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새와 습지의 눈물, 한국인보다 더 잘 안다

김정수 2015. 12. 09
조회수 15766 추천수 0

인터뷰  ‘새와 생명의 터’ 나일 무어스 대표

18년 발품, 새만금 갯벌만 200번 넘게 발길 ‘가슴이 미어진다’
"4살 때 수술로 청각 기능 되찾고 처음 들은 기러기 소리 못 잊어"

1.jpg » 2007년 4월4일 새만금 갯벌이 방조제로 막힌 뒤 서해안 철새의 보고로 떠오른 새만금 인근인 금강하구 유부도에서 도요·물떼새를 조사하고 있는 영국인 나일 무어스(왼쪽)와 뉴질랜드인 토니 크로커. 이들은 “여기도 세계적으로 뛰어난 서식지이지만 새만금은 더 좋았다”며 이 일대의 간척 계획을 의아해했다. 사진=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새만금과 관련된 그의 이야기 끝에는 ‘하트 브레이킹’이라는 말이 마치 후렴구처럼 붙었다. ‘가슴이 미어진다’는 뜻이다.

 

4개월만 지나면 새만금 갯벌의 숨통을 죄는 방조제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끝난 지 꽉 찬 10년이 된다. 하지만 조류와 조류 서식지 보전을 활동 목표로 하는 환경단체 ‘새와 생명의 터’ 나일 무어스(52) 대표에게 새만금은 세월이 가라앉힐 수 없는 고통인 듯했다.
 

“붉은어깨도요를 아세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가 말을 이어갔다. “제가 새만금에서 그 새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새는 국제자연보전연맹의 멸종위기종 목록인 적색목록에서 관심종이었는데, 지금은 취약종 단계를 지나 위기종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알락꼬리마도요도 마찬가지고요. 새만금을 비롯한 황해 연안 갯벌에 의존하는 많은 새들이 이대로 가면 앞으로 한 세대 안에 멸종될 겁니다.”

 

4.jpg »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2일 오륙도가 바라보이는 부산 남구 바닷가 생태공원 아래 언덕에서 시작된 그의 새와 습지 이야기는 몇 마디 지나지 않아 새만금으로 연결됐다.

 

“2006년 새만금 방조제가 닫힌 뒤 갯벌은 죽어가고, 어민들은 일을 잃고, 갯벌 새들의 개체수는 급락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새만금에 대해 지금 누가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 그의 말투와 표정엔 새만금을 잊어버린 듯한 세상을 원망하는 듯한 느낌마저 묻어났다.
 

새만금은 1990년대 후반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화두였다. 당시 새만금 갯벌 보전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한 환경단체 주관 세미나나 토론회 자리에서 거의 빠지지 않고 볼 수 있었던 푸른 눈의 청년이 있었다.

 

그가 바로 영국 리버풀 출신의 나일 무어스였다. 그가 특히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의 자리가 청중석이 아니라 언제나 발표자나 토론자석이었고, 그가 꺼내놓는 주제는 영국 사례가 아니라 한국인도 잘 모르는 한국의 습지와 조류 현황이었기 때문이었다.
 

1990년부터 일본 후쿠오카에서 밤에는 영어강사, 낮에는 습지보전단체 조류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종종 한국으로 탐조여행을 오던 그는 1998년 한국 환경단체들의 습지 보호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영국에서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 일본의 환경단체로부터 습지 보전 활동 지원 요청을 받고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른 문화를 체험해보고 싶은 생각과 사진으로만 봤던 넓적부리도요를 직접 보고 싶은 생각이 그의 등을 떠밀었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의 갯벌에서만 관찰되는 넓적부리도요는 전세계에 300여마리밖에 남지 않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3.jpg » 사진=김정수 선임기자

 

한국에서 기존 환경단체 중심의 습지보전연대회의 소속 조류 전문가 신분으로 남서해안의 갯벌을 훑고 다니던 그는 2001년 ‘습지와 새들의 친구’라는 환경단체 설립을 주도하고, 2004년에는 ‘새와 생명의 터’를 창립했다. 황해 연안의 조류 서식지 보전 활동을 목표로 내건 전문 환경단체 창립은 한국 환경운동에 대한 그 나름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그는 정책 결정권자들을 공격하며 정책 변경을 요구하는 캠페인 중심의 환경운동에 동의하지 못했다. 엔지오(NGO)의 역할은 선출되고 권한을 위임받은 정책 결정자들이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정보와 자료를 생산해서 제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은 한국 환경운동가들과 소원해지는 계기가 됐다.
 

