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는 없어요…모든 풀은 쓸모가 있답니다”

조홍섭 2008. 10. 17
조회수 26118 추천수 0

‘야생풀 연구 24년’ 강병화 교수의 잡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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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요? 평생 연구해도 그런 풀 없던데요.”

 

강병화(61·사진·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씨는 지난 24년 동안 우리 땅에 나는 ‘야생풀’을 조사하고 씨앗을 채집하느라 전국을 누볐다. 그의 관심사는 깊은 산의 희귀식물도 야생화도 아닌 우리 주변의 평범한 풀들이다.

 

“주로 많이 다닌 곳은 시궁창, 논, 개펄 그런 뎁니다.”

 

농과대학에서 농학을 전공한 그는 잡초 연구자들이 모두 제초제에만 관심을 쏟는 것이 의아했다. 잡초를 제대로 연구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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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란 흔히 원치 않는 식물을 가리킵니다. 밭 냉이는 잡초이고 들판 냉이는 나물이지요. 하지만 농토 밖에도 수많은 풀들이 있습니다. 아직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다 쓸모가 있어요. 잡초는 유용식물입니다.”

 

그 용도는 식용·약용·사료용·꿀채취용·관상용·공업용·퇴비용 등 끝이 없다. 그 효용을 우리가 다 모르거나 잊었을 뿐이다.

 

그는 “먹을 게 부족한 북한이 남쪽보다 약초 연구가 더 잘 돼 있다”고 말했다.

 

잡초 유전자원은 외국으로 유출되고 있기도 하다. 척박한 곳에서도 잘 자라고 영양분이 많은 둥근매듭풀은 미국에서 사료작물로 개량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그는 일찌기 잡초의 유전적 가치에 눈 떴다. 1999년엔 한국과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고려대에 야생 초본식물자원 종자은행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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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강 교수의 연구실에는 그동안 모은 야생풀 약 1600종의 씨앗이 냉동보관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야생풀의 종자가 체계적으로 보관돼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종자는 세 곳의 냉동고에 나눠 보관했다. “씨앗의 수분을 5% 이하로 낮춰 냉동 보관하면 수백년 뒤에도 싹을 틔워 증식할 수 있습니다.”

 

유용성보다 제초제 연구만 하는 데 ‘의문’

국내 야생풀 종자은행 1600종 씨앗 보관

 

3권 무게 15kg짜리 ‘생약자원도감’ 펴내

 

종자를 모으는 일은 간단치 않다. 지난해 오대산에서 노란잔대 씨앗을 얻기까지 네 번 산에 올라야 했다. 꽃으로 종을 가려낸 뒤에도 씨앗이 덜 여물거나 너무 익어 땅에 흩어져 버리기 전에 받으려면 같은 곳을 뻔질나게 다녀야 한다. 덜 익은 씨앗을 보관했다가는 썩어 못 쓰게 된다.

 

그는 “길가에 씨앗을 매단 풀이 보이면 차를 타고 가다가도 내리는 버릇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의 연구실에는 외국에 여행하다 이렇게 채취한 씨앗자루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종자은행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2004년 끊겼다.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내는 것보다 더 늦기 전에 야생초의 씨앗을 받는 게 급하다는 걸 심사위원들은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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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3년간 그는 자칫 쓰레기로 버려질 우려가 있는 조사결과를 책으로 정리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다음달 출간될 ‘한국 생약자원생태도감’ 세 권에는 3천쪽이 넘는 분량에 12만장의 사진이 담겼다. 평생 발품을 판 결과인 셈이다.

 

무게만 15㎏인 이 책을 출판기념회 참가자에게 나눠 줄 수도 없어, 그는 내용을 간추린 ‘한국 생약자원 생태사진전시회’를 지난 21일부터 고려대 자연계 하나스퀘어 전시관에서 열고 있다. 일반인 누구나 야생초 사진 2천500여장과 종자 샘플을 볼 수 있다. (02)3290-3462.

 

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영상 박수진 피디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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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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