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메뚜기는 왜 풀 꼭대기서 죽나

조홍섭 2013. 09. 23
조회수 33564 추천수 0

메뚜기 목 151종 망라한 생태도감 처음 나와…잘 아는 것 같지만 잘 모르는 메뚜기

콩중이·팥중이·풀무치 구별법? 도감에 '송장 메뚜기'는 없다

 

g0.jpg » 풀에 묻혀 있다는 뜻이 있는 풀무치의 수컷. 암컷은 수컷보다 크고 8㎝에 이르기도 한 큰 메뚜기이다.

 

초가을 들판이나 산자락을 걷노라면 메뚜기들이 어지럽게 날아오른다. 메뚜기는 친숙한 곤충이어서 웬만한 이름은 누구나 안다. 논이라면 벼메뚜기, 두 다리를 쥐면 방아를 찧는 방아깨비, 흙바닥에서 구분이 어려운 송장 메뚜기 등등….
 

그러나 메뚜기 무리를 과학적으로 들여다 보면 그리 간단치 않다. 우리나라의 메뚜기 목에는 무려 151종이 있고, 그 안에는 메뚜기뿐 아니라 여치, 베짱이, 귀뚜라미, 방울벌레, 땅강아지 등이 모두 포함된다.
 

메뚜기 목은 나비나 딱정벌레처럼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니어서 전문적인 연구자도 드물다.  그런 점에서 메뚜기 전문 연구자인 김태우 국립생물자원관 박사가 내놓은  <메뚜기 생태도감>(김태우 지음/지오북, 3만5000원)은 반갑다.

 

8994242244_f.jpg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메뚜기 목 12과 151종의 정보를 망라해 놓은 이 책은 본격적인 도감 정보에 앞서 들머리에 ‘메뚜기에 대해 알아보기’ 장을 따로 두고 있는데, 아마도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실은 종종 부정확한 일반인의 메뚜기 지식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송장 메뚜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메뚜기의 하나이다. 흔히 어두운 갈색 몸빛깔에다 손으로 붙잡으면 시커먼 액체를 토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먹지 못하는 메뚜기라고 배운 그 녀석이다. 그러나 ‘들국화’나 ‘참나무’란 이름의 식물이 없는 것처럼 ‘송장 메뚜기’란 이름의 메뚜기는 도감에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송장 메뚜기란 어떤 메뚜기를 가리킬까. 지은이는 일반인이 보통 송장 메뚜기로 지목하는 메뚜기는 콩중이, 팥중이, 각시메뚜기, 두꺼비메뚜기 등 4종이라고 말한다.
 

g6.jpg » 짝짓기 중인 각시메뚜기. 애초 송장 메뚜기는 이 종을 가리켰다는 기록이 있다.

 

우중충한 빛깔에 검은 액체를 토하는 모습이 피를 토하며 죽은 주검을 떠올리게 하는지 모르지만 실은, 이 액체는 뱃속의 소화액으로 고약한 냄새를 내지만 독성은 없다. 별다른 무기가 없는 메뚜기의 마지막 방어수단일 뿐이다. 1936년 일본인 연구자 무라타가 조선과 만주의 동물 이름을 정리한 <선만동물통감>에 송장 메뚜기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각시메뚜기라고 이 책은 설명한다.
 

팥중이와 콩중이, 두꺼비메뚜기, 풀무치는 모두 풀무치아과에 속하는데 종종 혼동을 일으킨다. 풀무치는 이 가운데 가장 대형종이다. 암컷은 수컷보다 큰데 길이가 8㎝가 넘기도 한다. 특히 서해안의 섬에 대형 개체가 많은데, 인천 굴업도에서는 어른 손바닥만 한 풀무치를 쉽게 볼 수 있다. 풀무치를 가까운 친척과 구별하는 가장 큰 특징은 큰턱 주변이 짙은 푸른색이고 가슴판 아래에 흰 털이 많이 나 있다는 점이다.
 

