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연구자도 아리송…'공포의 꽃' 제비꽃

조홍섭 2013. 04. 22
조회수 41192 추천수 0

도감에 50여 종, 변이와 교잡 심해 구분 어려워

제비꽃 총정리 도감…검색표와 현미경 사진 제공

 

노랑제비01-00.jpg » 노랑제비꽃. 해발 600~700m의 약간 높은 산에 무리지어 난다. 노란색 꽃이 두드러진다.

 

김춘수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적었다. 야생화 이름 외우기가 힘들 때 위로가 되는 시구이다.
 

꽃을 바라보고 가만히 그의 이름을 불러 주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꽃은 식물의 생식기에 가깝다. 그런 사실을 알면, 향기를 맡으러 얼굴을 들이대기가 민망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꽃이 사람 얼굴처럼 생긴 야생화도 있다. 무늬와 모양이 좌우 대칭에 꽃잎 다섯 장이 위에 두 장, 양옆에 2장, 그리고 입술처럼 화려한 무늬를 지닌 아래 꽃잎 한 장이 자리 잡은 제비꽃이 그렇다. 그래서 제비꽃에는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픈 생각이 절로 든다.
 

제비꽃 표지.jpg

 

제비꽃은 이른 봄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꽃의 하나이다. 깊은 산은 물론이고 동네 공원이나 빈터의 양지바른 곳이라면 어디서나 쉽게 보라색 꽃을 매단 제비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친숙하고 흔한 꽃이지만, 제비꽃은 꽃께나 보러 다녔다는 사람들도 갑자기 겸손하게 만드는 식물이기도 하다. 식물 분류학 전문가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도감에 50여 종이나 이름을 올리고 있을 만큼 종류도 다양하고 변이와 잡종이 많아 구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식물분류학자인 유기억 강원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재미로” 시작했던 몇 년 동안의 제비꽃 연구 소감을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7년이나 지난 지금 머릿속에는 정리된 것은 없고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얻었다. 오전에는 그래도 그럭저럭 종을 구분하는 것 같은데 오후가 되면 각각의 개체에서 나타나는 형태적 변이 때문에 머릿속이 흐릿해지고 만다.”(<솟은땅 너른땅의 푸나무> 54~55쪽)
 

유 교수가 이번에 내놓은 <특징으로 보는 한반도 제비꽃>은 제비꽃을 총망라한 제비꽃 생태 도감이자 일반인과 전문가를 막론하고 퍼져있는 ‘제비꽃 공포’를 해소해 줄 좋은 자습서이기도 하다.
 

고깔13-00.jpg » 고깔제비꽃. 어린 잎이 고깔처럼 돌돌 말려 올라오고 분홍색 꽃을 피운다.

 

물론, 결론부터 말해, 이 책을 다 읽는다고 제비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렇기는커녕 더 막막하고 자신 없기만 하다. 하지만 무엇이든 처음 배울 때 까마득한 취미가, 사진촬영이나 바둑처럼 평생을 파도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는 그런 심연의 계단을 하나씩 디딜 수 있도록 검색표와 부위별 현미경 사진, 원 기준 표본의 사진까지 제공하고 있다. 제비꽃 속 식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장수길씨의 사진도 도움이 된다.
 

남산17-00-1.jpg » 남산제비꽃. 잎이 손바닥처럼 갈라져 있고 흰 꽃이 핀다. ‘남산’이 어딜 가리키는지는 모른다. 전국에 분포한다.

 

태백18-00.jpg » 태백제비꽃. 흰색 꽃과 갈라지지 않은 잎을 지녔다. 숲 속 북사면 약간 기름진 곳에 자란다. 지은이는 사진이 가장 예쁘게 찍히는 제비꽃으로 꼽는다.

 

다른 흔한 꽃처럼 제비꽃도 이름의 유래가 불분명하다. 유 교수는 세 가지 ‘설’을 제시한다. 하나는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봄에 피는 꽃이란 설명이지만, 사실 제비는 제비꽃보다 훨씬 나중에 온다.
 

또 다른 설명은 제비꽃의 별명인 오랑캐꽃에서 비롯한다. 춘궁기 먹을 것이 떨어질 때쯤 북방의 오랑캐들이 한반도를 침입할 무렵 들판에 피어나는 꽃이란 설명이 더 그럴 듯하다. 물론 오랑캐꽃의 꽃뿔 모양이 오랑캐의 머리 모양과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제비29-00-1.JPG » 제비꽃. 도심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세상사가 다 그렇듯이 모양이 그렇 듯하면 쓸모가 없고, 쓸 만 하면 모양이 그렇다. 실질적 내용을 담아놓은 도감이 읽기 힘든 이유이다.
 

이 책의 장점은, 도감으로 보는 사람에겐 군더더기이겠지만, 지은이가 제비꽃 연구와 관련해 겪거나 생각한 에피소드로 각 절의 들머리를 시작해 부드럽게 읽힌다는 점이다.
 

단지 이야깃거리일 뿐만 아니라 식물 연구자의 세계를 들여다 볼 드문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넓은잎제비꽃에 관한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북한에만 분포한다는 이 식물이 남쪽에도 자생한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을 찾아간 이야기다.

 

넓은잎11-00.jpg » 넓은잎제비꽃
 
 “그분은 이메일로 약도와 찾아가는 길을 상세하게 알려 주었다. 지피에스(GPS) 좌표 정보가 있으면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없었다. … 마을까지는 쉽게 찾아갔으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작은 언덕을 넘어 우마차 길을 지나서 밭둑을 따라가다 묏등을 지나 등산로 주변 …. 입지 조건은 비슷했지만 아무리 찾아도 넓은잎제비꽃은 보이지 않았다. ”
 
유 교수는 이듬해에 다시 한 번 그곳을 찾았지만 보는 데 실패했고 제보자와 동행해서야 넓은잎제비꽃을 볼 수 있었다. 2년을 헤맨 장소에서 직선거리로 100여m 떨어진 곳이었다. 이렇게 찾아낸 제비꽃 하나하나가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알록21-00-2.jpg » 알록제비꽃. 잎에 알록달록 무늬가 있고 잎 뒷면이 자색이어서 쉽게 구분된다.

