 사진=김정수 기자
 

소리경관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자연 훼손은 산업혁명 이후 크게 늘어난 인공음이 자연의 소리인 생물음을 가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소백산, 점봉산과 같은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녹음을 해보면 거기서도 비행기나 헬리콥더 날아가는 소리 같은 것이 계속 자연의 소리를 방해하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인간이 기계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자연의 고유한 소리를 듣기는 점점 어렵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인공음은 인간에게는 대부분 불쾌감을 주는 소음으로 끝날 수 있지만, 새와 같은 야생생물들에게는 번식에 지장을 줘서 생존까지 어렵게 할 수 있는 치명적인 위협일 수 있다.
 

“미국에서는 2006년부터 소리경관을 국립공원의 중요한 자원으로 규정하고, 그 자원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모니터링하며 관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국립공원은 땅에서는 잘 통제가 되지만 공중으로 지나가는 것은 통제가 안돼 비행기 소음에 심한데요. 그런 것들이 소리 자원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나타내는 지도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거죠.”

 

이런 노력이 쌓여 소리경관적 가치가 정말 뛰어난 국립공원 위로는 항공기가 지나가지 않도록 하거나 통과하는 횟수를 줄이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그는 “언제 어느 국립공원에 가면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잘 아는 사람들도 소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국립공원에서 소리경관에 좀더 관심을 갖는다면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경관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특징적인 소리도 들려주고, 언제 어디서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식으로 소리경관을 생태관광 자원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소리경관과 자원을 잘 관리하고 보전하는 것이 생태계 보전의 핵심일 수 있다”며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소중한 소리 자원들을 찾아내 기록하고, 시간대별로 계절별로 다양하게 변화하는 그런 정보들을 지수화하고 지표화해 객관적으로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천/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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