콩중이는 팥중이보다는 크고 풀무치보다 작다. 두드러진 특징은 앞가슴등판이 삐죽 솟아나와 마치 목 뒤가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팥중이는 대부분 어두운 적갈색을 띠는데, 앞가슴등판에 엑스(X) 자 형태의 무늬가 뚜렷해 구분한다. 두꺼비메뚜기도 팥중이처럼 작은데, 흑갈색 몸에 우툴두툴한 작은 혹이 나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메뚜기 아목 61종 가운데 '~메뚜기'라는 이름을 갖지 않는 종은 풀무치, 콩중이, 팥중이를 비롯해 딱따기, 방아깨비, 그리고 삽사리 종류뿐이다.
 

g2.jpg » 콩중이의 녹색형과 갈색형. 목뒤가 부푼 모습이 독특하다.

 

g3.jpg » 팥중이. 콩중이보다 작고 등의 엑스 자 무늬가 선명하다.

 

g4.jpg » 풀무치 녹색형 수컷이 갈색형 암컷과 짝짓기를 하고 있다. 큰턱이 짙푸른 색을 띤다.

 

g5.jpg » 피부가 작은 혹으로 우툴두툴한 두꺼비메뚜기.    

 

 g12.jpg » 딱따기. 날 때 내는 '따다다닥~' 하는 소리에서 따온 이름이지만, 실제로 그런 소리를 내는 건 방아깨비 수컷이며 이 종은 전혀 소리를 내지 않는다.

 

색깔로 이들 메뚜기를 구분하는 것도 곤란하다. 풀무치, 팥중이, 콩중이 모두 녹색형과 갈색형이 있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몸빛깔이 있지만 유충 단계에서 환경적인 영향으로 색깔이 바뀌기도 한다. 대체로 개체군의 밀도가 낮고 습도가 높으면 녹색, 반대로 밀도가 높고 건조한 환경에서는 갈색을 띠는 경향이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또 날개의 길이도 변이가 많은데, 서식처가 좁아 경쟁이 심해지면 날개가 길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g7.jpg » 풀줄기 끝에 올라가 죽은 등검은메뚜기. 병원성 곰팡이의 포자가 잘 확산되도록 이런 자세가 유도되었다.

 

요즘 메뚜기가 많은 곳에서는 기괴한 모습을 한 메뚜기 주검이 눈에 띈다. 땅바닥에 살던 메뚜기가 무슨 일인지 억새나 풀 꼭대기에 기어올라가 풀을 꼭 붙들고 뒷다리를 쩍 벌린 채 죽어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메뚜기 밀도가 높은 곳에서 흔히 나타나는데 병원성 곰팡이 감염 때문이라고 이 책은 설명한다. 이 곰팡이는 메뚜기의 뇌에 침범해 메뚜기를 일종의 좀비로 만들어, 죽기 직전 풀 끄트머리로 올라가 단단히 붙든 자세를 한 채 말라죽도록 이끈다. 곰팡이의 포자를 더 넓게 잘 퍼뜨릴 수 있는 자세이다.

 

g9.jpg » 우리벼메뚜기가 허물을 벗는 모습. 기다란 뒷다리를 구부려 빼는 모습이 놀랍다.
 

풀줄기에 남아있는 메뚜기 주검이 모두 곰팡이 감염 탓은 아니다. 성장을 위해 벗어놓은 허물도 풀 줄기에 그대로 붙어있다. 메뚜기는 번데기 시기를 거치지 않는 불완전변태를 한다. 알에서 깬 애벌레는 5번쯤 허물을 벗으면서 성충으로 자란다.
 

메뚜기가 묵은 껍질을 벗는 비밀스럽고 조심스런 과정을 지은이는 이렇게 묘사한다.