 

제비꽃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싶은 이라면, 산행에서 만나는 제비꽃이 공원에서 흔히 보는 제비꽃과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초보자를 위한 제비꽃 지식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 노랑제비꽃: 해발 600~700m의 약간 높은 산에 무리지어 난다. 노란색 꽃이 두드러진다.
 ● 콩제비꽃: 계곡 주변 습한 곳에서 작고 흰 꽃을 꼿꼿하게 세워 피운다.
 ● 낚시제비꽃: 제주 등 남부에 많으며 턱잎이 빗살 모양으로 갈라져 낚시를 펼쳐 놓은 것 같다(낚시보다는 낙지 발을 더 닮았다!).
 ● 둥근털제비꽃: 산속 낙엽 밑에서 가장 일찍 피는 제비꽃이다. 온통 털에 뒤덮여 있다. 연한 자색 꽃을 피운다.
 ● 고깔제비꽃: 어린 잎이 고깔처럼 돌돌 말려 올라오고 분홍색 꽃을 피운다.
 ● 금강제비꽃: 깊은 산 그늘에 피는 흰색 제비꽃으로 한반도 특산일 줄 알았는데 만주에도 있다.
 ● 남산제비꽃: 잎이 손바닥처럼 갈라져 있고 흰 꽃이 핀다. ‘남산’이 어딜 가리키는지는 모른다. 전국에 분포한다.
 ● 태백제비꽃: 흰색 꽃과 갈라지지 않은 잎을 지녔다. 숲 속 북사면 약간 기름진 곳에 자란다. 지은이는 사진이 가장 예쁘게 찍히는 제비꽃으로 꼽는다. 태백과 관계가 없고 전국에 분포한다.
 ● 알록제비꽃: 잎에 알록달록 무늬가 있고 잎 뒷면이 자색이어서 쉽게 구분된다.
 ● 삼색제비꽃: 흔히 팬지로 부르는 유럽 북부 원산의 제비꽃 개량 품종이다.
 ● 종지나물: 제비꽃 가운데 유일하게 ‘제비꽃’으로 끝나지 않는 종이다. 북아메리카 원산의 외래종이다. 번식력이 강해 도심 공원에 넓은 군락을 이루기도 한다.

선제비04-00.jpg » 선제비꽃. 한때 멸종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낙동강 하구 습지에서 발견됐다. 키가 70㎝에 이르는 멸종위기종이다.

 

미국제비34-00-1.jpg » 종지나물. 북아메리카에서 들어온 외래종 제비꽃이다.

 

삼색제비33-00.JPG » 삼색제비꽃. 팬지로 불리는 북유럽 원산의 원예종이다.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장수길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마마의 마지막 포옹이 던진 질문…인간과 동물은 얼마나 다른가마마의 마지막 포옹이 던진 질문…인간과 동물은 얼마나 다른가

    조홍섭 | 2019. 08. 02

    프란스 드 발의 동물행동학 역작 “동물, 인지능력과 감정까지 보유” 공감·배려·협력은 사회성 포유류 특징 인간중심주의 벗고 ‘동물성’ 회복해야 “동물도 감정이 있을까?”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해 물을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그...

  • 벌통 앞에서 바나나 먹으면 안 되는 이유벌통 앞에서 바나나 먹으면 안 되는 이유

    조홍섭 | 2018. 05. 23

    벌-그 생태와 문화의 역사(노아 윌슨 리치 지음, 김슨윤 옮김/ 연암서가, 2만원)꿀벌 경고 페로몬과 비슷한 냄새 풍겨…페로몬 막으려 훈연기 사용높이 나는 드론 수벌만 여왕봉과 짝짓기, 음경 폭발로 ‘비극적 행운’꿀벌 하면 달콤한 꿀과 따끔...

  • 몸 속 39조 마리의 미생물과 더불어 살기몸 속 39조 마리의 미생물과 더불어 살기

    조홍섭 | 2017. 08. 18

    우리 몸은 미생물과 더불어 사는 생태계미생물 통해 자연과 인간 새롭게 보자 주장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에드 용 지음, 양병찬 옮김/어크로스·1만9800원우리 몸속에는 39조 마리의 미생물이 산다. 불청객이 아니다. 미생물은 동물이 출현하기 ...

  • 바다에서 건져 올린 인문학바다에서 건져 올린 인문학

    조홍섭 | 2017. 04. 28

    멍게는 조개보다 척추동물에 가까워…바지락 해감은 놀라서 삼킨 것 도루묵 이름 유래에 식자 오만, 어민은 오래전부터 '은어' '도루묵' 불러      우리가 사랑한 비린내 -해양생물학자가 우리 바다에서 길어 올린 풍미 가득한 인문...

  • 사람 몸은 사람 것이 아니었네사람 몸은 사람 것이 아니었네

    조홍섭 | 2016. 12. 02

    몸은 사람세포 10배 ‘세균 생태계’, 가공식품 먹으면서 세균 다양성 낮아져김홍표 교수의 최신 진화생물학, ‘내 몸 속 바깥’ 소화기관의 기원 탐구사람은 찐빵과 도넛 가운데 어느 쪽에 가까울까. 생물학자는 도넛을 가리킨다. 입에서 위장과 창...

인기글

최근댓글