왕립조류보호협회(RSPB) 등 영국 환경단체와 정책 결정자들과의 관계를 지켜보면서 자리잡은 그의 이런 생각은 한국에는 통하지 않았다. 300여명에 이르는 국내외 회원들의 회비와 외국의 기금 지원을 받아 철새 이동 경로를 발이 부르트게 찾아다니며 얻어낸 조사 결과로 국내외에 남서해안 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알렸다.

 

그러나 새만금만 200번 넘게 찾아갔을 정도로 치밀하게 이뤄진 그의 조사 결과에 대해 정책 결정에 관여하는 정부 쪽 사람들은 무반응이거나 아예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간척이 바닷새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모든 과학자들이 동의하고, 한국 밖에서는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한국의 정책 결정자들만은 인정하지 않았다. 조사 분석한 리포트를 주고, 그것을 설명하는 글을 쓰고,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그 밖에 또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는가.” 한탄하듯 말하는 그의 표정은 지친 듯했다.
 

30대 중반 청년으로 한국에 온 그는 이제 50대 중년이 됐다. 5년 정도 머물 계획이었던 한국 생활이 올해로 18년째다.

 

“1998년 한국으로 처음 건너왔을 때는 상황이 좋았다. 정부와 비정부기구의 관계도 괜찮았다. 한해 전 한국은 물새 서식지 보전을 위한 람사르협약에도 가입한 상태였다. 물새 서식지로서의 새만금 갯벌의 절대적인 가치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5년 정도면 갯벌 보전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새만금 사업도 멈추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실망이 컸다. 4대강 사업까지 지켜보면서는 절망감마저 느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한국에서 다음 세대도 호사비오리와 넓적부리도요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강이 여전히 건강하고, 갯벌이 살아 있다는 의미다. 내가 바라는 것은 이것이 전부인데, 이젠 솔직히 좌절감이 들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그가 한국을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는 것은 뭘까?
 

그는 “거만하게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러워하며 “한국에서 벌어지는 갯벌과 습지 파괴를 지켜보면서 전문가로서 큰 책임감을 느꼈다. 내가 내 인생을 걸고 할 수 있는 일로 이 지역에서 조류와 조류 서식지 보호를 돕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새에 대한 그의 특별한 관심은 네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청각 기능의 95%가 없는 상태로 태어났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그의 부모가 병원으로 데려가 수술을 마친 뒤 집에 돌아와 자려고 침대에 누운 그의 귓속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듣는 너무나 경이로운 소리여서 마치 천사의 나팔 소리같이 느껴졌다. 50년 가까이 지난 네살 때 일이지만 그때의 흥분은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흥분해 소리를 지르는 그에게 달려온 부모는 지붕 위로 날아가는 기러기들이 내는 소리라 했다. 그 신비로운 경험이 새라는 존재와 그가 50년 가까이 맺어온 인연의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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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끄는 새와 생명의 터는 지난해 9월 평창에서 열린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CBD) 당사국총회에 맞춰 당시까지 진행한 조류 조사 결과와 국내외 발표 자료 등을 종합해 한국의 조류 현황을 분석한 보고서 <새의 지위(Status of Birds) 2014>를 냈다.

 

이 보고서에 대해 그는 “중국, 러시아, 일본에서도 시도하지 못한 의미있고 중요한 보고서”라며 “이런 보고서를 한국 엔지오에서 낸 것은 아주 중요한 성취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이 보고서를 계속 개정해 나가면서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의 조류와 조류 서식지 현황에 대한 기초 조사를 하는 일이다.

 

그는 “인간과 기후변화가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려면 기초 데이터가 필요한데,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역의 조류 분포에 대한 종합 보고서는 아직 없다. 2~3년의 조사가 필요한 이 작업은 서로 오가기 쉽지 않은 남북한의 조류학자들에게는 어렵다. 새와 생명의 터가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것이 내 꿈”이라고 말했다.

 

부산/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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