 

탈피를 앞둔 메뚜기는 식욕이 어느 순간 뚝 떨어지면서 단식에 들어간다. 그리고 며칠에 걸쳐 주변을 배회하다가 안전하다고 보이는 풀줄기의 위로 올라간다. 배를 씰룩거리며 호흡을 거칠게 하다가 느닷없이 자신의 발바닥을 열심히 핥기도 하는데 단단하게 부착하기 위해서다. … 탈피는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몸 마디 전부가 팽창하여 죽죽 늘어나고, 새로운 몸이 하얀 탈피각 속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등, 머리, 배의 껍질이 차례로 벗겨지고 다리를 하나씩 빼낸다. 메뚜기가 기다란 뒷다리를 빼는 순간은 아주 놀라운 장면이다. 뒷다리의 길고 굵은 넓적다리 마디가 절반으로 유연하게 구부러지는 것이다. 이것은 몸이 가장 연한 상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 갓 성충이 된 메뚜기는 뒷다리를 쭉 펴고 한참을 턱걸이하는 자세로 매달려 있는데, 금방 나온 날개는 하얀 우윳빛이다. 그리고 경화호르몬이 분비되면 몸을 단단하게 해 주고 제 색을 갖도록 도와준다.”(33쪽)
 

메뚜기는 흔히 초식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중베짱이와 여치 등 여치류는 포식성이 매우 강해 다른 메뚜기나 거미 등을 잡아먹는다. 또 먹을 것이 부족하거나 영양분이 결핍한 특별한 상황에서는 메뚜기가 죽어가는 동료를 씹어 먹기도 하고 다른 동물의 사체나 배설물을 먹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g8.jpg » 참어리삽사리를 잡아먹는 포식성 여치  

 

메뚜기를 채집할 때 메뚜기의 뒷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잦다. 지은이는 이것이 도마뱀이 방어수단으로 꼬리의 일부를 떼어내는 것과 마찬가지의 의도적인 행동으로서 다리 하나만으로도 생존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말한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마마의 마지막 포옹이 던진 질문…인간과 동물은 얼마나 다른가마마의 마지막 포옹이 던진 질문…인간과 동물은 얼마나 다른가

    조홍섭 | 2019. 08. 02

    프란스 드 발의 동물행동학 역작 “동물, 인지능력과 감정까지 보유” 공감·배려·협력은 사회성 포유류 특징 인간중심주의 벗고 ‘동물성’ 회복해야 “동물도 감정이 있을까?”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해 물을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그...

  • 벌통 앞에서 바나나 먹으면 안 되는 이유벌통 앞에서 바나나 먹으면 안 되는 이유

    조홍섭 | 2018. 05. 23

    벌-그 생태와 문화의 역사(노아 윌슨 리치 지음, 김슨윤 옮김/ 연암서가, 2만원)꿀벌 경고 페로몬과 비슷한 냄새 풍겨…페로몬 막으려 훈연기 사용높이 나는 드론 수벌만 여왕봉과 짝짓기, 음경 폭발로 ‘비극적 행운’꿀벌 하면 달콤한 꿀과 따끔...

  • 몸 속 39조 마리의 미생물과 더불어 살기몸 속 39조 마리의 미생물과 더불어 살기

    조홍섭 | 2017. 08. 18

    우리 몸은 미생물과 더불어 사는 생태계미생물 통해 자연과 인간 새롭게 보자 주장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에드 용 지음, 양병찬 옮김/어크로스·1만9800원우리 몸속에는 39조 마리의 미생물이 산다. 불청객이 아니다. 미생물은 동물이 출현하기 ...

  • 바다에서 건져 올린 인문학바다에서 건져 올린 인문학

    조홍섭 | 2017. 04. 28

    멍게는 조개보다 척추동물에 가까워…바지락 해감은 놀라서 삼킨 것 도루묵 이름 유래에 식자 오만, 어민은 오래전부터 '은어' '도루묵' 불러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 -해양생물학자가 우리 바다에서 길어 올린 풍미 가득한 인문...

  • 사람 몸은 사람 것이 아니었네사람 몸은 사람 것이 아니었네

    조홍섭 | 2016. 12. 02

    몸은 사람세포 10배 ‘세균 생태계’, 가공식품 먹으면서 세균 다양성 낮아져김홍표 교수의 최신 진화생물학, ‘내 몸 속 바깥’ 소화기관의 기원 탐구사람은 찐빵과 도넛 가운데 어느 쪽에 가까울까. 생물학자는 도넛을 가리킨다. 입에서 위장과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